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줄 묵상나눔

    한 줄 묵상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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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연·

    바울은 복음을 위해 모든 권리와 자유를 내려 놓았고 예수님은 날 살리기 위해 하늘 보좌 버리시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한없이 크신 그 은혜를 자격 없는 내게 거저 주셨다. 하지만 내 지난 삶을 돌아볼때 난 항상 반대의 삶을 살아왔음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난 어떻게든 내 권리를 찾으려 애쓰고, 내 자유를 빼앗길까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왔다. 영혼을 위해 희생하기는 커녕 두 손을 꽉 진채 살아온 내 모습을 회개하며 이제는 나도 주를 위해 낮아지고 희생하며 내게 맡기신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保羅為了福音放下了一切的權利與自由,耶穌為了使我得生,甘願離開天上的寶座,在十字架上捨命。那無限廣大的恩典,白白賜給了毫無資格的我。然而,當我回顧過去的生命,我總是走在相反的道路上,心中充滿了無盡的慚愧。我總是想方設法地爭取自己的權利,睜大雙眼守護著不願失去的自由。不但沒有為靈魂犧牲,反而緊握雙手只顧自己——我為這樣的自己悔改,並禱告從今以後,我也能為主降卑、甘心犧牲,默默背負祂所託付給我的十字架,走完這一生的路。

    이지연·

    당대 최고의 엘리트 바울은 사랑이 없는 지식은 오히려 해로울 뿐이라고 설명한다. 부모가 되고 아이가 자라며 내 행동, 말투, 삶을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아이에게는 본보기가 될것을 알기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이 되지 못하는 연약한 내 모습을 매번 발견하는것 또한 사실이다. 내 책임감 없는 잔소리가 아이를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케 하는게 아니라 바울처럼 사랑으로 내 자신을 버릴때 비로소 아이가 바르게 자라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는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를 받았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 잠 10:12

    當代頂尖的精英保羅說明,沒有愛的知識反而有害無益。成為父母、孩子逐漸長大後,深知自己的一舉一動、說話方式、面對生活的態度,都會成為孩子的榜樣,因此時時謹慎。然而儘管如此,每次發現自己仍是那個無法成為好榜樣的軟弱之人,這也是不爭的事實。這段話語讓我再次領悟:不是用缺乏責任感的嘮叨來讓孩子成長得更好,而是像保羅一樣,以愛捨去自我,孩子才能真正地正直成長。默想這話語,領受了恩典。愛能遮掩一切過錯。箴 10:12

    이지연·

    고전 7:40 내 의견으로는, 그 여자는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며칠째 내게 감동을 주시는 말씀은 내 의견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참 쉽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오해하여 확신에 차면 그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바울도 자기 의견을 제시하면서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하였듯이 모든 일에 있어 내 확신으로 밀어부치기 보단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열린 자세로 수용하는 지혜를 주시길 오늘도 구해본다. 은혜 없이는 안된다.

    林前 7:40 我的意見是,那女人這樣獨身下去會更有福氣。我想我也有神的靈。 這幾天持續感動我的話語,是我必須清楚分辨自己的意見與神的話語。然而這實在不容易。基督徒若誤解話語而充滿確信,沒有什麼比這更危險的了。正如保羅在提出自己的意見時,說這樣也好、那樣也好——今天我也再次祈求神,賜我智慧,在凡事上不以自己的確信一意孤行,而是尋求神的旨意,以開放的心去領受。沒有恩典,什麼都不行。

    이지연·

    고린도 교인들이 확신에 차 서로 옳다 주장한 것처럼 나 또한 확신에 차 내 주장만을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특히 가정에서 아내에게, 아들에게, 부모님들에게, 누나들에게.. 10년 주기로 그 생각이 바뀌고 그때 옳다 생각했던 것이 아님을 깨우치는 순간마다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바울도 정답이 아닌, 상황에 맞는 옳음, 때로는 차선책을 제시하듯 나 또한 정답만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닌 너그러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就像哥林多的信徒們各自充滿自信、堅持己見一樣,我也想起了自己曾經滿懷把握、只顧主張自我的種種時刻。尤其是在家裡——對妻子、對兒子、對父母、對姊姊們……每隔十年,那些想法便會改變,每當我意識到當時認為正確的事其實並非如此,那些記憶便成了令我羞赧的片段,留存心中。保羅所提出的,並非唯一的標準答案,而是符合處境的合宜之道,有時甚至是退而求其次的選擇——我也盼望自己能成為這樣的人:不是一味堅持標準答案的人,而是能寬容理解他人的人。

    이지연·

    고전 16: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산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온다. 언제나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가령 교회에서는 집에서와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한다. 겸손한 척, 선한 척, 자비로운 척, 심지어 말투도 달라지는 것이 내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왜 그렇듯 주님을 의식하고 살지는 못할까? 이다.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고전 1:26-29 약할때 강함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林前 16:17 但與主聯合的人,就與祂成為一靈。 將主迎入心中而活,這件事讓我感到沉重。我似乎一直活在別人的眼光之中。比如,我發現自己在教會和在家裡判若兩人——裝謙遜、裝善良、裝慈悲,就連說話的語氣都不一樣,這就是真實的我。更大的問題是:為什麼我就是無法如此時刻意識到主、活在主面前呢?與主合而為一地生活,實在太難了。靠自己的力量根本做不到。因此,今天我再次求主的恩典。林前 1:26-29 讚美在我軟弱時成為我力量的主。

    이지연·

    고린도전서 6:7,9-10 예수님의 당하심으로, 고통 받고 죽으심으로 나는 은혜입어 구원받았음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은혜를 도리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데에만 활용하였음을 반성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내가 죄의식조차 없이 지나치는 일상속에서의 잘못들이나 내가 남에게 큰 잘못이다! 판단하며 정죄하였던 것들이 다르지 않았음을 돌아봅니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마태복음 7:3 말씀을 다시 묵상해 봅니다. 손해보고, 져주고, 속아주는 성도의 삶이 주님 가르쳐 주신 사랑일터인데..

    哥林多前書 6:7, 9-10 我記念,因著耶穌所承受的一切——祂的苦難與死亡,我得蒙恩典、領受了救恩。然而,我反省自己竟將那份恩典,反倒只用在論斷他人、定罪他人之上。回想在主眼中,我在日常生活中毫無罪惡感地一帶而過的過失,與我對他人高聲指控「這是大錯!」並加以定罪的事,其實並無二致。我再次默想馬太福音 7:3 的話語:「你看見你弟兄眼中有刺,卻不想自己眼中有梁木呢?」吃虧、退讓、甘願被欺——這樣的聖徒生命,才是主所教導我們的愛啊……

    이지연·

    고린도전서 5:5 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망하게 하고 그의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누룩이 전체에 퍼져서 불어나듯이, 편안함이 나태함이 되고 나태함이 교만이 되어 주님 주신 참 자유가 아닌 육체의 자유만을 추구하였던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님이 걸으신 길은 평탄이 아니고 십자가의 길이었음을 다시 기억합니다. 주님 맡기신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묵상해 봅니다.

    哥林多前書 5:5 你們要把這樣的人交給撒但,使他的肉體滅亡,讓他的靈魂在主的日子得以得救。 就像酵母滲透全團使其膨脹一樣,我回顧自己曾讓安逸變為懈怠,懈怠變為驕傲,所追求的不是主所賜的真自由,而只是肉體的自由。我再次記起,主所走的道路不是平坦之路,而是十字架的道路。我默想:主所託付給我的十字架,究竟是什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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