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창세기 49:16-28
今日默想:創世記 49:16-28
오늘 본문은 야곱의 축복의 후반부이다. 그래 야곱은 한 아들 한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그는 평생 쌓아온 모든 말을 끌어모았다. 단에게는 재판하는 자의 자리를, 갓에게는 전쟁에서 도리어 적을 추격할 부르심을, 아셀에게는 기름진 땅의 풍요를, 납달리에게는 자유로운 발의 민첩함을, 그리고 요셉에게는 가장 길고 가장 풍성한 복을 선언했다.
그런데 단에 관한 축복을 마치자마자, 야곱의 입에서 갑자기 다른 말이 흘러나온다.
창 49: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이 한 줄은 전체적 축복의 흐름을 깨뜨린다. 축복의 행렬이 멈추고, 노년의 아비가 무릎을 꿇는 듯하다. 왜였을까. 많은 신학적 주석들이 있지만, 한 신학자의 고백에서 힌트를 얻는다. 야곱은 망대에 선 사람처럼 자기 후손들의 앞날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폭풍처럼 몰아칠 환난들, 격렬한 싸움들, 죽음의 위험들. 그는 그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한 아비로서, 그는 그 광경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아무리 좋은 말을 골라 자녀의 앞날을 축복해도, 그 말만으로는 아들들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자기 자녀의 구원의 저자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축복을 멈추고, 자신이 줄 수 없는 그것 — 하나님의 구원 — 을 향해 부르짖었다.
이것이 부모의 기도다.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마음, 그러나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아는 마음. 그 사이의 통렬한 자각에서 이 한 줄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 야곱의 마음을 안다. 태현이와 서현이의 앞날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을 절감한다. 좋은 말을 해주고 싶고, 길을 알려주고 싶고, 위험을 막아주고 싶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말로 그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다. 그들이 마주할 수많은 시험들, 흔들릴 순간들, 무너질지 모르는 자리들... 그 모든 것 앞에서 나 역시 그저 두려운 부모일 뿐이다. 아마 많은 부모들이 같은 마음으로 자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야곱처럼 멈출 수 밖에 없다. 내 축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줄 수 없는 그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우리 자녀들의 앞날에 임할 그 구원을 나는 기다리며, 내 손이 닿지 않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손이 임하시기를 간구한다.
今天的經文是雅各祝福的後半段。雅各想將一生所積累的一切話語,傾盡給每一個兒子,將最美好的祝福賜予他們。他宣告但將坐審判者的席位,迦得將在爭戰中反追敵人,亞設將享受肥沃土地的豐盛,拿弗他利將擁有自由奔馳的矯健,而對約瑟,他則傾訴了最長、最豐盛的祝福。
然而,就在說完對但的祝福之後,雅各的口中突然流淌出另一句話。
創 49:18 耶和華啊,我等待你的救恩!
這短短一句,打破了整段祝福的流暢節奏。祝福的行列戛然而止,彷彿這位年邁的父親就此屈膝跪下。這是為何?雖有許多神學注釋,但從一位神學家的感悟中,我得到了一絲提示。雅各彷彿站在望樓之上,俯望著後代子孫的前路——如暴風般席捲而來的患難、激烈的爭戰、死亡的威脅。他一一看見了這一切,而身為父親,他無法承受眼前的景象。
是的,他明白了——無論自己如何字斟句酌、為兒女的前路祈福,這些話語本身並不能保守他的兒子們。他無法成為自己兒女救恩的作者。於是他停下了祝福,向那唯有神才能賜下的——神的救恩——發出呼求。
這,就是父母的禱告。渴望將最美好的一切給予兒女,卻深知自己所能給予的終有限度。正是在這痛徹的自覺之間,這短短一句禱告,就此流淌而出。
我深深明白雅各的心。每當想起泰賢和瑞賢的前路,我便深深感受到,自己能給予他們的實在太少。我想對他們說好話,想為他們指引方向,想為他們遮擋危險。然而說實話,無論我說多少美好的話,也無法以這些話語承擔他們的人生。他們將面對的無數試煉、將被動搖的時刻、或許會崩潰的處境……在這一切面前,我也不過是一位滿心惶恐的父親。相信許多父母,也都懷著同樣的心情,凝望著兒女離去的背影。
所以我也只能像雅各一樣,停下來。承認單憑我的祝福並不足夠,為那我所無法給予的,獻上禱告。「耶和華啊,我等待你的救恩。」我等待那將要臨到我們兒女前路的救恩,懇求神的手,降臨在我的手所觸及不到的地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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