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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이사야 39:1–8

    今日默想:以賽亞書 39:1–8

    한경우··조회 41

    제목 : 묻지 아니하고

    오늘 본문은 이사야 1장부터 39장까지 이어 온 긴 여정의 마지막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이 승리가 아니라 실수로 끝난다.

    사 39:1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먼저 이 방문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므로닥발라단은 바벨론 왕인데, 앗수르에 맞서 이십 년 넘게 싸운 인물이다. 한 주석가는 그를 이렇게 표현한다. 앗수르 사람들에게 그는 테러리스트였고, 자기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바벨론을 앗수르의 폭정에서 해방시키는 데 일생을 바친 자유 투사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방문은 단순한 병문안이 아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동맹 제안으로 본다. 그가 동쪽에서, 히스기야가 서쪽에서 앗수르에 맞서자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확인했듯이 이 사건은 앗수르의 침공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바벨론 사절의 방문이 히스기야가 앗수르에 반역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열왕기하는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그 반역이 산헤립의 침공을 불러왔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무엇을 했는지 보라.

    사 39:2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

    기뻐하여 맞이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 보여 주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가 보여 준 것을 자세히 보라.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만이 아니다. 무기고를 보여 주었다. 곧 재물만이 아니라 무기를 보여 준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우리에게 함께 싸울 힘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자랑을 넘어 동맹의 자격을 내보인 행위였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이사야서를 읽어 온 그 흐름과 만나게 된다. 하나님이 이 백성에게 여러 번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다.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셨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사 31:3). 그러니 그 명령의 본질이 무엇이었는가. 애굽이라는 특정 나라를 피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무엇을 했는가. 물론 애굽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바벨론이 찾아오자 그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 금지된 이름은 피했는데 금지된 일은 그대로 한 것이다. 표면은 지켰는데 본질은 놓쳤다. 그래서 한 주석가는 그 순간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때문에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절단에게 존중받는다고 느껴 앗수르의 원수를 기쁘게 맞이했다. 그리고 여호와께도 이사야에게도 묻지 않고 자기 보물과 무기를 다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여기 묻지 않았다는 말이 이 장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순서를 잘 보아야 한다. 히스기야가 묻지 않고 결정한 것이 먼저이고, 성전으로 올라가 기도한 것이 나중이다. 우리는 며칠 동안 그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랍사게가 성벽 밑에서 조롱할 때 그는 옷을 찢고 성전으로 올라갔다. 산헤립의 편지를 받았을 때는 그것을 여호와 앞에 펴 놓았다. 그런데 그 위기가 어디서 왔는가. 바로 오늘 본문의 이 결정에서 왔다. 그가 묻지 않고 바벨론과 손을 잡았고, 앗수르에 반역했고, 그래서 산헤립이 쳐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된다. 그는 묻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일이 불러온 위기 앞에서 비로소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위기에서 그를 건져 주셨다.

    그러고 보면 이사야서가 계속 같은 문제를 다뤄 왔다. 아하스는 앗수르를 붙들었고, 백성은 애굽을 붙들었고, 이제 히스기야는 바벨론을 붙든다. 붙드는 대상은 계속 바뀌는데 문제는 하나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보아야 한다. 그가 보여 준 것이 자기 보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 따로 있었다. 하나님이 그를 죽음에서 건지신 이야기다. 실제로 사절들이 온 이유가 그의 병이 나았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할 자리였는데, 그는 자기 재물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이사야가 온다.

    사 39:3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이르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하니라

    이사야가 두 가지를 묻는데, 히스기야의 대답이 스스로를 고발한다. 내 집에 있는 것을 다 보았고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

    사 39:6-7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두 가지를 잃는다고 하신다. 재물과 자손이다. 그런데 뒤의 것이 더 무겁다. 한 주석가는 이렇게 정리한다. 물질을 잃는 것보다 더한 것은 그의 참된 부요, 곧 자손을 바벨론 포로로 잃는 것이며, 이것이 훗날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바벨론 왕궁으로 끌려간 일을 미리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히스기야가 살고 싶어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게 하는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손이 바벨론으로 끌려간다고 하신다. 그가 보여 준 그 보물을 따라, 그 나라 사람들이 와서 그의 자손을 데려간다. 그런데 그 심판의 선언 안에 한 가지가 들어 있다. 그 일이 지금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날이 이르리니 하신다. 곧 시간이 주어졌다.

    사 39: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사실 이 반응을 두고 주석가들의 견해가 갈린다. 어떤 이들은 그가 자기 안락만 생각한 것이라고 본다. 후손이 당할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다르게 본다. 히스기야가 자기 죄를 곧바로 인정하고 그 선고가 정당함을 받아들였으며, 그것이 즉시 집행되지 않고 시간이 주어진 데서 자비를 보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대하는 그가 자기 마음의 교만을 뉘우치고 겸비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그의 생전에 임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러니 이 마지막 장면에 두 가지가 함께 있다. 히스기야의 실수와 그 대가가 있고, 동시에 유예된 시간과 남겨진 은혜가 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 어제 설교한 시글락의 일과 겹쳐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히스기야는 위협 앞에서는 성전으로 달려간 사람이었다. 그런데 좋은 소식 앞에서는 가지 않았다. 나도 그렇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급히 기도하는데, 일이 잘 풀리고 기분이 좋을 때는 기도가 사라진다. 그리고 그런 때에 하는 결정이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한다. 어제 설교의 내용처럼 다윗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시글락으로 갔다. 그리고 그 선택이 여러 어려움을 불러왔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오늘 히스기야도 그렇다. 그는 묻지 않고 결정했고, 그 결과가 후손에게 미쳤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내치지 않으셨다. 그러니 오늘 나는 두 가지를 함께 붙든다. 하나는 묻지 않고 결정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저지른 실수 가운데서도 여전히 나를 붙드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겐 그 은혜가 절실히 필요한 한 주이다.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 번 한 주 나의 모든 삶 속에 드러나길...

    中文 AI翻譯

    題目:不曾求問

    今天的經文是以賽亞書從第一章延續到第三十九章這段漫長旅程的最後一段。然而,這個結尾並非以勝利收場,而是以失誤告終。

    賽39:1 那時,巴比倫王巴拉但的兒子米羅達巴拉但聽見希西家病而痊癒,就送書信和禮物給希西家。

    首先我們要明白這次來訪的性質。米羅達巴拉但是巴比倫王,是與亞述對抗二十多年的人物。有位注釋家如此形容他:對亞述人而言,他是恐怖分子;但對他自己而言,他是把畢生獻給將心愛的巴比倫從亞述暴政中解放出來的自由鬥士。所以這次來訪並非單純的探病。學者們認為這是一項結盟的提議——他從東邊、希西家從西邊,一同對抗亞述。而正如我們昨天所確認的,這件事發生在亞述入侵之前。許多學者認為,正是這次巴比倫使者的來訪,促成了希西家背叛亞述的契機。事實上,列王紀下記載希西家背叛了亞述王,不再事奉他。而那次背叛招來了西拿基立的入侵。

    然而,看看希西家做了什麼。

    賽39:2 希西家因使者到來而歡喜,就把他寶庫中的金銀、香料、貴重的膏油,和他武庫的一切軍器,並他所有的財寶,都給他們看;他家中和他全國之內,希西家沒有一樣不給他們看的。

    經文說,他因使者到來而歡喜地接待了他們,並把一切都展示給他們看,一樣不漏地展示出來。但仔細看看他所展示的東西——不只是金銀、香料、貴重的膏油而已,他還展示了武庫。也就是說,他展示的不只是財寶,還有兵器。這意味著什麼呢?意思是說:我們有一同作戰的力量。所以這已經超越了單純的炫耀,而是展現出結盟資格的行為。

    而在這裡,我們正好與我們一路讀以賽亞書時所看到的那條脈絡相遇了。神多次向這百姓說了什麼呢?祂說不要下埃及去,不要依靠馬和戰車。而祂說明理由如下:埃及人不過是人,並不是神;他們的馬不過是血肉,並不是靈(賽31:3)。那麼,這誡命的本質是什麼呢?並不是要百姓避開埃及這個特定的國家,而是要他們不倚靠人,只倚靠神。

    那麼希西家做了什麼呢?他固然沒有去埃及,但當巴比倫來訪時,他卻把一切都展示給他們看。他避開了被禁止的名字,卻做了被禁止的事;他遵守了表面,卻失去了本質。因此有位注釋家如此解釋當時的心理:希西家原本因亞述而深感憂懼,但當這批使者讓他感到受尊重時,他便歡喜地迎接了亞述的仇敵;而他既沒有求問耶和華,也沒有求問以賽亞,就把自己的財寶和兵器全都展示出來了。這裡「沒有求問」這句話,正是本章的核心。

    但我們必須仔細留意這個順序。希西家未經求問便擅自決定,這是在先;他上聖殿禱告,是在後。這幾天我們一直看見他禱告的樣子——當拉伯沙基在城牆下嘲諷時,他撕裂衣服,上聖殿去;當他收到西拿基立的信時,他將信在耶和華面前展開。但那場危機究竟從何而來?正是從今天經文中的這個決定而來。他未經求問就與巴比倫結盟,背叛了亞述,於是西拿基立便來攻打了。因此可以這樣整理:他未經求問便擅自行事,直到那行為招來的危機臨到,他才終於來到神面前;而神也在那危機中拯救了他。

    這樣看來,以賽亞書其實一直在處理同一個問題。亞哈斯倚靠了亞述,百姓倚靠了埃及,如今希西家倚靠了巴比倫。倚靠的對象不斷改變,問題卻始終如一:不求問神。

    還有一點值得留意,就是他所展示的是自己的財寶。但他其實還有另一樣東西可以展示,就是神將他從死亡中救出的那個故事。事實上,使者們來訪的原因,正是聽聞他病癒的消息。這本該是傳揚神所行之事的機會,他卻展示了自己的財富。於是,以賽亞來了。

    賽39:3 於是先知以賽亞來見希西家王,問他說:這些人說了甚麼?他們從哪裡來見你?希西家說:他們從遠方的巴比倫來見我。

    以賽亞問了兩個問題,而希西家的回答卻自我控訴。他說,他們把我家中所有的都看過了,沒有一樣不給他們看的。於是,神的話臨到了。

    賽39:6-7 日子必到,凡你家裡所有的,並你列祖積蓄到今日的,都要被擄到巴比倫去,一無所留,這是耶和華說的。7 並且從你本身所生的眾子中,必有被擄去在巴比倫王宮中當太監的。

    神說他要失去兩樣東西:財寶和子孫。但後者更為沉重。有位注釋家如此整理:比起失去物質,更慘痛的,是他真正的財富——也就是他的子孫——將要被擄到巴比倫,而這也預示了日後但以理和他的朋友們被擄到巴比倫王宮的事。回想昨天希西家渴望活下去的理由是什麼呢?是要建立一個能讓子孫認識神信實的國度。然而如今卻宣告,他的子孫將被擄到巴比倫去。他所展示的那些財寶,如今那國的人竟要前來,連他的子孫也一併帶走。然而,在這審判的宣告之中,也隱藏著一件事:這事現在還不會發生。神說「日子必到」,也就是說,時間仍被給予了。

    賽39:8 希西家對以賽亞說:你所說耶和華的話甚好,又說:在我的年日中必有太平和穩固的景況。

    其實對於這個反應,注釋家們的看法分歧。有人認為,他只想到自己的安逸,對後代將要遭遇的事漠不關心。但也有人持不同看法,認為希西家立刻承認了自己的罪,並接受了那審判的公正性,而在那審判不立即執行、反倒被賜予時間這件事上,他看見了神的憐憫。事實上,歷代志記載,他因心裡自卑,正如他在耶路撒冷居民面前所自卑的,耶和華的忿怒就沒有在他的年日中臨到。所以,在這最後的場景中,同時存在著兩件事:希西家的失誤與其代價,以及被延緩的時間與所留下的恩典。

    默想今天的經文時,我心裡浮現許多想法。其中,與我昨天所講的洗革拉的事相互重疊,使我看見了自己的樣子。希西家是那種在威脅面前會奔向聖殿的人,但在好消息面前卻沒有這麼做。我也是如此。遇到困難的事,我會急忙禱告;但事情順利、心情愉快時,禱告便消失無蹤。而在那樣的時刻所做的決定,往往日後要付出代價。正如昨天講道的內容所說,大衛也是未經求問神就去了洗革拉,而那個選擇招來了諸多困難。然而即便如此,神並沒有丟棄他。今天的希西家也是如此。他未經求問便擅自決定,其後果波及了後代子孫,但神並沒有棄絕他。所以今天我要同時緊緊持守兩件事:一是不可未經求問就擅自決定,二是即便在已經犯下的過錯之中,仍有神持續扶持我的恩典。這一週,我極其需要這樣的恩典。因此我禱告,願神的恩典在這一週,顯明在我生活的每一個角落之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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