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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이사야 38:1–22

    今日默想:以賽亞書38:1–22

    한경우··조회 32

    제목 : 눈물의 기도, 감사의 찬양

    오늘 본문은 시간 순서를 알고 읽어야 한다. 신학자들은 이 사건이 36장과 37장보다 먼저 일어난 일로 본다. 그 이유는 히스기야가 주전 687년경에 죽었는데 본문에서 이 병으로 인해 죽을 그의 생을 십오 년을 더하신다고 하셨으니, 이 병은 주전 702년 무렵의 일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예루살렘 포위 사건은 그 이듬해인 주전 701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결정적인 근거가 6절이다. 하나님이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지겠다고 약속을 하시는데, 그것이 어제 우리가 읽은 37장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순서를 바꿔서 배열했는가. 한 주석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36장과 37장이 앗수르 시대를 마무리하고, 38장과 39장이 바벨론 시대를 여는 문이 된다는 것이다. 내일 읽을 39장에서 바벨론 사절이 찾아오고, 40장부터 바벨론 포로기를 향한 예언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이 기록은 시간이 아니라 주제를 따라 배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 38: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여기서 유언을 남기라는 것은 끝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이렇게 기도한다.

    사 38: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그가 무엇을 근거로 구하는지 보라. 자기가 살아온 삶이다.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했고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했으니 그것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산당을 헐고 우상을 없앤 왕이었다. 아버지 아하스가 성전에 들여놓은 것들을 치우고 예배를 바로 세운 왕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올바른 재판관들을 세워 그 땅에 공의가 설 수 있게 했다. 그러니 그 삶을 기억해 주시고 자기 기도를 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왜 이토록 간절히 살고자 하는가. 목숨이 아까워서인가. 그의 시를 읽어 보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사 38:10-11 내가 말하기를 나의 중년에 스올의 문에 들어가고 나의 여생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11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산 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의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그가 잃는다고 말하는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여호와를 뵙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먼저 여호와를 뵙지 못한다는 말은, 죽으면 하나님과 영영 끊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한 주석가는 이것이 성전에 나아가 예배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는 그 자리를 잃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왕의 자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일이다. 다스리고 가르치고 재판하고 개혁하는 것이 다 그렇다. 그러니 그가 슬퍼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그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개혁은 끝나지 않았고 세워야 할 것이 많았다. 그래서 한 주석가는 히스기야가 죽음을 존재의 끝이 아니라 소명의 중단으로 보았다고 지적한다. 사명 한가운데서 끊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기도는 이렇게 읽힌다. 제가 지금까지 주를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조금 더 일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다. 히스기야가 죽음을 존재의 끝이 아니라 소명의 중단으로 보았다. 그의 삶은 사명 한가운데 있었다. 개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도자로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 고뇌가 목적을 이루기 전에 끊어진다는 데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사 38: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고 하신다. 어제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네가 기도하였도다 하셨다. 이틀 연속으로 기도가 응답의 근거로 명시된다.

    그리고 징조를 주시는데, 아하스의 해시계에서 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가게 하신다. 한 주석가는 이 징조가 절묘하게 어울린다고 지적한다. 그림자가 뒤로 물러가면 하루에 시간이 더 생기는 셈인데, 하나님이 히스기야에게 시간을 더 주신 것과 정확히 맞물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시계가 하필 아하스의 것이다. 우리는 7장에서 하나님이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 하셨을 때 그가 거절한 것을 기억한다. 그 아들이 이제 징조를 받는데, 아버지의 이름이 붙은 그 해시계 위에서 받는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시가 이렇게 매듭지어진다.

    사 38: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여기서 산 자가 해야 할 일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주께 감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의 신실하심을 자녀에게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 말을 어떻게 하는지 보라.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라고 한다. 곧 자기부터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건짐받은 그가 이제 감사하고 있고, 그 신실하심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한 개인이 아니라 왕이다. 그러니 이 말이 자기 한 사람의 다짐으로 끝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이 두 가지가 온 나라에서 일어나게 하겠다는 뜻이다.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버지가 자녀에게 그 신실하심을 전하는 나라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율법이 명한 바로 그것이다. 신명기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했다. 집에 앉았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웠을 때나 일어날 때나 강론하라고 했다.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한 세대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 그것이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는 길이었다.

    그러니 히스기야가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슬퍼했던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율법의 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를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앎이 다음 세대로 흘러가는 나라 말이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는 히스기야가 왜 그토록 통곡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신학자들의 설명을 읽고서야 그 마음이 조금 이해되었다. 그는 목숨이 아까워서 운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에서 끊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예배하는 자리, 그분의 신실하심을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는 자리,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자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에게도 예배하는 자리가 있고 섬기는 자리가 있고 말씀을 전하는 자리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기보다 부담으로 여길 때가 있다. 해야 할 일이 밀려 있다고 느끼고, 감당해야 할 무게로만 생각한다. 히스기야는 그 자리를 잃는 것이 슬퍼서 통곡했는데, 나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 귀함을 자주 잊는다. 그러니 오늘 나는 이 자리를 다시 돌아 보아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뜻이고, 아직 그분의 신실하심을 전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더 얻은 그 시간에 하겠다고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산 자가 주께 감사하고,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의 신실하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오늘 내게 주어진 이 하루도 그런 날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標題:眼淚的禱告,感恩的讚美

    今天的經文必須按照時間順序來理解。神學家們認為這件事發生在第36章與第37章之前。原因是希西家大約死於主前687年,而經文中提到神因這場病要再加添他十五年的壽命,由此可以推算這場病應該發生在主前702年左右。然而耶路撒冷被圍困的事件是在隔年,也就是主前701年發生的。第6節就是決定性的證據。神應許要將希西家與這城從亞述王手中救出來,而這件事在我們昨天讀的第37章中已經發生了。

    那麼,為何要以這樣的順序來編排呢?一位註釋家如此解釋:第36章與第37章為亞述時代畫下句點,而第38章與第39章則成為開啟巴比倫時代的門。我們明天要讀的第39章中,巴比倫使者將前來造訪,從第40章開始,針對巴比倫被擄時期的預言就此展開。因此,這段記載應被視為按主題而非按時間來編排的。經文就這樣開始了。

    賽38:1 那時希西家病得要死,亞摩斯的兒子先知以賽亞去見他,對他說:耶和華如此說,你當留遺命與你的家,因為你必死不能活了。

    這裡所說的「留遺命」,就是要他預備後事的意思。於是希西家轉臉朝牆,這樣禱告:

    賽38:3 說:耶和華啊,求你記念我在你面前怎樣存完全的心,按誠實行事,又行你眼中所看為善的。希西家就痛哭了。

    請看他祈求的根據是什麼——是他所活過的人生。他求神記念他在主面前存誠實、全心而行,又行主眼中看為善的事。而這其實並非虛言。他當時推行了以色列的宗教改革,是拆毀邱壇、除掉偶像的王;是清除父親亞哈斯放入聖殿之物、重新樹立敬拜的王;不僅如此,他還設立公正的審判官,使那地建立起公義。因此他祈求神記念他的一生,垂聽他的禱告。

    那麼,他為何如此懇切地渴望活下去呢?是因為愛惜性命嗎?讀他所作的詩,便能明白其中緣由。

    賽38:10-11 我說,正在我中年之日,必進入陰間的門,我餘剩的年歲不得享受。11 我說,我必不得見耶和華,就是在活人之地不見耶和華;我與世上的居民不再見面。

    他所說要失去的,有兩件事:一是不能再見耶和華,二是不能再見世人。

    首先,「不得見耶和華」並不是指死後與神永遠隔絕。一位註釋家解釋,這是指他將失去到聖殿敬拜、在眾人面前承認神掌權的那個位置。而「不再見世人」也是同樣的道理。作王的職分本就是在眾人之中作工——治理、教導、審判、改革,都是如此。由此便清楚看出他所悲傷的是什麼:他還有未竟之業。改革尚未完成,還有許多事有待建立。因此有位註釋家指出,希西家將死亡視為的不是存在的終結,而是使命的中斷。他所懼怕的,是在使命正中被截斷。

    所以他的禱告可以這樣理解:我至今為主而活,但我還有未完成的事,求你讓我再多做一點工。是的,希西家將死亡視為使命的中斷,而非存在的終結。他的生命正處於使命之中,改革尚未完成,作為領袖仍有職責未了。他的痛苦,正是來自於在達成目標之前就被截斷的恐懼。

    於是神應允了他:

    賽38:5 你去告訴希西家說:耶和華你祖大衛的神如此說,我已經聽見你的禱告,看見你的眼淚。我必加增你十五年的壽數。

    神說,我已聽見你的禱告,看見你的眼淚。昨天的經文中,神也說「你曾禱告」。連續兩天,禱告都被明確地列為蒙應允的根據。

    而神所賜下的兆頭,是使亞哈斯的日晷上的影子倒退十度。一位註釋家指出,這個兆頭極為巧妙地相稱:影子倒退,意味著一天中多出了時間,這恰恰與神為希西家多加的壽數相呼應。然而,這座日晷偏偏是亞哈斯所造的。我們還記得在第7章,神曾要亞哈斯求一個兆頭,他卻拒絕了。如今他的兒子領受了兆頭,而且正是在刻著父親名字的那座日晷之上領受的。

    希西家的詩最後這樣總結:

    賽38:19 只有活人,活人必稱謝你,像我今日稱謝你一樣;為父的必使兒女知道你的誠實。

    這裡提到活著的人當做的兩件事:一是稱謝主,二是使兒女知道主的誠實。但請看希西家是怎麼說的——他說「像我今日稱謝你一樣」,也就是說,他要率先如此行。這位從死亡邊緣被拯救的人,如今正在稱謝,正在傳揚神的誠實。

    然而他不只是一個平凡人,他是王。因此這句話並非僅止於他個人的決心,而是指他要使全國都行出活人當行的這兩件事——使百姓向神獻上感謝,使為父的向兒女傳講神的誠實。而這正是律法所吩咐的。申命記說,要將這話語存在心中,殷勤教導兒女;無論坐在家中,行在路上,躺下,起來,都要談論。使認識神的知識不在世代之間中斷,而是代代相傳,這正是以色列之所以為以色列的道路。

    由此便可看出,希西家所悲嘆「還有未竟之業」究竟指的是什麼。他渴望建立一個律法精神長存的國家——一個正確認識神,並將這認識傳遞給下一代的國家。

    默想今天的經文時,我探究了希西家為何如此痛哭。讀了神學家們的解釋之後,我才稍稍體會他的心情。他哭泣並非因為捨不得性命,而是因為害怕從神做工的位置上被截斷——從敬拜的位置、在眾人面前見證神誠實的位置、承擔託付之事的位置上被推開。

    想到這裡,我不禁反思自己有多珍視這樣的位置。我也有敬拜的位置,有服事的位置,有傳講話語的位置。但有時候,我把它們看作是負擔,而非特權;覺得要做的事堆積如山,只把它們當作必須承受的重擔。希西家因為害怕失去這個位置而痛哭,而我雖身處其中,卻常常忘記它的寶貴。

    因此,今天我需要重新看待這個位置。因為活著,就意味著仍能敬拜神;仍能傳揚祂的誠實。希西家在多得的歲月中所要做的,正是這件事——活著的人向主獻上感謝,為父的使兒女知道主的誠實。願今日賜給我的這一天,也能成為那樣的一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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