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묵상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함께 나눕니다
今日默想:創世記 27:30-46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훔치고 방을 나간 바로 그때,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온다. 그제서야 이삭은 자기가 속은 것을 알고 심히 크게 떤다. 여기서 ‘떨다’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의미는 단순히 놀란 수준이 아니다. 온몸이 경련하듯 흔들리는 충격,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떨림이다. 그런데 이 비극의 뿌리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부모에게서다. 이삭은 에서를 편애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다(창 25
今日默想:創世記 27:15-29
리브가가 야곱에게 에서의 옷을 입히고,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에 꾸미는 장면을 읽으면 마음이 무겁다. 창 27: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엄마가 아들에게 다른 사람의 옷을 입힌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가죽을 덧씌운다. 복을 받게 하려고. 그런데 그 복은 이미 야곱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찍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큰 자가 어린
今日默想:創世記 26:12-33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며 농사를 지었더니 백 배의 결실을 얻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주변이 시끄러워진다.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마다 흙으로 메워버린다. 결국 왕이 직접 나서서 떠나라고 한다. 떠나서 다시 우물을 판다. 또 빼앗긴다. 또 판다. 또 다툰다. '에섹'(다툼), '싯나'(대적함). 우물 이름이 곧 그 자리에서 겪은 일의
今日默想:創世記 24:1-27
아브라함은 늙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 직접 나설 수는 없고, 늙은 종을 불러 아내를 데리고 오라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를 단호하게 못 박는다. "가나안 여자는 안 된다. 반드시 내 고향, 내 족속에게서 데려와라." 이게 고집인가, 신앙인가? 둘 다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삭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今日默想:創世記 23:1-20
사라가 127세에 죽었다. 성경에서 여자의 죽은 나이를 기록한 것은 사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경이 그녀의 죽음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운다. 창 23:2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소리 내어 울었다. 히브리어로 '스포드(סָפַד)', 그리고 '바카(בָּכָה)'. 울부짖음과 눈물. 둘 다다. 믿음의 조상이, 체면
耶和華以勒 — 神看顧
본문 : 창세기 22:1-24 제목 : 여호와 이레 — 하나님이 보신다 '여호와 이레(יְהוָה יִרְאֶה).'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이 이름이 붙은 곳이 바로 모리아 산이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려 했던 그 자리. 그리고 숫양이 덤불에 걸려 있던 그 자리. 솔직히 나는 이 장면에서 숫양보다 타이밍이 더 놀랍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막으시는 그 순간, 숫양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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