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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18:21–31

    今日默想:士師記 18:21–31

    한경우··조회 54

    제목 :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어제 본문에서 레위 청년은 더 좋은 자리를 따라 단 지파와 함께 떠났다. 미가의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도 함께 가지고 떠났다. 단 자손은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간다. 그러자 그들이 미가의 집에서 멀어졌을 때, 미가가 이웃 사람들을 모아 뒤쫓아 온다. 하지만 단 자손이 돌아서서 오히려 묻는다. 무슨 일로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 왔느냐고. 미가가 대답한다.

    삿 18:24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이 말을 다시 들어 보라. '내가 만든 신들.' 미가는 자기 입으로 그 신들이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를 지켜 주리라 믿었던 신들이 지금 남의 손에 들려 끌려가고 있다. 그 신들은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미가의 힘이 있어야 되찾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미가는 이제 자기에게 남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집도 있고 가족도 있는데, 손으로 만든 신을 잃자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바로 얼마 전 미가는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라고 확신했던 사람이다. 그 확신이 이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단 자손은 미가에게 조용히 돌아가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네 가족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위협한다. 미가는 그들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스라엘 사람을 위협하는 자가 이제는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결국 단 자손은 미가가 만든 것들과 그 제사장을 데리고 라이스에 이른다. 본문은 이제 그것들을 신상이니 에봇이니 하고 하나하나 부르지 않는다. 그저 '미가가 만든 것'이라고 부를 뿐이다. 라이스 사람들은 여전히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살고 있었다. 단 자손은 그들을 칼날로 치고 성읍을 불사른다. 그들을 도와줄 이웃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구원할 자도 없었다. 단 자손은 그곳에 성읍을 다시 세우고, 조상의 이름을 따라 단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한다.

    삿 18: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세웠다'는 말은 원문에서 하나님이 사사들을 '세우셨다'고 할 때 쓰인 바로 그 말이다. 사사기는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시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 사람이 자기들을 위해 신상을 세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 레위 청년의 이름이 밝혀진다. 요나단.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모세의 손자였다. 성경은 두 장 내내 그를 이름 없이 '레위 청년'이라고만 부르다가, 맨 마지막에 가서야 그가 누구였는지 말한다. 모세는 레위 지파였지만, 제사장 직분은 그의 형 아론의 자손에게 주어졌다. 그러니 모세의 후손인 요나단은 레위인이었으나 제사장이 될 자격은 없었다. 그런 그가 은 열과 옷 한 벌에 한 집의 제사장이 되었고, 더 좋은 자리를 따라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자손은 북쪽 백성이 앗수르에 사로잡혀 갈 때까지 대를 이어 그 자리를 지켰다. 생각해 보라. 그가 정말 모세의 손자였다면, 이 일은 모세가 세상을 떠나고 겨우 두어 세대 만에 일어난 일이다. 사사기는 이 이야기를 책의 맨 끝에 두었지만, 이 타락은 시대가 끝날 무렵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 뿌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위대한 신앙의 이름도 한 세대 만에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닫는다.

    삿 18: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실로는 여호수아가 각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준 곳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막이 있던 곳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를 통해, 가나안에 들어가면 각기 소견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택하실 그곳에서 예배하라고 말씀하셨다(신 12:5, 11, 13–14). 그리고 그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엄연히 있었다. 그런데 단 자손은 그 땅 북쪽 끝에 자기들의 성소를 세우고, 미가가 만든 신상을 두고, 제사장 자격도 없는 이를 제사장으로 삼았다. 하나님이 정하신 곳이 아니라 자기들이 정한 곳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식이 아니라 자기들 눈에 옳은 방식으로 예배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를 더 보아야 한다. 17장에서 미가가 자기 집에 차린 '신당'도 원문으로는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미가가 만든 '하나님의 집'으로 시작해서, 실로에 있던 참 '하나님의 집'으로 끝나는 것이다. 같은 시대에 두 개의 하나님의 집이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이 정하신 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세운 집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기억하자. 18장 어디에서도 하나님이 직접 하신 일은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름은 레위인의 입과 정탐꾼들의 입에만 있었다. 그런데도 단 지파는 땅을 얻었고, 요나단의 가문은 대를 이어 제사장 자리를 지켰다. 겉으로 보면 모든 일이 잘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성공 위에 하나님이 계셨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이 본문 앞에서 내 안의 질문 하나를 마주한다. 나는 무엇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 왔는가. 단 지파는 결국 땅을 얻었다. 요나단은 한 집의 제사장에서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고, 그 자손은 대를 이어 그 자리를 지켰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잘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 성공 위에 하나님이 계셨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줄을 남긴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자기들이 세운 신상 앞에 있었다고... 그래 솔직히 우리는 자주 결과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한다. 일이 잘 풀리고 사람이 모이고 사역에 열매가 보이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다 일이 막히고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한다. 그렇기에 우리 공동체도, 그리고 이 시대의 교회도 같은 저울을 들고 있는지 모른다. 숫자가 늘고 형편이 나아지면 복이라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라 부르는 저울 말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한다. 성공은 하나님의 뜻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하나님 없이도 땅은 얻을 수 있고, 하나님 없이도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잘되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었는가"이다. 그래 오늘 나는 결과의 저울을 내려놓는다. 눈에 보이는 열매보다 말씀 앞에서의 신실함을 묻는 자리로, 우리 공동체와 함께 다시 나아가길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標題:神的家還在示羅的時候

    昨天的經文中,那位利未青年為了更好的待遇,跟著但支派離開了。米迦的神像、以弗得、家中的神像也一併被帶走。但支族人把孩童、牲畜和貴重物品放在前頭,踏上了路程。當他們離米迦的家已有一段距離時,米迦召集鄰居追了上來。然而但支族人轉身反問,問他聚集這麼多人到底要做什麼。米迦回答說:

    士18:24 米迦說:「你們將我所做的神像和祭司都帶走了,我還剩下什麼呢?你們怎麼還問我『做什麼』呢?」

    請再仔細聽聽這句話。「我所做的神像。」米迦親口承認,那些神像是出自自己的手。他原以為能保護自己的神像,如今卻被別人的手帶走。那些神像連自己都保護不了,反倒淪落到需要米迦的力量才能找回來的地步。然而米迦卻說,自己現在一無所有了。他明明還有房子,還有家人,卻因為失去了親手所造的神像,就說自己失去了一切。想想看,就在不久之前,米迦還曾滿懷信心地說:「現在我知道耶和華必賜福與我。」那份確信,如今變成了「我還剩下什麼呢」的嘆息。

    於是但支族人警告米迦,要他安靜回去,否則他和他的家人將會喪命。米迦見他們比自己強大,只好回家去了。如今威脅以色列人的,不再是外邦人,而是同為以色列人的弟兄。

    最終,但支族人帶著米迦所造的一切和那祭司,來到了拉億。此時經文不再一一稱呼那些東西為神像或以弗得,只是籠統地稱作「米迦所做的」。拉億的居民依舊過著悠閒無慮的生活。但支族人用刀殺了他們,又放火燒了城。能幫助他們的鄰邦遙遠,也沒有人能拯救他們。但支族人在那裡重建了一座城,依照祖先的名字稱之為但。然後他們做了這樣的事:

    士18:30 但支族人為自己立起那雕刻的像;摩西的孫子、革舜的兒子約拿單,和他的子孫作但支派的祭司,直到那地的百姓被擄的日子。

    這裡不能輕易放過。「立起」這個字,在原文中正是神「立」士師時所用的同一個詞。士師記原本講述的,是神為祂的百姓興起拯救者的故事。可如今,卻是人為自己立起了神像。也正是在這時,那位利未青年的名字才終於被揭曉——約拿單,意思是「耶和華所賜的」。而他竟是摩西的孫子。經文整整兩章都只稱他為無名的「利未青年」,直到最後才揭示他的身份。摩西雖屬利未支派,但祭司的職分卻歸給了他哥哥亞倫的後裔。因此,身為摩西後裔的約拿單雖是利未人,卻沒有資格擔任祭司。然而這樣的他,卻因十舍客勒銀子和一套衣服,成了一家的祭司;又為了更好的待遇,成了一個支派的祭司。他的子孫世世代代守住這個位置,直到北國百姓被擄到亞述。試想,如果他真是摩西的孫子,那麼這件事發生在摩西去世後不過兩三代之間。士師記把這個故事放在全書的最後,但這樣的墮落並非在時代終結時才突然出現,其根源從一開始就已存在。即便是在神面前最偉大的信仰之名,也可能在短短一代之間崩塌。於是經文如此結束這段故事:

    士18:31 神的家在示羅的時候,米迦所雕刻的像一直留在但支族人那裡。

    示羅,是約書亞分地給各支派的地方,也是神的會幕所在之處。神早已藉著摩西吩咐,進入迦南地後,不可各人任意而行,要在神所揀選的地方敬拜(申12:5,11,13–14)。而那神的家,確確實實就在示羅。然而但支族人卻在那地的最北端,為自己立起聖所,供奉米迦所造的神像,並讓一個毫無祭司資格的人擔任祭司。他們不是在神所指定的地方,而是在自己所選定的地方;不是按神所吩咐的方式,而是按自己眼中看為對的方式敬拜。還有一點值得留意:在第17章中,米迦在自己家中所設立的「神堂」,原文其實也是「神的家」。於是這個故事,以米迦所造的「神的家」開始,卻以示羅那真正的「神的家」結束。同一個時代,竟存在著兩個「神的家」——一個是神所指定的家,另一個是人按自己眼中看為對的方式所立的家。

    還有一點要記住:整個第18章中,找不到神親自做過任何事的記載。神的名字,只出現在利未人和探子們的口中。然而儘管如此,但支派還是得了地,約拿單的家族世世代代仍守住了祭司之位。從表面看,一切似乎都順利。可是經文從頭到尾,都沒有說神與這成功同在。

    今天,站在這段經文面前,我不得不面對內心的一個問題:我一直以來,是用什麼來確認神的旨意的呢?但支派最終得了地。約拿單從一家的祭司,成了一個支派的祭司,他的子孫也世代承續這個位置。表面看來,一切似乎都順利進行。然而經文從未說,神與這一切的成功同在。經文最後只留下一句話:即便神的家還在示羅,他們仍舊站在自己所立的神像面前……是啊,說實話,我們常常用結果來判斷神的旨意。事情順利、人數增加、事工結出果子時,我們便輕易地說神與我們同在;而當事情受阻、看不見果效時,我們就開始不安,懷疑自己是否偏離了神的旨意。或許,我們的群體,乃至這個時代的教會,手中也拿著同一把秤——數字增長、景況改善就稱之為祝福,反之就稱之為失敗。然而今天的經文卻告訴我們:成功並不能證明神的旨意。沒有神,人依然可以得地;沒有神,人依然可以登上高位。既然如此,無論身處何種環境與境況,我們該問的不是「是否順利」,而是「我們是否站在神的話語面前」。是的,今天我願意放下以結果為標準的那把秤。但願我們這個群體,能一同重新出發,走向一個不以眼見的果效、而以在神話語面前的信實,來衡量一切的地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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