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줄 묵상나눔

    한 줄 묵상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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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행님의 한 줄 묵상만 보기
    이근행·

    이미 처참하게 죽은 시스라의 현실은 전혀 모른 채 궁궐 안에서 여전히 승리를 확신하며 잔인할 정도로 탐욕스러운 대화를 나눕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면 하나님께서 이미 무너뜨리신 헛된 성공의 신기루를 쫓으며 스스로를 속이게 됨을 봅니다. 언제나 영적으로 맑게 깨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주님의 공의와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完全不知道西西拉早已悲慘死去的現實,在宮殿裡仍然確信勝利,進行著近乎殘忍的貪婪對話。我看見,當我們與神的關係疏遠時,就會追逐神早已擊碎的虛幻成功海市蜃樓,欺騙自己而不自知。願我能時常保持屬靈的清醒警醒。我要活出一天,唯獨敏銳地回應主的公義與旨意。

    이근행·

    어두운 시기에 드보라와 같은 사사들은 하나님과의 끈을 굳게 붙잡고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상황에 불평하거나 익숙한 안락함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형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영혼이 주님 앞에 진정으로 깨어 있는가임을 묵상합니다. 오늘도 끊임없이 내 영혼을 일깨우며 주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거룩한 하루를 살겠습니다.

    在黑暗的時期,像底波拉這樣的士師們緊緊抓住與神之間的連結,用「醒來吧,底波拉啊,醒來吧」來勉勵自己,以憐憫與愛心興起行動。默想到比起對周遭環境的抱怨或安於熟悉的舒適,更重要的是:此刻我的靈魂是否真正在主面前儆醒。今天也要不斷喚醒自己的靈魂,過一個與主親密同行的聖潔的一天。

    이근행·

    바락과 야엘을 볼때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취되지만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인간적인 안전장치를 곁에 둘 때 주님이 예비하신 더 큰 은혜를 놓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순종하는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從巴拉和雅億的事上可以看到,神的作為即使在人的不足中,最終仍會成就;但當我們無法以完全的信心邁出腳步、猶豫不決,或是在旁邊留有人為的安全裝置時,我們可能會錯失主所預備的更大恩典。願我在主呼召的時候,不左顧右盼,懷抱順服的信心與勇氣往前邁進。

    이근행·

    바락이 드보라의 신앙과 확신에 의지했듯이 저도 부모님과 누나의 신앙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교회 안에서는 보호막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드보라를 의지했던 바락을 끝내 승리의 자리로 이끄시고 함께 승전가를 부르게 하셨듯 저에게도 나의 하나님으로 제 삶에 찾아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부모 세대의 온전한 신앙의 증언이 되어 아이들에게 살아계신 그들의 하나님을 신실하게 전하는 통로가 되겠습니다.

    如同巴拉倚靠底波拉的信心與確信一樣,我也一直倚靠著父母和姊姊的信仰而活。他們的信仰在教會裡有時成為我的保護傘,但有時卻也像一堵巨大的牆一樣讓我感到壓迫。然而,正如神最終引導倚靠底波拉的巴拉走向得勝之地,並使他們一同高唱得勝之歌一樣,我也感謝神親自臨到我的生命中,成為「我的神」。願我能成為上一代完整信仰見證的傳承者,忠實地將那位又真又活的神傳給下一代的孩子們。

    이근행·

    작게 묘사되는 에훗은 그 왼손으로 쓰임을 받았고 에훗에 이어 등장하는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를 들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넉넉하게 갖추어진 자원이나 완벽한 형편, 또는 큰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묵상합니다. 일상의 작은 도구라도 주님 손에 온전히 붙들릴 때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습니다. 오늘 제게 허락해주신 자리에서 주님께 쓰임을 받는 청지기의 하루를 살겠습니다.

    被形容為渺小的以笏,靠著他的左手被神使用;緊接以笏之後登場的珊迦,則拿著趕牛的棍子,在神拯救的作為中被使用。默想神的工作並非源於充足齊備的資源、完美的環境,或是強大的能力。即使是日常生活中微小的工具,只要完全被主的手掌握,也能被神使用成就祂的事工。今天,我要在主所賜給我的位置上,過一個被主使用的管家般的一天。

    이근행·

    단 한 세대 만에 구원을 경험한 세대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로 전락해 버린 비극 앞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로 계승되지 않습니다. 부모 세대인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지 못하고 구별된 거룩함 대신 세상의 타협과 요령을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면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만날 수 없습니다. 관념과 형식에 머무는 신앙을 버리고 내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하는 신실한 믿음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面對僅僅一個世代之間,經歷過救恩的世代竟淪為完全不認識神的另一個世代,這樣的悲劇,我深感責任重大。信仰的傳承並非單靠知識的傳遞就能完成。身為父母世代的我們,若在日常生活中無法信靠神的主權,反而追隨世俗的妥協與手段,而非活出分別為聖的聖潔,下一代就無法在頭腦與心靈中真實地遇見神。願我能拋棄僅止於觀念與形式的信仰,成為在生活中具體的處境裡,見證神真實同在的信實信仰管道,我懇切地如此禱告。

    이근행·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 남겨둔 편법과 욕심이 도리어 저를 영적으로 고립시킵니다. 단 지파가 가나안을 부리려다 산지에 갇혀버린 것처럼 인간의 지혜로는 죄를 길들일 수 없음을 봅니다. 오늘도 죄와 적당히 타협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완전한 죽으심으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自以為能夠自我控制,因而保留下來的權宜之計和貪念,反而使我在靈裡陷入孤立。就像但支派想要驅使迦南人,卻反被困在山地一樣,我看見人的智慧根本無法馴服罪。今天我要仰望耶穌基督,祂沒有與罪妥協,而是藉著十字架上完全的死,得了勝利。

    이근행·

    가나안 정복이 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여호수아의 죽음은 백성들에게 단순한 리더십의 부재를 넘어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자체가 흔들리는 듯한 위기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현실에 타협하며 정착할 만한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 뜻을 여쭙고 나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이 인상깊습니다.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고 해서 주님이 주신 원래의 목적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고 약속하신 그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본래 순탄치 않음을 보게됩니다.

    在迦南征服尚未結束的情況下迎來約書亞的死亡,對百姓而言,這不僅僅是領導層的缺失,更像是神要賜下迦南這個應許本身似乎都在動搖的危機。令人印象深刻的是,即使身處足以讓人妥協於現實、就此安頓下來的恐懼情境中,百姓仍然沒有停下腳步,而是首先向神尋求心意,然後繼續前行。這讓我看見,即使遇到意想不到的試煉,主原本所賜下的目的並不會因此被遮蔽;通往那應許之地的道路,本來就不會是平順的。

    이근행·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위협에서 벗어날 가장 합리적인 해답이 바벨론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저라도 그 사절단을 환대하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자랑스레 내보였을 것 같습니다. 내 안의 교만과 욕심을 포장해서 마치 그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답변인양 섣불리 일을 저질러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옳으시고 저는 늘 같은 실수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자세를 잃지 않겠습니다.

    希西家可能認為,擺脫亞述威脅最合理的解答就是巴比倫。若是我,恐怕也會熱情款待那些使節,驕傲地向他們展示我所擁有的一切。我裡面的驕傲與貪心常常被包裝起來,讓我輕率地行事,彷彿那就是神所允許的答案。神永遠是對的,而我卻總是犯下同樣的錯誤。我要保持屬靈的儆醒,不失去察驗神心意的態度。

    이근행·

    우리를 위해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진정으로 인정한다면 내 삶의 주도권 역시 온전히 주님께 의뢰하는 믿음이 뒤따라야 함을 배웁니다. 상황을 해결하려 억지로 이리저리 끼워 맞추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벽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신뢰하기 원합니다. 얄팍한 편법이 아닌 주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에 합당한 방식으로만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若真正承認神親自為我們爭戰的主權,就學到我生命的主導權也應當隨之而來的信心——完全交託給主。我不想勉強地東拼西湊試圖解決處境,而是願意堅定信靠神在看不見之處完美運行的護理。願我不倚靠淺薄的權宜之計,而是只用合乎主造我目的的方式,順服前行。

    이근행·

    히스기야의 기도는 당장의 위기 모면이나 생존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세상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보게 되기를 구합니다. 이는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굳게 신뢰했기에 가능한 고백입니다. 문제 해결에만 급급했던 좁은 시야를 돌아봅니다. 이제는 저의 제한된 사유를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통치를 온전히 인정하기 원합니다. 내 삶의 모든 자리에서 지으신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더 큰 목적만을 높여드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希西家的禱告並沒有停留在暫時脫離危機或求生存的層次,而是祈求全世界唯獨看見神的榮耀。這樣的告白,唯有堅信超越人類預測的神偉大護理,才有可能說出口。我反思自己過去只汲汲於解決問題的狹隘視野。如今我願意完全承認,神的治理超越我有限的思維,是完美無缺的。願我生命中的每一個角落,都只高舉神創造我的目的——那更宏大的目的,就是神的榮耀,這是我懇切的盼望。

    이근행·

    첫 절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라는 말씀이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 말씀의 성취가 역사적 포로 귀환인지 예수님의 초림인지 종말론적 완성인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제게 와닿는 것은 아직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여전히 메마른 땅의 현실 속에서도 그 약속을 굳게 믿고 미리 기뻐하는 믿음입니다. 아직 눈에 보이는 성과나 회복이 없는 오늘 하루일지라도 약속하신 주님을 신뢰함으로 참된 기쁨을 살아내겠습니다.

    第一節「曠野和乾旱之地必歡喜」這句話,一下子就抓住了我的心。這句話的應驗究竟是指歷史上的被擄歸回、耶穌的初臨,還是末世論的完全成就,對我來說並不重要。唯一觸動我心的,是在應許尚未實現、仍是乾旱之地的現實中,依然堅信這應許並提前歡喜的信心。即使今天這一天還看不見任何成果或恢復,我仍要藉著信靠應許的主,活出真實的喜樂。

    이근행·

    8절을 묵상하며 억울하게 얽힌 문제와 세상의 불의를 궁극적으로 심판하시고 바로잡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복잡하게 얽힌 타인의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며 무의식중에 내 잣대로 판단하고 결과를 계산하려 했던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회복하시는 주님의 주권에 결과를 온전히 맡겨드립니다. 스스로 재판관이 되려던 교만을 벗어버리고 오늘 제게 허락된 하루의 사명에만 잠잠히 충성하는 참된 자유를 누리겠습니다.

    默想第8節,我承認唯有神才是那位終極審判並糾正冤屈問題與世上不義的主。我放下在旁觀看他人複雜糾結的處境時,不自覺地用自己的標準去論斷、計算結果的驕傲。我將一切結果全然交託給那位使萬事互相效力、成就恢復的主的主權。我要脫去想自己成為審判官的驕傲,靜靜忠心於今日所賜給我的使命,享受這份真正的自由。

    이근행·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만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며 참된 지혜의 보배임을 선언합니다. 세상의 논리와 눈에 보이는 지표로 내 삶의 든든한 기반을 삼으려 했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익숙해진 경험에 기대어 하루를 시작하려는 교만을 버리고 매일 아침 저의 유한함을 철저히 인정하기 원합니다. 이제는 하루하루 오직 주님의 공급하심과 세밀한 인도하심에만 온전히 기대어 살아가는 참된 평안을 누리겠습니다.

    唯有敬畏耶和華,才是不動搖的磐石,也是真實智慧的珍寶,我如此宣告。我願放下那想靠世上的邏輯與眼見的指標,來建立我人生穩固根基的心。也願捨棄那憑藉熟悉的經驗來開始每一天的驕傲,徹底承認自己每天早晨的有限。從今以後,我要單單全然倚靠主的供應與細膩引導,度過每一天,享受真正的平安。

    이근행·

    고난이 닥칠때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 이것저것 시도합니다. 그러나 나를 보호하시는 주님은 세상의 그 어떤 위협 앞에서도 결코 요동치 않으시는 강한 사자와 같으십니다. 복잡한 상황에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분주해하고 휩쓸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압도적은 주님의 통치아래 잠잠히 평안을 찾겠습니다.

    當苦難來臨時,我們總是想方設法尋找出路,嘗試各種方法。然而保護我的主,就像一頭強壯的獅子,無論面對世上任何威脅,都絕不動搖。在複雜的處境中,我要放下那顆忙碌地想靠自己找出解決之道、被環境牽動搖擺的心,在主宏大的掌權之下,靜靜地尋求平安。

    이근행·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리로 가라는 음성을 묵상합니다. 주님과 교제가 깊어질수록 예전에는 문제삼지 않던 세상의 요령이나 편법이 악으로 분별되에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밀한 인도하심을 늘 기쁨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여전히 더 편한것, 더 큰 금전적 이득을 좇는 욕심을 온전히 버리기 참 어렵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을 더 닮아가는 삶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默想著「這是正路,要行走在其中」的聲音。與主的交通越深,過去不曾在意的世上的權宜之計或投機取巧,如今都被分辨為惡,再也無法輕易上手。然而我承認自己軟弱,無法時常以喜樂的心順服這樣細膩的引導。仍然很難完全放下追求更舒適、更大金錢利益的貪心。祈求每一天都能活出更像主的生命。

    이근행·

    저의 일상이 하나님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돌아봅니다. 매 순간의 선택과 만남, 삶의 목표가 당장의 안위와 유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주님을 높이며 그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기 위함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내 계획대로 일단 저지른 뒤에 후회하며 수습해 달라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행동하기 앞서 매사에 주님의 뜻을 가장 먼저 묻고 잠잠히 순종하는 청지기의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我反思自己的日常生活與神的連結有多深。每個當下的選擇與相遇、人生的目標,究竟是為了眼前的安逸與益處,還是為了高舉主,並在祂裡面享受真正的平安,我不斷地這樣詢問自己。我懺悔自己的愚昧——總是先按照自己的計畫貿然行事,事後後悔了才求主的旨意來收拾殘局。我要在行動之前,凡事優先尋求主的旨意,以安靜順服的管家心志,過每一天的生活。

    이근행·

    마음의 경외함 없이 익숙해진 절차와 형식으로만 드리는 예배를 경고합니다. 신앙의 루틴이 그저 하루의 숙제를 해치우듯 메마른 의무감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돌아봅니다. 특히 기도를 할 때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진심으로 교제를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這是在警戒那種缺乏內心敬畏、只憑習慣性程序與形式所獻上的敬拜。要深切反省,自己的信仰是否已淪為枯乾的義務感,彷彿只是在應付每天的功課。尤其在禱告的時候,要省察自己是不是只在說出習慣性的話語,而不是真心與神交流。

    이근행·

    하나님의 심판이 가진 궁극적인 목적이 멸망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고 참된 화평을 누리게 하심에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은 이 화친의 메시지를 두 번이나 거듭 강조하십니다. 고난이 닥칠 때 하나님의 엄한 손길만 바라보며 두려워하기보다 그 이면에 감춰진 따스한 화평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아가 비단 고난의 때만이 아니라 먼저 다가오셔서 평화의 언약을 맺어주신 주님 안에서 매일 진정한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這教導我們,神審判的終極目的並非毀滅,而是要恢復關係,讓我們享有真正的和平。主兩次反覆強調這和好的信息。當苦難來臨時,我省察自己,是否只是畏懼神嚴厲的手,而沒有側耳傾聽隱藏在其背後那溫暖的和平信息。此外,我也懇切盼望,不僅僅是在苦難的時刻,而是能天天在那位主動前來與我們締結和平之約的主裡面,過著享受真實喜樂的生活。

    이근행·

    3절은 주님을 신뢰함과 완전한 평강을 연결합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모든 주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 내 마음을 온전히 고정할 때 비로소 누리게 되는 절대적인 평안이 있음을 봅니다. 스스로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제게 맡겨진 일에 늘 최선을 다하되 그 이후의 모든 것은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리고 그 결과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알기에 늘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第3節將對主的信賴與完全的平安連結在一起。我看見,即使在不確定的處境中,當我將心完全定睛於掌管一切主權的神時,才能真正享有那絕對的平安。並非靠自己去掌控結果,而是在被託付的事上時常竭盡全力,之後便將一切完全交託給主;因為知道那結果是掌權者神所允許的,所以我要常常懷著感恩之心來領受。

    이근행·

    주님의 심판으로 폐허가 된 성읍 한가운데서도 주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뢰의 모습임을 배웁니다. 삶에 시련이 닥칠 때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묻고 좌절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무너진 자리에서도 저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기 원합니다. 결국에는 선을 이루실 주님의 크신 뜻을 온전히 신뢰하며 고난 속에서도 찬양과 감사를 잃지 않는 믿음의 태도를 지켜가겠습니다.

    我學到,即使在主的審判之下化為廢墟的城邑當中,依然高聲讚美主,這才是對神真實信賴的表現。當生活中降臨試煉時,我常常質問「為何要給我這樣的痛苦」,因而感到挫折。然而,即使在那傾頹之地,我仍願意期待神要透過我來動工。我要持守這樣的信心態度:全然信靠主終將成就美善的宏大旨意,在苦難中也不失去讚美與感恩之心。

    이근행·

    16절의 말씀의 성취와 최종적인 승리를 믿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이사야의 절규처럼 여전히 하나님을 모른 채 심판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과 이웃을 긍휼하게 여기며 그것을 나의 아픔으로 애통해할 줄 아는 마음이 과연 나에게도 있는지 돌아보게됩니다. 나만의 구원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안위만 신경쓰고 그 넘어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곤 합니다. 오늘 말씀의 찬양과 애통함 사이에서 세성을 품고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因為相信第16節話語的成就與最終的勝利,我們可以歡喜。但如同緊接其後以賽亞的哀號一般,我不禁反省自己是否也擁有這樣的心——憐憫那仍不認識神、正奔向審判的世界與鄰人,並將他們的痛苦視為自己的痛苦而哀痛。我常常只顧念自己的救恩與教會共同體內的安穩,卻對那之外世界的痛苦視而不見。在今日話語的讚美與哀痛之間,我應當懷抱那顧念世界、為鄰人代禱的中保者之心。

    이근행·

    오늘 말씀은 두로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심판 후 다시 세워진 두로가 얻은 재물은 더 이상 창고에 쌓이지 않고 여호와께 거룩히 돌려져 주님 앞에 거하는 자들을 위해 쓰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사는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내 창고를 채우는 헛된 자랑을 내려놓고 제게 주신 열매가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거룩하게 심기는 생명의 씨앗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今天的話語並非以推羅的滅亡作結。審判之後重新建立的推羅所得的財富,不再堆積於倉庫之中,而是被聖別歸給耶和華,用來供養那些住在主面前的人。這顯明了藉神的恩典重生的我們,生命的終極目標應當指向何處。願我放下填滿自己倉庫的虛妄誇耀,讓神所賜給我的果子,成為聖潔栽種於神的國度與鄰舍之中的生命種子。

    이근행·

    하나님께 나의 종이라 불렸던 엘리야김조차 결국 부러진 못처럼 무너진다는 말씀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끝까지 충성된 종으로 남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쓰임 받을수록 더욱 낮아져야 하는데 셉나나 엘리야김처럼 내 이름이 높아질수록 그 모든 영광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리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상에 주어지는 작은 성취나 소득조차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매 순간 하나님께만 감사를 돌리는 겸손의 훈련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連被神稱為「我的僕人」的以利亞金,最終也像折斷的釘子一樣崩塌,這段話語沉重地觸動我心。要始終如一地作忠心的僕人,實在是件不容易的事。越是被神使用,就越應當謙卑自己,然而就像設拿或以利亞金一樣,當我的名聲越高,要將這一切榮耀完全歸給神,恐怕就越發困難。日常生活中所得到的一點小小成就或收穫,也都是主的恩典,我再次體會到,需要不斷操練謙卑,在每個時刻都將感謝單單歸給神。

    이근행·

    이어서 기록되는 대국들의 허망한 멸망과 끊임없이 찾아오는 밤에 대한 경고는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파수꾼처럼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싶지만 여전히 세상에서 바라는 것도 많고 욕심도 많아 온전히 그러지 못하는 제 연약함을 봅니다. 밤이 오고 또 밤이 찾아오는 막막한 삶의 연속일지라도 제 삶의 방향만큼은 결코 놓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은혜를 구합니다.

    接續記錄的列國虛空的滅亡,以及不斷來臨的黑夜的警告,鮮明地對照出永恆與非永恆的事物。我雖然渴望像神所立的守望者一樣,只將盼望寄託於主,但我看見自己仍舊對世上有許多渴望與貪心,無法完全做到這一點的軟弱。即便黑夜一再襲來,是茫然無措的生命延續,我仍祈求恩典,讓我人生的方向絕不偏離,唯獨朝向神。

    이근행·

    구약의 선지자들은 세상의 거친 흐름 속에서도 하나님께 귀 기울이며 그분의 말씀을 묵묵히 삶으로 살아냈습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현실의 어둠을 이겨내고 세상에 소망을 전하는 사명은 나의 몫이 아니라 여기며 저만의 삶에 안주했던 모습을 반성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 제게 허락된 삶의 자리에서 아무리 작은 소망이라도 이웃과 나누며 주위 사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舊約的先知們,即使身處世界混亂的洪流之中,仍然側耳傾聽神,並默默地用生命活出祂的話語。反省自己因忙碌的日常而疲於奔命,總認為戰勝現實的黑暗、向世界傳遞盼望的使命不是我的責任,只安於自己小小的生活圈。願我能像耶穌一樣,在神所賜給我的生命崗位上,無論多麼微小的盼望,都願意與鄰舍分享,成為身邊的人堅實的依靠,過這樣的生活。

    이근행·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절대 마르지 않을 것 같던 풍요의 상징 나일강도 말라버리고 당대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던 바로의 모사들마저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물질적 풍요와 지적 성취는 결국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아서 도리어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이끌고 비틀거리게 만듭니다. 세상의 헛된 자랑이 아니라 참된 반석이자 변함없는 공급자이신 주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在神的審判面前,看似永不乾涸、象徵豐饒的尼羅河也會枯竭;當代誇耀擁有最高智慧的法老謀士們,也終究成了愚昧之人。沒有敬畏神的物質豐富與知識成就,終究如同建在沙土上的城,反而會引領我們走上錯誤的道路,使我們搖搖欲墜。願我們不倚靠世上虛妄的誇耀,而是全然依靠那真正的磐石、那永不改變的供應者——我們的主。

    이근행·

    거세게 몰아치는 세상의 위협과 이를 압도하는 하나님의 구원이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짙은 어둠처럼 거대한 문제의 크기에 압도될 때가 있지만 아침이 올 것을 믿는 사람은 무서운 밤에도 요동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그 캄캄한 밤을 다 감당하셨기에 구원의 확신을 누리며 제게 맡겨진 일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 안에 있음을 알기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걱정은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오늘 하루 주신 사명을 묵묵히 다하겠습니다.

    世上洶湧襲來的威脅,與神那壓倒一切的救恩,形成了鮮明的對比。有時我們會被龐大如濃厚黑暗般的問題所壓倒,但相信黎明必將到來的人,即使身處可怕的黑夜也不會動搖。因為基督已經全然擔當了那漆黑的夜晚,所以我能享受得救的確據;也因為知道託付給我的事同樣在神的計劃之中,所以我能夠坦然無懼。我要將一切憂慮完全交託給主,默默地完成今天所賜下的使命。

    이근행·

    이사야 16장에서 피난처를 찾는 모압 사람들을 환대하라는 말씀과 그럼에도 그들의 교만으로 인해 멸망할 것이라는 선고를 함께 봅니다. 교만에 대한 평가와 심판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이며 시련 중에 있는 이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몫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조차 모압의 고통을 보며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그 긍휼의 마음을 기억하며 힘든 상황에 처한 이들을 판단하기보다 그들을 위한 기도와 실질적인 도움을 늘 실천하는 삶이 되겠습니다.

    在以賽亞書16章中,我們看到神既吩咐要款待尋求避難的摩押人,同時也宣告他們將因驕傲而滅亡的審判。我們明白,對驕傲的評判與審判乃是神獨有的權柄,而在患難中照顧他人則是我們應盡的本分。而且,即使是施行審判的神,也為摩押的痛苦感到心痛、與他們同悲。我們要記住這份憐憫的心,在面對處於困境中的人時,不是去論斷他們,而是持續為他們禱告,並實際付出幫助,活出這樣的生命。

    이근행·

    하나님의 영광이 나의 교만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성취의 기쁨은 짧고 오늘 말씀의 바빌론처럼 곧 갈기찢겨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발버둥을 쳤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영광만 보지 못하게 하는게 아님을 느낍니다. 주위 사람들이 사랑으로 베풀어주고 이끌어 준 것 마져도 나의 성취로 치부하고 그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삶을 인도하시고 다른 사람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것을 믿는 저는 그저 교만을 내려놓고 그 인도하심에 삶을 내어드리고 사랑으로 하나됨의 기쁨을 누리면 됨을 묵상합니다.

    有時候,神的榮耀會被我的驕傲遮蔽而看不見。那種時候,成就的喜悅總是短暫的,就像今天話語中的巴比倫一樣,很快就會被撕裂,為了不再跌倒,我曾拚命掙扎過。我漸漸感受到,驕傲不僅僅是讓我看不見神的榮耀而已。就連周圍的人以愛心給予和引導我的一切,我也將其歸功於自己的成就,這也影響了我與他們之間的關係。神引導著我的人生,也使我與他人在愛中合而為一。相信這一點的我,只需要放下驕傲,將人生交託在祂的引導之中,享受因愛而合一的喜悅,這就是我今天的默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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