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가 하나님께 순종할때 보이는 모습은 매우 놀랍습니다. 수치스러움을 피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영혼 구원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죽을수 밖에 없는 한 영혼이 구원 받을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시고 예수님은 순종으로 화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삶은 그렇지 못한게 나의 현실임을 깊이 반성합니다. 죽기까지 포기 못하신 영혼구원을 향한 사랑을 본받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절대 마르지 않을 것 같던 풍요의 상징 나일강도 말라버리고 당대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던 바로의 모사들마저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물질적 풍요와 지적 성취는 결국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아서 도리어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이끌고 비틀거리게 만듭니다. 세상의 헛된 자랑이 아니라 참된 반석이자 변함없는 공급자이신 주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조건들은 마를 수 있는 나일강과 같아 결코 우리를 영원히 지켜주지 못합니다. 애굽이 풍요와 안전이라 믿었던 나일강조차 하나님은 한순간에 마르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 누려온 평안과 환경이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지속된 은혜였습니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길 소망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지 못하고 환경을 바라보며 날마다 넘어집니다. 기도로 아뢰기 보다 머리로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최선을 찾으려 고심합니다. 계좌의 잔고를 확인하며 안심하기도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돌아온 탕자처럼 내가 의지했던 것들을 철저히 내려놓고 이제는 이 모든것 위에 가장 높으신 그분의 품으로 돌이켜 청조주이신 주님 안에서 평안을 찾길 기도합니다. 내 시선을 주님께 둘 때 모든 염려가 다 부질없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구스와 애굽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외교 전략을 세우고, 동맹을 맺고 각자의 선택을 하지만, 최종적으로 역사를 실현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잠언 16장 33절의 '제비를 뽑는 일은 사람이 하여도, 일의 결정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일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으며, 오늘 하루 제가 하는 선택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는 이스라엘도, 구스도, 애굽도 다 하나님의 백성이다. 주님은 그들이 예물을 가지고 여호와께 나아오게 하기 위해 그들의 우상을 허무신다. 나도 내가 의지하는 것들이 많다. 하나님은 나에게도 그것을 버리기를 요구하시며 나를 치셔더라도 그것을 버리게 하신다. 세상의 것을 모퉁잇돌로 취하면 나를 그릇가게 할 뿐이다. 나를 위해 친히 모퉁잇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붙들고 다른 이들과 함께 거룩한 신앙 공동체로 세워져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가길 소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을 자주 오해한다. 응답이 없으면 안 계신 줄 알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잊혀진 줄 안다. 그래서 조급했다.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고, 그러다 하나님이 하실 일까지 내 손으로 붙들려 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조용히 계신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었다. 지켜보고 계셨고, 때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 이제는 나의 믿음이 좀 더 성숙해져서 조용히 감찰하시는 그분을 신뢰하며 기다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거세게 몰아치는 세상의 위협과 이를 압도하는 하나님의 구원이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짙은 어둠처럼 거대한 문제의 크기에 압도될 때가 있지만 아침이 올 것을 믿는 사람은 무서운 밤에도 요동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그 캄캄한 밤을 다 감당하셨기에 구원의 확신을 누리며 제게 맡겨진 일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 안에 있음을 알기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걱정은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오늘 하루 주신 사명을 묵묵히 다하겠습니다.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봅니다. 나도 주께서 기뻐하시는 나무가 아니라 내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면서 주께 받으시라고 하지는 않는지 두렵습니다. 죄의 마음과 죄의 자리를 알고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재판관이시다. 죄를 심판하지만 주께로 돌이키는 남은 자를 회복시키시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를 기뻐하시지만 그럼에도 돌이키지 않는 자는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죄 짓고나서 진정한 회개없이 그래도 하나님은 날 받아주는 게 마땅하다고 거들먹거리며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의 심판자이지 내가 하나님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나도 날마다 구원의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죄인이니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날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 거룩하신 주님만 바라보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오늘 말씀의 하나님은 다메섹과 에브라임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하십니다. 폐허가 되어 수풀과 가시덤불만 남게 된 이유가 구원의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인간의 지혜라는 황금 송아지 뒤를 따라갔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이키고자 했을 때... 이미 지금 너무 늦은 게 아닌지 두렵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때에, 한 자리에서, 한 목소리로 오직 주님만을 찬미하기를 소망합니다.
내 힘으로 지켜내려 애썼던 나만의 동산의 울타리를생각해 볼수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재정과 환경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온전히 내어드립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조종하려 하지 않고 주님이 맡겨주신 삶을 기쁨으로 가꾸는 주의 자녀가 되게 도와주소서
하나님은 피할길을 주시지만 모압의 교만이 이를 막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복음을 모르는 가족이 떠오릅니다. 마지막 때에도 끝내 돌이키지 못하면 안되기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나님은 어쩌면 내게도 기한을 정하시고 마지막 기회를 주시는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요즘 세상을 둘러보면 전쟁과 지진, 기근과 온갖 재난이 끊이질 않습니다. 당장 주님이 오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만큼 세상은 변해가는데 마치 주님이 더디 오시리라고 확신하듯 핑계를 대며 살아왔습니다. 더 늦기전에, 아직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때 그리스도를 전할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사야 16장에서 피난처를 찾는 모압 사람들을 환대하라는 말씀과 그럼에도 그들의 교만으로 인해 멸망할 것이라는 선고를 함께 봅니다. 교만에 대한 평가와 심판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이며 시련 중에 있는 이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몫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조차 모압의 고통을 보며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그 긍휼의 마음을 기억하며 힘든 상황에 처한 이들을 판단하기보다 그들을 위한 기도와 실질적인 도움을 늘 실천하는 삶이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하나님께서는 모압에게 살아날 길을 주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만하고 목이 뻣뻣하여 끝내 자신의 산당에 남기를 택한 것 같습니다. 이에 슬퍼하십니다. 돌이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면 된다는 오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남겨 주신 말씀을 행하려 합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얼마전에 도로 근처에서 보금자리를 잃고 위험에 처해 있던 아기새와 그 곁에서 애타게 부르짖으며 날아다니던 어미새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헤매던 아기새의 모습은 하나님을 떠나 내 힘으로 살아보려던 제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애타게 아기새를 찾던 어미새의 모습에서 길을 잃은 나를 향해 끊임없이 불러주시던 주님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영원할 것처럼 자만하지 않고 매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무릎 꿇기를 원합니다. 오직 주님의 날개 그늘만이 유일하고 안전한 피난처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 받는 자들에게도 피할 길을 주신다. 그 때라도 주님께 피하면 살 길을 얻지만 끝까지 세상의 자랑과 우상을 붙들고 있으면 그것과 함께 망하게 된다. 하나님이 내가 의지하는 것을 다 치시고 우상이 다 소용이 없다고 하시는 이유는 나를 철저히 망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돈, 명예, 지식 등이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벌도 내리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와 다른 이들을 위해 울부짖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도 다른 이들이 주께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자가 되자
하나님은 모압에게 길을 여셨다. 어린 양을 보내고 시온으로 오라 하셨다. 그런데 모압은 그 길로 가지 않았다. 교만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자기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기도했다. 간절함이 방향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하나님이 이미 길을 열어 두셨는데, 그리로 가면 내가 낮아져야 하니 다른 길을 찾아 애를 썼다. 교만은 높이 오르려다 떨어지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살길이 열려 있어도 그리로 가지 못하게 막는다. 오늘 하나님이 열어 두신 그 문으로, 낮은 마음으로 들어가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앞에서는 강대국조차도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그럼 심판받아 고통받는 그들을 보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꼴좋다고 비웃고 조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신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지 그들 자체가 너무 미워서가 아니다. 이스라엘처럼 그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백성이고 주께 돌아오길 원하는 존재들이다. 고통받고 있는 존재 앞에서, 그들의 죄와는 타협하지 않는 지혜를 구하고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은 자의 최후를 오늘 말씀에서 잘 보여줍니다. 내안에 쌓여 있는 죄악을 점검하고 돌이켜 회개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한 마음이 날마다 새싹처럼 자라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임재앞에 잠잠히 서 있길 소망합니다. 내 목소리를 낮추고 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하루가 되길 묵상합니다. 말씀을 날마다 더욱 가까이 하길 소망하며 날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삶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만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내 힘과 생각으로 불안을 메우려 안전장치를 만들며 살아왔습니다.
세상의 어떤 계획보다 확실한 주님의 보호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안전한 피난처에 있길 원합니다. 사춘기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도 나의 조급함이나 불안으로 마귀가 틈타지 않게 하시고, 내게 주신 부모의 역할을 지혜롭고 담대하게 잘 감당하게 하소서.
이번 한국 방문의 모든 길을 주님 손에 맡겨드립니다. 갈등과 염려 대신 주님의 참된 평안과 긍휼의 마음이 흐르게 하시고, 다녀오는 모든 일정 속에서 오직 주님의 보호하심만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블레셋은 자기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더 무서운 것이 나온다고 하신다. 세상의 힘은 언제나 그렇게 바뀔 뿐이다.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가 일어선다. 그러니 그 흥망을 보며 기뻐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열방의 사절이 물을 때 줄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난처를 얻는 사람은 강한 자가 아니라 곤고한 자였다. 나의 피난처도 내가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다. 오늘도 그 자리로 피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의 교만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성취의 기쁨은 짧고 오늘 말씀의 바빌론처럼 곧 갈기찢겨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발버둥을 쳤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영광만 보지 못하게 하는게 아님을 느낍니다. 주위 사람들이 사랑으로 베풀어주고 이끌어 준 것 마져도 나의 성취로 치부하고 그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삶을 인도하시고 다른 사람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것을 믿는 저는 그저 교만을 내려놓고 그 인도하심에 삶을 내어드리고 사랑으로 하나됨의 기쁨을 누리면 됨을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