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창세기 43:16-34
今日默想:創世記 43:16-34
요셉이 베냐민을 본 순간, 청지기에게 짐승을 잡고 잔치를 준비하라 명한다. 그러나 형들은 이 요셉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요셉의 집으로 갈 때 두려워한다. 그래서 청지기에게 다가가 자루에 돌아왔던 은에 대해 변명한다. 자기들이 잡혀가는 줄로 안 것이다. 그런데 청지기가 답한다.
창 43:23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그래, 한 이방의 청지기가 그들에게 "너희 하나님"을 가르친다. 그들이 듣지 못하던 것을, 그들이 보지 못하던 것을, 한 외인의 입을 통해 듣는다. 은혜는 이미 그들의 자루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함정으로 읽었다.
요셉은 정오에 와서 형들의 안부를 묻고,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베냐민을 본다. 그 다음 구절이 짧고 무겁다.
창 43:30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요셉은 안방으로 들어가 운다. 그리고 얼굴을 씻고 다시 나온다. 요셉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래 사랑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감춰져 있다. 형들은 모른다. 자기들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한 잔치의 준비라는 것을. 시므온이 풀려 나왔다는 것도, 나이 순으로 자리가 정해진 것도, 베냐민의 음식이 다섯 배라는 것도 — 모두 한 사랑의 손길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저 요셉의 형들은 그 잔치 한복판에서 두려워한다. 그들의 손은 한때 동생을 구덩이에 던지고 옷을 피로 적셨던 손이기 때문이다. 그 손은 자기들이 받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래서 잔치 안에 앉아서도 잔치를 잔치로 누리지 못한다.
여기 슬픈 진실이 있다. 사랑은 이미 일하고 있고, 은혜는 이미 자루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죄책의 눈은 은혜를 함정으로, 단련을 형벌로, 침묵을 거절로 읽는다. 그래서 요셉이 안방에서 흘린 그 눈물을 형들은 끝내 모른 채 식사를 마친다. 마지막 절은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다고 적는다. 그래, 그들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자기들을 환대하고 있는지 모르는 즐거움이었다. 마음 타는 그 사랑의 눈물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누리는, 절반의 잔치였을 것이다.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나와 공동체의 지체들이 하나님이 차려놓으신 잔치 한복판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잔치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루에 들어온 은을 함정으로 읽고, 두려움으로 음식을 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그 손길을 누리지 못하고 두려워 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우리 자신이 알기 때문이다.
어제 주일, 우리 공동체는 로마서 1-4장을 함께 나누었다. 그래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는 그 말씀 앞에서, 우리의 손이 요셉의 형들의 손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만 보면 잔치 자리에 앉아도 두려움 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복음이 들렸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깨끗하게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정결케 하셨음을 믿는 그 믿음으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누릴 수 있다.
요셉의 형들은 안방에서 흘린 그 눈물을 알지 못한 채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사랑을 알기에, 죄책의 눈이 아니라 보혈로 씻긴 눈으로 그 잔치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자루에 들어온 은을 함정이 아닌 선물로 읽고, 마음 타는 그 사랑의 눈물을 알아보며 음식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청지기의 그 말이 이번 한 주 우리 공동체의 힘이 되길 소망한다. "평안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우리 자신을 보면 두려움밖에 없지만,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 보혈을 보면 이 말씀이 사실이 된다.
소망하길 우리 공동체가 그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신 그 선물을 누리고 또 나누는 한 주가 되길 기도한다.
約瑟看見便雅憫的那一刻,便吩咐管家宰殺牲畜、預備筵席。然而哥哥們並不明白約瑟的心意。他們前往約瑟家中時,心中充滿懼怕。於是走近管家,就袋中所歸還的銀子一事加以辯解,以為自己要被抓去問罪。管家卻回答說:
創 43:23 他說:「你們放心,不要懼怕。是你們的神,就是你們父親的神,賜給你們財寶在你們的口袋裡;你們的銀子,我早已收到了。」隨即把西緬帶出來,領到他們那裡。
是的,一位外邦的管家,向他們宣講「你們的神」。他們所未曾聽聞的,他們所未曾看見的,竟藉著一個外人的口說了出來。恩典早已進入他們的袋中,他們卻將其視為陷阱。
約瑟在正午來到,問候哥哥們是否平安,又問候父親的安康。然後他看見了便雅憫。接下來的經文,短短數語,卻份量沉重。
創 43:30 約瑟愛弟之情發動,急忙尋找可以哭泣的地方,就進入自己的屋裡哭泣。
約瑟走進內室,痛哭一場。然後洗臉出來,重新出現在眾人面前。約瑟心中是何等的激動感慨?是的,愛就在那裡。然而,那愛是隱藏的。哥哥們渾然不知——眼前所發生的一切,都是一場筵席的預備;西緬得以釋放,座位按年歲長幼而定,便雅憫所得的食物是旁人的五倍——這一切,都是從一雙愛的手中流淌而出,他們卻毫無所覺。
約瑟的哥哥們,就這樣在筵席的中央,心存懼怕。因為他們的手,曾經將弟弟拋入坑中,曾經以血染衣。那雙手,清楚知道自己該得什麼報應。所以,即便坐在筵席之中,也無法以筵席之樂享用這筵席。
這裡有一個令人心酸的真相。愛已在運行,恩典已入袋中,然而罪疚的眼睛,卻將恩典讀作陷阱,將磨煉讀作刑罰,將沉默讀作拒絕。因此,約瑟在內室所流下的那些眼淚,哥哥們始終不知,便這樣用完了這頓飯。最後一節記載,他們與約瑟同席飲酒、歡樂暢飲。是的,他們也同在那個場合。然而,那是一種不知道是誰在款待自己的歡樂。在那份炙熱愛情的淚水始終不曾被看見的情況下所享用的,不過是一場只得一半的筵席。
有時我不禁這樣想——我和群體的肢體們,是否也坐在神所擺設的筵席中央,卻無法以筵席之樂享用這筵席?是否將進入袋中的銀子讀作陷阱,帶著懼怕將食物嚥下?我們無法盡情享受神為我們運行的那雙手、反而存著懼怕,是因為我們自己知道我們是什麼樣的人。
昨天主日,我們群體一同分享了羅馬書第一至四章。是的,面對「所有人都在罪的權勢之下」這句話語,我們知道,我們的手與約瑟哥哥們的手並無二致。因此,若只看我們自己,縱然坐在筵席之位,或許也只有懼怕而已。然而,正是在那裡,福音響起了。我們憑自己的能力無法潔淨自己,但我們相信主耶穌的寶血已將我們洗淨——正是靠著這信心,我們如今能夠享用神所賜的禮物。
約瑟的哥哥們不知內室所流的那些眼淚,便用完了那頓飯。然而我們知道。正因我們知道為我們所流的寶血之愛,我們便能不以罪疚的眼睛,而以被寶血洗淨的眼睛,坐在那筵席之位。能夠將進入袋中的銀子,不讀作陷阱,而讀作禮物;能夠認出那炙熱愛情的淚水,歡然享用桌上的食物。
因此,我盼望管家的那句話,能成為我們群體這一週的力量:「你們放心,不要懼怕。是你們的神賜給你們的。」看自己,只有懼怕;但仰望那為我們所流的寶血,這句話便成為真實。
願我們的群體,在這一週,倚靠主的寶血,享用並分享神所賜的禮物——這是我的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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