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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창세기 44:18-34

    今日默想:創世記 44:18-34

    Kyoung Woo Han··조회 11

    요셉의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다. 형제들은 옷을 찢고 다시 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유다가 일어나 입을 열었다.

    유다의 호소는 길고 절절하다. 그런데 유다는 자신들의 무죄를 변호하지 않는다. 잔이 어떻게 베냐민의 자루에 들어갔는지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그가 풀어놓는 것은 오직 아버지의 마음이다. 라헬이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한 아들은 짐승에게 찢겼고 이제 막내 하나만 남았다는 것, 그래서 아버지의 생명과 그 아이의 생명이 서로 묶여 있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창 44: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래 한때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자고 제안했던 바로 그 유다다(37:26-27). 동생의 피를 돈으로 바꿨던 그가, 이제 자신을 종으로 내어주며 동생을 살리려 한다.

    그렇다면 유다는 어떻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는가?

    지난 번에 묵상한 창세기 38장에 잘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뜬금없이 유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 이야기를 보면 요셉을 판 직후 유다는 형제들을 떠난다(38:1).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고 세 아들을 낳지만,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 차례로 죽는다. 그는 며느리 다말에게 셋째 아들 셀라를 주기로 한 약속을 미룬다. 다말이 창녀로 변장해 그에게 임신하자, 유다는 그녀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명령한다. 그 순간 다말이 유다 자신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내놓는다. 자기 손으로 죽이려 한 여인이, 사실은 자기 자신의 죄를 폭로하고 있었다. 그때 유다는 입을 연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38:26).

    이것이 유다 인생의 깨어지는 순간이다. 동생을 팔 때 거리낌이 없었고, 며느리를 죽이려 할 때도 거리낌이 없었던 그가, 자기 손에 들려진 그 증거 앞에서 무너진다. 그가 발견한 것은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는 사실 정도가 아니다. 자기가 정죄하던 그 사람보다 자기가 더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자기가 옳다고 믿었던 모든 자리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회개란 바로 이 자리다. "내가 좀 부족했다"가 아니라 "내가 정죄하던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악하다"고 인정하는 자리... 그래 38장 없이는 44장이 없다. 진정한 회개 없이는 진정한 변화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다 한 사람의 깨어짐이 형제들 전체를 흔들었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잔이 발견되었을 때 형들은 자기 옷을 찢었다(44:13). 옛날의 그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찢어 짐승의 피에 적셨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자기 옷을 찢는다. 옛날의 그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한다고 시기하여 그를 팔아넘겼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아버지가 베냐민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그 베냐민을 잃을 수 없기에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상황이다. 아버지가 사랑하고 모든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다. 이처럼 한 사람이 깨어지자, 형제들이 함께 깨어졌다.

    사실 우리는 종종 공동체가 변하기를 바란다. 관계가 회복되기를, 분위기가 따뜻해지기를, 오래 묶인 매듭이 풀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변화는 누군가의 다말 사건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먼저 자기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 앞에 멈춰 서야 한다. "내가 정죄하던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악하다"고 입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이 깨어질 때, 비로소 다른 형제들의 옷도 찢어진다. 회개 없는 변화는 자신을 감추는 분장일 뿐이다. 사람들 앞에서 잠시 부드러워질 수는 있어도, 같은 자리에 다시 서면 똑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솔직히 고백하며 나도 종종 공동체가 먼저 변하기를 기다린다. 다른 사람의 회개를, 다른 사람의 사과를, 다른 사람의 깨어짐을 기다린다. 그러나 본문은 다른 길을 보여준다. 유다가 먼저 멈췄다. 유다가 먼저 자기를 폭로당했다. 유다가 먼저 "그가 나보다 옳도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형제들이 함께 새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변화는 늘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어쩌면 오늘 이 본문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내가 먼저 멈춰 서서 그 도장과 끈과 지팡이 앞에 정직하기를 구하며, 나의 회개가 우리 공동체의 옷을 함께 찢게 하시기를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約瑟的杯在便雅憫的口袋裡被找到了。兄弟們撕裂衣服,再次返回城中。就在那個當下,猶大站了出來,開口說話。

    猶大的懇求既長且深情切切。然而猶大並未為自己的清白辯護,也沒有追究那杯究竟是如何進入便雅憫口袋的。他所傾訴的,唯獨是父親的心。拉結生了兩個兒子,其中一個被野獸撕裂,如今只剩下最小的這一個;因此父親的性命與那孩子的性命緊緊相繫在一起。最終他這樣說道:

    創 44:33 現在求你讓我留下來替這孩子作我主的奴僕,叫那孩子和他的哥哥們一同回去。

    是的,這正是那個曾經提議將約瑟從坑裡拉出來、賣給以實瑪利人的猶大(37:26-27)。那個曾以弟弟的血換取金錢的人,如今甘願獻出自己為奴,只求弟弟得以存活。

    那麼,猶大究竟是如何能站在這個位置上的?

    在上次所默想的創世記第38章裡,出現了一段令人費解的故事——突如其來地記載了猶大的往事。從那段敘述可以看出,就在出賣約瑟之後不久,猶大便離開了兄弟們(38:1)。他娶了一位迦南女子為妻,生了三個兒子,然而長子與次子相繼去世。他拖延了將三子示拉許配給媳婦他瑪的承諾。當他瑪喬裝成妓女使他懷了孕,猶大便命令人將她拉出去燒死。就在那一刻,他瑪拿出了猶大自己的印章、繩子和手杖。那個他親手要置於死地的女人,實際上正在揭露他自己的罪。那時猶大開口說:「她比我更有義。」(38:26)

    這就是猶大生命中破碎的時刻。那個出賣弟弟時毫無愧疚、要燒死媳婦時也毫無愧疚的他,卻在自己手中所持的那些證物面前徹底崩潰了。他所發現的,不僅僅是自己有過失這件事,而是——自己竟比那個他所定罪的人更是罪人;他一向以為自己站在理字上的那一切,原來全是謊言。真正的悔改,正是這樣的時刻——不是「我有些不足」,而是承認「我比我所定罪的那個人更加邪惡」的那個當下……是的,沒有第38章,就沒有第44章。因為沒有真正的悔改,就沒有真正的改變。

    就這樣,猶大一個人的破碎,震動了所有的兄弟。當杯在便雅憫的口袋裡被找到時,哥哥們撕裂了自己的衣服(44:13)。昔日的他們,曾將約瑟的彩衣撕裂、蘸上野獸的血。然而如今,他們撕裂的是自己的衣服。昔日的他們,因嫉妒父親偏愛約瑟而將他賣掉;然而如今,他們知道父親疼愛便雅憫,正因無法失去便雅憫,便一同回到了埃及。從某種角度看,這是相似的處境——那個父親所鍾愛、且可能繼承一切的兒子陷入了危機。然而結果卻截然相反。正是如此,當一個人破碎了,兄弟們也一同破碎了。

    事實上,我們常常盼望群體能夠改變。盼望關係得到修復,盼望氛圍變得溫暖,盼望久結的死結得以鬆開。然而,那樣的改變若沒有某人的「他瑪事件」,就不會發生。必須有人先在自己的印章、繩子和手杖面前停下腳步;必須有人先開口說:「我比我所定罪的那個人更加邪惡。」當一個人如此破碎,其他弟兄的衣服才能隨之撕裂。沒有悔改的改變,不過是掩飾自我的偽裝。或許能在眾人面前短暫地溫和一時,但一旦再次置身相同的處境,只會重複相同的選擇而已。

    坦白說,我也常常等待群體先改變。等待別人悔改,等待別人道歉,等待別人破碎。然而,本段經文向我們指示了另一條路。猶大先停下來了。猶大先被揭露了。猶大先說出了「她比我更有義」。正因如此,兄弟們才能一同站在了新的位置上。改變總是從一個人開始。而那一個人,或許正是今天讀著這段經文的我自己。

    今天,我也求自己先停下腳步,在那印章、繩子和手杖面前誠實面對;願我的悔改,使我們群體的衣服也一同得以撕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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