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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이사야 35:1–10

    今日默想:以賽亞書35:1–10

    한경우··조회 47

    제목 : 광야가 백합화같이 피어

    어제 본문은 폐허로 끝났다. 그 땅이 태초의 혼돈과 공허로 돌아갔고,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들짐승이 차지했다. 그런데 오늘 35장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두 장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하나하나가 뒤집히는 것이 보인다.

    사 35: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34장에선 그 땅의 시내가 역청이 되었는데 35장은 광야에 물이 솟는다. 34장에선 승냥이가 그 자리에 누웠는데 35장은 승냥이 눕던 곳에 갈대와 부들이 자란다. 34장엔 사람이 사라졌는데 35장은 구속받은 자들이 그 길로 걸어 돌아온다.

    그리고 2절에서 그 광야가 무엇을 얻는가? 바로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레바논은 백향목으로 이름난 곳이고, 갈멜과 사론은 비옥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즉 가장 메마른 땅이 가장 기름진 땅의 영광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회복이 땅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 35:3-4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약한 손과 떨리는 무릎으로 표현되는 지친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에게 굳세어라 하고 말하라는 것이다. 즉 회복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회복의 근거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신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5절과 6절에서 이 35장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등장한다.

    사 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눈과 귀와 발과 혀까지 막혔던 것이 다 열린다. 온전한 회복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혔을 때 인용하셨다. 세례 요한이 흔들렸을 때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주며, 자기가 소망했던 메시야가 오셨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자기가 그토록 외쳤던 그분이 정말 오실 그분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 물었다. 당신이 오실 그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이 본문의 내용이었다. 가서 요한에게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알리라 하시고는,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자가 걸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하셨다.

    한 주석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예수님이 이사야 35장의 낱말을 그대로 쓰지는 않으셨어도 그 내용을 분명히 쓰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맹인과 못 듣는 자와 못 걷는 자를 고치셨을 때,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사야 35장을 가리키며 메시아의 구원이 왔음을 알리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사야가 여기서 바라본 그 날이 예수님 안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8절부터 그 회복된 땅에 길이 하나 난다.

    사 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룩한 길이라 불리는 바로 구원의 길이다. 그런데 그 길에 오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깨끗하지 못한 자와 우매한 행인이다. 곧 아무나 들어서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를 위한 길인가. 본문이 분명히 밝힌다.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본문의 마지막 구절은 번역이 갈리는 대목이다. 개역개정은 '우매한 행인이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고 옮겼는데, 영어 성경 가운데는 이것을 정반대로 번역한 성경도 있다. '그 길을 걷는 자는 어리석을지라도 길을 잃지 아니하리라'는 것이다. 이는 히브리어 자체가 두 가지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독법은 그 길에 들어설 수 없는 자를 말하고, 뒤의 독법은 그 길이 그만큼 분명해서 길눈 어두운 사람도 헤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다만 우리 개역 성경은 전자를 따르고 있다.

    이어서 9절에 사자도 없고 사나운 짐승도 없다고 하신다. 주석가들은 이것을 안전의 그림으로 읽는다. 옛날에 먼 길을 걷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맹수가 도사렸고 강도가 숨어 있었다. 그런데 이 길에는 그런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사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신학자들은 여기 '구속함을 입은 자'와 '속량함을 받은 자'라는 두 낱말이 값을 치르고 속박에서 건져 내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 이 길을 걷는 사람들, 즉 구원받은 자들은 스스로 자격을 갖춘 자들이 아니다. 귀한 값을 치러 건짐받은 자들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개인적으로 묵상하면서 개역개정은 우매한 자가 그 길에 들어서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떤 번역은 어리석은 자라도 그 길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하는 이 해석의 차이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나에게 오히려 두 번째 해석이 위로가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나역시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이다. 오래 믿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헤매고, 안다고 말하면서도 자꾸 방향을 놓친다. 그런 나에게 이 구원의 길이 어떤 길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래 이 길은 내가 똑똑해서 걷는 길이 아니다. 값을 치르고 건져 주신 분이 계셔서 걷는 길이다. 그리고 그분이 값을 치루신 바로 그 길이기에, 길눈 어두운 나도 그 길 위에 있는 한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 은혜를 붙잡고 오늘도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있는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는 그 날을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題目:曠野要像百合花開放

    昨日的經文以廢墟收場。那地歸回太初的混沌與空虛,人跡消失之處,野獸佔了上風。然而今日的第35章,卻站在它的另一端。將這兩章並列閱讀,便能看見一切被翻轉過來。

    賽35:1 曠野和乾旱之地必然歡喜;沙漠也必快樂;又像玫瑰(百合花)開花

    在第34章,那地的河水變為石油,而35章卻是曠野湧出水來。在第34章,野狗躺臥在那裡,而35章卻是野狗躺臥之處長出蘆葦和蒲草。第34章人跡消失,第35章卻有蒙救贖的人沿著那道路走回來。

    那麼在第2節,那曠野得到了什麼呢?正是黎巴嫩的榮耀,和迦密與沙崙的美麗。黎巴嫩以香柏木聞名,迦密與沙崙則以肥沃著稱。也就是說,最貧瘠的地要披上最肥美之地的榮耀。

    然而,這樣的恢復並不僅止於土地。

    賽35:3-4 你們要使軟弱的手強壯,使發顫的膝穩固。4 對膽小的人說:「要剛強,不要懼怕。看哪,你們的神必來報仇,必來施行報應;他必來拯救你們。」

    這裡描繪的是軟弱的手和發顫的膝所代表的疲憊之人的模樣。而神卻要人對他們說「要剛強」——這正是宣告恢復的話。而這恢復的根基,並非在於我們自身的力量,而是在於「神要來」這一事實。

    因此,在第5節與第6節,便出現了本章中最重要的內容。

    賽35:5-6 那時,瞎子的眼必打開,聾子的耳必開通。6 那時,瘸子必跳躍如鹿,啞巴的舌頭必歌唱;因為在曠野必有水湧出,在沙漠必有河流湧流。

    眼、耳、腳、舌,一切被閉塞之處都要打開,表達的正是全然的恢復。而這段話,耶穌在施洗約翰被囚在監裡時親自引用過。那正是施洗約翰心生動搖的時刻。約翰為耶穌施洗時,曾確信自己所盼望的彌賽亞已經來到。然而在看見耶穌的事工之後,他對於自己一直宣告的那位,究竟是否真是「那要來的那位」感到不確定。於是他派門徒去問耶穌:「那將要來的是你嗎?還是我們要等候別人?」那時耶穌的回答,正是這段經文的內容。祂說,去把你們所看見所聽見的告訴約翰:瞎子看見,瘸子行走,聾子聽見,死人復活。

    一位注釋家指出,耶穌雖未逐字引用以賽亞書35章的用語,卻分明使用了其中的內容。而當耶穌醫治瞎子、聾子與瘸子時,那本質上正是指向以賽亞書35章,宣告彌賽亞的救恩已經來到。因此,以賽亞在此所盼望的那一天,已經在耶穌裡開始了。

    接著,從第8節起,在那恢復的土地上,築起了一條道路。

    賽35:8 在那裡必有一條大道,稱為聖潔之路。污穢的人不得經過,只為蒙救贖的人存留;愚昧的行人不得在其上行走。

    被稱為「聖潔之路」的,正是救恩之路。然而,並非所有人都能走上這條路。污穢的人與愚昧的行人便無法走上這路。也就是說,這並非任何人都能隨意踏入的道路。那麼這路究竟是為誰預備的呢?經文清楚說明——唯獨為蒙救贖的人存留。

    不過,這段經文的最後一句,譯法卻有分歧。韓文《改譯改訂》譯作「愚昧的行人不得在其上行走」,而某些英文譯本則譯成完全相反的意思:「行走這路的人,雖愚昧也不致迷失。」這是因為原文的希伯來文本身可以有兩種讀法。前一種讀法指的是無法踏上這路的人,後一種讀法則是說,這條路如此清晰,即便是路癡也不會迷失方向。韓文聖經採用的是前一種讀法。

    接著第9節說,那裡沒有獅子,也沒有兇猛的野獸。注釋家們將此解讀為「安全」的圖像。在古時,長途步行本是危險之事,猛獸潛伏,強盜隱藏。然而這條路上,卻沒有這些危險。

    賽35:10 耶和華救贖的民必歸回,歌唱來到錫安;永遠的喜樂必臨到他們頭上,他們必得著歡喜快樂,憂愁歎息盡都消逝。

    神學家們指出,這裡「蒙救贖的人」與「得贖的人」這兩個詞,意指付出代價、將人從束縛中解救出來。因此,行走這條路的人,也就是得救的人,並非憑自己的資格站在這條路上。經文清楚顯明,他們是被付出寶貴的代價而贖回的人。

    在個人默想今日經文時,我深思了這樣的解釋差異——韓文《改譯改訂》說愚昧的人不得踏上那路,而另一種譯法則說即便是愚昧的人,也不會在那路上迷失。然而,對我而言,第二種解釋反倒帶來更大的安慰。原因正是因為我自己也是那個愚昧的人。雖說信主已久,卻仍時常迷惘;雖說知道,卻屢屢迷失方向。想到這樣的我,便思考這條救恩之路究竟是怎樣的一條路。是的,這條路並非因我聰明才能行走,而是因為有一位付出代價將我救出來的主,我才得以行走其上。而正因這是那位主親自付出代價所開的路,即便我這樣路癡的人,只要仍在這路上,也不會迷失。緊緊抓住這恩典,我今日又活過了一天。並且,盼望著那道路盡頭——憂愁歎息盡都消逝的那一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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