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의 고백보다 중요한것은 삶으로 살아내는 것임을 묵상합니다. 기드온의 고백은 하나님만을 높이며 은혜롭지만 그의 행동과 삶은 전혀 달랐기에 결국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이어집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매일의 묵상도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묵상하고 깨닫게 하신것을 삶에서 적용하지 못한다면 기드온이 만든 에봇과 다를바가 없을것입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살아낼 수 있는 은혜를 구합니다.
我默想到,比嘴上的告白更重要的是用生命去活出來。基甸的告白將榮耀完全歸給神,充滿恩典,但他的行為與生活卻截然不同,最終導致了不順服與偶像崇拜。我看見自己現在正在做的這每日默想,其實也沒有什麼不同。若不能將默想與領悟到的道理應用在生活中,那就與基甸所造的以弗得沒有分別了。今天也求主賜下恩典,讓我能將所領受的話語深深銘記在心,並在生活中活出來。
승리뒤에 찾아오는 교만은 고난중에 깨닳은 소중한 진리를 한순간에 잊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공 뒤에 초심을 잊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능력임을 압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것이 아님을 묵상합니다. 고난도 승리도 온전히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입술과 마음으로 선포하고 스스로 높이며 교만해지지 않도록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我體會到,勝利之後隨之而來的驕傲,擁有一種可怕的力量,能在瞬間讓我們忘記在苦難中所領悟的寶貴真理。就連不信主的人也知道,成功之後不忘初心、持守謙卑的心,本身就是一種能力。然而我默想到,這並不是靠人的力量就能做到的事。今天我也用口與心宣告,苦難與勝利都完全是耶和華所允許的,並祈求主的恩典,使自己不至於自高自大、驕傲自滿。
의심하고 불안에 떨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용기를 주시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불가능할것 같던 삼백용사를 이끌고 미디안을 무찌릅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내 불안보다 내 걱정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크고 놀랍습니다. 내 상황과 초라한 현실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나아가 승리후에 안정속에서 주님을 잊고 교만해지지 않도록 더욱 낮아지고 부인하는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든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神向充滿疑惑、顫抖不安的基甸賜下勇氣,也賜下信心。因此他才能率領看似不可能成事的三百勇士,擊敗米甸人。神所賜的信心就是如此,遠遠大過我的不安、我的憂慮,大到無法比擬、令人驚嘆。願我不因自己的處境與卑微的現實而沮喪,而是能單單倚靠使人得勝的神,勇往直前。更進一步,我懇切盼望,在得勝之後、在安穩之中,不要忘記主而變得驕傲,反而能活出更加謙卑、捨己的生命。這一切都是主的恩典。
기드온의 삼백용사가 주는 의미를 묵상하며 내 삶 가운데도 하나님께서는 대개 내 생각과 다르게 역사하실 때가 많았음을 돌아봅니다. 기드온처럼 불안한 마음이 가득한 나를 살피시는 주님의 배려일것입니다. 삼백용사조차 사실 승리를 위해 필요한 정예요원을 남겨두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은혜가 됩니다. 계획대로 순조롭게 인생이 풀렸던 어린시절도 있었지만 그때는 하나님을 찾지않고 교만함으로 가득한 비참한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또 낮추시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게 히시고 오늘도 그 은혜안에 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默想基甸的三百勇士所帶給我的意義,回顧自己的人生,發現神做工的方式常常與我的想法不同。這應該是主體貼像基甸一樣心中充滿不安的我的緣故吧。連三百勇士其實都不是為了留下贏得勝利所需的精銳而揀選的,這一點讓我深受感動、滿有恩典。雖然也曾有過人生按照計畫順利發展的年少時光,但那時我並沒有尋求神,反而是充滿驕傲、悲慘的人生。感謝神透過一次又一次的降卑,使我學會倚靠祂,也讓我今天仍活在那恩典之中。
어제 기드온을 강한 용사라고 불러주신 하나님은 기드온의 약함마저 들어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아니 오히려 약하기에 더 하나님께 붙들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사람의 능력을 보고 두려워 했던 지난날들이 많지만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바라보고 순종하는 기드온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길 기도합니다. 때로는 의심하고 징표를 보여달라고 부르짖는 기드온처럼 내 안의 연약한 믿음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 나약함마저 사용해주시는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내 맡겨주신 자리에서 나름의 용기를 내어 순종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昨天稱基甸為大能勇士的神,是連基甸的軟弱都能拿來使用的那一位。不,我相信正因為軟弱,反而更能被神所抓住。過去有許多因看見人的能力而懼怕的日子,但如今我禱告求主使我改變,像基甸一樣,只仰望神的能力並順服。有時像基甸那樣心存懷疑、呼求神給予徵兆,我裡面雖然只有軟弱的信心,但我仍要單單仰望那位連這軟弱都願意使用的主。願我今天也能在祢所交託的崗位上,拿出屬於自己的那份勇氣,順服度過這一天,如此禱告。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평안을 허락하시면 금세 은혜를 잊고 죄악으로 돌아갑니다. 이 얼마나 고집스럽고 미련한지 개탄스럽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듯 아모리 사람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결국 우상숭배를 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내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속에서 살아가며 세상이 만들어 놓은 성공, 재물과 같은 우상을 수없이 섬겨온것이 내 모습임을 부인할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것만이 우상인줄 알았는데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한것도 우상임을 깨닫습니다.
以色列一旦神應允禱告、賜下平安,就馬上忘記恩典、重回罪惡之中。這是多麼頑固又愚昧,令人感到痛心。更嚴重的問題是,如同今天經文中所出現的,他們輕看神所吩咐「不可事奉亞摩利人的神」這句話,最終走向拜偶像的地步。然而我意識到,這其實正是我自己的樣子。生活在這世上,我無法否認自己也曾無數次事奉這世界所塑造出來的成功、財富等偶像。我原以為只有比神更愛的對象才算是偶像,如今才明白,比神更懼怕的對象同樣也是偶像。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승리를 안겨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전쟁의 승패가 인간의 전략이나 탁월한 무기가 아니듯 인생의 흥망성쇠도 다 여호와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음을 봅니다. 모든것이 내 뜻대로 항상 잘 풀릴수는 없지만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복된 성도의 길을 걷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어둠에서 건지시고 내게 빛을 비추어 주실때 드보라처럼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는 신실한 종이 되길 기도합니다.
讚美賜給愛神之人得勝的神。戰爭的勝敗並非取決於人的戰略或精良的武器,同樣地,人生的興衰起伏也都在耶和華的計畫當中。雖然不能事事都如我所願、一帆風順,但我禱告,無論處在什麼樣的環境中,都能走在始終信靠並愛神的蒙福聖徒道路上。並且禱告,當神將我從黑暗中拯救出來、照亮我的時候,願我能像底波拉一樣,第一時間向神獻上感恩的讚美,成為忠心的僕人。
하나님께 드리는 드보라의 찬양은 승리를 허락하시고 이스라엘을 시스라의 철병거 부대로부터 구원하신 직 후 올려드리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승리에 도취되어 우쭐되는 교만함으로부터의 경계와 정확한 자가진단의 모습이 귀감이 됩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이 고통속에서 부르짖는 모습은 자주 보이나 승리 후 평안함 가운데 겸손히 여호와를 찬양하고 예배하는 모습이 부재할때 다시 무너지고 죄악 가운데 거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승리를 내 공으로 착각하는 어리석는 모습이 아니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의 예배를 드리는 자녀가 되길 기도합니다.
底波拉獻給神的頌讚,是在神應允得勝、將以色列從西西拉的鐵車部隊手中拯救出來之後,所獻上的感恩頌讚。她沒有沉醉於勝利、驕傲自滿,反而懂得警醒自省、正確地檢視自己,這一點成為我們的榜樣。我們常看見以色列犯罪後在苦難中呼求神,但當得勝後在平安之中,若缺少謙卑敬拜、頌讚耶和華的心,便會再次跌倒,重新陷入罪惡之中。願我們不要愚昧地把神所賜的勝利誤以為是自己的功勞,而是成為感謝拯救我們的神、獻上頌讚敬拜的兒女,為此獻上禱告。
하나님을 의지한 바락은 무시무시한 시스라의 철병거를 전멸시켰지만 야엘을 의지한 시스라는 평안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을 맞게되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것도 내게 참 평안을 줄 수 없음을 깊이 묵상합니다. 야엘의 이불속과 같은 안락한 환경과 도울자, 때로는 철병거와 같은 듬직한 무기가 나에게 안정을 가져다 줄것처럼 최선을 다해 갈구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믿음없고 미련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특히 자녀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안전한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依靠神的巴拉,全然殲滅了西西拉那令人畏懼的鐵車軍隊;但依靠雅億的西西拉卻沒有得到平安,反而迎來了死亡。我深深默想,世上任何事物都無法給我真正的平安。像雅億帳篷裡舒適的被窩那樣的安逸環境、幫助者,有時甚至像鐵車那樣可靠的武器,我卻竭盡全力地渴求它們,彷彿它們能帶給我安穩,卻常常沒有察覺這是多麼無信心又愚昧的模樣。特別是我反省並悔改,是否對孩子只談論為了安穩的未來該做什麼,而不是談論對神的信心。
바락의 조건부 순종이 마치 내 기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여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종종 위기의 순간을 맞을때면 주님과 거래하듯 조건을 달며 기도했던 기억이 떠으릅니다. 믿음이 약하여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조금 더 선명한 싸인을 보여주시길 기다리며 주저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인간적인 유불리를 따져보다가 마음에 결정을 못하는 것인데 말이죠. 앞으로는 드보라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선명하게 듣고 즉각 순종할 수 있는 모습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구합니다.
巴拉那有條件的順服,彷彿就是把我的禱告原封不動地搬了過來,讓我心裡感到沉重。每當面對危機時刻,我常常想起自己像在跟主討價還價似地,附加條件來禱告的記憶。我為自己因信心軟弱、無法全然順服的樣子悔改。即使到了必須做決定的時刻,我也常常猶豫不決,等待神給我更明確的記號。但其實,那只是因為我在權衡人性的利害得失,才遲遲無法下定決心而已。今後,我懇切祈求能像底波拉一樣,清楚聽見神的聲音,並立刻順服,成為煥然一新的人。
옷니엘이 죽자마자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 앞에 범죄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에훗을 세우시고 다시 이스라엘은 범죄하고 다시 삼갈을 세우시고…이 반복되는 사사기가 마치 나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구원받은 지녀로 거룩하게 서 있어야 하지만 날마다 죄악 가운데 씨름하며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로 마음 중심의 생각 가운데 있는 죄악이라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기에 스스로도 모르고 넘길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주님은 다 이시기에 더욱 깨어있길 간구합니다. 오늘도 정결하게 하시는 그분앞에 서 있길 기도합니다.
俄陀聶一死,以色列人立刻又在神面前犯罪。神再次興起以笏,以色列人又犯罪,神又興起珊迦……士師記中這不斷重複的循環,就好像是我的人生一樣。雖然身為得救的兒女應當聖潔地站立,但我卻發現自己天天都在罪惡中掙扎,反覆跌倒。
大多是內心深處的罪惡,因為不會表現在外表上,所以常常連自己都不知不覺地就這樣放過了。但鑒察人心的主全都知道,所以我祈求能更加儆醒。今天也祈願能站立在那位使人潔淨的主面前。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백성들은 결국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가나안을 쫒아내지 못한 대가를 대대 후손에까지 죄악으로 물들임을 봅니다. 내 안의 바알과 아세라가 무엇이었는지 묵상해 봅니다. 결국 내가 끊어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했던 양심의 문제들, 물질과 건강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회개합니다. 자녀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지 못했던 삶이 앞으로 다가올 자녀의 미래에 안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고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모습으로 서 있길 기도합니다.
我看見不事奉神的百姓,最終事奉了巴力和亞舍拉,而未能趕出迦南人的代價,竟使罪惡浸染到世世代代的子孫身上。我默想著自己心中的巴力和亞舍拉究竟是什麼。我悔改自己那些始終無法斬斷、總是妥協將就的良心問題,悔改自己是否活在比起神更信賴財物與健康的生活中。我禱告求主幫助我,不要讓自己未能在信仰上為子女立下榜樣的生命,對將來子女的未來帶來不好的影響,願我能更加謹慎,在神面前站立成為純潔的樣式。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범죄합니다. 그들의 유익을 위해 몰아내지 않은 가나안이 결국 하나님을 가장 진노하시게 하는 우상숭배로 이어진것입니다. 약탈과 고통 가운데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죄악은 진정한 돌이킴이 있는 회개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볼때 본문의 아스라엘과 너무 닮아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긴다고 하면서 동시에 다른 수많은 우상숭배를 해왔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완전하게 돌이킬 수 있도록 그분의 은혜를 간절히 구합니다.
以色列事奉巴力和亞斯她錄,在神面前犯罪。為了他們自己的利益而沒有趕出的迦南人,最終導致了最令神發怒的拜偶像行為。在掠奪與痛苦之中,他們再次向神呼求,但也僅止於當下而已。這種反覆的罪惡顯明了他們並沒有真正悔改、真正回轉的心。
回顧自己走過的人生,發現自己竟與經文中的以色列如此相似。腦海中浮現出自己一邊說著敬拜、事奉神,一邊卻同時做著無數拜偶像之事的模樣。如今,我懇切祈求祂的恩典,使我能夠完全地回轉歸向祂。
영적 지도자들이 모두 죽자 신앙이 사라져버린 이스라엘을 보며 하나님과 대면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봅니다. 내 삶에도 신앙을 이끌어 준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있지만 결국 중요한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임을 묵상합니다. 또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는 말씀을 묵상하며 신앙을 승계하고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은혜를 배풀어 주신 하나님을 자녀에게 더욱 힘써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看著所有屬靈領袖都相繼過世後,信仰隨之消失的以色列,我看見與神面對面建立關係的重要性。我的生命中也有許多帶領我信仰的屬靈領袖,但默想後發現,最終重要的還是神與我之間的關係。同時默想到不認識主的新世代興起的這段話語,我再次體認到傳承信仰、引導兒女走正路是身為父母的責任。我下定決心,要更加努力地將這位在我們生命中做工、賜下恩典的神教導給我的兒女。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것이 결국 훗날에는 각종 우상숭배로 이어집니다. 끊어내지 못하고 타협한 작은 죄악이 불어나서 결국 나를 망치게 하는 큰 재앙이 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지난주 설교 말씀처럼 결국 변명과 합리화가 불순종의 대가를 치루게 되는 씨앗임을 기억합니다. 내 마음이 온전히 주님의 뜻과 합하였는지를 말씀으로 겸손히 점검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以色列沒有完全趕出迦南人,結果導致日後演變成各種偶像崇拜。我學到一個功課:那些沒有斬斷、反而妥協的小罪惡,日積月累之後,可能會變成毀滅自己的大災難。就像上週的講道信息一樣,我記得辯解與合理化終究會成為付出不順服代價的種子。願我能藉著話語謙卑地省察,自己的心是否完全與主的旨意相合,為此禱告。
삿 1: 21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자손과 함께 살고 있다.
본문을 묵상하며 내 영적신앙의 상태가 교차됩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아직도 남아있는 죄의 습성을 끊어내지 못한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한 모습과 같습니다. 불순종으로 쫓아내지 못한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의 세대에까지 반복적으로 발목을 잡는 모습을 기억해야겠습니다.
士師記1:21 便雅憫子孫沒有趕出住在耶路撒冷的耶布斯人,耶布斯人就與便雅憫子孫同住在耶路撒冷,直到今日。
默想這段經文,讓我的屬靈信仰狀態交織浮現。雖然相信神,卻無法完全順服,尚未斷除殘留的罪性習慣,與世界適當妥協地生活著——這樣的樣子,就如同沒有完全順服神的命令、無法趕出耶布斯人一樣。我要謹記,因不順服而未能趕出的耶布斯人,反覆地在大衛的世代裡成為絆腳石。
여호수아의 죽음 뒤 유다 지파가 바로 하나님께 여쭘으로 순종을 나타냅니다.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지 못하는 불순종의 모습으로 시므온 지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하나님 한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간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제 모습도 다르지 않음에 회개합니다. 주님 한분만 의지하면 되는데 자꾸만 세상의 방법과 도움을 구하려 애씁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約書亞死後,猶大支派立刻向神請示,展現了順服的樣式。這固然值得稱讚,但另一方面,他們向西緬支派求助,也顯露出無法完全依靠神的不順服。這清楚顯明了人心裡「單單依靠神還不夠」的想法。我發現自己的樣子也沒有什麼不同,為此悔改。明明只要單單依靠主就可以了,卻總是想方設法尋求世上的方法和幫助。願今天能不倚靠人,而是以全然的順服來親近神。
하나님께 바로 나아갔던 히스기야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자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본래 성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인데 나 또한 위기때만 하나님을 찾기에 급급했던 날들이 떠올라 당혹스럽습니다. 내 삶을 평탄하게 인도하실 때에 오히려 더 주님을 붙들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함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던 삶을 돌아봅니다. 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뤄야 하는데 히스기야 때처럼 그 대가를 만약 내 후손이 치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주님께 묻고 또 묻는 인생으로 거듭나길 기도합니다.
曾經直接來到神面前的希西家,在脫離死亡危機之後,卻忘記了神。信徒本來的目的是要讚美神,但想到自己也曾經只在危機時才急切地尋求神的那些日子,心裡感到相當慚愧。明明知道當神引導我的人生走得平順時,反而更應該緊緊抓住主、儆醒不落入試探,我卻回顧自己並沒能做到這樣的生活。罪的代價是必須償還的,一想到就像希西家的情況一樣,這代價若要由我的後代來承擔,就令人不寒而慄。禱告求主賜我重生,成為不斷向主詢問、不斷尋求主的人生。
어제도 오늘도 히스기야는 먼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습이 귀감이 됩니다. 그의 삶을 통틀어 신앙의 습관이 매우 바람직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온전하게 서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 땅에서 그애게 맡기신 직분은 왕이었지만 그 마음의 왕좌는 언제나 하나님께 내어드렸음을 봅니다. 이런 삶을 살아내기란 정말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매일같이 묵상하며 다짐해 보지만 매일같이 무너집니다. 기도를 소홀히 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히스기야처럼 언제나 먼저 주님께 아뢰는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도합니다.
昨天也好,今天也好,希西家總是先以禱告來到神面前的樣子,成為我們的榜樣。綜觀他的一生,可以看出他信仰的習慣非常值得效法,對神的信心也堅定不移。雖然在這地上神託付給他的職分是君王,但我看見他心中的寶座,總是讓給了神。要活出這樣的生命實在不容易。雖然每天默想、立志,卻也每天跌倒。我為疏於禱告的樣子悔改。願我也能像希西家一樣,總是先向主稟告,求主使我得以重生。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셨습니다. 전투 한번 없이 산헤립은 끝이 납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아래 이루어졌음을 봅니다. 그것을 알고 순종했던 히스기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으로써 군대를 준비하고 전쟁을 도모할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잠잠히 기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게도 이러한 분별력과 지혜가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마땅히 있어야할 곳에서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回應希西家禱告的神,從頭到尾全都成就了。沒有一場戰役,西拿基立就結束了。我看見這一切都是在神的計畫之下成就的。知道這一點並且順服的希西家,什麼都沒有做。身為王,他其實可以整備軍隊、謀劃戰事,但他沒有這麼做。因為神吩咐他要安靜等候。我也禱告求神賜給我這樣的分辨力與智慧。我盼望自己能成為一個智慧的聖徒,在我當在的地方,做我當做的事。我願意放下那種以為自己能改變什麼的錯覺。
히스기야 왕이 의지했던 하나님과 앗시리아의 왕이 의지했던 자신의 힘과 부와 군사적인 능력이 대조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지 세상의 방법으로 성벽을 쌓으며 안도감을 찾으려 하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또한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히스기야를 본받길 소망합니다. 내 방법으로 다 해보고 벼량끝에서 어쩔수 없는 절박한 마음이 들때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던 지난날들을 회개합니다. 교만이 하나님 없이 사는것이듯 겸손은 곧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을 인정함에서부터 시작되는것을 잊지 않길 기도합니다.
希西家王所倚靠的神,與亞述王所倚靠的自己的力量、財富和軍事能力,形成了強烈對比。我反省自己是否真的倚靠神而活,還是在用世上的方法築起城牆,試圖從中尋求安全感。同時,我也盼望能效法希西家王,第一時間就以禱告來到神面前。我為過去那些先用盡自己的方法,直到走投無路、走到絕境才想起要尋求神、向神禱告的日子悔改。我禱告自己不要忘記,正如驕傲是不需要神也能活下去,謙卑正是從承認「沒有神就無法活下去」開始的。
랍사게가 하나님을 조롱하며 히스기야를 무시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논리와 언변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회유하고 쉽게 정복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대응하지 말고 침묵으로 맞서게 하십니다. 정의 앞에 침묵하고 권리를 포기하면 비겁하다고 조롱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것 같지만 때로는 맞서지 않고 묵묵히 건뎌내는것이 성도의 길일수도 있음을 묵상해봅니다. 세상의 논리를 세상의 방법으로 반박하려한들 답이 없기 때문일것입니다. 오늘도 내 논리와 사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서있길 기도합니다.
拉伯沙基嘲弄神,輕視希西家,用看似有理的邏輯和言辭想要拉攏猶大和耶路撒冷的百姓,輕易征服他們。但神卻讓百姓不要回應,而是以沉默來面對。在世人的道理看來,在公義面前保持沉默、放棄自己的權利,似乎會被嘲笑為懦弱;但我默想到,有時不去對抗、默默忍耐,也可能是聖徒應走的道路。因為想用世上的方法去反駁世上的邏輯,終究是沒有答案的。今天我也禱告,願自己倚靠神的話語,而非依靠自己的邏輯和思想,堅定不移地站立。
자격없는 나에게 예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구원의 대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은혜로 살아가지만 때로는 현실의 어려움 가운데 지치고 낙망하며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런 나에게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다시 바라보고 회복되어서 새 힘을 낼 수 있게 하시는 복음의 말씀임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목표를 잊고 살아가지 않도록 오늘도 큰 길이 되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耶穌親自來到毫無資格的我身邊,成為我救恩的大道。雖然靠著這份恩典生活,但有時仍會在現實的困難中疲憊、灰心,甚至跌倒。今天的話語讓我再次銘記在心:這是能讓我重新仰望作我盼望的主,得著恢復、重新得力的福音話語。願我不忘記目標,今天也只單單仰望成為大道的主,繼續向前邁進,我如此禱告。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말씀이 교훈하시듯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공의와 정의, 평등의 하나님이 항상 지켜보시는것을 알고 불의에서 멀어져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심판만 있다면 두려움에 떨며 살겠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바른길로 인도하시고 구원을 배풀어 주시니 날마다 넘어지더라도 속죄하고 돌이켜서 다시금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품안에 거하길 기도합니다.
我相信神所計畫的必定會成就。正如話語所教導的,在神面前犯罪的人必定受到審判。深知公義、正義與平等的神時刻鑑察著我們,我立志要遠離不義。若只有審判,我們將活在恐懼顫抖之中,但慈愛的神引導我們走上正路,賜下救恩,因此即使每天都跌倒,我仍禱告求主赦罪,讓我能回轉,並常住在使我重新得恢復的主的懷抱之中。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왕 주님을 닮길 소망합니다. 성도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시고 세상을 섬기게 하셨으니 내가 선 그곳에서 성령이 부어주시는 공의와 정의로 성도의 삶을 살아나가길 기도합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닮지 않게 하시고 삶속에서 주님의 형상이 나타나도록 오늘도 다스려 주시길 기도합니다. 내 자아가 죽어서 온전히 주님이 일하시도록 겸손히 주를 바라보는 주일이 되길 기도합니다.
盼望能效法以公平公義治理的王—我的主。神呼召聖徒成為聖潔的祭司,差派我們去服事這世界,願我在所站立的地方,靠著聖靈所澆灌的公義與公平,活出聖徒的生命樣式。求主不要讓我只在口頭上效法祢,而是讓祢的形像在我的生命中彰顯出來,求主今日也繼續掌管我。願我的自我死去,好讓主完全動工,願今日這主日,成為我謙卑仰望主的日子。
이사야 31: 6 이스라엘의 자손아, 너희가 그토록 거역하던 그분께로 돌이켜라.
내가 주님보다 더 의지했던 모든것들이 주님을 거역하는 우상이었을을 깨닫습니다. 도구로 여겨야 했던 것들을 우상으로 삼고 도리어 하나님을 도구로 삼아 온 지난 날들을 회개합니다. 이제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기 원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썩어 없어질 것들을 의지하고 사는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것인지 깨닫습니다. 내 유일한 피난처 되시는 주님을 오늘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삶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매일의 묵상이 되길 기도합니다.
以賽亞書 31:6 以色列人哪,歸向你們曾經極力悖逆的那位吧。
我體會到,我曾經比信靠主更加依賴的一切,其實都是悖逆主的偶像。我為過去把本該當作工具的東西當成偶像、反而把神當作工具使用的日子悔改。現在我願意全然依靠主。我體會到依靠眼前那些終將朽壞消逝之物而活,是多麼愚昧的事。感謝主,讓我今天也能默想祢——我唯一的避難所。願這每日的默想,能為我的生命帶來真實的改變,我如此禱告。
하나님은 내가 죄에서 돌이키고 회개할 수 있도록 기다리시는 분임을 묵상합니다. 응답하지 않으시는것 같을 때에도 뒤에서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배웁니다. 모든일이 급히 서두를때 실수하게 됨을 봅니다. 잠잠히 주님의 계획하심을 기다리기 원합니다.
我默想神是那位等候我從罪中轉回、悔改的神。即使祂看似沒有回應的時候,我學到祂仍在背後引導我走正路。我看見凡事若急躁行事,就容易犯錯。願我安靜等候主的計畫。
고난 가운데 있을때 세상의 방법으로 피할길을 찾지 않고 잠잠히 주님께 구하기 소망합니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만 있음을 믿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세상에 물들어 성도의 신분을 잊고 살지 않도록 말씀을 기준삼아 바른길로 나아갈수 있도록 오늘도 은혜를 구합니다.
在苦難之中,願不用世上的方法尋找逃避之路,而是靜默地向主祈求。祈願我能相信救恩唯獨在耶和華裡,並能夠坦然無懼地前行。願我不被世俗同化,忘卻聖徒的身分,而是以話語為準則,走在正路上,今日也懇求恩典。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죄로 무너졌던 일상도 주님이 회복시키고 다시 설 수 있게 하심을 믿습니다. 세상의 자랑과 힘을 쫓지 않도록 항상 주님께만 시선을 집중할수 있길 기도합니다.
讚美那位翻轉局勢的神。我相信,因我的罪而崩塌的日常生活,主也必修復,使我能夠重新站立。我禱告求主幫助我不追逐世上的誇耀與權力,而是能時常將目光專注在主身上。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점검해 봅니다. 말씀을 묵상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날마다 무너지는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말씀으로 조금씩 변화되길 기대합니다. 자신을 돌아볼땐 답이 없는것 같을때도 많지만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면 소망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在鑑察內心的神面前,檢視自己的心。雖然默想話語,卻無法照著話語生活,每天似乎都在崩潰。正因如此,更要下定決心親近話語。期待藉著話語一點一點地改變。回顧自己時,常常覺得好像找不到答案,但只要將目光定睛在主身上,就有盼望,心中充滿感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