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37:1–20
今日默想:以賽亞書 37:1–20
제목 :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어제 본문은 백성들의 침묵으로 마무리 되었다. 비록 랍사게가 성벽 밑에서 온갖 조롱을 퍼부었지만 백성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 관리가 옷을 찢고 왕에게 그 말을 전했다. 오늘 본문은 그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의 반응이다.
사 37: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히스기야는 세 가지 행동을 한다.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간다. 그런데 앞의 두 가지는 애통의 표시다. 그 애통의 표시 후에 그의 행동이 중요하다. 그는 신하들을 불러 대책 회의를 열지 않았다. 애굽에 급히 사람을 보내지도 않았다. 바로 성전으로 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히스기야의 행동이 이 장 전체를 여는 열쇠다. 우리는 이 장면을 그의 아버지 아하스의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아하스는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징조 구하기를 거절하고 앗수르에 손을 내밀었다(사 7:12). 그런데 그 아들은 위기 앞에서 성전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사 37: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그래 히스기야는 함께 기도할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그가 바로 이사야 선지자이다. 그에게 말하면서 해산의 비유를 쓴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는데 밀어낼 힘이 없다는 것이다. 산모가 그 지경에 이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힘을 쓸 수도 없고 그만둘 수도 없다. 히스기야가 지금 자기 형편을 그렇게 말한다. 곧 내 힘으로는 이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없다는 고백이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4절에서 히스기야가 이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보자. 그는 랍사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훼방하려고 그 주인에게 보냄을 받았으니, 여호와께서 그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히스기야는 이것을 자기와 앗수르의 싸움으로 보지 않는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훼방을 당하신 일로 본다. 곧 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의 응답이 온다.
사 37: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보라. 나를 능욕한 말이라고 하신다. 히스기야가 그렇게 규정한 것을 하나님이 그대로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며, 그에게 한 영을 두어 소문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8절에서 랍사게가 돌아가고, 9절에서 구스 왕이 싸우러 나왔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러자 산헤립이 다시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 편지의 첫마디가 이것이다.
사 37:10 너희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
한 신학자는 이 편지가 무엇을 겨냥하는지 정확히 짚는다. 이 편지는 히스기야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공격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투를 보라. 네 하나님이 너를 속이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말이다. 그리고 11절부터 다시 열방의 신들을 나열한다.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하맛과 아르밧의 왕들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같은 학자가 이렇게 설명한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의 소망의 근거가 하나님의 약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른 신들이 아무도 건지지 못했다는 것으로 그 근거를 무너뜨리려 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편지는 어제의 연설보다 더 집요하다. 어제는 성벽 밑에서 외쳤지만, 오늘은 문서로 왕의 손에 쥐어졌다. 반박할 수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들고 무엇을 하는가.
사 37:14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래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읽고서 바로 성전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 놓는다.
매튜 헨리가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은 것은 산헤립에 대해 무슨 불평을 지어내려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 손으로 쓴 그것에 근거한 것만 아뢰려 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물건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즉 여기 흑백으로 적혀 있으니 주여 눈을 여시고 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매튜 헨리가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이 그분 앞에서 겸손히 자유롭기를 허락하시며, 친구의 편지든 원수의 편지든 그분 앞에 펴 놓고 그 내용을 맡기게 하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석가는 이 행위를 최고 재판관 앞에 올리는 말 없는 호소라고 표현한다. 증거물을 재판장 앞에 내놓고 나서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가 15절부터 나온다.
사 37: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기도의 첫머리가 무엇인가? 자기 형편을 아뢰는 것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천지를 지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산헤립은 여호와를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과 같은 급으로 놓았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 전제부터 뒤집는다. 그리고 그의 신앙을 고백한다. 여호와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기도는 편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그리고 18절과 19절에서 그가 산헤립의 말을 그대로 인정한다. 앗수르 왕들이 열국과 그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 신들을 불에 던졌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곧바로 이유를 덧붙인다.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이었기에 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곧 산헤립의 논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무너뜨린다. 네 말이 맞다, 그 신들은 다 불탔다, 그런데 그것들은 애초에 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절에서 기도가 닫힌다.
사 37:20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여기서 히스기야의 기도의 목적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는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천하 만국이 주만이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즉 자기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기도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다. 그리고 여러차례 본문을 통해 설교를 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을 다시 묵상하면서 나의 지식과 삶의 격차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말로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기도라고 한다. 그런데 정직하게 말하면 자꾸 다른 일부터 한다. 먼저 계획을 세운다. 어떻게 하면 될지 궁리하고, 누구에게 물어볼지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그렇게 한참을 애쓰다가 결국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제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늘 순서가 늘 뒤집혀 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달랐다. 그 편지를 받아 들고 곧바로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펴 놓았다. 나는 그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는 편지를 감추지도 않았고 혼자 삭이지도 않았다. 반박문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하나님 앞에 그대로 펼쳐 놓았다. 그러니 오늘 나 역시 나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주여 응답하시어, 내가 스스로 계획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와가 만국의 하나님되심을 알게 하옵소서"
題目:把那書信在耶和華面前展開
昨天的經文以百姓的沉默作結。雖然拉伯沙基在城牆下極盡嘲諷之能事,百姓卻一言不答。接著三位官員撕裂衣服,將那些話轉告給王。今天的經文,正是希西家聽見這消息後的反應。
賽37:1 希西家王聽見這話,就撕裂衣服,披上麻布,進了耶和華的殿。
希西家做了三件事:撕裂衣服、披上麻布、進入耶和華的殿。前兩者是哀慟的表示。而在這哀慟的表示之後,他的行動至關重要。他沒有召集臣僕開對策會議,也沒有急忙差人前往埃及,而是直接前往聖殿。或許希西家的這個舉動,正是打開這一整章的鑰匙。我們可以把這一幕與他父親亞哈斯的作法相比較。亞哈斯在危機面前拒絕向神求兆頭,反倒向亞述伸手(賽7:12);而他的兒子在危機面前,卻上到聖殿去。
接著他差人去見以賽亞,這樣說:
賽37:3 他們對他說:「希西家如此說:今日是急難、責罰、凌辱的日子,就如婦人將要生產,卻沒有力量生產。」
於是希西家尋找一位可以與他一同禱告的人,那人就是以賽亞先知。他在對先知說話時,用了生產的比喻——到了要生產的時候,卻沒有力氣使孩子出生。產婦到了這種地步,就什麼都做不了,既不能再用力,也無法停下。希西家如今正是這樣描述自己的處境,也就是承認:靠自己的力量,無法闖過這個局面。因此他請以賽亞為他禱告。
而接下來第4節,我們可以看到希西家如何定義這個問題。他說,拉伯沙基受他主人差遣,前來毀謗那永生神,耶和華必聽見這話。是的,希西家並不將這視為自己與亞述之間的爭戰,而是視為永生神受了毀謗之事。也就是說:這不是我的問題,而是神的問題。
於是神的回應臨到了。
賽37:6 以賽亞對他們說:「要這樣對你們的主人說,耶和華如此說:你聽見亞述王的僕人褻瀆我的話,不要懼怕。
看神說了什麼——祂說「褻瀆我的話」。希西家如此界定的事,神原原本本地接納了。神說不要懼怕,並且說要使一個靈進入亞述王的心,使他聽見風聲就歸回本國。然而故事並未就此結束。第8節拉伯沙基回去了,第9節傳來古實王出來要與亞述爭戰的消息。
於是西拿基立再次寫信給希西家。信的開頭第一句話是這樣的:
賽37:10 「你們對猶大王希西家如此說:不要被你所倚靠的神欺哄你,說耶路撒冷必不交在亞述王的手中。
有一位神學家精準地指出這封信瞄準的目標——這封信正是要攻擊希西家對神的信靠。看那語氣:說你的神別欺哄你——這是要把神說成一個說謊者的言語。從第11節起,又列舉列國的神明,問歌散、哈蘭、利色、哈馬、亞珥拔的王在哪裡。同一位學者這樣解釋:西拿基立知道希西家盼望的根基在於神的應許,所以他想用「其他的神明沒有一個能拯救」這一點,來摧毀那根基。
因此這封信比昨天的演說更加執拗。昨天是在城牆下呼喊,今天卻以文書的形式握在王的手中,無法反駁,也無法抹去。然而希西家拿著這封信做了什麼呢?
賽37:14 希西家從使者手裡接過書信來,看完了,就上耶和華的殿,將書信在耶和華面前展開。
希西家讀完那封信後,立刻上到聖殿,將那書信在神面前展開。
馬太·亨利這樣解釋這一幕:希西家把那書信在耶和華面前展開,並不是要編造什麼對西拿基立的控訴,而是單單將他親手所寫的內容呈給神,讓那東西自己說話。也就是說:這是白紙黑字寫著的,主啊,求你睜眼觀看。馬太·亨利接著說:神容許禱告的百姓在祂面前謙卑而自由,無論是朋友的信還是仇敵的信,都可以在祂面前展開,將其中的內容全然交託。
另一位註釋家將這個舉動形容為,在至高審判者面前提出的無聲呼求——把證物呈到審判者面前之後,才獻上禱告。而那禱告從第15節開始。
賽37:16 「坐在二基路伯上耶和華─以色列的神啊,你,惟有你,是天下萬國的神;你曾創造天地。
禱告的開頭是什麼?不是先陳述自己的處境,而是先宣告神是誰——祂是天下萬國獨一的神,是創造天地的那一位。西拿基立把耶和華與哈馬、亞珥拔的神明相提並論,而希西家卻從根本上推翻這個前提,宣告他的信仰:耶和華是獨一的神。因此,這禱告同時也是對那封信的回覆。
在第18、19節,他甚至如實承認西拿基立所說的:亞述諸王確實使列國和列國的地變為荒涼,也把他們的神像扔在火裡,這些都是事實。然而他立刻補上理由:那些並不是神,只是人手所造的木頭石頭,所以才能被毀滅。也就是說,他一面承認西拿基立的邏輯,一面同時將其推翻——你說得沒錯,那些神像確實都被燒了,但它們本來就不是神。
第20節,禱告以此作結:
賽37:20 耶和華我們的神啊,現在求你救我們脫離亞述王的手,使天下萬國都知道惟有你─耶和華是神。」
在這裡,我們應當留意希西家禱告的目的。他並未止步於「求你救我們」,而是進一步祈求,使天下萬國都知道唯有神是神。也就是說,他的禱告不是以自身的安危、而是以神的榮耀作為結尾。
今天的經文是我們非常熟悉的內容,我也曾多次以此為題講道。然而今天再次默想這段經文時,我重新意識到自己的知識與生活之間的落差。嘴上總說,遇到困難時我該做的就是禱告,但誠實地說,我卻總是先做別的事——先制定計劃,思考該怎麼辦,考慮該問誰,準備對策。如此費盡心力之後,才發現靠自己的力量無法解決,這時才走到神面前。順序總是顛倒過來的。但希西家不同,他一接到那封信,立刻上到聖殿,將它在神面前展開。這個畫面長久留在我心中。他沒有把信藏起來,也沒有獨自忍受,更沒有寫反駁文,只是原原本本地在神面前展開。因此今天,我也要把我的問題在神面前展開,並等候神的回應:「主啊,求你回應我,使我不憑自己籌算,而是順從你的話語,使人都知道唯有耶和華是萬國的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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