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1:18-31
今日默想:哥林多前書 1:18-31
어제 묵상한 본문에서 본 것처럼, 고린도 교회에는 분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쟁은 무슨 큰 도덕적 타락 때문이 아니었다. 교인들이 편을 갈라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하며 서로 다툰 것이다. 왜 그랬을까? 고린도라는 도시가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 멋지게 연설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출세하던 도시였다. 누가 더 유식하게 말하느냐로 사람의 등급을 매겼다. 그런데 교인들이 그 잣대를 그대로 교회 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그래서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가 더 '수준 있어' 보이는 것을 은근히 자랑했다. 결국 분쟁의 뿌리는, 사람의 지혜와 똑똑함을 자랑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사람들에게, 바울은 이처럼 똑똑함과 능력으로 서로 줄을 세우던 그들 앞에,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들이민다. 바로 십자가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을 구원자라고 믿는다니, 세상의 눈에는 그야말로 바보 같은 소리다. 그러나 바로 그 어리석어 보이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실 때도 똑같이 하셨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왜 그러셨을까?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내 똑똑함, 내 능력, 내 자격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로 모인다.
고전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그래 오늘 본문은 주 안에서만 자랑하라고 한다. 이것은 세상의 자랑인 지혜, 힘, 부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 아는 것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을 자랑하라는 예레미야의 말씀(렘 9:23,24)을 인용한 것이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는 더 분명하게,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까지 한다(갈 6:14). 즉 세상을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을 적용해서 교회에서 세상의 직위를 자랑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교회 안에서 '사장', '교수', '이사', '의사', '변호사' 같은 세상 직함으로 부르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호칭을 모두 교회의 직분으로 바꾼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형제, 자매님... 그런데 어느 순간, 바로 그 직분이 또 하나의 자랑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계급이 되었다. 세상의 것을 자랑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교회의 직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직분 자체가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장로도 권사도, 본래 군림하라고 준 자리가 아니라 섬기라고 주신 자리다. 잘못된 것은 그 섬김의 자리를 어느새 자랑거리로, 계급으로 바꾸어 버린 마음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품기 쉬운 사람이 바로 목사인 나다.
그래 그렇다면 주 안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다. 그럼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자주 이것을 선교, 전도로만 이해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셨고,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 그러니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결국 낮아짐이다. 섬김이다. 희생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우리 공동체 안에서 낮아져 있는가? 나는 섬기고 있는가? 희생하고 있는가? 혹시 '목사'라는 그 직분마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오늘도 내 직분을 자랑거리로 삼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한 걸음 더 낮은 자리에서 섬기고 희생하며 공동체 앞에 나아가는 하루가 한 주가 되길 소망한다.
正如我們昨天默想的經文所見,哥林多教會存在著紛爭。然而,那紛爭並非源於什麼重大的道德敗壞,而是會眾各立山頭,彼此爭論:「我是屬保羅的」、「我是屬亞波羅的」、「我是屬磯法的」。為何會如此?因為哥林多這座城市,本就是這樣的地方。能言善道、才智出眾、辯才無礙之人,在那裡備受禮遇、飛黃騰達。人的地位高下,是以言辭是否博學多聞來衡量的。而會眾便將這套標準,原封不動地帶進了教會。於是,他們暗自炫耀自己所跟隨的領袖更有「水準」。歸根究柢,紛爭的根源,不過是一顆誇耀人的智慧與聰明的心。
就是對著這樣一群人——這群以聰明才智互相較量、彼此排名的人——保羅將世人眼中最愚拙的事物擺在他們面前。那就是十字架。
林前 1:18 因為十字架的道理,在那滅亡的人為愚拙;在我們得救的人,卻為神的大能。
相信一個被釘死在十字架上的人是救主,在世人看來,簡直是荒謬至極的話。然而,恰恰是在那看似愚拙之處,有著神的大能。而神在呼召人的時候,也是同樣的方式。
林前 1:27 神卻揀選了世上愚拙的,叫有智慧的羞愧;又揀選了世上軟弱的,叫那強壯的羞愧。
為何如此?是要使任何人在神面前都無從誇口。因為我們得救,並非憑藉自己的聰明、能力或資格。因此,結論歸於一處:
林前 1:31 如經上所記:「誇口的,當指著主誇口。」
是的,今天的經文告訴我們,只當在主裡誇口。這引用了耶利米的話(耶 9:23-24)——不要誇耀世上的智慧、力量與財富,而要誇耀認識神、並明白神所喜悅之事。保羅在其他書信中說得更加直接:除了十字架之外,他別無可誇之事(加 6:14)。換言之,就是不要誇耀世界。
因此,我們將這段經文應用於實際,教導會眾不要在教會中炫耀世俗的頭銜。有時甚至告誡人,在教會裡不要以「總裁」、「教授」、「董事」、「醫師」、「律師」這類世俗稱謂相稱。於是,所有稱呼一律改為教會的職分:牧師、長老、勸慰師、執事、弟兄、姊妹……然而,不知從何時起,那些職分本身,又成了另一種誇耀。它變成了階級。當世俗的事物無從誇耀之時,人們開始誇耀教會的職分。若是如此,這同樣是錯的。
當然,這並不是說職分本身有什麼問題。長老也好,勸慰師也好,這些職位從一開始就不是為了管轄人而設,而是為了服事人而賜。錯的,是那顆不知不覺將服事之位變為誇耀之資、化為階級的心。說句心裡話,最容易在眾人之先懷有這種心思的,正是身為牧師的我自己。
那麼,在主裡誇口,究竟是什麼意思?就是誇耀十字架。那誇耀十字架,又是什麼意思?我們常常只將它理解為宣教與傳福音。然而,耶穌說:你們中間誰為大,誰就要作你們的用人;人子來,不是要受人的服事,乃是要服事人。因此,誇耀十字架,說到底就是降卑,就是服事,就是犧牲。因為十字架,正是那至高者俯就最低之處的事件。
那麼,我是否真的在我們的群體中降卑了自己?我在服事嗎?我在犧牲嗎?那「牧師」的職分,是否在不知不覺間,也已成了我另一種誇耀的資本?願今天、這一週,我能放下那想以職分誇口的心,再俯低一步,在群體面前以服事與犧牲向前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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