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를 통해 성도가 마땅히 드려야 할 기도를 배웁니다. 내 고난에만 머물러 있는것이 아닌 열방을 향한 아픔과 중보가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나이가 들고 해가 거듭될수록 기도도 성숙해져야 할텐데 어린아이처럼 나만을 위해 간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너무 내 자신애게만 집중되어 있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이타적인 성도의 기도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그 작은 한걸은부터 내딛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透過大衛的禱告,我們學習聖徒應當獻上的禱告。我們領悟到,不能只停留在自己的苦難中,而應當有對列國的負擔與代禱。在信仰生活中,隨著年歲增長、歲月流逝,禱告也應當日趨成熟,然而卻發現自己仍像孩子一樣,只為自己祈求,呈現出自私的樣貌。我渴望脫去那個過度專注於自我的舊人,轉化為充滿利他精神的聖徒的禱告。今天也祈求這是踏出那小小一步的一天。
오늘의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고통을 토로하며 시작하지만 끝은 감사와 신뢰로 마무리합니다. 다윗을 보며 믿음의 사람이 가야할 길을 배웁니다. 나의 삶도 고통속에 신음하는 날들도 있고 때론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끝은 결국 구원하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으로 마무리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환경을 보지 않고 주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今天的詩篇,大衛以向神傾訴痛苦為開端,卻以感恩與信靠作為結尾。透過大衛,我們學習一個有信心的人所當走的道路。我的生命中,也有在痛苦中哀嘆的日子,有時甚至經歷連禱告都說不出口的傷痛;但我渴望,這一切的終點,終究能以對那位必將拯救我們之神的感恩與讚美來畫下句點。今天,我也祈求那能不看環境、只仰望主的信心。
거짓이 가득한 혼돈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붙들어야 할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뿐임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온갖 정보가 넘치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거짓에 마음이 흔들리고 현혹되기 쉽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주님의 말씀뿐임을 기억하고 더욱 말씀 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헙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남은 날들도 말씀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在這充滿謊言與混亂的時代中,聖徒所當緊緊抓住的,唯有主的話語——我再次將這真理銘記於心。活在資訊爆炸世代的現代人,心思極易被謊言動搖與迷惑,但願我們記住:唯有主的話語是永不改變的真理,渴望成為更加住在話語中的聖徒。讚美主,祢今日再次讓我們以話語開始新的一天;也懇求主的幫助,使我們在餘下的日子裡,始終不放開祢的話語。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께 피해 그분의 도우심을 잠잠히 기다립니다. 인생을 길게 살지 않았지만 저 또한 인생의 바닥이라고 느껴진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시편 11:1절의 말씀처럼 세상은 ‘너는 새처럼 너의 산에서 피하여라’라고 말하는것 같았습니다. 더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더 편법적인 방법으로 피해가라고 조언해주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저또한 남들에게 그랬던적이 한두번이 아닌것 같습니다. 신앙의 기초가 흔들리지 않도록 언제나 하나님께만 피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在根基從底部動搖、什麼都無能為力的處境中,大衛逃奔向神,靜靜等候祂的幫助。雖然我的人生閱歷尚淺,但我也曾有過那些感覺跌入人生谷底的時刻。每當那時,就像詩篇11篇1節的話語所說,這世界彷彿在對我說:「你要像鳥兒一樣,逃往你的山上吧。」告訴我更現實的方法、勸我用更取巧的方式躲避的情況,實在不在少數。我自己對別人也這樣做過,絕不只是一兩次。我衷心盼望自己能被改變,讓信仰的根基不再動搖,無論何時都只逃奔向神。
살다보면 정말 선한 논크리스챤들을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악한 크리스챤들을 만날때도 많은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렸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드는 의문은 과연 내가 생각하는 악인이 하나님 보실때도 악인일까?라는 것입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닌 경우가 적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재판장이 되었던 교만함을 내려놓고 다윗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삼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生活中,我們有時會遇到真正善良的非基督徒,反過來,似乎也常常遇到真正邪惡的基督徒。每當這種時候,我也像大衛一樣,等待著神的審判。
然而,今天在默想話語時,心中浮現了一個疑問:我所認為的惡人,在神眼中也是惡人嗎?雖然無法確定,但我心裡覺得,並非如此的情況應該不在少數。
如今,我渴望放下那自以為是審判官的驕傲,像大衛一樣,徹底以神為審判者,活出這樣的人生。
다윗의 시편을 묵상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쉽게 이해가 되어 그렇기도 하지만 그의 삶을 볼때 지난주일에 목사님이 말씀하신 삶 자체가 예배가 되는 모범적인 모습이 큰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수 많은 죄악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신 이유가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다윗의 삶을 닮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큰 죄악은 멀리하려 노력하지만 삶의 작은 부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단 내 힘으로 해쳐나가려 하는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默想大衛的詩篇,心裡就感到平靜與安慰。一方面是因為詩篇對神的描繪極為細膩,讓人能輕易理解神是怎樣的一位神;另一方面,看到大衛的生命本身,正如上主日牧師所講的「生活本身成為敬拜」的榜樣,這讓我深受恩典。這也讓我明白,為何神能大大使用大衛,儘管他有許多的罪惡與軟弱。
我渴望效法大衛的生命,現實中卻往往力不從心。我努力遠離重大的罪惡,但在生活的每一個細節裡,我卻不倚靠神,反而想憑自己的力量闖過去——我為這份驕傲悔改。
다윗의 시를 묵상하고 있자면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기뻐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드높이는것에만 진심이었음을 봅니다.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매우 섬세하고 진정성 있게 하나님을 묵상하고 찬양하는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며 반면 내 모습과 너무 대비되어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이불킥 속에서도 저 또한 자격이 아닌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이기에 오늘도 부족한 모습마저 기쁘게 받아주실 주님을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默想大衛的詩篇時,心中不禁想著,神究竟有多喜悅大衛。我看見他的心思、意念與嘴唇,都真誠地獻給讚美與高舉耶和華這件事。從睜開眼到入睡,他如此細膩而真摯地默想、讚美神的樣子,正是神創造人類之目的最完美的體現。反觀自己,對比之下,不禁感到慚愧。然而,即便在那無數次懊悔輾轉之中,我也是一位靠著恩典而非資格活著的聖徒,因此今天也要讚美那位願意喜悅接納我不足之處的主,繼續向前行。
시편 7:17 나는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송하고 가장 높으신 주님의 이름을 노래하련다.
다윗은 능력있고 권력을 가졌던 인물이지만 그런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때론 인생의 위기가 찾아오고 억울함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럴때는 의지할곳이 없어 주님을 찾지만 오히려 평탄할때 주님을 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두렵습니다. 평틴할때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고난 가운데서 철저히 엎드려 주의 도우심을 구한 다윗처럼 기쁠때나 슬플때나 주님과 동행하는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정의로운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詩篇 7:17 我要稱謝耶和華,因為祂是公義的;我要歌頌至高者耶和華的名。
大衛雖是一位有能力、有權勢的人物,卻不倚靠這些,而是單單倚靠神而活。人生有時會遭遇危機、蒙受冤屈,在那樣的時刻,因為無處可依,才來尋求主;然而,反觀自己在平順時卻忘記主的樣子,令我感到懼怕。我渴望自己能像大衛那樣——在平坦時讚美主、將榮耀歸給祂,在苦難中徹底俯伏、尋求主的幫助——無論喜樂或悲傷,都與主同行。同時,我也禱告自己能成為一個活在公義中的聖徒。
처음 본문을 묵상하고는 다윗이 정신이 혼미해져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의 묵상 내용이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본문의 참 의미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참회란 내 죄를 잘 정리해서 하나님께 나아와 그것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채로 하나님의 긍휼 앞에 나를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회를 한번도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깨달음의 감사함을 넘어 자유함마저 드는 내용이 큰 은혜가 됩니다. 다윗과 같이 진실된 참회가 있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一開始默想這段經文時,我心裡浮現的想法是:大衛這是神智不清、自說自話嗎?😅 就在那時,牧師的默想內容如同一記深深的迴響進入我心,讓我真正明白了這段經文的意涵。「懺悔,不是將自己的罪整理好、來到神面前一一列舉,而是身無一物可誇、將自己完全投入神的憐憫之前。」我想,自己從來沒有將懺悔思考得如此深刻過。這段話帶給我的,不只是領悟的感恩,更有一種從心而生的自由——這真是莫大的恩典。願我也能像大衛一樣,過一個有真誠懺悔的生命。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예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에는 탄식과 신음도 있지만 끝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배하는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겸손히 주님앞에 나아가는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제사임을 묵상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말씀처럼 상황과 신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주님 앞에서 바로 서 있는지가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방패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삶의 자리에서 언제나 겸손한 예배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在這段經文中,大衛以禱告與敬拜神作為一天的開始。他的禱告中有嘆息與呻吟,卻也充滿了倚靠那位終究賜下勝利之神的讚美與敬拜。默想大衛謙卑來到主面前的心,正是神所喜悅接納的活祭。「你要保守你心,勝過保守一切,因為一生的果效是由心發出。」(箴言 4:23)正如這節話語所說,重要的不是處境或身份,而是我的心是否在主面前站立端正。信靠作我盾牌的主,盼望在生活的每個角落,都能成為一個永遠謙卑的敬拜者。
시편 4:7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8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성숙한 믿음이 놀랍습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모습과 잘나갈때 누리던 것들이 주지 못했던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위기의 순간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은혜가 됩니다. 다윗처럼 넘어졌을때도 주님 주신 기회를 바로 알고 전화위복의 열매를 누리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詩篇 4:7 主啊,你使我心裡滿有喜樂,勝過那些人在五穀和新酒豐盛時的喜樂。8 我必安然躺下睡覺,因為主啊,你使我安然居住。
大衛成熟的信心令人驚嘆。在生命的危機中,他單單倚靠主,享受著那些順遂時光所無法給予的真實喜樂與平安,並在危難之中讚美神——這讓我深受恩典。我渴望能像大衛一樣,即使在跌倒的時刻,也能清楚認識主所賜的機會,結出化危為福的生命果實。
시편 3:8 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다윗이 연약함과 죄악으로 무너졌을때 오히려 그의 믿음이 빛을 발하는 것을 봅니다. 성도의 모습은 이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 또한 날마다 넘어지고 죄악 속에 방황하지만 다윗처럼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구원하실 그분께만 의지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평탄함 가운데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건지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詩篇 3:8 救恩唯獨屬於主。求主賜福給祢的子民。
我看見大衛在軟弱與罪惡中跌倒時,他的信心反而發出光芒。我相信,這就是聖徒應有的樣式。我自己也每天跌倒、在罪惡中徬徨,但我渴望能像大衛一樣,不放開主的手,單單倚靠那位必要拯救我的神,過這樣的生活。願我在平順中不驕傲,在苦難中經歷不離棄我、必要搭救我的主,今天也成為與主同行的一天。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편에 선다는 것은 어떻게 매번 확신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그것을 잘 분별하고 있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입니다. 학창 시절 속해있던 단체에서 되뇌였던 ’백문일답’이란 것이 떠오릅니다. 모든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답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 가정에 방문했던 선교팀이 선물해준 티셔츠에 적혀 있던 ‘WWJD’ 라는 문구도 기억납니다. What would Jesus Do?. 오늘의 본문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속에서 살아가면서 붙잡을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今天在默想話語時,心中浮現的問題是:站在神所喜悅的那一邊,我每一次究竟能有多大的把握?我真的有好好地分辨這件事嗎?這讓我想起學生時代所屬團契中反覆背誦的「百問一答」——用「耶穌基督」來回答所有問題。我也想起了更小的時候,造訪家中的宣教團隊送給我的一件T恤上所印的「WWJD」這句話。What would Jesus Do?(耶穌會怎麼做?)。就像今天的經文所描述的,活在這混亂的時代中,我們唯一能緊緊抓住的,就是耶穌基督!
시편 1:2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을 구별하는 시편의 저자는 말씀에 초점을 두었음을 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그때도 말씀 묵상을 통해서였음을 기억합니다. 또한 의인의 형통한 삶이 모든일이 다 잘되고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성도가 말씀안에 거할때 비록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것마저 다 주님의 뜻이요 계획하심으로 믿고 마음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있음을 압니다.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詩篇1:2 唯喜愛耶和華的話語,晝夜默想的人。
詩篇的作者在分別有福之人與惡人時,將焦點放在了話語上。我想起當初親身遇見耶穌的那一刻,也是透過默想話語而成就的。同時我也領悟到,義人亨通的生命,並不意味著凡事順遂、毫無困難。當信徒住在話語之中,即便遭遇艱難,也能相信那一切都是主的旨意與計畫,從而在心中得著主所賜的平安。我渴望能過一個更加親近話語的生命。
주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을 더욱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품아야겠습니다. 사랑으로 모든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바울처럼 내 인생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져서 모든일을 주님의 사랑으로 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대하기 소망합니다. 주님, 오늘도 은혜를 부어주소서.
我應當懷著更加尊重、珍視那些為主的事工獻身的聖徒們的心。願我的人生也像保羅那樣,以愛開始、以愛結束每一件事,充滿神的愛,用主的愛去做每一件事,用主的愛去對待所遇見的每一個人——這是我心中的渴望。主啊,求祢今天也繼續傾倒恩典在我身上。
고린도전서 16:10 디모데가 그리로 가거든, 아무 두려움 없이 여러분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얼마 전 설교에서 들었던 서로 환대하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결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내게 보낸 사람임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교회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혹은 길을 걸을때에도 이 마음을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진정한 부활신앙을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오늘도 기도합니다.
哥林多前書 16:10 若是提摩太來到你們那裡,要讓他在你們中間無所懼怕,因為他和我一樣,是做主工的人。
默想這段話語,讓我想起不久前講道中所聽到的「彼此款待」的信息。我渴望成為這樣的信徒——認識並尊重身旁每一個人,深知他們絕非偶然出現,而是神親自計劃、差派到我生命中的人。不只在教會,在家庭裡、在職場上,甚至走在路上,都要存著這樣的心活著。今天也禱告,願自己的生命成為真正實踐復活信仰的生活。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말씀를 묵상하며 바울의 권면에 도전을 받습니다. 주님 원하시는 삶을 방해했던 내 가장 연약한 모습은 게으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하고 이 모든 수고를 더하라고 권면하는 바울은 분명 양과 질 모두를 언급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제는 안락함을 조금씩 포기하고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더 감당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哥林多前書 15:58
所以,我親愛的弟兄姊妹們,你們務要堅固,不可搖動,常常竭力多做主工,因為知道你們的勞苦,在主裡面不是徒然的。
默想這段話語,我深受保羅勸勉的挑戰。因為阻礙我活出主所喜悅之生命的,正是我最軟弱的一面——懶惰。保羅勸勉我們要多做主的工、加添一切勞苦,我看見他所提及的,無疑是量與質的並重。如今,我盼望能一步一步放下對安逸的追求,蛻變成更能承擔主所喜悅之事的樣式。
부활을 믿기에 몸과 영이 영원이 부활할 주님 재림하실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지만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구체적인 면들이 존재합니다. 내 생각이 짧고 식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흐릿하게 알지만 주님 오실 그날까지 조금씩 더 선명해질것을 믿기에 오늘도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내 몸과 영혼을 온전하게 바꾸실 성령님에 의지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지금은 밀알처럼 작은 믿음이지만 밀알이 땅에 심기어져 썩고 자라나듯 내 작은 믿음도 자라나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因著相信復活,我們懷抱著身體與靈魂都將永遠復活的盼望,等待主再來的那一天而活;然而在理性上,仍有一些具體的層面是無法完全理解的。這是因為我的思想有限、見識不足。雖然現在只能模糊地認識,但因著相信在主來臨的那天之前,一切將會逐漸變得更加清晰,今天也繼續從話語中領受恩典。願今天成為倚靠聖靈的一天——祂必將我不完全的身體與靈魂,更新為完全。現在我的信心雖像一粒麥子那樣微小,但就如麥子種入土中、腐爛後再生長一樣,我讚美那位必使我微小的信心也得以成長的神。
고린도전서 15:31a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부활을 믿고 기대하며 살아왔지만 오늘 말씀에서 언급하는 부활을 믿는 삶의 열매는 내게 드러나고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날마다 죽는 삶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실천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매일 매일 죽기보다 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엔 참 안타까울것 같습니다. 날마다 자라나고 변해야 할텐데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스스로도 안타깝습니다. 주님과 힘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삶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哥林多前書 15:31a
弟兄姊妹們,我可以確實地說:我是天天死!
我一直相信復活、懷抱盼望而活,但今天藉著話語,我察覺到信仰復活的生命果實,在我身上並未真正顯明。我渴望能深深默想保羅所告白「天天死去」的生命意涵,並活出這樣的生命。每天汲汲於求生、而非甘心死去的自己,想必在神眼中是多麼令人惋惜。本應天天成長、天天更新,我卻只是在原地踏步,連自己都為此感到遺憾。我祈求能重新得力,活出與主同死、與主同活的生命。
끝을 알 수 없어 불안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고된 훈련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역하는 날을 고대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부활의 확신이 있는 성도에겐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제 아들이 고등학교 입시전형 면접을 보았는데 시험 결과는 다음 주 금요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면접관들이 면접 후 바로 합격여부를 알려주었습니다. 금요일까지 불안해 하고 있을 우리의 마음을 배려해 준것 같아 감동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를 체험합니다.
有時候,因為看不到盡頭而感到不安。在軍隊中能夠撐過艱苦訓練的動力,是因為心中盼望著退伍那一天的到來。默想今日的話語,讓我領悟到:對於擁有復活確信的信徒而言,在這世上的生命是何等蒙福、何等喜樂。昨天兒子參加了高中入學的面試,原本考試結果預定在下週五公布。然而感恩的是,面試官們在面試結束後立刻告知了錄取結果。這讓我深受感動,彷彿他們體貼到我們一家在等到週五之前那顆忐忑不安的心。今天,我再次體驗到神細膩入微的眷顧與恩典。
부활하신 주님이 있기에 오늘도 소망을 갖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다면 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을것을 압니다. 복음의 진리와 핵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제것 나의 삶은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것에 만족하며 전하는 삶에는 소극적이고 게을렀음을 반성하고 회개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애써 전하지 못함을 합리화 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런 태도가 익숙함이 되어 부담조차 느끼지 않는 삶이 되어 있음에 회개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感謝因有復活的主,今日也能懷抱盼望而活。我知道若沒有主的死與復活,我的人生將毫無意義。我渴望成為一個不忘福音真理與核心、照此而活的基督徒。然而,回顧至今的生命,我反省並悔改——我只滿足於相信福音、得著救恩,在傳揚的生命上卻消極而懈怠。腦海中浮現出自己以各種理由為無法盡力傳福音而自我合理化的樣子。更悔改的是,不知從何時起,那樣的態度已成為習慣,以至於活在連負擔感都不再有的生命中。我需要主的恩典。
고린도전서 14:20,40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하는 데는 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
모든 일을 적절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은 무엇일까? 머리속으로 그려봅니다. 때때로 믿지 않는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한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집니다. 또한 본이 되지 못하는 교회 모습을 뉴스에서 접할때마다 답답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 13-16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哥林多前書 14:20, 40
弟兄姊妹們,在思想上不要像孩子。在惡事上要像孩子,但在思想上要像成人。
凡事都要合宜,按著次序而行。
默想今日的話語,我思索:身為基督徒,應有的樣式究竟是什麼?在腦海中試著描繪,卻有時浮現出與不信之人毫無兩樣、甚至更不如的自己,令我感到羞愧。每當在新聞中看到無法成為榜樣的教會樣貌,心中也感到沉重與無奈。我再次將馬太福音5章13至16節——神吩咐我們要作世上的光和鹽——深深銘記在心。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을 위해 흘려보내라고 권면합니다. 은사도 결국 남을 위해 사용할때 그 가치가 더해지고 그것이 곧 사랑이라고 알려줍니다. 언제나 주님은 나를 향해 마음을 쓰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듯이 나 또한 남을 위해 내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며 남의 유익을 구할때 그것이 곧 주님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나만 알고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회개하고 이제는 남에게 유익이 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哥林多前書 14:1
追求愛,熱切渴慕屬靈的恩賜,尤其要追求做先知講道。
保羅勉勵我們,要將從神所領受的愛,流淌給身邊的人。他告訴我們,恩賜終究是在為他人使用時,才能彰顯其真正的價值,而這本身就是愛。主無時無刻都將心意傾注在我身上,甚至為我而死——當我也同樣為他人運用所領受的恩賜、尋求他人的益處時,我學到:這正是在實踐主所教導的愛。我願悔改那些只顧自己的歲月,從今以後,渴望活出一個能造就他人的生命。
고린도전서 13: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고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고 모든 은사를 은사되게 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나는 사랑보다 믿음을, 능력을, 지식을, 부요를, 건강을.. 추구해 왔던것 같습니다. 모든 은사는 사람마다 맞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지만 사랑은 동일하게 우리 모두에게 주셨는데 그 가장 귀한 은사를 잊고 살았던 날들이 많았음을 회개합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온전히 흘려보내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哥林多前書 13:13 「如今常存的有信、有望、有愛,這三樣,其中最大的是愛。」
愛能遮掩一切過錯、修復一切關係、使所有恩賜成為真正的恩賜——我深刻體會到,愛是神完全的性情。然而,回顧自己走過的路,我似乎一直在追求信心、能力、知識、富足、健康……而非愛。神將各樣恩賜按著各人所需分別賜下,愛卻是同等地賜給我們每一個人。我為自己長久以來遺忘了這最珍貴的恩賜而悔改。我渴望此生能夠將從主所領受的愛,完全地流淌出去。
고린도전서 12: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한 몸이고 모두 다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귀한 지체임을 묵상합니다. 내 안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하였던 나쁜 마음을 회개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리 했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다르기 때문에 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겸손한 마음을 부어주시길 구합니다.
哥林多前書 12:27
你們就是基督的身體,各人是肢體,各有其分。
默想我們在主裡合而為一,每一位都是主用寶血所買贖的珍貴肢體。為自己內心曾以各種理由對人有所差別對待的惡念悔改。回顧那些不願理解、選擇疏遠與自己不同之人的過去歲月,感謝祢讓我領悟:正因為彼此不同,他們才是更加珍貴的神的子民。今天也懇求祢將主的謙遜之心澆灌在我身上。
성령이 내 안에서 일하시고 주님의 은사를 받았겠지만 내가 받은 은사를 잘 분별하고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님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위해 겸손히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聖靈在我裡面運行,我也領受了主所賜的恩賜,但說實話,我還不太清楚自己是否真正分辨了所領受的恩賜,並將其用於群體之中。我渴望能更敏銳地回應聖靈的引導,並能分辨主所賜給我的恩賜是什麼。也盼望自己能成為一個謙遜地將恩賜用於服事群體的人。
성찬의 참 의미를 기억하며 내 안에 남아 있는 차별과 편견, 내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했던 잘못된 생각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처럼 가정 안에서나 교회에서, 직장에서 또는 거리를 걷는 일상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분열시키는 사람이 아닌 하나되게 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더 가지려고 애쓰는 모습을 버리고 더 나누려고 애쓰는, 배려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아는 그라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記念聖餐的真正意義,將我內心殘留的歧視與偏見、以自己的標準論斷和定罪他人的錯誤想法全然放下,渴望在主裡得著更新。正如主吩咐我們合而為一,願我在家庭、教會、職場,以及日常行走的街道上,都能以真正基督徒的品格,成為使人合一的人,而非製造分裂的人,為此禱告。願我放下汲汲追求擁有更多的樣子,成為一個努力付出分享、懂得體貼、懂得等待的基督徒。今天也懇求主的恩典。
고린도전서 11:16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해석이 갈릴때 참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속으로는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판단할때가 많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이슈나 사회적인 문제 앞에서 많이 느끼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고민이 됩니다. 바울의 조언대로 그런 논쟁하는 풍습 자체가 어쩌면 문제일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움으로 다른 의견을 더 존중할 줄 아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哥林多前書 11:16
若有人想為這事爭論,我們卻沒有這樣的規矩,神的各教會也是沒有的。
當面對話語詮釋出現分歧時,真的很不容易。表面上努力不露出情緒,內心卻常常在想「那樣不對吧⋯」而陷入論斷。尤其在面對政治議題或社會問題時,這種感受特別強烈,每當如此,心裡就充滿掙扎。願我能以保羅的提醒為鑑——那種爭論的風氣本身或許才是問題所在——帶著這份謹慎之心,成為一個更懂得尊重不同意見的人,為此禱告。
고린도전서 11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울과 같이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비랍니다. 가족에게 가장으로써 본이 되지 못했던 지난 모습들이 마구 떠올라 회개합니다. 아내와 아이에게 내가 살지 못했던 삶을 강요하고 스스로에게만 관대하였던 지난 날들을 뉘우칩니다. 앞으로는 더욱 주님의 사랑으로 아내와 아이를 바라볼 수 있길 소망합니다. 오늘부터라도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유익케 하는 단 한가지라도 매일 실천해야겠습니다.
哥林多前書 11:1
我怎樣效法基督,你們也要怎樣效法我。
願我們都能成為像保羅一樣,足以作為榜樣的基督徒。回想過去未能作為家中頂梁柱、為家人樹立榜樣的種種時刻,內心深感悔恨。那些要求妻子和孩子活出自己卻未曾活出的生命,卻只對自己寬容的過去歲月,我深深地懊悔。從今以後,我渴望能以主的愛來看待妻子與孩子。從今天開始,我立志每天至少實踐一件不為自己、而是造福他人的事。
바울의 고백처럼 안주하지 않고 운동선수가 치열하게 절제하듯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으로 살기 원합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치 않으심 또한 잊지 않고 어려움이 있을때 불평하고 낙심하기 보단 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감사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如同保羅的告白,願我不安於現狀,像運動員全力以赴、嚴格自律,過著真正基督徒樣式的生活。同時也不忘神不會允許超過我們所能承受的試煉,當遇到困難時,不是埋怨、灰心,而是懷著期待神所要傾倒的恩典,活出感恩的生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