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3편, 요한복음16-18)
다윗처럼 어둠 속에서 기도가 허공을 치는 듯한 절망을 느낄 때 요한복음 속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큰 힘이 됩니다. 저의 연약하고 부족한 기도를 넘어 주님께서 지금도 저를 위해 완전한 기도를 드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 중보가 저를 붙들고 있기에 저는 상황을 넘어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를 붙드시는 주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중보에 깊이 감사드리는 하루입니다.
‘어느 때까지이니까‘ 라는 다윗의 질문에 그의 고통과 처절함이 느껴졌습니다. 다윗은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원망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부르짖을수 있습니다. 저도 낙심되는 일이 있을때 주님께로 시선을 돌려 다윗처럼 솔직하게 부르짖으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시인은 자신이 처한 괴로움 중에서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믿는다고 합니다. 더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드시 건져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걸어 온 길,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금.. 모두 제게 주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도 오늘도 그리고 다가올 미래도 그 분의 크신 계획 아래 있으니, 저를 도우실 하나님을 굳게 믿고, 오늘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시인이 이토록 부르짖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들으시고 도우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 속에서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 그 문제를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자. 또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이라 확신하며 주의 사랑과 구원과 은덕으로 인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자.
오늘의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고통을 토로하며 시작하지만 끝은 감사와 신뢰로 마무리합니다. 다윗을 보며 믿음의 사람이 가야할 길을 배웁니다. 나의 삶도 고통속에 신음하는 날들도 있고 때론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끝은 결국 구원하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으로 마무리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환경을 보지 않고 주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아첨하는 입술은 사람이 듣기 좋지만 그것의 본질은 거짓이며 두 마음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사람이 듣기 거북하지만 나를 단련시키며 순결하게 한다. 듣기 좋은 말이 안전한 지대가 아니다. 어제 말씀처럼 나는 이미 여호와께 피하였는데 사람의 말을 듣고 산으로 도망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말씀으로 단련받아야 정금같이 주님께 나아갈 수 있다. 나를 단련시켜 안전한 지대에 두고 영원까지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가 되자. 오늘 나에게 들려오는 사탄의 거짓말, 세상의 아첨에 속지 말고 말씀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자.
거짓이 가득한 혼돈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붙들어야 할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뿐임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온갖 정보가 넘치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거짓에 마음이 흔들리고 현혹되기 쉽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주님의 말씀뿐임을 기억하고 더욱 말씀 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헙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남은 날들도 말씀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주님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온통 거짓으로 가득합니다. 사람을 믿기 힘든 이 시대에 온전히 신뢰하고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변함없는 주님의 약속과 말씀뿐임을 고백합니다. 거짓된 세상에 휩쓸리지 않게 하시고, 오직 신실하신 주님 앞에서 저 또한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시편 11편, 요한복음 11,12)
위기가 찾아오면 본능적으로 통제 가능한 합리적 핑계나 현실적 타협이라는 나만의 산으로 숨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곳엔 주님과의 영적 교제가 빠져 있습니다. 사망의 위협에도 구원을 위해 묵묵히 유대로 들어가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진짜 피난처는 내 지혜로 만든 타협의 산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말씀과 기도의 자리임을 묵상합니다. 위기 앞에서 세상으로 도망치지 않고 주님께 엎드리는 믿음을 소망합니다.
여호와께 피한 자는 이미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 곁에 있는 것이다. 하늘은 악인의 화살이 닿지 못하는 곳이기에, 상황이 어렵고 터가 무너진 것 같을 때 사람들의 말에 속아 산으로 도망쳐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말을 의지하면 도망자가 될 뿐이다. 힘들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의인의 길로 갈 수 있다. 정직한 자는 주님의 얼굴을 보는데, 그 주님이 계신 곳이 바로 하늘 보좌이다. 나는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이므로, 불안해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그분의 도우심으로 찬송하는 자가 되자.
고난이 오면 본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지만 산으로 도망치라는 세상의 만류에도 다윗은 여호와께 피했다. 캐나다에 있을때 학업과 실습 살림 그리고 교회 봉사들로 지쳐서 ‘주님 아시죠‘ 라는 말만 겨우 뱉으면서도 섬김을 계속했던 건 세상이 말하는 빠른 길 대신 주님 곁을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고난이 있을땐 묵상 훈련을 통해 문제 대신 주님께 시선을 고정했기에 흔들리지 않고 나올 수 있었다. 내 삶을 지켜온 것이 모두 주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오늘도 항상 주님 앞에 정직한 자로 서서 그 얼굴을 뵙기를 소망합니다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께 피해 그분의 도우심을 잠잠히 기다립니다. 인생을 길게 살지 않았지만 저 또한 인생의 바닥이라고 느껴진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시편 11:1절의 말씀처럼 세상은 ‘너는 새처럼 너의 산에서 피하여라’라고 말하는것 같았습니다. 더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더 편법적인 방법으로 피해가라고 조언해주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저또한 남들에게 그랬던적이 한두번이 아닌것 같습니다. 신앙의 기초가 흔들리지 않도록 언제나 하나님께만 피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시편 11편, 요한복음 9,10장)
세상의 잣대로 보면 시편 기자의 삶의 터전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견고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을 증거하다 유대 사회에서 출교당한 맹인을 주님은 직접 찾아가 만나주시고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심을 선포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제든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를 보게 됩니다. 항상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것을 굳게 믿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저를 직접 찾아오시는 그 말씀을 더욱 단단히 붙드는 삶을 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일에 무관하고 신경을 안 쓰신다 여기며, 약한 자와 가여운 자를 핍박하는 악인이 종횡하는 세상과 그러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기를 기원하는 기도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종횡하는 악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을 행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시편 10편의 세상처럼 오늘날도 가난하고 연약한 자가 짓밟히고 악이 거침없는 부조리한 세상이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주저앉아 원망하기보다, 시인과 하박국처럼 주님께 문제를 가져가 도우심을 구하며 씨름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악의 종말과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할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나만을 위한 기도보다는 세상의 악이 무너지고 연약한 자들이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기를 기도하자. 또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자.
살다보면 정말 선한 논크리스챤들을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악한 크리스챤들을 만날때도 많은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렸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드는 의문은 과연 내가 생각하는 악인이 하나님 보실때도 악인일까?라는 것입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닌 경우가 적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재판장이 되었던 교만함을 내려놓고 다윗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삼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답답함과 질문을 토로하고 있지만 결국 기도를 통해 문제에 집중하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때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마음이 답답한 일들을 마주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시며, 듣고 계시고, 일하고 계시는 주님께 우리의 온 마음을 쏟아 놓으며 기도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10편, 요한복음 7,8장)
시편의 악인과 요한복음의 바리새인들을 보며 지식과 굳어진 사상이 얼마나 눈을 멀게 하는 덫이 될 수 있는지 봅니다. 자신들의 틀에 갇혀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채 오히려 밀어냈습니다. 나나 다른사람의 어떠함이나 높낮이라는 잣대를 내려놓고 항상 하나님 안에 머물며, 진리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너무 피해자 코스프레로 포장된 삶을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면 내가 피해자라면 가해자가 있게 마련이고, 내 입장과 상황이 늘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하나님께 나만 억울한 냥, 내 원수를 물리쳐 달라며, 내 사정을 읍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경우엔 내가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내가 타인의 원수가 되고 그들이 하나님께 변론과 송사를 맡긴 대상이 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돌아보니 그런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억울한 상황도 싫지만, 타인의 삶에 해가 되는 상황도 안 만들도록 하나님 인도하소서.
오늘 본문은 의인을 변호하시는 하나님과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의인을 일으키시는 주님과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악인, 하나님을 잊어버린 악인과 하나님이 잊지 않으시는 의인 또 그 모든 것으로 즐거워하는 의인과 두려워하는 악인의 모습이 대조된다. 나는 지금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주시는 것으로 기뻐하고 있는가? 아니면 심판 받을 날이 다가옴에 두려워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으니 날마다 그리스도로 옷입어 주님께 삶의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길,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승리하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다윗의 시편을 묵상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쉽게 이해가 되어 그렇기도 하지만 그의 삶을 볼때 지난주일에 목사님이 말씀하신 삶 자체가 예배가 되는 모범적인 모습이 큰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수 많은 죄악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신 이유가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다윗의 삶을 닮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큰 죄악은 멀리하려 노력하지만 삶의 작은 부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단 내 힘으로 해쳐나가려 하는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도 늘 함께해 주신다. 그것을 잘 아는 다윗은 고난이 다 지나가기 전에도 먼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찬양했다. 내 삶에 당장 어려움이 닥쳤을 때, 불평하기보다 지금까지 내 삶을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겠다. 또한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의지하지 않고 나의 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만을 나의 요새로 삼는 겸손한 삶을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