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36:1–22
今日默想:以賽亞書36:1–22
제목 : 침묵으로 지키는 믿음
오늘부터 이사야서의 내용이 달라진다. 1장부터 35장까지는 예언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36장부터는 역사 속의 한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즉 산문으로 된 역사 기록이고, 열왕기하 18장 이하에 기록된 내용과 거의 같은 것이다. 그럼 이사야서는 지금 이 내용을 왜 기록하고 있는가? 1~35장에서 이사야가 예언을 통해서 외쳐 온 것이 바로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라,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 오직 여호와를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포했던 예언을 말로 듣기만 하는 것과 눈 앞에 현실로 직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그 예언의 상황이 실제가 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히스기야와 이스라엘의 선택,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 36:1-2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2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서매
여기 나오는 장소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세탁자의 밭 큰 길 윗못 수도구 곁이다. 학자들은 이곳이 이사야가 7장에서 아하스를 만났던 바로 그 자리라고 지적한다. 그때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께 묻기를 거절하고 앗수르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제 그 아들 히스기야의 때가 되었다. 아버지가 붙들었던 그 앗수르가, 아버지가 서 있던 그 자리에 군대를 끌고 와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앗수르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이렇게 말한다.
사 36:4-5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5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그런데 랍사게의 연설을 들어 보면 한 낱말이 계속 반복된다. 믿는다는 말이다. 4절에서 네가 믿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묻고, 5절에서 네가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한다. 그리고 6절에서 네가 애굽을 믿는다 하고, 7절에서 네가 여호와를 믿는다 하겠느냐 한다. 곧 이 연설이 겨냥하는 것이 하나다. 믿음이다. 그가 무너뜨리려는 것은 예루살렘의 성벽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이다. 그래서 그가 차례로 묻는다. 네가 믿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정말 너를 지켜 주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신뢰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결국 랍사게는 이 절망의 상황에서 무엇을 신뢰하겠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이 신뢰하는 것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있다.
먼저 애굽이다. 6절에서 애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라 부른다. 기대면 손을 찔러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이 있다. 이 말이 이사야가 이미 한 말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30장과 31장에서 그 말을 들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마치 그가 하나님의 입장을 대언해 주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다음은 히스기야의 신앙 개혁이다. 7절에서 그가 산당과 제단을 없애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러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에게 노해 계실 것이라는 뜻이다. 랍사게의 생각이 이랬을 것이다. 전에는 여호와를 예배하는 곳이 온 땅에 그렇게 많았는데, 히스기야가 오고 나서 한 곳만 남았다. 신을 섬기는 자리가 많을수록 좋은 법인데 그것을 줄였으니 그 신이 화가 나 있을 것이다. 다신교를 섬기던 앗수르 사람에게는 그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명하신 그대로 한 것이었다. 신명기는 하나님이 택하신 한 곳에서 예배하라고 명했다. 곧 히스기야는 순종한 것이다. 그러니 랍사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라. 순종한 일을 두고 하나님이 노하셨다고 뒤집는 것이다. 우리의 절망의 상황을 모두 하나님의 노하심으로 보게함으로 그 순종이 잘못된 것이라고 왜곡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주석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원수는 우리의 순종을 낙심시키는 데 놀라운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군사력이다. 8절에서 말 이천 필을 줄 테니 그 위에 탈 사람이나 있느냐고 조롱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사 36:10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원수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말하는 것이다.
그러자 유다 관리들이 청한다. 아람 방언으로 말해 달라는 것이다. 성벽 위 백성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랍사게가 거절한다. 그리고 도리어 목소리를 높여 유다 방언으로 외친다. 학자들은 이것을 의도적인 심리전으로 본다. 지도자들을 건너뛰고 성벽 위 백성의 마음을 직접 치려는 것이다. 그리고 12절에서 포위전의 참상을 노골적으로 그린다. 굶주려 자기 배설물을 먹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백성을 향해 직접 말한다.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하고,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신뢰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 한다. 곧 지도자와 하나님을 차례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사 36:20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는 여호와를 열방의 우상과 같은 자리에 놓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관점일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도 평범한 신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능력이 있기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무례한 연설 앞에서 백성이 어떻게 반응 했는가.
사 36:21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반박하지도 않았고 변호하지도 않았다. 히스기야가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 침묵이 오늘 본문의 마지막이다. 그런데 이 때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백성들 마음에도 수많은 의구심이 생겼을 것이다. 랍사게의 말이 옳아 보이기도 했고, 그에 말에 반박을 하고 싶은 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침묵이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침묵 앞에서 30장의 한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으리라고...
오늘 본문을 묵상해 보면 어쩌면 우리도 늘 이 질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무엇을 의지하고 사느냐는 그 물음 말이다. 그리고 세상은 끊임없이 대답을 준다. 이것을 붙들어라, 저것을 마련해 두어라, 그래야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조롱이 시작된다. 그것으로 되겠느냐, 네 하나님이 정말 너를 건지겠느냐고 묻는다. 랍사게가 성벽 밑에서 외친 그 말이 오늘도 여러 모양으로 들려온다. 그럴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대개는 대답하려 한다. 설명하고 변호하고 증명하려 애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백성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 말을 하나님께 가지고 갔다. 그것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조롱에 일일이 대꾸하는 대신, 그 말을 들으시는 분께 맡긴 것이다. 그러니 나도 오늘 그렇게 서고 싶다. 세상의 소리에 흔들려 급히 대답하기보다, 잠잠히 그 앞에 서서 내가 누구를 의지하는지를 삶으로 답하고 싶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나와 우리 공동체가 되길 오늘도 기도한다.
題目:以沉默持守的信心
從今天開始,以賽亞書的內容有了轉變。第1章到第35章都是預言的內容。然而從第36章開始,記載的是歷史中的一個場景。也就是說,這是散文形式的歷史記錄,內容幾乎與列王紀下第18章以下所記載的相同。那麼,以賽亞書為何要記載這段內容呢?以賽亞在1~35章透過預言所大聲疾呼的,正是不要倚靠亞述、不要倚靠埃及,唯獨要信靠耶和華。然而,單單以話語聽聞這預言,與親眼直面眼前的現實,感受截然不同。因此,這裡展示了那預言的處境成為現實的一幕。此時,希西家與以色列的抉擇,以及神的作為究竟是什麼,都在此顯明出來。
賽36:1-2 希西家王十四年,亞述王西拿基立上來攻擊猶大的一切堅固城,將城攻取。2 亞述王從拉吉差遣拉伯沙基率領大軍往耶路撒冷,到希西家王那裡去,他就站在上池的水溝旁,在漂布地的大路上。
這裡出現的地點值得我們留意。就是漂布地大路、上池水溝旁。學者們指出,這裡正是以賽亞在第7章與亞哈斯相遇的那個地方。當時以賽亞懇切呼籲亞哈斯不要倚靠亞述。然而亞哈斯拒絕求問神,反倒向亞述伸出了手。如今,輪到他兒子希西家的時代來臨了。父親所倚靠的那亞述,如今率領軍隊來到父親曾站立的那個地方。在那裡,亞述的元帥拉伯沙基如此說道:
賽36:4-5 拉伯沙基對他們說:你們去告訴希西家說,亞述大王如此說:你所倚靠的憑據是什麼呢?5 你說,有打仗的計謀和能力,這不過是虛話。你到底倚靠誰才背叛我呢?
然而,若仔細聆聽拉伯沙基的演說,會發現一個詞不斷重複出現,那就是「倚靠」。第4節問「你所倚靠的憑據是什麼」,第5節問「你倚靠誰才背叛我」。第6節又說「你倚靠埃及」,第7節又問「你們豈能說是倚靠耶和華」。也就是說,這篇演說所瞄準的目標只有一個,就是信心。他所要摧毀的,並非耶路撒冷的城牆,而是城內百姓的信心。因此他一一逼問:你所倚靠的到底是什麼?那真的能保護你嗎?而這裡翻譯為「倚靠」的詞,本意就是「信靠、信賴」。最終,拉伯沙基所問的,就是在這絕望的處境中,你們究竟能信賴什麼呢?
接著,他一一擊碎以色列所信賴的對象。
首先是埃及。第6節稱埃及為「壓傷的蘆葦杖」,意思是若倚靠它,反而會刺傷手。然而這裡有一件令人驚訝之事,那就是這句話竟與以賽亞早先所說的話如出一轍。我們在第30章和第31章曾聽過類似的話:埃及人不過是人,並非神;他們的馬不過是血肉,並非靈。這使人感覺,拉伯沙基彷彿在代神發言一般。
其次是希西家的信仰改革。第7節中他問,希西家豈不是已經除去了邱壇和祭壇嗎?其意是說,耶和華必定為此向希西家發怒。拉伯沙基大概是這樣想的:從前敬拜耶和華的地方遍佈全地,如今希西家一來,卻只剩下一處。對他而言,敬拜神明的地方越多越好,如今卻被削減了,那位神必定會發怒。對於信奉多神教的亞述人而言,這是常識。然而希西家所做的究竟是什麼呢?正是完全遵照神的吩咐去行的。申命記命令百姓要在神所揀選的一處敬拜。也就是說,希西家是在順服。那麼,看看拉伯沙基在做什麼——他將順服之事顛倒過來,說成是神發怒的緣由。他企圖使人將我們所處的一切絕望境況,都看作是神的憤怒,藉此扭曲說那順服其實是錯誤的。因此,有一位注釋家指出:仇敵在使人對順服灰心喪志這件事上,實在有驚人的本事。
接下來是軍事力量。第8節中他嘲弄道,我給你兩千匹馬,看你有沒有騎士能騎上去。
最後,他這樣說:
賽36:10 現在我上來攻擊毀滅這地,豈沒有耶和華的意思嗎?耶和華吩咐我說,你上去攻擊毀滅這地吧。
意思是說,神差遣了他們。仇敵竟然假借神的名說話。
於是猶大的官員請求道,請用亞蘭語說話,免得城牆上的百姓聽懂。然而拉伯沙基拒絕了。反而提高聲音,用猶大方言大聲呼喊。學者們認為這是刻意的心理戰術,越過領袖,直接攻擊城牆上百姓的心。第12節中,他更露骨地描繪圍城之慘狀——飢餓將使人吃自己的糞便。
接著,他直接向百姓喊話,說不要被希西家欺哄,也不要讓希西家使他們信靠耶和華。也就是說,他要一一擊垮領袖與神。最後,他如此說道:
賽36:20 這些國的神有誰曾救自己的國脫離我手呢?難道耶和華能救耶路撒冷脫離我的手嗎?
他將耶和華與列邦的偶像等同視之。或許這正是世人的觀點。在他們眼中,神也不過是眾多平凡神明中的一位。而且他們認為,自己所信奉的神明比耶和華神更有能力,因此耶和華必不能拯救以色列。
然而,面對這番傲慢無禮的演說,百姓是如何回應的呢?
賽36:21 百姓靜默不言,並不回答一句,因為王曾吩咐說:不要回答他。
他們一句話也沒有回答,既沒有反駁,也沒有辯護,因為希西家曾如此吩咐。
這沉默正是今天經文的結尾。然而,此時百姓的心中會是怎樣的呢?他們心裡想必也產生了無數的疑慮。拉伯沙基的話聽起來似乎有理,也一定有人心中渴望反駁。然而,他們卻只能選擇沉默。可是,這沉默反倒顯出他們對神的信靠。因此,神學家們這樣說:在這沉默面前,我們不禁想起第30章的一句話,因為神曾如此說:你們得救在乎歸回安息,得力在乎平靜安穩……
默想今天的經文,或許我們也時常站在這個問題面前:你倚靠什麼而活?世界不斷給出答案,說要抓住這個、預備那個,這樣才安全。然而,一旦我們說要倚靠神,嘲笑便隨之而來,質問說:這樣就夠了嗎?你的神真能拯救你嗎?拉伯沙基在城牆下所喊的那番話,今日仍以各種形式在我們耳邊迴響。每當這時,我做的是什麼呢?大多數時候,我總想回應,想要解釋、辯護、證明。然而在今天的經文中,百姓一句話也沒有回答,反而將那些話帶到神面前。這並非因為無能,而是因為那正是信心。他們沒有一一回應嘲諷,而是將那些話交託給那位垂聽的神。因此,我今日也願如此站立——不因世上的聲音而慌張作答,而是靜靜地站在神面前,用生命來回答自己究竟倚靠的是誰。願我與我們的群體都能活出這樣的樣式,今天也如此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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