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창세기 39:1-23
今日默想:創世記 39:1-23
요셉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묘하다.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 끌려간 종의 신분인데, 본문은 거듭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말한다. 형통이라는 단어가 자주 오해를 부른다. 일이 잘 풀리는 것, 환경이 좋아지는 것을 형통이라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그래서 본문도 그렇게만 읽는다. 그러나 39장은 그렇게만 읽으면 후반부가 무너진다. 왜냐하면 형통한데 감옥을 가기 때문이다.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그러니까 형통할 때도,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변하지 않은 것은 한 가지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 이것이 본문의 핵심이다. 형통이 무엇인지 본문은 다시 정의한다. 환경의 호불호가 아니다. 임재 그 자체다. 그래,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종의 자리도 형통이고 감옥도 형통이다. 거꾸로 하나님이 떠나시면 어떤 자리에 있어도 형통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형통한 삶 속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거듭 유혹할 때 거절한다. 거절하면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창 39:9b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들킬까 봐 조심하는 게 아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의식한다. 그리고 그 정직함이 도리어 그를 감옥으로 보낸다. 누명을 쓴다. 그럼에도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형통한 삶이라는 것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삶이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놓치지 않는 것이 형통함이다.
대만에 처음 와서 보낸 초기의 몇 해. 솔직히 말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세워둔 계획들이 하나씩 무너졌다. 언어도, 사역의 자리도, 사람과의 관계도, 매일이 막막했다. 매일이 고난이고 아픔이었다. 그래, 그 시간을 다시 살라고 하면 자신이 없을 만큼...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형통의 시간이었다. 그때 하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셨다.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끊기지 않게 공급해 주셨고, 한 걸음씩 길을 내어 주셨다. 그리고 결국 그 단련의 시간을 통과해 지금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종의 자리에 있던 요셉이 자기의 형통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감옥에 갇혀 있던 요셉이 그 시간을 형통이라 부를 수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말한다. 그 모든 시간이 형통이었다고.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통이라는 단어가 눈에 보이는 잘됨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다. 형통은 환경이 아니라 임재다. 정금같이 단련받는 시간도, 계획이 무너지는 자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것이 형통이다.
어쩌면 많은 지체들이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애굽을, 자기만의 감옥을 통과하고 있을 것이다. 학업의 무게에 눌려 있는 학생, 직장의 압박 속에서 버티고 있는 직장인, 사업의 막막함 앞에서 잠 못 이루는 사업자. 그 시간이 길어지면 하나님이 떠나신 것 같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안다. 그 마음을 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형통은 바로 그런 시간 한가운데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늘도 눈에 보이는 형편이 아닌, 함께 하시는 그분을 형통의 기준 삼아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지체들 곁에서, 그분의 함께 하심을 신뢰하도록 함께 걸으며 섬기며 나아간다.
約瑟的故事,從一開始就耐人尋味。他以被哥哥們賣掉、被帶往埃及的奴隸身分出場,然而經文卻一再說:「耶和華與約瑟同在,他就成了一個成功的人。」「成功」這個詞,常常引起誤解。我們往往以為事情順利、環境變好,就叫做成功。於是讀這段經文時,也只停留在這個層面。然而,若只用這種方式來讀創世記第39章,後半段就會站不住腳——因為「成功」的他,最終卻進了監獄。
創 39:21 耶和華與約瑟同在,向他施恩,使他在司獄的眼前蒙恩。
無論是在「成功」的時候,還是在蒙受冤屈、身陷囹圄的時候,有一件事始終沒有改變——「耶和華與他同在。」這才是這段經文的核心。經文在此重新定義了何謂「成功」:它不在於環境的好壞,而在於神的同在本身。是的,若神與我們同在,奴隸的位置是成功,監獄也是成功;反之,若神離去,無論身處何處,都算不上成功。
而在這樣「成功」的生命歷程中,當波提乏的妻子一再引誘約瑟時,他選擇了拒絕。他拒絕時所說的話,令人印象深刻:
創 39:9b ……我怎能做這大惡事,得罪 神呢?
約瑟在意的不是人的眼光,他所謹慎的不是怕被人發現。他心中念念不忘的,是在神面前的罪。正是這份正直,反而將他送進了監獄,使他蒙受不白之冤。儘管如此,約瑟仍然過著與神同行的生命。因此,所謂「成功的人生」,就是無論身處何種環境,都活在對神同在的意識之中。即便在苦難的日子裡,也不錯過每一天神幫助的手——這才是真正的成功。
剛來台灣的那幾年,說實話,是我人生中最艱難的時期。所立定的計畫一個接一個地崩塌——語言、事工的位置、與人的關係,每一天都茫然無措。每一天都是苦難,每一天都帶著傷痛。是的,若叫我再活一遍那段日子,我沒有把握自己能夠撐過去……
然而,奇妙的是,如今回頭看,那段時間竟是成功的時間。那時候,神真實地與我同在。祂不間斷地供應每日所需的糧食,一步一步地為我開路,終究帶著我走過那段熬煉的日子,來到今天這個位置。當時我並不知道。就像身為奴隸的約瑟,並不知道自己正在成功之中;就像身陷囹圄的約瑟,無法將那段時光稱為成功。然而,經文清楚地說——那一切的時光,都是成功。因為神與他同在。所以,我深切地體會到,「成功」這個詞所指的,並不是眼睛所能看見的順遂。成功不在於環境,而在於神的同在。被熬煉如精金的時光、計畫崩塌的當下,只要神與我們同在,那就是成功。
或許,許多肢體此刻正在各自的位置上,穿越屬於自己的「埃及」、屬於自己的「監獄」。有的學生被課業的重擔壓得喘不過氣,有的職場人士在工作的重壓下苦苦支撐,有的創業者面對事業的茫然而夜不成眠。當那段時間拉得越來越長,有時難免會起疑——神是不是已經離開了?我明白。那樣的心情,我明白。然而,經文所說的「成功」,正是在那樣的時光中間,顯得更加清晰、更加真實。
今天,不以眼睛所見的境況為準,而以那位與我們同在的神,作為衡量成功的標準,如此度過這一天。也願在經歷同樣時光的肢體身旁,與他們同行、服事,一同信靠那位與我們同在的主,繼續向前走去。
댓글 / 留言 (0)
로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