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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창세기 44:1-17

    今日默想:創世記 44:1-17

    Kyoung Woo Han··조회 15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형들에게 행한 시험은, 요셉의 가정사를 이해해야 정확하게 보인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가 있었다. 그중에서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는 라헬이었고, 그녀에게서 낳은 두 아들이 요셉과 베냐민이다. 그런데 이 둘은 열두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와 막내였다. 그래서 야곱은 두 아들을 편애했고, 결국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넘기려 하여 요셉에게 관리자의 직책까지 맡겼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지 꿈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다. 아버지의 편애, 빼앗긴 장자권, 동생에게 넘어간 살림의 주도권 — 그 모든 것이 형들의 가슴에 쌓여 있었다.

    그래서 지금 요셉은 형들이 그때와 같은 마음을 여전히 품고 있는지를 시험한다. 라헬의 또 다른 아들 베냐민에게도 형들이 자신에게와 똑같은 적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몰래 넣게 한다. 이 시험의 핵심은 이것이다. 베냐민이 누명을 쓰고 종으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 형들이 속으로 "잘 되었다. 베냐민도 우리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제거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아버지의 재산은 우리의 것이다"라고 생각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형들은 20여 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형들은 변해 있었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되자 형들은 옷을 찢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함께 성으로 돌아갔다. 요셉 앞에 엎드린 형들을 대표하여 유다가 입을 연다.

    창 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유다는 잔을 훔치지 않았다. 그것은 누명이다. 그런데도 유다는 무죄를 주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 지금 이 잔에 관한 일이 아니라 20여 년 전 동생 요셉을 팔아넘긴 그 죄악이 마침내 드러나고 있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베냐민 한 사람만 남겨두고 떠나지 않는다. 베냐민과 함께 모두 종이 되겠다고 한다. 자신들의 자유, 자신들의 목숨을 베냐민을 위해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래, 회개란 이런 것이다. 입술로만 반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20여 년 전, 형들은 동생 하나를 은에 팔아넘기고도 아무 일 없는 듯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지금은 베냐민을 위해 자신들의 자유와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다. 같은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 가나안 땅의 흉년, 늙어가는 아버지 야곱의 모습,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보낸 긴 세월, 그리고 보이지 않게 일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을 것이다. 회개는 한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사람의 안에서 사람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자주 "회개했다"고 말한다. 그래, 그 고백 자체는 귀하다. 그런데 그 고백이 입술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 다음 날이 되면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솔직히 나도 그런 회개를 수없이 반복해 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회개라는 말이 내게도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회개를 보여준다. 형들이 보여준 회개는, 같은 상황이 다시 왔을 때 다른 선택을 하는 회개다. 동생을 팔던 사람들이 동생을 위해 종이 되겠다고 나서는 회개다. 그것이 진짜 회개이고, 그런 회개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일 것이다.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이 그런 회개의 자리로 함께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회개가 가능하도록 서로의 변화를 기다려주고 격려해 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 입술의 회개가 삶의 회개로 내려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함께 견뎌주고 함께 걸어가 주는 것 — 그것이 공동체가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망하길 오늘도 입술의 회개가 아니라 삶의 회개로 한 걸음 옮기며, 서로의 그 한 걸음을 기다려주는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中文 AI翻譯

    今日經文中,約瑟對兄長們所施行的試驗,唯有了解約瑟的家庭背景,才能真正看清其用意。

    雅各共有四位妻子。其中他最深愛的是拉結,而拉結為他所生的兩個兒子,便是約瑟與便雅憫。這兩人在十二個兒子中,分別排行第十一與最末。正因如此,雅各對這兩個兒子格外偏愛,甚至有意將全部產業傳給約瑟,並將管家的職責交付於他。這正是兄長們想要殺害約瑟的根本原因,絕非僅僅因為那些夢而已。父親的偏心、被奪走的長子名分、落入弟弟手中的家業主導權——這一切都深深積壓在兄長們的心中。

    因此,約瑟如今是要試驗兄長們是否仍懷著當年同樣的心。他想確認,對於拉結所生的另一個兒子便雅憫,兄長們是否也抱有與對待他相同的敵意。於是約瑟吩咐人將自己的銀杯悄悄放入便雅憫的口袋裡。這場試驗的核心在於:當便雅憫遭受冤屈、即將被帶走為奴時,兄長們心裡是否會暗想——「正好,這樣便雅憫也可以不用我們動手就除掉了,父親的產業從此歸我們所有。」若真如此,那這些兄長與二十多年前相比,絲毫沒有改變。

    然而,兄長們已經變了。當銀杯在便雅憫的口袋中被找到時,眾兄長撕裂了衣服,並且無一例外,所有人一同回到城中。在約瑟面前俯伏叩拜的眾兄長中,由猶大開口代表眾人說話。

    創 44:16 猶大說:「我們對我主說什麼呢?還有什麼話可說呢?我們怎能自明無辜呢?神已經查出僕人的罪孽了。我們和這杯被找到的人,都是我主的奴僕。」

    猶大並沒有偷那個杯子,這是一樁冤案。然而猶大並未主張自己無辜。「神已經查出僕人的罪孽了」——他所承認的,並非關於這只杯子的事,而是接受了二十多年前將弟弟約瑟賣掉的那個罪孽,如今終於被顯明出來。他沒有只留下便雅憫一人便轉身離去,而是表示要與便雅憫一同為奴。這是要將自己的自由、自己的性命,為便雅憫而獻上。

    是的,悔改就是這樣的。它不是僅憑嘴唇反省一番便了事,而是必須引導出生命的改變。

    二十多年前,兄長們將弟弟以銀子賣掉,卻若無其事地回了家。如今,他們卻願意為便雅憫獻出自己的自由與性命。令人幾乎難以相信這是同一群人。這中間究竟發生了什麼?大概是迦南地的饑荒、日漸衰老的父親雅各的身影、在恐懼與罪咎中度過的漫長歲月,以及在背後默默工作的神的手。悔改不會在一瞬間完成,而是在漫長的時間裡,在人的內心重新塑造一個人的過程。

    仔細想來,我們也常說「我悔改了」。是的,那樣的告白本身是珍貴的。然而那告白往往只停留在嘴唇上。到了第二天,依然在同樣的地方,以同樣的樣式生活下去。說實話,我自己也一次又一次地重複著這樣的悔改。所以從某個時刻起,「悔改」這個詞對我而言,有時也會感覺是輕飄飄的。

    然而,今日的經文向我們展示了截然不同的悔改。兄長們所顯明的悔改,是當同樣的處境再次來臨時,能做出不同選擇的悔改;是曾經出賣弟弟的人,如今願意為弟弟甘心為奴的悔改。那才是真正的悔改,也唯有那樣的悔改,才是神所渴望的悔改。

    我衷心盼望,我們肢體所組成的群體,能夠一同走向那樣悔改的地方。也盼望我們能成為一個彼此等候、彼此鼓勵對方改變的群體,使那樣的悔改得以成真。是的,嘴唇上的悔改要落實為生命中的悔改,是需要時間的。彼此陪伴撐過那段時間、一同走過那段路——我相信,這正是群體所當承擔的事。

    我殷切地禱告,願我們今天也能從嘴唇的悔改,踏出生命悔改的一步;願我們成為一個彼此等候那一步的群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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