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창세기 42:1–17
今日默想:創世記 42:1–17
이전 부터 요셉의 이야기를 읽을 때, 나에게는 한때 수많은 의문이 있었다. 왜 굳이 이 방법이어야 했나? 왜 흉년이어야 했나? 한 가정의 회복을 위해 가나안과 애굽 전역이 굶주려야 했는가? 인간의 역사는 정말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서 이미 다 짜여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형들의 죄는 무엇이며, 야곱의 편애는 또 무엇인가?
그래, 이런 질문들이 풀리지 않아서 성경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본문을 읽으면 답보다 물음표가 더 많이 남았다. 목회의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 이렇게 성경을 봐도 되나 라는 생각에 그 길에 서 있는 내가 부담스러웠다. 목사라는 길이 신앙에 대한 답을 다 갖춰야 갈 수 있는 길이라 여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칼빈은 신앙에 대해 '신자의 믿음이 의심과 두려움의 공격을 전혀 받지 않는 상태라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믿음은 흔들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붙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 나는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성경 어느 인물도 답을 다 알고 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고, 야곱은 자기 가족 안에서 일어난 일을 끝까지 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무덤에 들어갔다. 요셉조차, 웅덩이에 던져진 그 시간을 다 이해해서 견딘 게 아니다.
그리고 아퀴나스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선행적 의지와 후행적 의지를 통해 오늘 본문을 보자.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기근을 그 자체로 선한 것으로 기뻐하셨다기보다, 타락하고 깨어진 세상 안에서 그 기근까지도 섭리 안에 두시고, 그것을 통해 야곱의 가족을 보존하고 회복하시는 길을 이루셨다'
그래 이 야곱의 가정은 이미 무너졌다. 인간의 손으로 무너졌다. 야곱의 편애가, 형들의 시기가, 거짓이, 폭력이, 그리고 이어진 침묵이 — 한 가정의 신뢰와 사랑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한 세대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흘러들어, 또 다른 거짓과 두려움을 낳았다. 본문에서 형들이 요셉 앞에 자기 가족을 이렇게 소개한다.
창 42: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무너진 자리는 이렇게 한 문장으로 남는다. 그러나 형들도, 야곱도, 그 무너진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은 부지런히 일하신다. 흉년조차 길로 만드시고, 깨어진 형제들을 한 식탁 앞으로 다시 데려오시고, 잃어버렸다고 여겨졌던 아들을 살려 두셔서 끝내 아버지의 품에 돌려보내신다. 인간이 무너뜨린 자리를, 하나님이 회복하신다. 이게 요셉 이야기의 진짜 골격이다. 답이 다 풀리지 않아도, 이 사실 하나는 본문에서 분명하다. 그래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신앙이다.
우리 공동체 안에도 무너진 자리들이 있다. 가정 안의 단절, 끊어진 관계, 일과 사업의 무너짐. 아마 많은 지체들이 자기 손으로 무너뜨린 자리도, 자기가 당한 무너짐도 함께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 내 안에도 무너진 자리들이 있다. 내가 만든 무너짐도 있고, 내가 당한 무너짐도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답을 다 갖지 못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인간이 무너뜨린 모든 자리를, 하나님은 회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분의 손길이 야곱의 가정 위에 있었듯이, 무너진 내 자리 위에도 지금 부지런히 일하고 계신다는 것... 그것을 신뢰하는 것이 오늘 나의 신앙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다 알지 못한 채로 하나님께 매달린다. 그리고 그분이 회복하실 자리들을 향해, 한 걸음 더 섬기며 나아간다.
從很久以前讀約瑟的故事時,我曾有過無數的疑問。為什麼非得用這種方式?為什麼非得是饑荒?為了恢復一個家庭,迦南和埃及全地都必須忍受飢餓嗎?人類的歷史,真的已經全部編織在神的掌心之中嗎?若果如此,哥哥們的罪算什麼,雅各的偏心又算什麼?
是的,曾有一段時間,這些問題得不到解答,聖經也因此離我遙遠。讀完經文後,留下的問號比答案還多。一個走在牧養道路上的人,難道可以這樣看待聖經嗎?這樣的念頭讓站在那條路上的我感到沉重。因為我以為,走上牧師這條路,是必須備齊所有信仰答案的人才能走的路。
然而,加爾文對信仰的詮釋是這樣的:「信徒的信心,並非一種完全不受懷疑與恐懼攻擊的狀態。恰恰相反,信心是在搖擺動盪之中,仍然抓緊神的慈憐。」是的,我覺得這話說得對。因為聖經裡沒有任何一個人物,是帶著全部的答案活下去的。亞伯拉罕不知往哪裡去,卻仍然出發;雅各在沒有完全明白家族中所發生的一切之前,就已長眠於塵土。就連約瑟,也不是因為完全理解了被丟入坑中那段歲月,才得以撐過去的。
再讓我們透過阿奎那所說的神的先行旨意(antecedent will)與後行旨意(consequent will)來看今日的經文。那麼我們可以這樣說:「神並非以饑荒本身為善而感到喜悅,而是在這個墮落破碎的世界裡,將那饑荒也納入祂的護理之中,藉此成就了保全並恢復雅各家族的道路。」
是的,雅各的家早已傾倒。被人的手所傾倒。雅各的偏愛,哥哥們的嫉妒,謊言,暴力,以及隨之而來的沉默——將一個家庭的信任與愛徹底摧毀。那傾倒並不止於一個世代,而是流入了下一個世代,孕育出另一重謊言與恐懼。經文中,哥哥們在約瑟面前這樣介紹自己的家人:
創 42:13 他們說:「我們這些人,你的僕人,共是弟兄十二個,都是迦南地一個人的兒子;最小的現今在我們的父親那裡,還有一個不在了。」
「還有一個不在了。」傾倒的地方,就這樣濃縮成一句話。然而哥哥們不知道,雅各也不知道,在那傾倒之處,究竟正在發生什麼。
然而神在那傾倒之處,勤勤懇懇地工作。祂使饑荒也成為一條道路,將破碎的兄弟們重新帶到同一張桌前,又保全了那個被以為已經失去的兒子,終究將他送回父親的懷抱。人所傾倒的地方,神來復原。這才是約瑟故事真正的骨幹。縱然答案尚未全然解開,這一個事實在經文中卻清晰無比。是的,信仰就是在尚未明白的狀態下,仍然信靠神,仍然緊緊抓住那位神。
我們的群體裡,也有傾倒的地方。家庭中的隔絕,斷裂的關係,工作與事業的崩塌。或許許多肢體,既背負著自己親手傾倒的地方,也承受著自己所遭受的傾倒,帶著這一切繼續活著。而說實話——我的內心,也有傾倒的地方。有我自己造成的傾倒,也有我所承受的傾倒。
在那地方,我仍然沒有全部的答案。我無法完全理解為何走到了這一步。然而有一件事我知道:人所傾倒的一切地方,神是那位復原的主……正如祂的手曾覆蓋在雅各的家上,祂如今也在我傾倒之處勤勤懇懇地工作……信靠這一點,就是我今日的信仰。
因此,今日的我,仍在尚未全然明白之中,緊緊抓住神。並且朝著那些祂將要復原的地方,再踏出一步,繼續服事,繼續前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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