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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이사야 34:1–17

    今日默想:以賽亞書 34:1–17

    한경우··조회 58

    제목 : 여호와의 책에서

    오늘 본문은 읽기가 부담스럽다. 심판의 모습이 피와 살육과 불타는 땅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심판의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싫다고 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장이 놓인 자리를 알면 흐름이 보인다. 34장과 35장이 한 쌍이다. 오늘이 심판이고 내일이 회복이다. 그리고 이 두 장이 지금까지의 예언과 뒤에 이어질 히스기야 이야기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먼저 이 장이 부르는 대상을 보아야 한다.

    사 34:1-2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2 대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 당하게 하셨은즉

    이처럼 시작을 보면 한 나라가 아니다. 온 세상이다. 그런데 5절에서 갑자기 에돔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장의 나머지가 다 에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온 세상을 부르시고는 왜 한 나라의 심판만을 다루시는가? 그래서 학자들은 에돔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교만한 나라의 대표로 세워졌다고 본다. 앞서 25장에서 모압이 그 자리에 섰던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대표가 에돔인가.

    에돔은 야곱의 쌍둥이 형제였던 에서의 후손이다. 그러니 이스라엘과 에돔은 피를 나눈 형제였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오바댜가 기록한다.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날, 에돔은 곁에 서서 구경했다. 그리고 기뻐했다. 재물에 손을 댔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갈림길에서 붙잡았다. 그래서 오바댜는 이렇게 말한다.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리라고... 그래서 학자들이 지적하기를, 그 혈연이 마땅히 긍휼을 불러일으켰어야 했는데 도리어 그 행위를 더 역겹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남이 그랬다면 그저 잔인한 일이지만, 형제가 그랬으니 배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네바 성경 주석은 에돔 사람들이 이삭에게서 나왔다는 이유로 오히려 스스로 거룩하다는 의식을 가졌다고 지적한다. 즉 자신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이삭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하나님을 떠나 그 백성의 원수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에돔은 단순한 이방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분을 떠난 자들의 대표로 지금 심판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어지는 심판의 묘사가 특이하다.

    사 34:6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숫양의 콩팥 기름으로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를 위한 희생이 보스라에 있고 큰 살륙이 에돔 땅에 있음이라

    신학자들은 이 언어가 제사의 언어라고 말한다. 어린 양과 염소와 숫양, 그리고 콩팥의 기름은 다 제사에 쓰이던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제물이 짐승이 아니라 에돔 사람들이 된 것이다. 학자들은 이런 관점이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스바냐에도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심판을 제사의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은 자들이 결국 하나님의 제단 위에 놓이는 셈인 것이다.

    그리고 9절부터 그 땅이 어떻게 되는지가 나온다. 시내가 역청이 되고 흙이 유황이 되며 온 땅이 불타는 역청이 된다.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1절에 이르면 그 심판의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사 34:11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

    일부 신학자들은 이 본문의 '혼란'과 '공허'라는 이 두 낱말이 창세기 1장 2절에서 태초의 혼돈을 묘사하는 바로 그 낱말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의 상태인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다고 표현한 그 말이다.하나님의 창조는 혼돈과 공허를 질서로 바꾸셨다. 그런데 사람이 그분을 대적하자, 그 자리가 다시 혼돈과 공허로 돌아간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창조의 역전이다. 예레미야도 인간의 타락을 같은 모습으로 묘사했다.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 빛이 없다고 했다(렘 4:23).

    그리고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에서의 줄과 추은 본래 건축할 때 쓰는 도구다. 집을 반듯하게 세우려고 줄을 띄우고 추를 내린다. 그런데 주석가들은 이 도구가 헐 때도 쓰였다고 지적한다. 무엇을 어디까지 헐어야 하는지 재어 가며 허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튜 헨리는 그 주석에서 이 표현이 그 심판의 공정함을 보여 준다고 했다. 파괴가 임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줄과 수평기에 따라 정확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재어 가며 헐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그것이 바로 혼란과 공허다. 이처럼 하나님이 그 죄악의 자리를 태초의 그 상태로 되돌리시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짐승들이 차지한다. 당아새와 부엉이와 까마귀와 승냥이와 타조가 깃들고, 들짐승과 이리가 만난다. 그런데 이 무거운 장의 마지막에 뜻밖의 명령이 나온다.

    사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곳에서 심판의 참상을 그리다가 갑자기 책을 찾아 읽으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여기 '여호와의 책'이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가 갈린다. 어떤 이는 모세의 율법책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이는 하나님의 작정을 기록한 책으로 보기도 하며, 이사야서 자체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다수의 주석가들은 이 명령을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라는 뜻으로 읽는다. 이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때 이 책을 다시 펴서 읽어 보면, 사건과 예언을 대조하여 모든 것이 정확히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본문이 밝힌다. 여기 나열된 짐승들 하나하나까지도 빠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명령이 이 장의 결론이다. 이 무서운 심판을 읽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말씀을 찾아 읽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그 말씀을 알라는 것이다.

    오늘 이 본문을 주해하면서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묘사, 즉 짝을 지어 모인다는 표현과 하나님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다는 표현이 어디선가 본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주석서들을 확인해 보니 실제로 한 유대 주석가는 여기 '여호와의 책'을 창세기로 보았다고 한다. 홍수 때 모든 생물이 짝을 지어 노아에게 모였던 그 기록 말이다. 그렇게 해석을 하면 이 장면이 놓인 자리가 예사롭지 않다. 앞에서 그 땅이 태초의 혼돈과 공허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의 영이 짐승들을 모으신다. 창세기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 때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운행하셨듯이 말이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짐승들이 모이는 것은 아직 폐허의 그림이라고 해석을 한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그것들이 차지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사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다음 35장에서 그 광야가 백합화같이 피어나고, 구속받은 자들이 그 길로 걸어 시온으로 돌아온다고 묘사한다.

    그러니 나에게는 이 명령이 이렇게 들린다. 그 책을 찾아 읽어 보라, 혼돈에서 질서를 지으신 분이 누구셨는지 거기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서를 창조하신 분이 명령하셨던 삶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창조의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말씀이 단순한 심판을 묘사한 것이 아닌 심판의 이유를 설명하고 심판의 목적까지 명확히 보여주시는 본문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오늘도 항상 신실하신 그 하나님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신뢰하며 나아가길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題目:在耶和華的書上

    今天的經文讀起來令人感到沉重。因為審判的景象是以血、殺戮和焚燒的土地來描繪的。或許正因這樣的審判景象,許多人才會對舊約中的神感到懼怕,甚至心生厭惡。然而,只要明白這一章所處的位置,便能看見其中的脈絡。第34章與第35章是一對。今日是審判,明日是恢復。而這兩章正扮演著橋樑的角色,將迄今為止的預言與後面即將展開的希西家故事連接起來。

    首先,我們要看這一章所呼召的對象。

    賽34:1-2 列國啊,要近前來聽!眾民哪,要側耳而聽!地和其上所充滿的,世界和其中一切所出的,都應當聽!2 因為耶和華向萬國發忿恨,向他們的全軍發烈怒,將他們滅盡,交出他們受殺戮。

    如此看來,一開始所指的並非某一個國家,而是全世界。然而在第5節,突然出現了以東。而這一章其餘的部分,全都是以東的故事。那麼,為何呼召了全世界,卻只處理一個國家的審判呢?因此學者們認為,以東被立為所有抵擋神之驕傲列國的代表。正如先前第25章中摩押站在那個位置一樣。那麼,為何偏偏是以東成為那個代表呢?

    以東是雅各的雙胞胎兄弟以掃的後裔。因此,以色列與以東是有血緣關係的兄弟。然而他們是如何行事的,俄巴底亞書有所記載。耶路撒冷淪陷的那一天,以東站在一旁觀看,並且歡喜快樂。他們伸手奪取財物,又在岔路口攔截逃難的人。因此俄巴底亞說:因你向兄弟雅各行強暴,羞愧必遮蓋你……學者們指出,那血緣關係原本應當激起憐憫之心,卻反而使他們的行為更加令人作嘔。若是外人這麼做,那不過是殘忍之事;然而是兄弟這麼做,那便是背叛。

    日內瓦聖經註釋也指出,以東人因自己出於以撒,反倒懷有一種自以為聖潔的意識。也就是說,他們自認也是亞伯拉罕的子孫、以撒的後裔。然而實際上,他們卻離棄了神,成了神百姓的仇敵。因此,以東並非單純的外邦人。他們雖處在本可認識神的地位,卻離棄了祂,如今正作為這樣之人的代表,站在審判的位置上。

    或許正因如此,接下來對審判的描寫顯得格外特別。

    賽34:6 耶和華的刀滿了血,用脂油和羊羔、山羊的血,並公綿羊腰子的脂油滋潤的;因為耶和華在波斯拉有獻祭的事,在以東地大行殺戮。

    神學家們指出,這裡的用語乃是祭祀的用語。羔羊、山羊、公綿羊,以及腰子的脂油,這些都是祭祀時所用之物。然而在此,成為祭物的並非牲畜,而是以東人。學者們指出,這樣的觀點在耶利米書、以西結書和西番雅書中也同樣出現。也就是將審判描繪成獻祭的圖畫。那些不敬拜神的人,最終竟被擺在神的祭壇之上。

    從第9節開始,經文描述那地將變成何等光景。河水變為石漆,塵埃變為硫磺,遍地成為燒著的石漆。這是在描繪所多瑪與蛾摩拉受審判的景象。而到了第11節,這審判的性質便更加明朗。

    賽34:11 鵜鶘、豪豬卻要得為業;貓頭鷹、烏鴉要居其中。耶和華必將空虛的準繩,混沌的線鉈,拉在其上。

    有些神學家指出,這段經文中的「混沌」與「空虛」這兩個詞,正是創世記第一章第2節描述太初混沌時所用的正是那兩個字。也就是神創造天地之前,形容地是「空虛混沌」時所用的那個詞。神的創造,將混沌與空虛轉變為秩序。然而人若悖逆祂,那地方便重新回到混沌與空虛之中。這是創造的逆轉。耶利米也用同樣的景象描繪人的墮落。他說:「觀看地,地是空虛混沌;觀看天,天也無光」(耶4:23)。

    而「混沌的線鉈、空虛的準繩」中的準繩與線鉈,原本是建築時所用的工具。要將房屋建得端正,便會拉線、垂鉈。然而註釋家指出,這工具在拆毀時也同樣使用。要拆到何種程度,都須量度而拆。因此馬太·亨利在其註釋中說,這一表達正顯明了那審判的公正。破壞並非隨意而行,而是照著準繩與水平器精準地進行。而如此量度、拆毀之後,所剩下的是什麼呢?那便是混沌與空虛。神如此將那罪惡之地,重新帶回太初的狀態。

    於是,人消失之處,便由野獸佔據。鵜鶘、貓頭鷹、烏鴉、豺狼、鴕鳥棲息其中,野獸與豺狗相遇。然而,在這沉重一章的末尾,卻出現了意想不到的命令。

    賽34:16 你們要查考宣讀耶和華的書。這都無一缺少,無一沒有偶。因為我的口已經吩咐,他的靈將他們聚集。

    在此描繪審判的慘狀之際,忽然要人查考、宣讀那書。那麼這裡的「耶和華的書」是指什麼呢?學者們的見解各有不同。有人視之為摩西的律法書,也有人視之為記載神旨意的書,還有人視之為以賽亞書本身。然而多數註釋家將這命令解讀為,要人確認預言的應驗。當這些事真的發生之時,若重新翻開這卷書來讀,將事件與預言相互對照,便會發現一切都準確地應驗了。而經文也說明了其原因——這裡所列舉的每一種野獸,竟無一遺漏。因此,這意味著神所說的話,沒有一句不應驗。

    所以這命令正是這一章的結論。讀完這可怕的審判之後,該當如何?就是要查考、宣讀那話語。神所說的話必定應驗,因此要人認識那話語。

    今日在解經這段經文的過程中,個人特別對後半部的描寫——即成雙成對聚集、以及神的靈將牠們聚集起來的表達——感到彷彿曾在哪裡見過這樣的畫面。於是查閱註釋書後發現,確實有一位猶太註釋家將此處的「耶和華的書」視為創世記。也就是洪水之時,各樣活物成雙成對聚集到挪亞那裡的那段記載。若如此解讀,這場景所處的位置便顯得意味深長。前面提到那地回歸太初的混沌與空虛,而在此處,神的靈聚集了野獸——正如創世記中,地是空虛混沌之時,神的靈運行在水面上一樣。當然,在今日經文中,野獸的聚集,仍被解讀為廢墟的景象,因為那是人消失之後由牠們佔據的地方。然而在我看來,以賽亞並未止步於此。緊接著在第35章,便描繪那曠野要像百合花一樣開花,蒙救贖的人要行走其上,歸回錫安。

    因此,對我而言,這命令彷彿這樣說道:去查考、宣讀那書吧,那裡記載著,是誰將混沌轉為秩序。並且彷彿在提醒我們,那創造秩序的神所命定的生活究竟是什麼。也彷彿在表明,那創造的神如今仍在做工。因此對我個人而言,這段話語不僅僅是描繪審判,更是說明了審判的緣由,並清楚顯明了審判的目的。因此,願我今日也常常默想那位信實的神,信靠祂的話語,繼續前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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