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3:10-15
今日默想:哥林多前書 3:10-15
고린도 교회는 지금 갈라져 있었다. '나는 바울 편, '나는 아볼로 편' 하면서 누가 더 훌륭한 지도자냐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3장 내내 붙들고 있는 질문은 사실 이것이다. '교회에서 바울이 뭐고 아볼로가 뭔데?' 바울의 대답은 단순하다. 우리는 그냥 일꾼이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3:6). 심는 자도 물 주는 자도 아무것도 아니다(3:7). 교회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이 본문은 교회의 다툼을 책망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지도자들에게도 메시지를 준다. 사역의 열매가 크다고 교만할 것도, 초라하다고 낙심할 것도 없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까.
그래서 바울은 비유를 하나 더 얹는다. 너희, 곧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건물)"이라고(3:9). 이 한마디를 붙잡아야 한다. 지어지는 건물은 성도들, 곧 교회 자신이라는 것이다.
결국 건축 비유에서 '집을 짓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래 본문의 강조점은 성도 한 사람이 자기 인생 점수를 쌓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교회를 세우는 일꾼들 — 터를 놓은 바울, 그 위에 세우는 또 다른 일꾼들 이야기다. 바울은 자신이 지혜로운 건축자처럼 터를 닦았고 이제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운다고 하면서, 한마디를 꼭 붙인다. "각자 그 위에 어떻게 세울지 조심하라"(3:10). 그런데 그 무엇을 세우든, 터는 딱 하나뿐이다. 그 반석을 벗어나선 안된다.
고전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어떤 사역도, 어떤 가르침도 이 터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 터 위에 일꾼들은 저마다 다른 재료로 짓는다. 어떤 이는 금·은·보석으로 짓는 사람이 있고, 나무·풀·짚으로 짓는 사람이 있다(3:12). 본문이 "금은 이것이고 짚은 저것이다"라고 일일이 풀어 주진 않는다. 핵심은 재료의 성질이다. 불이 닥치면 어떤 건 견디고 어떤 건 타 버린다.
1-2장을 떠올리면 짐작이 간다. 바울은 줄곧 '사람의 지혜와 그럴듯한 말솜씨'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대조해 왔다. 내가 돋보이려고, 사람 보기 좋으라고 쌓은 것은 불 앞에서 짚처럼 타겠지만,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 위에 세운 것은 금처럼 남는다. 그 검증이 일어나는 때가 '그 날'(3:13), 곧 주님의 최종 점검의 날이고, 가려내는 도구가 불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금·은·보석 / 나무·풀·짚은 사람이 아니라 일꾼이 그 터 위에 쌓은 것의 성질이다. 칼빈을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은 이 재료를 대체로 '그 교회 위에 세운 가르침·교리'라고 말한다. 결국 불에 타는 건 부실한 사역·헛된 가르침이지, 성도의 영혼이 아니다.
그렇기에 마지막은 나에게 위로이자 경고다. 부실하게 지은 일꾼이라도...
고전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그래 일꾼의 부족함에도 사람은 산다. 구원은 일꾼의 솜씨가 아니라 그 터,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달렸으니까.
오늘 이 본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최종 점검의 날을 미리 당겨, 내가 쌓아 온 것을 불 앞에 한번 비춰 보는 날이다. 지난 한 주 준비한 설교 한 편, 다녀온 심방 한 번, 건넨 위로의 말 한마디. 이게 금인가, 짚인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때로는 사람들 눈에 그럴듯해 보이려고 짚에 금칠을 해 둔 적은 없었나...
그런데 이 두려움 끝에서, 오히려 나에겐 감사가 올라온다. 내가 부족한 사역을 했어도,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집을 세웠으니 — 내 공로는 불에 타 없어져도 성도들은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항상 죄송한 마음으로 공동체를 대한다. 내가 부족해서 우리 지체들을 잘 못 도우면 어떻게 하나... 그런데 본문이 답해 준다. 저들의 구원은 내 솜씨가 아니라 그 반석에 달려 있다고...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그래서 은혜가 고마워 그 날 한 줌이라도 남을 것을 기쁨으로 세우고 싶다. 오늘도 그 마음으로 다시 부르심 앞에 서야겠다.
哥林多教會當時正處於分裂之中。「我是保羅一派」、「我是亞波羅一派」——會眾為了誰是更優秀的領袖而爭論不休。因此,保羅在第三章中自始至終所緊扣的問題,其實只有一個:「在教會裡,保羅算什麼?亞波羅又算什麼?」 保羅的回答十分簡單。我們不過是僕人。我栽種,亞波羅澆灌,但叫它生長的是神(3:6)。栽種的算不得什麼,澆灌的也算不得什麼(3:7)。教會的主人,正是神。
因此,這段經文雖然責備了教會中的紛爭,卻也從另一個角度向領袖們傳遞了一個信息。事工的果效豐碩,不必驕傲;果效微薄,也不必灰心。因為叫人生長的,是神。
於是保羅又加上一個比喻。你們——也就是教會——是「神的田地,神的建築」(3:9)。這句話必須牢牢抓住。被建造的那棟建築,正是聖徒們,也就是教會自身。
那麼,在建築的比喻中,「蓋房子的人」究竟是誰?是的,這段經文的重點,並非在說某個聖徒為自己的人生累積功績。而是在談建造那間教會的工人——奠定根基的保羅,以及在其上繼續建造的其他工人。保羅說,自己像一位智慧的建築師立好了根基,如今由別人在上面建造,同時他特別叮囑一句:「各人要謹慎怎樣在上面建造」(3:10)。然而,無論建造什麼,根基只有一個,絕不能偏離那磐石。
林前 3:11 因為那已經立好的根基就是耶穌基督,此外沒有人能立別的根基。
任何事工、任何教導,都只有建立在這根基之上才有意義。然而在這根基之上,工人們各自用不同的材料建造。有人用金、銀、寶石來建造,也有人用木、草、禾秸來建造(3:12)。經文並未一一說明「金是指這個,禾秸是指那個」,核心在於材料的性質。火來的時候,有些經得住,有些則被燒毀。
回想第一、二章,便能有所領會。保羅一直在對比「人的智慧與動聽的言辭」和「被釘十字架的基督」。那些為了讓自己顯得出眾、為了討人喜悅而堆砌的東西,在火前將如禾秸燃盡;然而,默默地以神的話語建造在基督之上的,卻如金子般長存。這試驗發生的時刻,就是「那日」(3:13)——主最終查驗的日子,而試煉的工具,就是火。這裡有一點必須記住:金、銀、寶石,木、草、禾秸,指的不是人,而是工人建造在根基之上的那些東西的性質。加爾文及許多神學家,大多將這些材料理解為「建立在那教會之上的教導與教義」。最終,被火燒毀的,是粗劣的事工與虛空的教導,而不是聖徒的靈魂。
因此,結尾對我而言,既是安慰,也是警醒。即便是建造得不夠紮實的工人……
林前 3:15 人的工程若被燒了,他就要受虧損,自己卻要得救;雖然得救,乃像從火裡經過的一樣。
是的,縱然工人有所不足,人仍然得以存活。救恩所繫的,不是工人的技藝,而是那根基——磐石基督。
今天這段經文,讓我回顧的不是別人,正是我自己。所以今天,我要提前預演那最終查驗的日子,把自己所建造的,在火光前照一照。過去一週備好的一篇講道,探訪過的一位弟兄姊妹,遞出的一句安慰的話。這是金子,還是禾秸?說實話,我沒有把握。有時候,是否曾為了讓人看起來體面,而在禾秸上鍍了一層金……
然而,在這份恐懼走到盡頭時,我心中升起的,竟是感恩。即便我所做的事工有所欠缺,因為房子是建在基督這磐石之上——縱然我的功勞被火燒盡,聖徒們仍然得救。我常常帶著抱歉的心面對群體。若因我的不足而無法好好幫助肢體,該怎麼辦……然而經文回答了我:他們的救恩,不在於我的技藝,而在於那磐石。感謝,真的感謝。正因為這恩典令我感激,我願以喜樂的心,建造那在那日能留下哪怕一捧的東西。今天,也要帶著這樣的心,再次站立在呼召面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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