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8:29
이것도 만군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주님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끝없이 넓다.
내 삶을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묘한 모략과 끝없이 넓은 지혜로 나를 빚어가시고 기르심을 믿습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처럼 헛된것을 의지하여 멸망의 자리에 서지 않도록 오직 흔들리지 않는 주춧돌이 되신 주님만을 의지하며 모든 결정 가운데 말씀의 지혜를 구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머리로만 고민하기에 익숙하고 기도로 먼저 간구하지 못하는 악한 습관을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以賽亞書28:29
這也是出於萬軍之耶和華,他的謀略奇妙,他的智慧廣大。
我相信,掌管我人生的神,正以奇妙的謀略和無窮廣大的智慧塑造並養育著我。願我不像耶路撒冷的領袖們那樣,依靠虛妄之物而站在滅亡之地,而是單單依靠那穩固不搖的房角石——主,在一切決定中都尋求話語的智慧,成為一個有智慧的聖徒。我要悔改自己習慣只用頭腦煩惱、卻不先用禱告懇求的惡習,並祈求主的恩典。
이사야 28:11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알아듣지 못할 말씨와 다른 나라 말로 이 백성을 가르치실 것이다. 12 주님께서 전에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이 곳은 평안히 쉴 곳이다. 고달픈 사람들은 편히 쉬어라. 이곳은 평안히 쉴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예배를 드리는 태도가 잘못되었던 날들이 많았음을 회개합니다. 말씀과 더 가까이 하여 주님의 평안을 누리며 자유하길 소망랍니다.
以賽亞書28:11 所以,主要藉著結巴的嘴唇和外邦人的舌頭,來教導這百姓。12 主曾對百姓說:「這裡是可安歇之處,你們要使疲乏的人得安息;這是可安歇之處。」他們卻不肯聽。
我懺悔自己有許多日子在敬拜的態度上是錯誤的。盼望能更親近話語,享受主的平安,得著自由。
해를 거듭하며 삶 또한 점점 복잦해지는것 같습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늘어나고 가진것이 늘어나며 때론 건강이 하나씩 하나씩 망가져 가는걸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게 계획하고 성취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것이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살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처럼 마지막 날에 결국 남는것은 믿음뿐임을 되새깁니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을 위해 투자하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흩어졌던 시선을 주님께로 옮기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隨著歲月的累積,生活似乎也漸漸變得複雜起來。要撫養的家人增多了,擁有的東西增多了,有時也能感受到健康一點一點地在衰退。就這樣不斷地計畫、達成,也會失敗、也會放棄。因為這些都不是本質,所以也就這麼將就地接受、生活下去。但正如今天的話語所說,最終在末日剩下的,只有信心。因此,我盼望自己的人生能為更重要的事物而投資。願今天也成為將分散的視線重新轉向主的一天,如此禱告。
모르고 지나치던 일상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누려온 모든 것들이 다 주님의 은혜인데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온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내 자리와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삶으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모으고 가꾸고 유지하려 노력해도 결국 이 땅은 없어질 영원하지 못한곳임을 늘 잊지 않고 마찬가지로 모든 권력과 힘과 재물도 다 사라질 것임을 기억하고 오직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루하루를 겸손히 살아가길 구합니다.
這段話語讓我領悟到,過去不曾在意而輕易略過的日常恩典,是多麼值得感謝的事。回想自己在這地上所享有的一切,其實都是主的恩典,卻不懂得感恩地活著,深自反省。願自己能在神所交託的位置上,以及在那裡所遇見的每一個人身上,活出重新更新的生命,將基督徒美善的影響力傳遞出去。然而,無論我們如何努力積蓄、經營、維持,這地終究是會消逝、並非永恆的地方,這一點要時刻銘記在心;同樣地,一切的權力、能力與財富也終將消失。願我們只將盼望寄託於天國,謙卑地度過每一天。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들이 결국 나를 넘어지게 하는 우상이 됨을 말씀을 통해 봅니다.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너무나 쉽게 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주님을 잊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말씀앞에 겸손히 내 마음을 점검하여 오늘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분주함 가운데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없는 내 열심으로 헛된 수고를 하는일이 없도록 항상 마음을 점검하길 기도합니다. 구별된 성도의 성품으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오직 주님안에서만 기뻐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我透過話語看見,那些我曾比神更加依靠的事物,最終竟成了使我跌倒的偶像。忙碌的日常生活中,我們很容易遺忘,也很容易不知不觉地淡忘了主。正因如此,我更願意在話語面前謙卑地省察自己的內心,今天也只單單依靠神前行。求祢在忙碌之中不讓我失去神,也不讓我憑著沒有神同在的熱心徒然勞苦,願我時常省察自己的心。盼望能重生成為分別為聖之聖徒的品格。願今天也成為只在主裡喜樂的一天。
몰락의 계시를 전해야 하는 이사야의 마음은 아마도 매우 무거웠을것입니다. 하지만 그 계시 속에는 구원의 메시지가 있기에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것임을 봅니다. 때로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하나님 이 고난만 지나게 해주시면 열심히 주를 섬기겠습니다”와 같은 거래성 기도를 드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서 두마의 질문과도 같은 현 상황만 모면하고 싶은 임시방편에 불과한 기도를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힘든 지금 내 상황보다 오히려 죽어가고 있는 내 영적상태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고난도 유익이 됩니다.
必須傳達滅亡啟示的以賽亞,他的心情大概非常沉重。但我看見,那啟示之中蘊含著救恩的信息,最終對眾人都是有益的。有時生活感覺太過沉重,以致我也曾禱告過像「神啊,只要讓我度過這個苦難,我就會努力服事你」這樣帶有交易性質的祈求。就像今天經文中杜瑪的提問一樣,那不過是想暫時逃避眼前處境的權宜之計般的禱告。然而我體悟到,神所關注的,往往不是我當下艱難的處境,而是我那正在死去的靈性狀態。所以,苦難也成為了益處。
이사야가 하나님께 순종할때 보이는 모습은 매우 놀랍습니다. 수치스러움을 피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영혼 구원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죽을수 밖에 없는 한 영혼이 구원 받을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시고 예수님은 순종으로 화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삶은 그렇지 못한게 나의 현실임을 깊이 반성합니다. 죽기까지 포기 못하신 영혼구원을 향한 사랑을 본받길 원합니다.
以賽亞順服神時所展現的樣子非常令人驚訝。從他不逃避羞辱的樣子中,能感受到耶穌基督對靈魂得救的熱情與愛。事實上仔細想想,若一個註定要死的靈魂能夠得救,還有什麼比這更重要的事呢?正因如此,神甘願將獨生子耶穌基督獻上在十字架上作為犧牲,而耶穌也以順服來回應。然而,即使頭腦知道這一點,生活卻做不到,這正是我的現實,我為此深深反省。願我能效法那份直到死也不放棄靈魂得救的愛。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지 못하고 환경을 바라보며 날마다 넘어집니다. 기도로 아뢰기 보다 머리로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최선을 찾으려 고심합니다. 계좌의 잔고를 확인하며 안심하기도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돌아온 탕자처럼 내가 의지했던 것들을 철저히 내려놓고 이제는 이 모든것 위에 가장 높으신 그분의 품으로 돌이켜 청조주이신 주님 안에서 평안을 찾길 기도합니다. 내 시선을 주님께 둘 때 모든 염려가 다 부질없음을 깨닫습니다.
儘管身為相信全知全能神的兒女,卻無法只倚靠神生活,反而每天望著環境跌倒。比起用禱告來仰望神,更常用腦袋想像各種劇本,苦思要找出最好的辦法。看著帳戶餘額,時而安心,時而不安。願我能像浪子回頭一樣,徹底放下自己所倚靠的一切,如今轉向那位在萬有之上、至高神的懷抱,在創造主裡尋得平安。當我將目光定睛在主身上時,才明白所有的憂慮都是徒然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심판마저도 내 영혼을 살리시는데 사용하심을 봅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을때 불평하지 않고 그분의 크신 뜻을 기다리며 잠잠하게 하시고 평안할때 교만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今天默想神的話語,感受到神對我的愛。我看見神甚至使用審判來拯救我的靈魂。在困難中,求主使我不發怨言,安靜等候祂偉大的旨意;在平安時,求主保守我不因驕傲而跌倒。
하나님은 피할길을 주시지만 모압의 교만이 이를 막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복음을 모르는 가족이 떠오릅니다. 마지막 때에도 끝내 돌이키지 못하면 안되기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나님은 어쩌면 내게도 기한을 정하시고 마지막 기회를 주시는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요즘 세상을 둘러보면 전쟁과 지진, 기근과 온갖 재난이 끊이질 않습니다. 당장 주님이 오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만큼 세상은 변해가는데 마치 주님이 더디 오시리라고 확신하듯 핑계를 대며 살아왔습니다. 더 늦기전에, 아직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때 그리스도를 전할수 있길 기도합니다.
神賜下逃避的道路,但摩押的驕傲卻阻擋了這條路。默想這段話語時,我想起了還不認識福音的家人。因為即使到了末後的時代,若最終仍無法回轉,那將是多麼令人心痛的事,我的心因此變得沉重。我不禁思想,或許神也為我定了期限,正在給我最後的機會。
環顧最近的世界,戰爭、地震、饑荒與各樣災難不斷發生。世界的變化已經到了主隨時再來也不足為奇的地步,然而我卻彷彿確信主必會遲延再來一般,找盡藉口度日。求主幫助我,在為時未晚、神仍賜下機會之時,能夠傳揚基督。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은 자의 최후를 오늘 말씀에서 잘 보여줍니다. 내안에 쌓여 있는 죄악을 점검하고 돌이켜 회개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한 마음이 날마다 새싹처럼 자라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임재앞에 잠잠히 서 있길 소망합니다. 내 목소리를 낮추고 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하루가 되길 묵상합니다. 말씀을 날마다 더욱 가까이 하길 소망하며 날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삶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沒有一個人能逃避神的審判。今天的話語清楚顯明了不歸向神之人的最終結局。我願意察驗自己心中所積累的罪惡,並且回轉悔改。我發現,神最厭惡的驕傲之心,正如新芽般在我裡面日日滋長。願我今天也能在主的同在面前靜默站立。默想著願自己能放低聲音,用心傾聽主的聲音度過這一天。願我能每天更加親近話語,並禱告求主使我每天都成為一個歸向神的人生。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무너졌던 백성을 다시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감사합니다. 내가 돌이키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자비를 배푸시고 날마다 은혜를 부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도 그 말씀앞에 겸손히 나아가길 원합니다. 나의 지난 날들도 바빌론과 같았음을 알기에 회개합니다. 주님의 은혜없이는 설 수 없는데 마치 내가 다 이룬것처럼 보잘것 없는 위치를 이용하여 남을 억압하며 살아온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참회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진작에 바빌론과 같이 무너졌을 내 자신임을 매 순간 잊지 않길 기도합니다.
感謝神的憐憫,祂使那離開神話語而崩潰的百姓再次得到恢復。在我回轉之前,主早已施行憐憫與慈愛,天天澆灌恩典給我。今天我也願意謙卑地來到祢的話語面前。因為知道我過去的日子也如同巴比倫一般,所以我悔改。若沒有主的恩典,我根本無法站立,但我卻常常彷彿一切都是靠自己成就的,利用微不足道的地位去壓迫他人,這樣的時刻是何等地多,我為此懺悔。我禱告,願自己每一刻都不忘記:若不是神的慈悲,我早已如巴比倫一般崩潰倒塌了。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가 기도하며 구해왔던 것들이 이세상의 부귀와 영화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봅니다. 안개처럼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두고 내가 이룬것이라 착각하는 교만함에서 멀어지길 기도합니다.
雖然嘴上說要以天國為盼望而活,但我回頭省察,自己所禱告祈求的,會不會其實是這世上的富貴榮華呢?願我遠離那將心思放在如霧氣般消散之物上、以為是自己成就的驕傲,為此獻上禱告。
그날의 예언을 통해 구원의 참 의미를 묵상해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셔서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가지만 오늘 이사야 본문의 말씀에서 구원의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복음을 온 세계에 알리는 모습이 내 삶엔 부재했음을 깨닫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헤아리는 자녀가 되길 기도합니다.
透過那日的預言,默想救恩真正的意義。神拯救了我,讓我懷抱盼望等待那日而活;然而,從今日以賽亞經文的話語中,我察覺自己的生命裡,缺少了那種因救恩的感動而讚美神、並將福音傳遍全世界的樣式。無論身在何處、無論遇見何人,我禱告自己能成為一個懂得體察那位差遣我之神的心意的兒女。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어릴적 자주 불렀던 찬양도 생각나고 어린시절 다니던 교회도 생각이 나며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꾸밈없이 예배하던 그때가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교회는 어린아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또 대만 성도들과 한국 성도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예배하는 보기드믄 공동체여서 더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도 너무 소중합니다. 부족한 저를 항상 귀한 공동체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풍성해지길 소망합니다.
今天在默想話語時,想起了小時候常唱的讚美詩,也想起了童年時去的教會,心中感到一陣溫暖。或許是因為懷念那段純粹敬拜的時光吧。我們教會從小孩到成人,台灣的弟兄姊妹與韓國的弟兄姊妹一同敬拜,是一個難得的群體,因此更加美麗。孩子們在敬拜時間自由奔跑玩耍的樣子,也是無比珍貴。讚美主,祂總是引領不足的我進入這寶貴的群體!盼望直到主再來的那一天,認識神的知識能夠更加豐盛。
돌이키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남기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내 열심이 또는 내 능력이 무슨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모든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신이도 하나님이셨습니다. 나의 나된것이 다 주님의 은혜이니 불평할것도 없고 자만할것도 없음에도 아직도 현실은 그렇지 못함에 회개합니다. 그저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순탄할때 아하스처럼 교만해져서 그릇되게 행하지 않게 하시고 유다처럼 시험을 당할때 앗시리아를 의지하는 어리석은자가 되지 않길 기도합니다.
使人回轉的是神,使人留存的也是神,我信這一切。曾有一段時日,我以為自己的熱心或能力能帶來什麼改變,但讓我領悟到一切都是神的恩典的,也是神自己。我之所以成為今日的我,全是主的恩典,本無可抱怨、也無可自滿,然而現實中我仍做不到,為此我悔改。我所祈求的,不過是:當神賜福、一切順遂時,求祢不讓我像亞哈斯那樣驕傲自大、行事乖謬;當遭遇試煉時,也不讓我成為像猶大那樣愚昧、倚靠亞述的人。
오늘 말씀을 통해 삶을 돌아봅니다. 성도는 교만할때 반드시 무너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 내가 왕이 되는 행위임으로 하나님은 교만을 절대 내버려 두지 않으심을 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12 말씀처럼 항상 시선을 주님께 두어 교만을 경계하고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겸손히 예배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없이 사는 삶 자체가 곧 교만임을 절대 잊지 않도록 날마다 성령으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今天藉著話語來省思自己的生命。再次將這真理銘記於心:信徒若驕傲,必然跌倒。驕傲是一種沒有神、自己為王的行為,因此我們看見神絕不會對驕傲視而不見。正如「自以為站得穩的,須要謹慎,免得跌倒」(哥林多前書 10:12)這句話語所說,願我們時常將目光定睛於主,警惕驕傲,成為每天在神面前謙卑敬拜的信徒。我禱告求主每天用聖靈引導我們,使我們絕不忘記:沒有主的生命本身就是驕傲。
이사야 10 :1,2
불의한 법을 공포하고,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제정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외면하고, 불쌍한 나의 백성에게서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들을 노략하고, 고아들을 약탈하였다.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도 내가 과연 사회를 살아가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불의를 버리고 정의를 실천해왔는지를 돌아봅니다. 성도의 영적 신앙과 삶이 분리될 수 없는데 때때로 불법과 편법을 넘나들며 타협하고 살아왔음을 회개합니다. 주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성도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以賽亞書 10:1,2
「你們這些制定不義法令、頒布苛政害民的人,有禍了!
你們枉屈窮乏人的訴訟,奪去我困苦百姓的權利,以寡婦為擄物,以孤兒為掠物。」
默想話語,今天我也反思自己在社會中生活,是否真的捨棄了神所要求我們拒絕的不義,並且實踐了公義。聖徒屬靈的信仰與生活本不可分離,然而我卻時常在違法與投機取巧之間妥協度日,為此悔改。願我能過一個不玷污主名的聖徒生活。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 은혜가 오늘도 살아갈 힘을 공급해 주니 참 감사합니다. 밤이 지나고 오늘 새 아침이 밝은것처럼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엔 오늘 이사야 말씀처럼 가장 어두었던 그곳부터 빛을 비추시고 모두 역전시키실 것을 믿기에 오늘도 그저 겸손한 예배자의 모습으로 서있길 기도합니다. 드리워진 어둠을 걱정하지 않고 빛을 비추실 주님께만 마음을 둘 수 있길 소망합니다.
我相信神是必定成就一切的信實之神。因為透過話語所揭示的神的應許必定會實現,所以聖徒們懷抱盼望而活。這份恩典今日也供應了繼續生活的力量,真是感恩。正如黑夜過去、今日新的清晨來臨,我相信主再來的那一天,就如今日以賽亞的話語所說,祂必從最黑暗之處開始照耀光明,將一切翻轉。因此,我今日也禱告自己能以謙遜敬拜者的姿態站立。我盼望自己不憂慮籠罩的黑暗,只將心思放在那位必要照耀光明的主身上。
실로아 물과 같이 흐르는 주님의 은혜는 깨닫지 못하고 앗시리아만을 의지했던 것이 꼭 내 지난 인생과도 같아 아차싶습니다. 이사야처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여 매일같이 잔잔하게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보다 나은 내일만을 기다리며 오늘을 풍성히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깨우치길 기도합니다. 내게 주신 실로아 물을 깊이 묵상하는 히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如同西羅亞水般靜靜流淌的主的恩典,我卻渾然未覺,只倚靠亞述——這與我過去走過的人生何其相似,讓我心中一驚。願我能像以賽亞一樣,單單倚靠那永不改變的神的話語,每天對那涓涓細流、不息湧現的神的恩典心存感謝。也求神開啟我的眼,讓我不再愚昧地只盼望更美好的明天,卻無法豐盛地享受今天所擁有的一切。願今天成為深深默想神所賜給我的西羅亞水的一天。
임마누엘 하나님을 잊고 내 힘으로 살아왔던 수많은 날들을 회개합니다.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믿음으로 서 있을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일상 가운데서 날마다 환경을 더 바라보게 되는 연약한 내 자신이 안타깝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말씀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인생의 작고 큰 결정을 할때마다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릇된 길로 갔던 아하스의 모습을 버리고 순종의 길을 갔던 이사야의 모습이 되길 기도합니다.
我為那許多忘記以馬內利之神、憑自己力量生活的日子悔改。我心裡清楚,當我將心定睛在那位時刻與我同行的神身上、憑信心站立時,便不會動搖——然而在日常生活中,我卻更容易被眼前的環境所牽引,對自己這份軟弱感到惋惜。我渴望自己能單單倚靠那不會動搖的話語,相信神在其中運行,並轉變為一個順服而行的人。我盼望自己在人生每一個大小決定之前,都不忘向神祈求,讓這成為我生命的樣式。因此,我禱告,願我捨去亞哈斯走在悖逆之路上的樣子,成為如以賽亞那般走在順服之路上的人。
오늘 이사야 말씀을 묵상하며 지난 주 설교에서 들었던 사무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택하시고 부정한 입술이라고 고백하는 이사야를 택하십니다. 그리고 친히 자라게 하시고 그 죄를 사하십니다. 처음 들려주신 그 음성 또한 감당하기 버거운 심판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매우 무겁게 다가옵니다. 나라면 어떨까? 쉽사리 복음도 전하지 못하는 나인데.. 하지만 다시금 깨닫게 하십니다. 사명을 맡기신 분도 주님이시요. 그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라는 것을요. 주님만 의지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今天默想以賽亞書的話語時,想起了上週講道中聽到的撒母耳記話語。神揀選了年幼的撒母耳,也揀選了承認自己嘴唇不潔的以賽亞。祂親自使他們成長,並赦免他們的罪。起初所賜下的那個聲音,也是關於難以承擔的審判預言。今天的話語讓我感到非常沉重。如果是我,會怎樣呢?我連福音都不容易傳出口……但祂再次讓我明白:託付使命的是主,賜下承擔那使命之力量的也是主。願今天成為單單倚靠主的一天。
오늘말씀에서 보듯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악은 또다른 악으로 이어지는것을 봅니다. 말씀과 멀어질때 결국 죄악과 타협하게 되는 내 자신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내 안에 선함이 없으므로 항상 말씀을 가까이하여 분별하는 지혜를 오늘도 구합니다.
正如今日話語所示,我看見罪生出另一個罪,惡也接連引發另一個惡。每當遠離話語時,我無數次經歷自己終究與罪惡妥協的軟弱。因我心中沒有良善,今日我再次求神賜下智慧,使我常親近話語、能夠分辨善惡。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로 언제나 최선의 것을 허락하시는 분임을 묵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열매를 맺고 살아왔던 날들임을 회개합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알지 못하고 타락하여 결국 모근것을 잃은 것이 내 인생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울타리 되시는 주님의 존재마저 인식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행했던 유다는 결국 모든것을 거두시는 주님을 체험하게 되었듯 주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내멋대로 살아왔던 날들이 많았음을 돌아봅니다.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어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默想神以公平與公義,時時賜下最美好的事物。然而,我在此悔改——那些未能結出符合神期望之果子的日子。我深刻體認到,猶大不知神的看顧而走向墮落,最終失去一切,這與我自己的人生並非毫無關聯。猶大甚至未能意識到主作為籬笆的存在,任意妄為,最終經歷了那位收回一切之主;同樣地,我也回顧那許多不認識主、隨心所欲度過的日子。我盼望今天能成為一個因主藉著話語使我醒悟、並蒙主看顧之恩典而心存感謝的日子。
오늘 이사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도 결국 우리를 살리기 위함임을 묵상합니다. 어제 설교 말씀처럼 결국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봅니다. 악하고 잘못된 나를 책망하심으로 정결케 하시고 회복되는 은혜를 오늘도 말씀을 통해 깨닫고 내안에 싹트고 있는 죄악을 점검하고 돌이키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들을 귀를 허락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今天透過以賽亞書的話語,默想神的審判最終也是為了使我們得生。正如昨天的講道信息,看見神的恩典終究是使一切翻轉逆轉的恩典。藉著祂責備邪惡、有過失的我,使我得以潔淨、恢復——今天也願透過話語領悟這份恩典,禱告這一天能省察在我內心萌芽的罪惡,並且回轉歸正。今天也再次求主賜下能聽見的耳朵,渴慕祢的恩典。
하나님 대신 내가 의지했던 모든것이 다 우상숭배임을 압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함에도 실상은 그렇지 못할때가
너무 많음에 참회합니다. 우상이 되었던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하는 삶이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我知道所有我曾依靠的事物,若不是出於神,都是偶像崇拜。即使應當全然倚靠神,卻有太多時候未能如此,為此我深深懺悔。我渴望能放下那些曾成為偶像的事物,過一個單單倚靠主的生命。
오늘 이사야 본문을 묵상하며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아가는데 헛된 것을 의지하고 움켜쥐며 살고 있음을 돌이켜 봅니다. 마지막 때에 내가 의지하고 우상으로 만들었던 모든 것이 다 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내 자신을 회개합니다. 말씀 없이는 한순간도 바로 서 있을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내 모습은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실때 한시도 깨어 있을 수 없냐고 책망받았던 제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날마다 넘어지지만 그렇기에 더 주님의 은혜로만 오늘도 살길 원합니다.
今天在默想以賽亞書的經文時,我回顧自己在這世上以朝聖者身分行走,卻仍依靠虛空之物、緊握不放的生命狀態。末後的日子,我所依靠、視為偶像的一切都將消逝——即便明白這個道理,我卻依然無法輕易放手,為此向神悔改。我承認自己離開話語連片刻都無法站立的軟弱與局限,謙卑地尋求主的引領。我的光景,就如同在客西馬尼園裡,當耶穌禱告時,因無法儆醒片刻而受到責備的門徒一樣。每天雖然跌倒,但也正因如此,今天我更渴望單單靠著主的恩典而活。
유다가 처음부터 타락한 성읍은 아니었지만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지도자들이 타락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습니다. 성도란 어찌보면 모두 세상에서 영적 지도자와 같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신분으로써 성도의 타락은 곧 지도자의 타락으로 성읍 전체의 몰락을 이끌었던 유다와 다를바 없다는 부담감을 항상 지니며 살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기준삼고 성령이 이끄시는데로 또한 양심껏 살아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猶大起初並非一座墮落的城邑,然而當公平與公義消失、領袖們腐化墮落,城邑便急速沉淪。以此為鑑,我深刻反思。聖徒在某種意義上,都是世上屬靈的領袖,肩負著光與鹽的使命。聖徒的墮落,正如領袖的腐化導致整座城邑覆滅的猶大一樣,毫無二致。我當時刻懷抱這份責任感,認真生活。願今天也以話語為準則,順著聖靈的引導,並憑良心活出每一天。這是我今日的禱告。
이사야 1: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이사야 선지자가 본 이상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나의 삶의 산제사를 원하시지 주일날만 가면을 쓰고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시지 않는다는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1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요구하시지 꾸며진 의식을 원하시는게 아님을 봅니다.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도 정의를 구현하려 애쓰는 모습이 있길 기도합니다.
以賽亞書 1:17 學習行善,尋求公義,解救受欺壓的人,為孤兒伸冤,為寡婦辯護。
透過以賽亞先知所見的異象,我們得以認識神的心意。我再次領悟到,神所渴望的,是我將生命作為活祭獻上,而非每逢主日便戴上面具、流於形式的敬拜。正如第17節的話語所示,神所要求的是極其具體而真實的生命樣式,而非精心雕琢的宗教儀式。我禱告,願自己在今天所賜的每一天中,都能竭力活出公義。
예배자의 삶은 일상에서 드러나야함을 본문을 통해 묵상하게 됩니다. 며칠전 마이클잭슨의 삶을 그린 영화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린시절 교회에서는 그의 겉모습을 평판하며 소위 악마로 비유하던 어른들을 많이 보며 자랐던지라 편견이 깨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었는지 믿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삶을 보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이웃을 향한 사랑과 나눔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봅니다. 나의 삶도 이렇듯 교회에 다녀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드러나는 태도가 참된 성도의 모습이고 예배자의 삶이되길 기도합니다
透過本文,我默想到敬拜者的生命應當在日常生活中彰顯出來。幾天前,我看了一部描繪麥可·傑克森生平的電影,深受感動。由於我從小在教會裡,看著許多大人批評他的外表、甚至將他比喻為魔鬼,要打破這份偏見著實花了很長的時間。雖然他是否相信耶穌並不確定,但從他的生命來看,我看見他活出了耶穌的形象,充滿了對鄰人的愛與分享。我也禱告,願我的生命同樣如此——不是因為上教會,而是在日常生活中所流露出的態度,才是真正聖徒的樣式,也是敬拜者的生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