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묵상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함께 나눕니다
今日默想:創世記 44:18-34
요셉의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다. 형제들은 옷을 찢고 다시 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유다가 일어나 입을 열었다. 유다의 호소는 길고 절절하다. 그런데 유다는 자신들의 무죄를 변호하지 않는다. 잔이 어떻게 베냐민의 자루에 들어갔는지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그가 풀어놓는 것은 오직 아버지의 마음이다. 라헬이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한 아들은 짐승에게 찢겼고 이제 막내 하나만
今日默想:創世記 44:1-17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형들에게 행한 시험은, 요셉의 가정사를 이해해야 정확하게 보인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가 있었다. 그중에서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는 라헬이었고, 그녀에게서 낳은 두 아들이 요셉과 베냐민이다. 그런데 이 둘은 열두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와 막내였다. 그래서 야곱은 두 아들을 편애했고, 결국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넘기려 하여 요셉에게 관리자의 직책까지 맡겼다. 형들이
今日默想:創世記 43:16-34
요셉이 베냐민을 본 순간, 청지기에게 짐승을 잡고 잔치를 준비하라 명한다. 그러나 형들은 이 요셉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요셉의 집으로 갈 때 두려워한다. 그래서 청지기에게 다가가 자루에 돌아왔던 은에 대해 변명한다. 자기들이 잡혀가는 줄로 안 것이다. 그런데 청지기가 답한다. ***창 43:23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
今日默想:創世記 43:1-15
가나안의 기근은 그치지 않았다. 애굽에서 사 온 곡식이 다 떨어지자 야곱은 다시 양식을 사러 가라고 아들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유다는 단호하다. 베냐민이 함께 가지 않으면 우리는 내려갈 수 없다고. 그 사람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야곱은 화를 낸다. ***창 43:6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
今日默想:創世記 42:18-38
오늘 본문은 표면적으로 보면 요셉에게 정말 통쾌한 장면이다. 자기를 죽이려 했고 결국 노예로 팔아 버린 형들이, 지금 자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살려달라 애원한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정의가 이제 펼쳐지는 것 같다. 우리도 요셉의 자리에 서서 이 본문을 읽으면, 그 통쾌함이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그런데 본문은 그 표면을 한 꺼풀 벗기고, 그 안에 있는 마음들
今日默想:創世記 42:1–17
이전 부터 요셉의 이야기를 읽을 때, 나에게는 한때 수많은 의문이 있었다. 왜 굳이 이 방법이어야 했나? 왜 흉년이어야 했나? 한 가정의 회복을 위해 가나안과 애굽 전역이 굶주려야 했는가? 인간의 역사는 정말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서 이미 다 짜여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형들의 죄는 무엇이며, 야곱의 편애는 또 무엇인가? 그래, 이런 질문들이 풀리지 않아서 성경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던 시절이
今日默想:創世記 41:37-57
요셉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옷이 바뀌는 자리마다 인생의 마디가 보인다. 크게 세 자리다. 그리고 그 모든 자리마다 두 가지가 함께 흐른다. 하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서 사람이 빚어짐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흐르지 않으면 요셉의 이야기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첫째, 채색옷의 자리이다. 채색옷을 단순한 편애의 옷으로만 보면 본문이 잘 풀리지 않는다. 히브리어
今日默想:創世記 41:25-36
오늘 본문의 핵심은 요셉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보이셨다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하나님이 정하셨다고. 그래. 짧은 풀이 한 단락 안에 같은 고백이 세 번 반복된다. ***창 41: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창 41: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今日默想:創世記 41:1–24
만 이년.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그 날로부터 꼬박 이 년이 더 흘렀다. ***창 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그 사이에 요셉은 여전히 잊혀진 채로 감옥에 있었다. 그동안 요셉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역시 또...'라고 하며 실망했을까? 아니면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을까? 어떤 신학자
今日默想:創世記 40:1-23
만약 우리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고 해보자.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많은 사람이 자기 억울함을 어떻게든 증명하려고 할 것이다. 혹은 절망하고 낙담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낼 것이다. 솔직히 나라고 다를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요셉도 처음에는 그런 시간을 보냈을지 모른다.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끌려갈 때, 그가 차분한 얼굴로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고 누가 단언할
今日默想:創世記 39:1-23
요셉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묘하다.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 끌려간 종의 신분인데, 본문은 거듭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말한다. 형통이라는 단어가 자주 오해를 부른다. 일이 잘 풀리는 것, 환경이 좋아지는 것을 형통이라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그래서 본문도 그렇게만 읽는다. 그러나 39장은 그렇게만 읽으면 후반부가 무너진다. 왜냐하면 형통한데 감옥을 가기 때
今日默想:創世記 38:1-30
솔직히 말하면, 이 본문은 처음 읽었을 때 이해가 잘 안 됐다. 요셉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는 한가운데 갑자기 끼어든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 그것도 너무 부끄러운 내용이다. 그래서 한참 동안 이 장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본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보였다. 유다의 두 아들 엘과 오난은 죄 때문에 곧바로 죽었다. ***창 38: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
今日默想:創世記 37:18-36
며칠 전, 연초에 결혼하여 사모의 길을 시작한 사촌동생이 자기 엄마하고 대만에 놀러왔다. 함께 보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우리 가정이 대만에 와서 지나온 시간들,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들, 그러나 그 한복판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간증으로 흘러갔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내내 한 사람이 자꾸 떠올랐다. 요셉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앞에 앉으
今日默想:創世記 37:1-17
본문은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창 37:1)라는 구절로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처럼 야곱은 이제 마침내 정착했다. 그러나 그가 정착한 그 가정 안에서는 이미 깊은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본문은 이어서 야곱이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했고, 그를 위해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고 말한다. 그리고 형들은 그 모습을 보고 요셉에게 편안하게 말조차
今日默想:創世記 35:23–36:8
이삭이 죽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이 함께 아버지를 장사한다. 그리고 에서의 후손의 족보가 길게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에서가 가나안을 떠나 세일 산에 거주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창 35: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한때 동생을 죽이려 했던 형!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밤새 두려워했던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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