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목록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창세기 47:27 - 48:7

    今日默想:創世記 47:27 - 48:7

    Kyoung Woo Han··조회 15

    야곱은 평생 자기 힘과 머리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고, 장자권을 흥정으로 사들였고,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챘고, 외삼촌 라반과는 이십 년간 머리싸움을 벌였다. 그래, 야곱의 인생은 계략과 노력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바로 앞에서 자기 인생을 험악한 세월이라 이야기했다(창 47:9). 그런 그가 임종의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성경은 그의 마지막 자리를 이렇게 기록한다.

    창 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자기 손으로 살아온 사람이 마침내 낯선 땅에서 풍성함을 누린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 말은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가장 먼저 주신 복이자 명령이었다(창 1:28). 그 복은 노아에게 다시 주어졌고,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 흘러왔다. 그리고 일찍이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도망자 야곱에게 친히 그 창조의 말씀을 얹어 주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창 35:11). 그러니까 야곱이 애굽에서 누린 그 번성은, 야곱이 머리를 굴려 얻어낸 사유 재산이 아니었다. 태초부터 흘러온 창조의 복이 마침내 한 사람의 인생 위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47:27의 그 한 줄은 단순한 삶의 풍성함을 이야기하는 보고가 아니다. 그것은 야곱이 따낸 트로피가 아니라, 전능자가 은혜로 그의 인생에 씌워 주신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그래 인생의 면류관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쟁취한 무엇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이 그분의 복을 내 삶에 이루어 오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 말이다.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야곱도 그 모든 것의 근원을 안다. 그는 요셉을 불러 자기 인생을 관통해 온 한 분을 고백한다.

    창 48:3-4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곧 '엘 샤다이'다. 야곱이 도망치던 그 벧엘(루스)에서, 하나님은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있어 지키겠다"고 약속하셨다(창 28:15). 야곱은 그 약속을 까맣게 잊은 듯 자기 수단으로 살아갔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야곱의 자기중심적인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여 동행하고 계셨다. 그렇기에 야곱이 이룬 줄로만 알았던 번성도, 실은 그 동행의 열매였다.

    그 동행이 어떤 성격이었는지는, 야곱이 요셉에게 남긴 부탁에서 드러난다. 그는 "인애와 성실함으로" 행하라고 청한다(창 47:29). 이 '인애와 성실'은 히브리어로 '헤세드 베에메트'이며, 출애굽기 34:6에서 하나님이 자기 성품을 드러내실 때 쓰신 바로 그 언약적 표현이다. 야곱을 평생 붙드신 것은 야곱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인 그 인애와 성실이었다.

    야곱은 임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것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자기 인생을 관통해 온 분이 누구신지를. 자기가 이룬 줄로만 알았던 번성조차, 태초부터 흘러온 창조의 복이자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나라고 야곱과 다를 바 없다. 항상 스스로 내 계획을 세우고, 내 머리를 굴리고, 내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살아왔다고 여긴 날들이 많다. 잘 풀린 일은 내 수고의 열매라 여겼고, 막힌 일 앞에서는 내 부족함을 탓하며 조바심을 냈다. 그러나 멀찍이 물러서서 보니, 내가 이룬 줄 알았던 것들은 실은 태초부터 나를 향해 흘러온 그분의 복이었다. 그 모든 길 위에 나보다 앞서 걸으신 분이 계셨다.

    나의 인생에도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셨다. 모든 길에 동행하여 주셨다. 그래 지금껏 이룬 것 어느 것 하나 내 스스로 이룬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다. 내가 그분을 잊고 살던 순간에도, 그분은 단 한 번도 나를 잊지 않으셨다. 그러니 이제 와 무엇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내 삶에 면류관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전능자가 은혜로 씌워 주신 것이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 부르던 그분이, 어느새 내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겸손하게 내 모든 길에 동행하신 그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애와 성실을 의지하여 섬기며 나아간다.

    中文 AI翻譯

    雅各是一個靠著自己的力量與謀算度過一生的人。他出生時抓住哥哥的腳跟,用交易買來了長子的名分,欺騙父親奪取了祝福,又與舅舅拉班明爭暗鬥了二十年。是的,雅各的一生就是算計與掙扎的不斷循環。也許正因如此,他在法老面前說自己的歲月是艱難困苦的(創 47:9)。就是這樣的他,如今躺臥在臨終之榻。然而聖經卻這樣記錄他生命的最後篇章:

    創 47:27 以色列人住在埃及的歌珊地,他們在那裡置了產業,並且生育甚多,大大興旺。

    這個靠自己雙手闖蕩一生的人,終於在異鄉的土地上享受了豐盛。「生育興旺」——這句話是太初神創造人類之後最先賜下的祝福與命令(創 1:28)。這祝福再次賜給了挪亞,又流經亞伯拉罕與以撒,代代相傳。早在伯特利,全能的神便親自將那創造之言覆蓋在逃亡者雅各的身上:「我是全能的神,你要生育眾多」(創 35:11)。因此,雅各在埃及所享受的興旺,並非他費盡心機所獲取的私人財富,而是從太初便一路流淌而來的創造之福,終於在一個人的生命中得以成就。

    正因如此,47:27 那短短一行,絕不只是一份關於生活豐盛的平淡記述。那並非雅各自己奪取的獎盃,而是全能者以恩典為他加冕的冠冕。若說人生有冠冕,恐怕正是如此——不是我自己爭取來的什麼,而是在不知不覺之間,神已將祂的祝福成就在我生命中的這一份告白。

    死期將近之時,雅各也終於明白了這一切的根源。他呼喚約瑟,向他訴說那位貫穿自己一生的那一位:

    創 48:3-4 雅各對約瑟說:「全能的神曾在迦南地路斯向我顯現,賜福給我,4 對我說:『我必使你生育眾多,成為多民的父;我要把這地賜給你的後裔,永遠為業。』」

    「全能的神」,即「El Shaddai」。在那個雅各逃亡時所到的伯特利(路斯),神應許說:「你無論往哪裡去,我必保佑你」(創 28:15)。雅各彷彿將這應許忘得一乾二淨,繼續憑著自己的手段過活;然而全能的神,卻從頭到尾貫穿了雅各那以自我為中心的一生,一路與他同行。因此,雅各以為是自己成就的那些興旺,其實正是同行之果。

    這份同行究竟是何等性格,從雅各向約瑟所託付的話語中便可窺見。他懇求約瑟以「慈愛和誠實」對他而行(創 47:29)。這「慈愛與誠實」,在希伯來文中即「hesed ve'emet」,正是出埃及記 34:6 中神彰顯自己性情時所用的那個立約之語。雅各一生得以被托住,憑藉的不是雅各的資格,而是神的性情——那慈愛與誠實。

    雅各直到臨終,才終於看見了這一切。他終於告白:貫穿自己一生的是哪一位;那些以為是自己成就的興旺,原來是從太初便流淌而來的創造之福,也是全能的神信實的明證。

    我常常說,我與雅各並無二致。有太多的日子,我以為是自己擬定計畫、自己費盡心思、靠著自己的力量一步一步走過來的。順遂的事,以為是自己努力的果實;碰壁的時候,便責怪自己的不足,心中焦慮不安。然而,當我退後幾步遠望,那些我以為是自己成就的,其實是祂從太初便向我流淌而來的祝福。在那每一條路上,都有一位走在我前頭的那一位。

    在我的人生中,那全能的神也與我同在。在每一條路上與我同行。所以,至今所成就的,沒有一樣是我自己成就的。一切都是主的恩典。就在我忘記祂而活的那些時刻,祂也從未有過片刻忘記我。既然如此,如今我還能誇耀什麼?我生命中若有冠冕,那不是我爭取來的,而是全能者以恩典為我加上的。因為那位曾被我稱為「父親的神」的那一位,不知何時,已成為我的神。

    因此,今天我仍要以謙卑的心,倚靠那全能的神——那位在我所有道路上與我同行之神——的慈愛與誠實,服事祂,繼續前行。

    댓글 / 留言 (0)

    로딩 중...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留言需要先登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