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리와 현실의 완강함으로 인해 할 수 없다, 귀를 닫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하는 신앙의 태도(樣態)를 회복하는 오늘이, 그러한 한 주가 되길 소망합니다.
願今天,願這一週,成為我們恢復信仰態度的日子——不因世上的聲音與現實的頑固而摀住耳朵、說出「我做不到」,而是憑著信心仰望神,盼望天國。
세상의 소리와 현실의 완강함으로 인해 할 수 없다, 귀를 닫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하는 신앙의 태도(樣態)를 회복하는 오늘이, 그러한 한 주가 되길 소망합니다.
願今天,願這一週,成為我們恢復信仰態度的日子——不因世上的聲音與現實的頑固而摀住耳朵、說出「我做不到」,而是憑著信心仰望神,盼望天國。
해를 거듭하며 삶 또한 점점 복잦해지는것 같습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늘어나고 가진것이 늘어나며 때론 건강이 하나씩 하나씩 망가져 가는걸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게 계획하고 성취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것이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살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처럼 마지막 날에 결국 남는것은 믿음뿐임을 되새깁니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을 위해 투자하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흩어졌던 시선을 주님께로 옮기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隨著歲月的累積,生活似乎也漸漸變得複雜起來。要撫養的家人增多了,擁有的東西增多了,有時也能感受到健康一點一點地在衰退。就這樣不斷地計畫、達成,也會失敗、也會放棄。因為這些都不是本質,所以也就這麼將就地接受、生活下去。但正如今天的話語所說,最終在末日剩下的,只有信心。因此,我盼望自己的人生能為更重要的事物而投資。願今天也成為將分散的視線重新轉向主的一天,如此禱告。
이미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으로 악한 자가 멸망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사망 권세를 이긴 것이 확정되었다. 잠깐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배신하고 함정에 걸려 넘어지는 길을 택할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의 이름을 높이는 길을 택할지는 나에게 주어진 선택이다. 남은 자의 길은 좁고,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나와 함께 그 길로 걸어가며 힘을 주실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자.
神公義的審判已經確定,惡人終將滅亡;耶穌基督的復活也已經確定,死亡的權勢已被戰勝。是為了短暫的利益而背叛神、落入陷阱跌倒,還是在艱難困苦的處境中仍然倚靠神、高舉主的名,這是擺在我面前的選擇。剩餘之民的道路可能狹窄、孤獨且痛苦,但讓我們倚靠與我們同行、賜予力量的聖靈,過讚美神的生活吧。
온 땅에서 찬송이 들려와도 배신과 심판은 여전하니, 그 사이에서 깨어 만군의 여호와만이 흔들리지 않는 왕이심을 기억하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即便全地都傳來讚美之聲,背叛與審判依然存在;願我們在其中保持清醒,謹記唯有萬軍之耶和華才是永不動搖的王,並依此而活。
이사야 24:23
16절의 말씀의 성취와 최종적인 승리를 믿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이사야의 절규처럼 여전히 하나님을 모른 채 심판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과 이웃을 긍휼하게 여기며 그것을 나의 아픔으로 애통해할 줄 아는 마음이 과연 나에게도 있는지 돌아보게됩니다. 나만의 구원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안위만 신경쓰고 그 넘어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곤 합니다. 오늘 말씀의 찬양과 애통함 사이에서 세성을 품고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因為相信第16節話語的成就與最終的勝利,我們可以歡喜。但如同緊接其後以賽亞的哀號一般,我不禁反省自己是否也擁有這樣的心——憐憫那仍不認識神、正奔向審判的世界與鄰人,並將他們的痛苦視為自己的痛苦而哀痛。我常常只顧念自己的救恩與教會共同體內的安穩,卻對那之外世界的痛苦視而不見。在今日話語的讚美與哀痛之間,我應當懷抱那顧念世界、為鄰人代禱的中保者之心。
원인과 결과가 너무나 간명하다. 땅을 공허하고 황폐하게 하신다. 이유는 율범을 범하고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완벽한 겸손이 아니고선 해결 방안이 없다. 하나님조차도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이기를 포기한듯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같은 겸손, 그같은 완벽한 겸손. 거기까지 계속 달려갈 길이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 권위에 대한 완벽한 인정, 압도당할 만큼의 인정이 필요하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압도적 권위에 어떤 반응을 하고 있는가? 제발 완전한 겸손을 가져라.
原因和結果如此清楚明瞭。神使大地變得空虛荒蕪,理由是因為人違背了律法、背棄了約定。若不是完全的謙卑,就沒有解決之道。就連神自己,也因愛我們而彷彿放棄了作為神的身分,在耶穌基督十字架上的死,展現出這樣的謙卑——那般完全的謙卑。這是我必須不斷奔向的道路。對神一切的作為與權柄,需要有完全的認可,甚至是被那壓倒性的權威所震懾的認可。我究竟對神那壓倒性的權柄作何回應呢?求主讓我擁有完全的謙卑。
오늘 말씀의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범하고, 율례와 영원한 언약을 어긴 땅 위의 것들을 흩트려 놓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무질서 위에 다른 질서가 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일이면 새신자 교육이 끝나는데, 저의 가장 깊은 바탕에 하나님의 질서가 바로 서기를 기원합니다.
今天話語中的神,將那些觸犯律法、違背律例和永遠之約的地上事物都打散了。透過今天的話語,我思考到:在混亂之上,無法建立另一個秩序。明天新信徒教育就要結束了,願神的秩序能在我最深的根基上真正立定。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노아 때와 같이 인간의 포악함이 땅을 부패시켰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것을 더 이상 지켜만 보고 계시지 않다. 주님이 지으신 것을 파괴하고 더럽히는 자들은 예외없이 다 심판을 받는다. 이스라엘만의 문제도 아니고 성경에 나오는 여러 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라 세계 민족 모두가 심판대에 서게 된다. 가인처럼 형제를 미워하여 땅이 호소하게 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아름답게 창조된 자연만물을 나의 이익을 위해 파괴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힘쓰는 자가 되자.
神創造世界,看著是好的。然而,如同挪亞時代一樣,人類的暴行使大地敗壞,這樣的情況一直延續至今。創造主神不再只是袖手旁觀。凡是破壞、玷污主所造之物的人,無一例外都要受到審判。這不僅僅是以色列的問題,也不只是聖經中提到的幾個國家的問題,而是全世界所有民族都要站在審判台前。願我們不要像該隱那樣因憎恨弟兄而使大地發出控訴,而要努力過一種不為自己的利益而破壞美好受造之自然萬物的生活。
모르고 지나치던 일상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누려온 모든 것들이 다 주님의 은혜인데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온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내 자리와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삶으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모으고 가꾸고 유지하려 노력해도 결국 이 땅은 없어질 영원하지 못한곳임을 늘 잊지 않고 마찬가지로 모든 권력과 힘과 재물도 다 사라질 것임을 기억하고 오직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루하루를 겸손히 살아가길 구합니다.
這段話語讓我領悟到,過去不曾在意而輕易略過的日常恩典,是多麼值得感謝的事。回想自己在這地上所享有的一切,其實都是主的恩典,卻不懂得感恩地活著,深自反省。願自己能在神所交託的位置上,以及在那裡所遇見的每一個人身上,活出重新更新的生命,將基督徒美善的影響力傳遞出去。然而,無論我們如何努力積蓄、經營、維持,這地終究是會消逝、並非永恆的地方,這一點要時刻銘記在心;同樣地,一切的權力、能力與財富也終將消失。願我們只將盼望寄託於天國,謙卑地度過每一天。
사람의 죄는 땅까지 더럽히지만, 철저한 심판 가운데도 감람나무 남은 열매처럼 남은 자가 있어 다시 회복의 노래를 부른다.
人的罪玷污了大地,但即使在徹底的審判之中,仍有如橄欖樹上僅存的果實般的餘民存留,再次唱起復興之歌。
이사야 24:5
오늘 말씀은 두로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심판 후 다시 세워진 두로가 얻은 재물은 더 이상 창고에 쌓이지 않고 여호와께 거룩히 돌려져 주님 앞에 거하는 자들을 위해 쓰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사는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내 창고를 채우는 헛된 자랑을 내려놓고 제게 주신 열매가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거룩하게 심기는 생명의 씨앗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今天的話語並非以推羅的滅亡作結。審判之後重新建立的推羅所得的財富,不再堆積於倉庫之中,而是被聖別歸給耶和華,用來供養那些住在主面前的人。這顯明了藉神的恩典重生的我們,生命的終極目標應當指向何處。願我放下填滿自己倉庫的虛妄誇耀,讓神所賜給我的果子,成為聖潔栽種於神的國度與鄰舍之中的生命種子。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들이 결국 나를 넘어지게 하는 우상이 됨을 말씀을 통해 봅니다.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너무나 쉽게 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주님을 잊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말씀앞에 겸손히 내 마음을 점검하여 오늘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분주함 가운데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없는 내 열심으로 헛된 수고를 하는일이 없도록 항상 마음을 점검하길 기도합니다. 구별된 성도의 성품으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오직 주님안에서만 기뻐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我透過話語看見,那些我曾比神更加依靠的事物,最終竟成了使我跌倒的偶像。忙碌的日常生活中,我們很容易遺忘,也很容易不知不觉地淡忘了主。正因如此,我更願意在話語面前謙卑地省察自己的內心,今天也只單單依靠神前行。求祢在忙碌之中不讓我失去神,也不讓我憑著沒有神同在的熱心徒然勞苦,願我時常省察自己的心。盼望能重生成為分別為聖之聖徒的品格。願今天也成為只在主裡喜樂的一天。
오늘 말씀의 하나님께서는 큰 부귀영화를 가지고 으스대고 우쭐거리는 교만한 자, 세상에서 존귀하다고 대접받는 자들을 낮추십니다. 그리고 그 부는 주님의 몫, 주님을 섬기는 자에게 돌려짐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부귀영화,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 진정한, 정말 값진 복이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저를 사랑해 주시는 사람들에게도 오늘이 주님과 함께하는 복된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今天話語中的神,使那些擁有大富大貴、驕傲自滿、趾高氣揚的人,以及在世上被尊為尊貴的人降卑。並且告訴我們,那些財富終將歸屬於主,歸給那些服事主的人。這讓我想起一句話:比起富貴榮華、世上的成功,神與我同在才是真正、極其珍貴的福氣。願我所愛的人,以及愛我的人,今天也都能擁有與主同在的、蒙福的一天。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교만하던 자를 낮추시고 멸시받게도 하시지만 다시 그를 돌보아 원래의 자리에 서게도 하십니다. 두로의 무역을 회복시키신 후에, 하나님께서 그 이익을 '여호와 앞에 사는 자'를 배불리 먹이고 잘 입히는 데 사용하실 거란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나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여호와 앞에 사는 자로 평생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기를 원하시는 다른 이들을 돌보는 일에도 사용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身為萬物之主的神,會使高處驕傲的人降卑,甚至遭人輕視,但也會再次眷顧他,讓他重新站回原本的位置。在神恢復推羅的貿易之後,祂要將那利益用來使「住在耶和華面前的人」得以飽足、穿得體面,這句話讓我印象深刻。我也懇切盼望自己能一生都在這地上,作為蒙神眷顧、住在耶和華面前的人而活。並且盼望自己也能被神使用,去照顧那些神願意餵養、給予衣著的其他人。
오늘날은 돈이 아주 중요하고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생활을 이어가기 힘든 시대이다. 성경에서도 돈 자체를 금지시키지 않았다. 그저 돈을 사랑하는 것을 반대하신다. 돈을 사랑하면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이웃에게 베풀기 아까워지고, 돈을 신처럼 모시게 된다. 오직 하나님만 앉아야 하는 거룩한 보좌에 돈을 앉혀놓고 다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나에게도 분명 이런 우상숭배의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섬기는 데 사용하며, 돈에 메여 사는 삶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그것을 잘 다스리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現今是金錢非常重要的時代,沒有錢就很難維持基本生活。聖經中也沒有禁止金錢本身,只是反對人去愛錢。當一個人愛錢時,就會用錢來判斷人,會捨不得對鄰舍施予,甚至會把錢當作神來敬拜。把只有神能坐的聖潔寶座讓金錢坐上去,並相信這樣就能解決一切問題。我心裡也確實存在過這種偶像崇拜的心。願我能將神所賜的財物用來服事神與鄰舍,不做被金錢所束縛的人,而是成為用神所賜的智慧好好治理錢財的人。
부와 권세를 쌓아 자기 안전을 지키려던 두로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었다. 잘될 때나 무너질 때나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는가' 물으며 그분의 선한 계획을 신뢰하게 된다.
積累財富與權勢,試圖保障自身安全的推羅,同樣也在神的主權之中。無論興盛或傾覆,我們都當問「這是誰所定的呢?」進而信任祂美善的計畫。
이사야 23:8-9
하나님께 나의 종이라 불렸던 엘리야김조차 결국 부러진 못처럼 무너진다는 말씀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끝까지 충성된 종으로 남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쓰임 받을수록 더욱 낮아져야 하는데 셉나나 엘리야김처럼 내 이름이 높아질수록 그 모든 영광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리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상에 주어지는 작은 성취나 소득조차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매 순간 하나님께만 감사를 돌리는 겸손의 훈련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連被神稱為「我的僕人」的以利亞金,最終也像折斷的釘子一樣崩塌,這段話語沉重地觸動我心。要始終如一地作忠心的僕人,實在是件不容易的事。越是被神使用,就越應當謙卑自己,然而就像設拿或以利亞金一樣,當我的名聲越高,要將這一切榮耀完全歸給神,恐怕就越發困難。日常生活中所得到的一點小小成就或收穫,也都是主的恩典,我再次體會到,需要不斷操練謙卑,在每個時刻都將感謝單單歸給神。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소란이 일어났는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고, 하나님은 통곡하고 애곡하라고 했는데 그들은 즐거워하며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라고 외쳤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것이다. 나도 말씀을 듣고도 내 마음대로 굴고 있진 않은가? 또 하나님은 셉나를 제하시고 엘리아김을 세워 다윗의 열쇠를 주신다. 나에게 예수님이라는 구원을 주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 힘으로 그것을 받았다고 착각하면 다시 셉나가 되어 버려질 뿐이다. 나와 공동체를 위해 옛적부터 경영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순종하는 자로 거듭나자.
耶路撒冷發生的騷亂是從神而來的,但他們卻不仰望神;神叫他們痛哭哀號,他們卻歡樂喜笑,喊著說:「明日必死,讓我們吃喝吧!」這是輕視神話語的表現。我是否也在聽了神的話語之後,仍然任性而行呢?神又除去舍伯那,立以利亞敬,將大衛家的鑰匙交給他。神賜給我耶穌這救恩,完全是出於神的恩典。若我誤以為是靠自己的力量得到的,那我也會變成舍伯那,終被棄絕。讓我們只仰望那從古時就為我和整個群體經營籌劃的神,重新成為順服神的人。
위기 앞에서 성벽과 사람을 아무리 든든히 준비해도, 그 준비 속에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으면 헛되다. 일을 시작하기 전 먼저 그 성을 지키시는 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面對危機時,無論城牆與人力準備得多麼堅固,若在這準備當中不仰望神,都是徒然。在開始做事之前,應當先仰望那位守護這座城的主。
이사야 22:11
이어서 기록되는 대국들의 허망한 멸망과 끊임없이 찾아오는 밤에 대한 경고는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파수꾼처럼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싶지만 여전히 세상에서 바라는 것도 많고 욕심도 많아 온전히 그러지 못하는 제 연약함을 봅니다. 밤이 오고 또 밤이 찾아오는 막막한 삶의 연속일지라도 제 삶의 방향만큼은 결코 놓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은혜를 구합니다.
接續記錄的列國虛空的滅亡,以及不斷來臨的黑夜的警告,鮮明地對照出永恆與非永恆的事物。我雖然渴望像神所立的守望者一樣,只將盼望寄託於主,但我看見自己仍舊對世上有許多渴望與貪心,無法完全做到這一點的軟弱。即便黑夜一再襲來,是茫然無措的生命延續,我仍祈求恩典,讓我人生的方向絕不偏離,唯獨朝向神。
밤이 찾아오고, 언제 이 밤이 끝나는지 두번이나 묻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밤을 일찍 끝내 줄게.. 가 아니고 아침이 왔지만 다시 밤이 찾아올 것이고.. 묻고 싶으면 묻고, 또 와서 물어보라는 답을 주셨습니다. 말씀처럼.. 저도 살아가며 겪을 피할 수 없는, 많은 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밤마다.. 돌아와서 물어보라고, 마치 밤을 곁에서 같이 지내주시겠다는 말씀처럼 들려.. 큰 위로를 느낍니다. 어두운 밤, 저와 함께해주실 주님을 찬미합니다.
夜晚降臨,我兩次詢問這夜何時才會結束。然而得到的回答不是「我會提早結束這夜晚」,而是「早晨會來,但夜晚也會再次降臨……你想問就問,再回來問我吧」這樣的答案。就像這話語一樣,我想在人生中,也會經歷許多無法避免的夜晚。而在每一個那樣的夜晚裡……「回來問我」這句話,聽起來就像是主要陪我一同度過那夜晚一般,讓我感受到極大的安慰。我要讚美在這黑暗的夜裡,願與我同在的主。
말씀을 읽을 수록, 묵상할 수록, 아직 내게는 어려움이다. 좁은 길이다. 주를 가까이 함이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의 첩경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임이 어렵고 순간순간 하나님을 내 파수꾼이요,삶의 정예요원으로 둘 뿐이다. 끊임없이 나와 주님의 자리바뀜이 일어나고 있다. 누가 주님인지..오늘 말씀도 온전하게 내 본분의 위치로 돌아오지 않고, 끊임없이 주인의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언제 하나님을 완벽히 내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에게로 돌아갈지... 아직은 그의 안드로메다 내에 있으며 주변을 맴돌고 있다.
越是讀話語,越是默想,對我來說仍然是困難的。是條窄路。要接受「親近主是通往自由與豐盛的捷徑」這個事實,對我而言並不容易,我只能一時一刻地把神當作我的守望者、生命中的精銳幹員。我與主之間的位置不斷在互換。到底誰才是主呢……今天的話語也還沒有讓我完全回到本分的位置,仍不斷在主人的位置上打轉。何時才能完全承認神是我的主,並回轉歸向祂呢……我目前仍在祂的仙女座之內,在祂周圍徘徊著。
몰락의 계시를 전해야 하는 이사야의 마음은 아마도 매우 무거웠을것입니다. 하지만 그 계시 속에는 구원의 메시지가 있기에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것임을 봅니다. 때로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하나님 이 고난만 지나게 해주시면 열심히 주를 섬기겠습니다”와 같은 거래성 기도를 드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서 두마의 질문과도 같은 현 상황만 모면하고 싶은 임시방편에 불과한 기도를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힘든 지금 내 상황보다 오히려 죽어가고 있는 내 영적상태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고난도 유익이 됩니다.
必須傳達滅亡啟示的以賽亞,他的心情大概非常沉重。但我看見,那啟示之中蘊含著救恩的信息,最終對眾人都是有益的。有時生活感覺太過沉重,以致我也曾禱告過像「神啊,只要讓我度過這個苦難,我就會努力服事你」這樣帶有交易性質的祈求。就像今天經文中杜瑪的提問一樣,那不過是想暫時逃避眼前處境的權宜之計般的禱告。然而我體悟到,神所關注的,往往不是我當下艱難的處境,而是我那正在死去的靈性狀態。所以,苦難也成為了益處。
하나님은 열방을 심판하시지만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외치고 계신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일에 몰두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자. 세상의 일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고관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나의 상황과 환경이 불안할 땐 그것을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묵상하자. 또 다른 이가 힘든 상황에 있을 때 그와 함께 아파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겠다.
神審判列國,但在其中祂仍不斷呼喊要我們回轉歸向祂。然而讓我們反省,自己是否因專注於吃喝之事,而聽不見主的話語。我們不該成為被世上之事奪去心思的官員,而應成為仰望神的作為、承認主的主權的守望者。當我所處的狀況與環境令人不安時,讓我們藉此仰望那將要施行作為的神,默想主。此外,當他人身處困境時,我們也要與他同感其苦,為他禱告,成為服事他的人。
두마 사람들은 파수꾼에게 밤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두 번이나 물었다. 이전에 나도 그랬다. 고통 속에 있을 때 내 관심은 온통 언제 끝나느냐에 있었다. 왜 이 밤이 왔는지, 이 어둠 속에서 내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파수꾼은 시간을 알려 주지 않는다. 대신 돌아오라고 한다. 그렇다. 내가 정말 들어야 할 답이 그것이었다. 밤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도 방향을 모르면 걸을 수 없다. 그러나 돌아갈 곳을 알면 어둠 속에서도 걸을 수 있다. 주님께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度瑪的人向守望者兩次詢問夜還剩多久。以前我也是這樣。在痛苦之中,我所關心的全都是「什麼時候結束」。我從未問過為何這黑夜會來臨,也未問過在這黑暗中我該歸向誰。然而守望者並沒有告訴他們時間,反而說「回轉吧」。是的,那正是我真正該聽見的答案。就算知道夜還剩多久,若不知道方向,也無法前行。但若知道要歸向何處,即使在黑暗中也能前行。願今天成為向主邁進的一天……
밤이 언제 끝날지 계산하기보다, 어둠 속에서도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與其計算夜晚何時結束,更重要的是,即使在黑暗中,也要回轉歸向呼喚我的神。
이사야 21:11-12
구약의 선지자들은 세상의 거친 흐름 속에서도 하나님께 귀 기울이며 그분의 말씀을 묵묵히 삶으로 살아냈습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현실의 어둠을 이겨내고 세상에 소망을 전하는 사명은 나의 몫이 아니라 여기며 저만의 삶에 안주했던 모습을 반성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 제게 허락된 삶의 자리에서 아무리 작은 소망이라도 이웃과 나누며 주위 사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舊約的先知們,即使身處世界混亂的洪流之中,仍然側耳傾聽神,並默默地用生命活出祂的話語。反省自己因忙碌的日常而疲於奔命,總認為戰勝現實的黑暗、向世界傳遞盼望的使命不是我的責任,只安於自己小小的生活圈。願我能像耶穌一樣,在神所賜給我的生命崗位上,無論多麼微小的盼望,都願意與鄰舍分享,成為身邊的人堅實的依靠,過這樣的生活。
치신 후에 어루만져 고쳐주시고, 간구하면 그 간구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제게 주님의 뜻을 말씀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부디 제가 그 뜻을 오해하지 않고, 지혜롭게 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소서.
擊打之後親自撫摸醫治,懇求之時垂聽懇求的神……我相信今天透過這段話語,主向我顯明了祢的心意。求祢幫助我不誤解這心意,並能有智慧地去行。
이사야의 행동은 듣기 좋은 메시지는 아니다. 내가 듣기 싫다고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붙들고 있으면 그것이 나의 수치가 된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경고에 귀 기울이고 주님만 바라볼 때 주님은 나를 고쳐주신다. 애굽은 완악한 나라, 이스라엘은 목이 뻣뻣한 백성, 앗수르는 악이 가득한 나라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다 품어주신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사랑 받는 게 아니라 그냥 은혜로 사랑해주시는 것이 위로가 된다. 나의 수치를 씻으시려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돌아가 듣기 불편한 말씀조차 감사함으로 받으며 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를 보내자.
以賽亞的行動並不是一個好聽的訊息。並不是因為我不想聽就不是話語,若我一直抓著世上的東西,那就會成為我的羞恥。當我留意聆聽神不斷的警告,只仰望主的時候,主就會醫治我。埃及是頑固的國家,以色列是頸項僵硬的百姓,亞述是充滿邪惡的國家,但神卻將他們全部都包容接納。並不是因為我有資格才被愛,而是單單因著恩典而被愛,這成為我的安慰。讓我們回到那等候要洗淨我羞恥的神面前,即使是令人不舒服的話語,也懷著感謝的心領受,度過一個實踐主愛的一天吧。
주님은 이집트를 치시지만 곧바로 어루만져 낫게하셔서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주님께서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백성이라고 불러주시며 축복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데 나는 얼마나 많은 관계를 포기하고 사랑없이 떠나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는데 나는 항상 타인을 향해 미움과 포기를 먼저 선택 했었습니다. 이집트 에게 내 백성이라 부르시며 고쳐 쓰시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과 오래 참는 사랑을 닮아가게 하소서
主擊打埃及,卻立刻撫慰醫治他們,使他們歸向主,主也聽了他們的懇求,醫治了他們。並且稱他們為我的百姓,賜福給他們。 主如此不放棄我、愛我,而我卻不知放棄了多少關係,無情地讓人離去。若沒有主的長久忍耐,就沒有現在的我,可是我卻總是先選擇了對他人的憎惡與放棄。求主使我學像那位稱埃及為我的百姓、重新塑造他們的神那寬廣的心與長久忍耐的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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