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1:1–10
今日默想:士師記 1:1–10
제목 :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오늘부터 사사기를 묵상한다. 그래서 이 사사기가 어떤 책인지 먼저 간략하게 정리해 두려 한다.
김지찬 교수는 사사기를 음악에 빗대어 서곡(1:1–3:6), 주요 악장(3:7–16:31), 코다(17:1–21:25)의 삼부 구조로 설명한다. 그가 쓴 사사기 강해서의 제목이 『엔 샬롬 교향곡』인데, '엔 샬롬'은 '샬롬이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안식의 땅에 들어와 놓고 안식 없이 살았다. 그리고 주요 악장을 지배하는 것은 순환이다. 범죄, 진노, 압제, 부르짖음, 구원, 그리고 다시 범죄가 여섯 번 반복된다. 김지찬 교수는 이것을 '위기의 신앙'이라고 부른다. 힘들 때만 하나님께 돌아오고 형편이 회복되면 옛 자리로 돌아가는 신앙이다. 그런데 이 순환은 제자리를 도는 원이 아니라 한 바퀴 돌 때마다 조금씩 내려앉는 나선이다.
그리고 사사기의 처음과 끝을 보아야 한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겠느냐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같은 물음이 다시 나온다.
삿 20: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이 둘의 물음의 형식이 같고 대답까지 같다. 그런데 올라가는 대상이 다르다. 처음에는 가나안 족속이었고 마지막에는 형제 베냐민이다. 이렇게 앞뒤가 같은 말로 짝을 이루어 책 전체를 감싸는 기법을 인클루지오라고 부른다. 사사기는 이 두 물음 사이에 놓인 이야기다. 승리의 문장이 그대로 실패의 문장이 되어 버리는 역사다. 그리고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문장이 네 번 반복된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문장을 왕이 필요하다는 말로만 읽으면 절반만 읽는 것이다. 사사기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인간 왕의 부재가 아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아느냐고 묻는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왕 없는 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사기의 구조를 머리에 두고 매일의 묵상을 조금씩 읽어야 한다. 그래야 각 본문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분별해 볼 수 있게 된다.
오늘 묵상한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삿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사사기는 죽음으로 시작한다. 모세가 죽었을 때는 여호수아가 있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었을 때는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사람을 찾는 대신 하나님께 묻는다. 여기 '여쭈어'로 옮겨진 말은 히브리어 샤알(שָׁאַל)인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전쟁을 앞두고 제사장을 통해,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정식 절차를 가리킨다. 그들은 누가 여호수아의 뒤를 이을 지도자인지 묻지 않았다.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지도자가 없어도 명령하시는 분은 계시다는 것을 그들은 아직 알고 있었다.
삿 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넘겨 주겠다가 아니다. 넘겨 주었다이다.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과가 이미 선언되어 있다. 그래서 유다는 시므온과 함께 올라간다. 베섹에서 이기고,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고, 예루살렘을 치고, 헤브론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헤브론에서 무너뜨린 자들의 이름이 이렇게 기록된다.
삿 1: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는 민수기 13장에 나오는 바로 그 이름들이다. 정탐꾼 열 사람이 헤브론에서 보고 돌아와,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다고 보고했던 아낙 자손이다. 그 보고 하나 때문에 한 세대 전체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그런데 이제 그 이름들이 무너진다. 여기까지가 오늘 우리가 읽은 열 절이다. 하나님께 물었고, 이미 주셨다는 대답을 들었고, 사십 년 묵은 이름들이 무너졌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여호수아의 죽음이 나 중에 한 번 더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 또 자세히 다르겠지만 간략하게 설명을 하면
삿 2: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같은 사람의 죽음을 사사기가 두 번 보도한다. 1장에서 한 번, 2장에서 또 한 번이다. 왜 두 번인가. 그 뒤에 붙는 문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1장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일어난 것은 하나님께 묻는 세대였다. 그런데 2장에서는 이렇게 이어진다.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같은 죽음이고 같은 공백인데 결과가 둘이다. 한쪽에서는 묻는 세대가 일어났고, 다른 쪽에서는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일어났다. 그러니까 사사기의 첫 두 장은 한 사람의 죽음을 두 번 보도하면서 그 죽음 이후에 갈라진 두 길을 나란히 놓는다. 그리고 사사기의 나머지 열아홉 장은 두 번째 길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호수아가 죽어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언젠가 죽는다. 문제는 그가 죽은 후에 누가 일어나느냐다. 묻는 자가 일어나면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가 무너지고, 알지 못하는 자가 일어나면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사사기는 신대원에서 배웠던 가장 재미있던 성경 가운데 하나이다. 그 문학적 풍성함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가 무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그 내용은 그렇게 좋은 내용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점점 무너져가기 때문이다. 그 관점에서 오늘의 나를 돌아본다. 나 역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오늘도 다시 하나님께 묻고 시작한다. 오늘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과 해결해야 하는 모든 일들 중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그 삶을 드러낼 수 있도록 기도한다.
題目:約書亞死後
從今天開始默想士師記。因此想先簡單整理一下士師記是一卷怎樣的書。
金志燦教授將士師記比喻為音樂,以序曲(1:1–3:6)、主要樂章(3:7–16:31)、尾聲(17:1–21:25)的三部結構來說明。他所寫的士師記講解書書名為《無平安交響曲》(엔 샬롬 교향곡),"엔 샬롬"意思是"沒有平安"。以色列雖然進入了安息之地,卻活在沒有安息之中。而支配主要樂章的是循環。犯罪、震怒、壓迫、呼求、拯救,然後再次犯罪,如此反覆六次。金志燦教授稱此為"危機的信仰"。這是一種只有在艱難時才歸向神,處境一旦恢復就又回到舊路的信仰。然而這循環並非原地打轉的圓圈,而是每轉一圈就往下沉一點的螺旋。
還要看士師記的開頭與結尾。士師記以約書亞死後,誰要率先上去與迦南人爭戰的問題開始。然而在書卷的最後部分,同樣的問題再次出現。
士20:18 以色列人就起來,到伯特利去求問神說:我們中間誰當首先上去與便雅憫人爭戰呢?耶和華說:猶大當先上去。
這兩個問題的形式相同,連回答都一樣。但上去攻打的對象卻不同。起初是迦南人,最後卻是兄弟便雅憫。像這樣以前後相同的話語相互呼應、包裹整卷書的手法,稱為"首尾呼應"(inclusio)。士師記正是夾在這兩個問題之間的故事。這是一段勝利的宣告最終變成失敗宣告的歷史。而在士師記的最後部分,這樣一句話重複了四次。
士21:25 那時,以色列中沒有王,各人任意而行。
如果只把這句話讀成"需要一位王",那只讀懂了一半。士師記向我們提出的問題,並非人間君王的缺席。它問的是:你可知道不以神為王的人會變成什麼樣子?各人憑自己眼中看為對的去行,那正是無王之人的樣貌。要把士師記這樣的結構放在心裡,一點一點地閱讀每日的默想。唯有如此,才能清楚分辨各段經文所要傳達的信息。
今天默想的經文是這樣開始的。
士1:1 約書亞死後,以色列人求問耶和華說:我們中間誰當首先上去攻打迦南人,與他們爭戰?
士師記以死亡開始。摩西死的時候,有約書亞在。然而約書亞死的時候,卻沒有繼承者。於是以色列人沒有去尋找人選,而是求問神。這裡譯為"求問"的詞,希伯來文是"沙阿爾"(שָׁאַל),指的是以色列的領袖們在爭戰之前,透過祭司、藉著烏陵和土明求問神旨意的正式程序。他們沒有問誰是繼承約書亞的領袖,而是問哪個支派應當首先上去。他們仍然知道,即便沒有領袖,仍有一位發號施令者存在。
士1:2 耶和華說:猶大當先上去。看哪,我已將那地交在他手中。
不是"將要交給",而是"已經交給"。爭戰尚未開始,結果已經宣告。於是猶大與西緬一同上去。在比色得勝,擒住亞多尼比色,攻打耶路撒冷,下到希伯崙。而在希伯崙,被擊敗之人的名字被如此記錄下來。
士1:10 猶大又去攻打住希伯崙的迦南人,殺了示篩、亞希幔、撻買。希伯崙從前名叫基列亞巴。
示篩、亞希幔、撻買,正是民數記第13章出現的那幾個名字。十個探子在希伯崙看見他們,回來後報告說:我們在他們面前就如蚱蜢一樣——這正是那些亞衲族人。就因為那一份報告,整整一代人未能進入應許之地,死在曠野。然而如今,這些名字倒下了。到此為止,正是我們今天所讀的十節經文。他們求問了神,得到了"已經賜下"的回答,四十年來屹立不倒的名字終於崩塌。
然而我們不能在此停下。因為約書亞的死亡在後面還會再次出現。雖然那時的敘述細節會有所不同,但簡單來說,
士2:8 耶和華的僕人、嫩的兒子約書亞,正一百一十歲就死了。
士師記兩次記載了同一個人的死亡。第一章一次,第二章又一次。為何要記兩次?因為緊接其後的句子不同。第一章中,約書亞死後興起的,是求問神的一代。然而第二章卻是這樣接續下去的。
士2:10 那世代的人也都歸了自己的列祖。後來有別的世代興起,不知道耶和華,也不知道耶和華為以色列人所行的事。
同樣的死亡,同樣的空缺,結果卻是兩樣。一邊興起了求問的世代,另一邊卻興起了不認識神的世代。所以,士師記的頭兩章藉著兩次記載同一個人的死亡,將死亡之後分岔的兩條道路並列呈現出來。而士師記剩下的十九章,正是走上第二條道路之人的故事。
問題不在於約書亞死了。領袖總有一天會死去。問題在於他死後,誰會興起。求問的人興起,示篩、亞希幔、撻買就會倒下;不認識神的人興起,人就會各行己眼中看為對的事。
從今天開始的士師記,是我在神學院時所學過最有趣的聖經書卷之一。因為透過它豐富的文學手法所傳達的信息令人印象十分深刻。然而事實上,其內容並不那麼美好,因為以色列正一步步走向衰敗。從這個角度回顧今天的自己。我是否也正過著不求問神、只憑自己眼中看為對的去行的生活呢……於是今天也再次向神求問,重新開始。願我在今天所要遇見的人,以及所要處理的一切事情中,都能記得神所喜悅的樣式究竟為何,並禱告求神使我能活出那樣的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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