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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16:1-12

    今日默想:哥林多前書 16:1-12

    Kyoung Woo Han··조회 59

    제목 : 주의 일들

    바울은 15장 내내 죽은 자의 부활을 변증하고, 그 절정에서 이렇게 외쳤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런데 바로 다음 16장에 헌금과 선교여행 일정과 사람과의 관계 이야기를 다룬다. 마치 부활 강해의 웅장함에 여운을 두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래, 그래서 조금은 아쉬워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바울의 신학이다. 그가 말한 '주의 일'이 16장에서 그대로 우리가 일상에서 해야 하는 일로 반복된다. 부활은 추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즉 부활을 믿는 신앙은 구름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재정과 매일의 일정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가장 평범한 자리로 내려온다.

    바울은 먼저 헌금을 다룬다. 바울이 거두려는 이 연보는 보통 헌금이 아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이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신자들은 가난했다. 기근을 겪었고, 공동체가 핍박 가운데 재산을 나누다 궁핍해졌다. 그런데 그들은 멀리 있었다. 그렇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세운 이방인 교회들(갈라디아, 마게도냐, 고린도 등)을 돌며 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모았다. 이 헌금은 단순한 구제가 아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물질로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예배에서 한 몸인 교회가 살림에서도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헌금의 액수를 정해주지 않고 강권하지도 않는다.

    고전 16: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수입에 따라' 바울은 형통한 만큼, 각자 받은 복의 분량대로 헌금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매주 첫날에', 즉 교회 공동체가 모였을 때에 미리 헌금을 하라고 한다. 이는 바울이 도착했을 때 강권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자율적으로 헌금을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헌금은 어떤 압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자기 소유를 움켜쥐지 않는다. 죽음 너머의 소망을 가진 사람에게 돈은 더 이상 최후의 보루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형통한 만큼 기쁘게 떼어, 멀리 있는 얼굴 모르는 지체를 위해 보낸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사람의 경제적 태도이다.

    그리고 바울은 다음엔 선교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바울은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로 가겠다고, 어쩌면 겨울을 함께 나겠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그 계획에 단서 하나를 붙인다.

    고전 16: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주께서 허락하시면.' 바울은 일정을 아주 구체적으로 짜면서도, 그 일정을 자기 손에 꽉 쥐지 않는다. 계획의 구체성과 그 계획에 대한 초연함이 한 문장 안에 공존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머무는 에베소에 더 남기로 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고전 16: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여기서 '문이 열렸다'는 것은 바울이 지금 머무는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문, 곧 전도의 기회가 활짝 열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대적하는 자도 많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반대가 거센 곳을 피해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대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복음이 그 도시를 실제로 흔들고 있다는 증거였기에, 그는 떠나기는커녕 그 자리를 지킨다. 실제로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하자 우상 장사가 타격을 입은 은장색들이 들고일어났다(행 19장). 이런 격렬한 반대야말로 복음이 그 도시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바울은 떠날 이유가 충분한 그 자리에, 열린 문을 보고 머문다. 이것이 '주께서 허락하시면'의 자세이다.

    바울은 본문에서 마지막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다룬다. 바울은 젊은 동역자 디모데가 고린도에 가거든 그를 잘 대하라고 당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고전 16: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디모데는 젊었다. 그리고 그가 바울을 대신해서 가야 할 고린도 교회는 변론과 지식을 자랑하던 교회였다. 그래서 바울은 이 똑똑한 교회가 연소한 디모데를 주눅 들게 하거나 우습게 볼까 염려한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아무도 그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디모데가 '주의 일을 바울과 같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직분의 무게는 사람의 나이나 위세에서 오지 않는다. 그가 감당하는 일의 주인이 누구인가에서 온다.

    또한 바울은 아볼로를 이야기 한다. 사실 고린도 교회는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하며 분파로 갈라져 사역자들을 경쟁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바울은 아볼로를 이렇게 부른다.

    고전 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바울은 아볼로를 '형제'라 부른다. 더 나아가 그에게 고린도로 가서 그 교회를 섬기라고 여러 번 권하기까지 했다. 서로가 경쟁자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를 추종하는 무리가 있는 교회에, 라이벌로 세워진 사람을 직접 보내려 한 것이다. 그런데 아볼로는 지금은 가지 않겠다고 한다. 본문은 그 이유를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다만 짐작할 수 있다. 자기 이름을 내세운 분파 싸움이 한창인 그곳에 지금 자기가 가면 그 분열을 더 부추길 뿐임을 아볼로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강권해도 아볼로는 스스로 판단하여 때를 미룬다. 한쪽은 형제를 보내려 하고 다른 쪽은 형제를 위해 물러선다. 이것이 경쟁 없는 동료됨이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로 시작된 이 편지가, 바울이 아볼로를 형제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던 중에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한마디가 자꾸 마음에 남는다. 바울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로, 겨울나기까지, 그의 일정은 놀랍도록 구체적이다. 그런데 그 치밀한 계획 위에 그는 늘 한 줄의 여백을 남겨 둔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솔직히 나는 그 여백이 어렵다. 목회를 하다 보면 수많은 결정 앞에 선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내 생각과 내 판단이 앞선다. 이게 최선이라고 스스로 확신하며 밀고 나가다가, 문득 두려워진다. 이 결정이 정말 주님의 뜻일까, 아니면 그저 내 조급함은 아닐까... 그래서 오늘 다시 기도한다. 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인 부지런히 계획은 하되, 사역을 준비하는 모든 자리에서 내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먼저 구하게 해 달라고... 나와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이 사람의 지혜에 기대어 그릇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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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題目:主的事工

    保羅在第15章中始終為死人復活辯護,並在高潮處如此呼喊:

    林前 15:58 所以,我親愛的弟兄們,你們務要堅固,不可搖動,常常竭力多做主工;因為知道你們在主裡面的勞苦不是徒然的。

    然而緊接著的第16章,卻談起了奉獻、宣教行程以及人際關係。彷彿讓人無法在復活講道的磅礴氣勢中細細回味。是的,初看之下似乎令人惋惜。然而,這正是保羅的神學。他所說的「主的事工」,在第16章中原原本本地化為我們在日常生活中當做的事。復活不以抽象作結,信仰復活的心志並不飄浮於雲端之上,而是降落在財務、每日的行程以及人際關係這最平凡的處所。

    保羅首先談到奉獻。他所要收集的這筆捐項,並非一般的奉獻,而是為耶路撒冷教會募集的款項。耶路撒冷的猶太信徒十分貧窮——他們歷經饑荒,又在患難中彼此分享財物,因而陷入困乏。何況,他們遠在異鄉,本可置之不理。然而保羅卻走遍他所建立的外邦教會(加拉太、馬其頓、哥林多等),為這身處艱難中的耶路撒冷教會募款。這份奉獻不只是單純的救濟,更是外邦基督徒與猶太基督徒在基督裡同為一個身體的物質見證。在敬拜中合而為一的教會,在生活供給上同樣成為一體。

    然而保羅既不規定奉獻的金額,也不強迫任何人:

    林前 16:2 每逢七日的第一日,各人要照自己的進項抽出來留著,等我來了就不必再捐了。

    「照自己的進項」——保羅說,要按照各人所蒙的福分,照各人所得的供獻。又說「每逢七日的第一日」,即在教會團契聚集時,預先備好奉獻,使保羅到來時無需勉強勸募。因為基督徒的奉獻,不是出於任何壓力,而是從感恩中自然流露。信仰復活的人,不會緊握自己所有的。對於擁有死亡彼岸盼望的人而言,金錢不再是最後的屏障。因此,基督徒甘心照著所蒙的恩典奉獻,將這份心意送給遠方素未謀面的肢體。這就是信仰復活之人對財物的態度。

    接著,保羅談到宣教行程。他非常具體地計劃途經馬其頓前往哥林多,甚至可能在那裡共度冬天。然而在這個計劃上,他附加了一個但書:

    林前 16:7 我現在不願意路過你們那裡見你們;我若是主許我,我願在你們那裡多住些時候。

    「若是主許我」。保羅將行程計劃得極為具體,卻不將那計劃緊握在自己手中。計劃的縝密與對計劃的超然,在同一句話裡並存。他也決定繼續留守所在的以弗所,並如此說明原因:

    林前 16:9 因為有廣大的門為我開了,並且對敵的人也多。

    「門為我開了」,意指在保羅所在的以弗所,傳揚福音的門——即傳福音的機會——已大大敞開。然而,那裡也有許多對敵的人。一般人或許會逃離反對聲浪激烈之處,但保羅卻截然相反。對敵眾多,恰恰證明福音正在切實震動那座城市,因此他不僅沒有離去,反而堅守原地。事實上,當保羅在以弗所傳福音時,以打造偶像為業的銀匠們因生意受損而群起激憤(使徒行傳第19章)。如此激烈的反對,正是福音深入那城市的明證。因此,保羅在有充分理由離去的地方,看見敞開的門,選擇留下。這就是「若是主許我」的姿態。

    保羅在本段最後談到人與人之間的關係。他叮囑哥林多人,若年輕的同工提摩太前往,要好好接待他,並說:

    林前 16:11 所以無論誰都不可藐視他,只要送他平平安安地往我這裡來,因為我等候他和弟兄們同來。

    提摩太年輕,而他代替保羅前往的哥林多教會,正是一間以辯論與知識自誇的教會。因此保羅擔心這群聰慧的信徒會讓年輕的提摩太心生膽怯,甚至輕看他,才如此囑咐:不可藐視他——因為提摩太是「同保羅一樣做主工的人」。事工的份量,不來自人的年齡或威望,而來自那事工的主人是誰。

    保羅也談到亞波羅。哥林多教會實際上已因「我是屬保羅的」、「我是屬亞波羅的」而分裂成派系,使兩位事工者彼此對立。然而保羅卻這樣談論亞波羅:

    林前 16:12 論到我們的兄弟亞波羅,我再三地勸他同弟兄們往你們那裡去;但這時他決不願意去,幾時有機會他必去。

    保羅稱亞波羅為「兄弟」,甚至多次勸他前往哥林多服事那間教會,藉此表明兩人並非彼此競爭。他打算主動派遣那個被立為自己「對手」的人,前往有人追隨自己的教會。然而亞波羅說,他現在不去。經文沒有詳述原因,但我們不難推測:亞波羅心裡明白,若他此刻前往那個正以他的名義爭鬥分裂的地方,只會火上澆油。因此,即便保羅力勸,亞波羅仍自行判斷,選擇等待時機。一方竭力要送兄弟前去,另一方為了兄弟甘願退讓。這就是沒有競爭的同工之情。這封以「我是屬保羅的,我是屬亞波羅的」揭開序幕的書信,以保羅稱亞波羅為「兄弟」作為終結。

    在默想今日經文的過程中,「若是主許我」這句話不斷縈繞在我心頭。保羅是一個比任何人都更勤於計劃的人——途經馬其頓前往哥林多,甚至連越冬都納入考量,他的行程具體得令人嘆服。然而在那縝密的計劃之上,他總是留下一行空白:若是主許我……

    說實話,那一行空白對我而言並不容易。從事牧會工作,每天都要面對無數抉擇。那時,我往往不知不覺地讓自己的想法和判斷搶先。憑著自我確信,以為這是最好的選擇而勇往直前,卻在某個瞬間驟然湧起恐懼:這個決定真的是主的旨意嗎?還是不過是我自己的焦急?因此,今天我再次禱告:求主讓我們雖勤勞籌劃當做之事,卻在預備事工的每一個處所,不先求自己的想法,而先求聖靈的引領……求主讓我和我們群體的肢體,不倚靠人的智慧走上偏差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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