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무너뜨린 자리를 하나님은 회복하신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 사실을 신뢰하고 매달리는 것이 신앙이다.
人所破壞的地方,神必親自修復。即使無法完全理解,選擇信靠這個事實、緊緊抓住祂,這就是信仰。
창세기 42:13
인간이 무너뜨린 자리를 하나님은 회복하신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 사실을 신뢰하고 매달리는 것이 신앙이다.
人所破壞的地方,神必親自修復。即使無法完全理解,選擇信靠這個事實、緊緊抓住祂,這就是信仰。
창세기 42:13
(창세기 42:1-17, 마가복음 1-3) 병 고침을 바라는 무리를 뒤로하고 더 큰 사명을 위해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신 예수님처럼 요셉 역시 당장의 양식을 구하러 온 형제들에게 무작정 다가가기보다 진정한 회복을 계획하며 지혜롭게 거리를 둡니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요셉의 모습 속에서 당장 내 눈앞의 상황이 형통하거나 막히는 모든 과정이 결국 하나님의 더 큰 목적을 향해 있음을 깨닫습니다. 삶의 성취나 부족함 앞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직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創世記 42:1-17,馬可福音 1-3) 就像耶穌將渴望得醫治的群眾留在身後,退到僻靜之處是為了更大的使命;約瑟面對前來尋糧的兄弟們,也沒有貿然相認,而是懷著真正復和的計畫,智慧地保持距離。在這位預表基督的約瑟身上,我領悟到:眼前一切順暢或受阻的過程,終究都朝向神更大的旨意而行。無論面對生命中的成就或不足,我都不願隨之起伏,只願信靠那完全之神的計畫與心意,今天也默默地踏實前行。
가족에게 버려지고 외국으로 팔려온 노예 출신이자 감옥에 갇힌 죄수 요셉의 처지는 제가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선을 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요셉과 함께 하시고, 요셉도 그 사실을 온전히 믿으며 삶을 지켜 가니,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바로와 신하들에게까지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요셉의 영광은 그가 결국 총리가 되었다는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개인적인 상처도 공감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 참 좋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被家人拋棄、被賣到異鄉為奴,又身陷囹圄的囚犯——約瑟所處的境況,已遠遠超出我所能說「感同身受」的範圍。然而,神與這樣的約瑟同在,約瑟也全然相信這個事實、堅守自己的生命,因此神藉著他,向法老和臣僕們彰顯了自己的能力與榮耀。約瑟的榮耀,似乎並不在於他最終成為了宰相,而在於他得以參與神的榮耀之中。然而,在這一切當中,那位也能體恤個人內心傷痛、並使人得著醫治與恢復的神,讓我深感美好與感恩。今天,我也靠著這份信心繼續前行。
모든 인생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가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상황과 환경이 그를 어렵게 하고 지치게 하여도 빚어 가심을 신뢰하며 나아간다. 요셉의 인생 목적은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고, 이를 통해 열방에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고자 함이었다. 오늘도 나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기대한다.
每一個人的生命,都有神所預定的目的。 與神同行的人,即使處境與環境使他艱難、疲憊,仍信靠神的雕塑成形,繼續向前行。 約瑟一生的目的,不是成為宰相,而是拯救以色列民族,並藉此使他成為祝福萬國萬民的管道。 今天,我也期待神那細膩的手,繼續在我生命中動工。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그 자리에서 성실히 빚어지는 일이 함께할 때, 우리 인생의 모든 옷이 의미 있게 입혀진다.
當神的同在,與在那個位置上忠實被塑造的事工相遇,我們人生中所穿上的每一件衣裳,都變得意義深遠。
창세기 41:38-39
사람은 앞을 향해 나아가길 원하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하나님께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사랑은 그저 요셉의 옆에 서서 그와 함께하며 요셉이 무너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힘든 일이 있거나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앞에 닥쳐도 하나님이 옆에 계신다는 믿음으로 고난을 헤쳐 나아가길 원합니다.
人們總是渴望向前邁進,但當事情沒有朝著自己期望的方向發展時,有時會責怪自己,或是向神提出質疑。然而,神賜給約瑟的愛,是默默站在他身旁、與他同在,使約瑟不至於倒下。願我們深深默想這段話語,無論遭遇困難,或面對難以理解的處境,都能憑著神就在我們身旁的信心,勇敢走過苦難。
현재의 국제 정세는 점점더 어지러워 가는것 같다. 이 역시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요셉에게 전달 되었듯 이 모든 일들을 정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나아간다. 맡겨 주신 내 역할을 소화해 내는 자가 되고 싶다.
目前的國際局勢似乎越來越混亂。 我相信這其中也必定有神清晰的旨意。 正如神明確的旨意傳達給了約瑟,我相信並信靠那位掌管這一切事情的神,繼續往前走。 我渴望成為一個能承擔祂所託付給我的角色的人。
세상의 풍요조차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삶을 살아갈 때에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의 명철과 지혜로 주님이 주신 자리를 섬기는 자가 되자.
世上的豐盛也在神的主權之下。在生活中,不依靠世界,而是依靠神,讓我們成為用主的聰明與智慧,服事主所賜之崗位的人。
(창세기 41:25-36, 로마서 14-16) 애굽과 요셉을 통해 이루실 일들의 때를 정확히 정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크신 계획 속에는 로마서 말씀처럼 주님의 종들이 넘어지고 일어서는 세밀한 삶의 과정까지 모두 담겨 있음을 봅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친히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주권 앞에서 감히 같은 종 된 형제들을 판단했던 저의 교만을 깊이 반성합니다. 저 역시 그저 은혜로 서 있는 한 명의 종에 불과함을 기억하며, 판단의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創世記 41:25-36,羅馬書 14-16) 正如神精確地定下透過埃及與約瑟所要成就之事的時間,在神宏大的計畫中,正如羅馬書的話語所說,連祂僕人們跌倒與站立的細微生命歷程,也都包含其中。面對那掌管萬事、親自建立一切之神的完美主權,我深深反省自己曾膽敢論斷同為僕人的弟兄們的驕傲。願我記住,自己不過也是一個單單靠著恩典站立的僕人,今天不是論斷人的日子,而是成為一個甘心服事的日子。
하나님과 동행하는 확신이 담대함을 낳고, 그 담대함이 지혜로운 준비로 이어진다. 미래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정하시는 분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다.
與神同行的確信生出膽量,那膽量進而化為智慧的預備。我們所當追求的,不是預測未來,而是與那位掌定未來的神同在。
창세기 41:32
(창세기 41:1-24, 로마서 11-13장) 로마서 11장에서 유대인의 실족을 통해 이방인이 믿음의 자녀로 접붙임 받는 것을 보며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크신 계획을 바울은 찬양합니다. 요셉의 기다림 또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했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 삶의 좌절과 기다림 그리고 깊은 낙담 모두가 결국 저를 자녀로 빚어내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과정을 허락하신 주님께 온전한 감사와 순종을 올려드립니다.
(創世記 41:1-24,羅馬書 11-13章) 保羅在羅馬書第11章中看見,因猶太人的跌倒,外邦人得以被接枝成為信仰的兒女,他因此讚美那無法測度之神的豐富與宏大的計畫。約瑟的等待,想必也是信靠並順服主引領的時光。這樣一想,我生命中的挫折、等待,以及深深的灰心,最終都是神為了將我塑造成祂兒女所施予的恩典之手。我將完全的感謝與順服獻給那允許這一切過程的主。
하나님이 빚으신 최적기라는 묵상의 제목처럼 오늘 하루도 그 계획하심 안에 있다는 것을 믿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어야겠다 라고 묵상했습니다
就如「神所塑造的最佳時機」這篇默想的題目,今天也要相信這一天在祂的計劃之中,帶著感恩的心生活——這是我今天的默想。
지금 나의 시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할수 있도록 만들어져 가고 있는지 그냥 흘러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 있도록 준비된 시간을 보내야겠다
現在我的時間,是否正在被塑造成能夠領受神的話語並順服的樣式,還是就這樣白白流逝…… 我要度過為順服神的話語而預備好的時間。
세상의 지혜로는 답 없지만, 우리를 잊으신 듯한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의 시계는 정확히 흐르고 있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 드러낼 때, 닫힌 감옥의 문이 열립니다.
世上的智慧找不到答案,但即使在那看似被神遺忘的沉默中,神的時鐘依然分毫不差地運行著。當我們倒空自己,單單彰顯神的主權時,緊閉的牢門就會敞開。
창세기 41:1-24
요셉이 있는 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아버지가 되셔서 자녀들을 돌보시는 것이 감동적입니다. 그 사랑때문에 감옥과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在約瑟所在之處,一件接著一件發生的事情,讓我們清楚地認識到,這一切都是神所做的工。全能的神親自成為父,看顧祂的兒女,這是何等感人。正因為那份愛,我相信即使在如同監獄般的地方,也能述說神的大能,並得以看見神的榮耀。
하나님의 시간 속에 헛된 시간은 없다. 지금 당장 응답받지 못하더라도 그것조차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는 시간임에 감사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자.
在神的時間裡,沒有任何虛度的時光。即使當下的禱告還未得到回應,那也是神在塑造我、訓練我的時刻——讓我們帶著感恩的心,成為與神同行的人。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하심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정확한 때에 이루어진다. 때로 이해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온전히 믿고 따를 때 하나님께서 기가막힌 방법으로 내 삶에 개입해 주심을 여러번 깨달았다. 늘 감사하다.
神的作為與運行,以我們無法想像的方式,在最精準的時刻成就。 有時,即便身處無法理解的處境中,當我們全然信靠並跟隨神的信實時,我多次體會到神以令人驚嘆的方式介入我的生命。 常常心存感恩。
보이지 않는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셨고, 요셉의 십삼 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라는 신뢰의 고백으로 완성된다. 우리의 지연된 응답도 하나님이 우리를 빚으시는 시간이다.
即使在看不見的沉默之中,神依然同在;約瑟那十三年,以「不是我,乃是神」的信靠告白而得以完成。我們遲遲未得的回應,也是神塑造我們的時光。
창세기 41:16
사람의 기억은 짧아 나를 잊을지라도, 나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오늘도 저를 위로해주는거 같습니다.
人的記憶短暫,或許會將我遺忘,但神永遠不會忘記我——祂的信實,今天也同樣在安慰著我。
(창세기 40장, 로마서 8-10장) 억울한 옥살이 중에도 타인의 꿈을 해석하며 순종했던 요셉의 시간이 훗날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기근에서 건져내는 회복의 첫걸음이 되었음을 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회복이 공동체를 살리듯, 로마서 8장의 말씀은 죄 아래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전히 나타나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구원은 선물이자 내 죄악과 방황의 끝이지만, 동시에 내 주위의 사람들과 세상을 살리는 새로운 시작임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겠습니다.
(創世記40章、羅馬書8-10章) 即使在含冤入獄的日子裡,約瑟仍順服地為他人解夢——那段時光,成為日後將整個以色列民族從饑荒中拯救出來的復興第一步。正如一個人的復興能夠使整個群體得生,羅馬書第8章的話語告訴我們:在罪下嘆息的萬物,都在切切地等候神的兒女完全顯現。賜給我的救恩,是一份禮物,是我罪惡與迷失的終點;但同時,也是使我周遭的人與這個世界得以甦醒的嶄新起點。帶著這樣的思念,今天我也要活出成為祝福管道的人生。
형통의 대명사인 요셉을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에 찬양을 드립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정치범 감옥 속에서도 총리로서의 자질을 만들어 가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며 때로 어려움이 오히려 나를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我讚美神那細膩的手,塑造了繁榮昌盛的代名詞——約瑟。 在波提乏的家中,在那一旦進去便難以出來的政治犯監獄裡,神忠實地雕琢出宰相的品格與才幹。望著這一切,我以感恩的心領受:有時那些艱難困苦,正是神塑造我的手。
내 계획보다 더 세밀하고 놀라우신 주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我要信靠主的計畫——那比我的計畫更細膩、更奇妙的計畫,並單單倚靠那位知曉我一切處境、掌管萬事的神。
(창40:1-23)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모든 일이 두 관원장의 꿈 해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7절을 보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이 그 감옥에 있는 다른 이들의 얼굴빛을 살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두 관원장의 얼굴에서 '근심의 빛'을 보고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묻고 우리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고 희망의 빛을 건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이런 일을 원하십니다. 어둠에 다가가 예수님의 빛을 비추기 위하여 주위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을 살펴보아야겠습니다.
(創40:1-23)約瑟成為埃及宰相、與家人重逢的一切,都從為兩位官長解夢開始。從第7節可以看出,身陷囹圄、蒙受冤屈的約瑟,仍細心察看獄中其他人的臉色。約瑟從兩位官長臉上看見「憂愁之色」,便主動走近他們,詢問他們遭遇了什麼困難,並將我們神能夠成就的盼望之光傳遞給他們。神也希望在我身上發生同樣的事。為了走進黑暗、照耀耶穌的光,我當留心察看身邊之人的臉龐與內心。
사람이 우리를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억울한 자리에서도 형통함을 잃지 않는다.
人雖忘了我們,神卻沒有忘記。在與神同行的生命中,我們即使身處冤屈之地,也不會失去亨通。
창세기 40:23
(창세기 39장, 로마서 4-7장) 로마서가 보여주는 아담의 죄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한 은혜가 대조되듯, 창세기의 요셉 역시 억울한 누명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오히려 형통한 삶을 누렸음을 묵상합니다. 오늘 하루도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머물며 주님이 허락하시는 평안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創世記第39章、羅馬書第4-7章) 正如羅馬書所呈現的亞當之罪與在基督裡豐盛恩典的對比,創世記中的約瑟,即便面對不白之冤的絕望處境,也因神與他同在而得以享有亨通的生命——默想這一切。今天這一天,我也不要作罪的奴僕,而要住在神裡面,靠著主所賜的平安,得勝地活出每一天。
억울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하루 하루를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나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하는 청년부가 되겠습니다!
即使身處委屈與艱難的處境,也不失去對神的信心,不將神所賜的每一天用於埋怨神或憎恨他人,而是忠實地完成交付給我的事工——我們要成為這樣的青年團契!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無論任何處境,我都要始終如一地倚靠主✞
형통함은 환경이나 눈에 보이는 잘됨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亨通並非環境順遂或眼見的成功,而是在任何處境中,都能意識到神與我們同在,並活在這份同在之中。
창세기 39:21
(창세기 38장, 로마서1-3장)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철저히 죄 아래 있다는 바울의 급진적인 선언은, 창세기 38장에 드러난 유다 가문의 추악한 모습 속에서 쉽게 증명됩니다. 그러나 그 부끄러운 죄의 역사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 때문임을 생각해봅니다. 자격 없는 유다를 긍휼로 품으셨듯, 여전히 죄 가운데 넘어지고 한없이 부족한 저마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해 주시는 그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創世記38章、羅馬書1-3章) 保羅激進地宣告:猶太人與外邦人都徹底活在罪的轄制之下——這一點,在創世記38章所揭露的猶大家族醜陋面貌中,得到了清晰的印證。然而,即使在那段充滿羞恥與罪的歷史之中,耶穌基督的族譜仍能延續不斷,我深深體會到:這唯獨是因著神白白賜下的莫大恩典。正如祂以憐憫懷抱了不配的猶大,對於仍在罪中跌倒、無比軟弱的我,主也沒有放棄,依然使用我成為祂善工的器皿——為這份愛,我獻上深深的感謝。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곧바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부끄러움을 통과하게 하셔서 변화시키신다. 그 성실한 인내 속에서 우리는 한 걸음씩 새로워진다.
神不立即審判我們的罪,而是讓我們經歷羞愧,從而使我們得著改變。在那忠實的忍耐之中,我們一步一步地被更新。
창세기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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