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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사사기 9:7–21

    今日默想:士師記 9:7–21

    한경우··조회 75

    제목 :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어제 본문에서 아비멜렉은 형제 칠십 명을 죽이고 세겜에서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여섯 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의 이름과 신전의 이름과 돈의 액수만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첫 절에서 그 침묵이 깨진다. 살아남은 한 사람이 입을 열기 때문이다.

    삿 9:7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요담이 선 자리를 보라. 세겜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의 골짜기에 있는 성읍이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 두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게 했다. 남쪽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북쪽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했다(신 11:29; 수 8:33). 그런데 요담은 저주의 산이 아니라 축복의 산에 올라가 파멸의 말을 선포한다. 물론 어떤 신학자들은 그곳이 세겜을 내려다보기 좋고 곧바로 도망치기에도 좋은 자리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축복이 선포되던 산에서 저주가 터져 나온다는 사실은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첫마디가 날카롭다.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세겜 사람들은 성읍 안 신전에서 자기들의 신이 자기들 말을 들어 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요담은 그 반대를 말한다. 그러고는 이야기 하나를 시작한다.

    삿 9:8-9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9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나무들이 찾아간 순서를 보라.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다. 아무 나무나 고른 것이 아니다. 이 셋은 가나안에서 가장 귀한 작물이었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성경에서 언약의 복을 나타내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감람나무는 오래 살며 많은 기름을 내는 참으로 귀한 나무였다.

    그런데 세 나무가 모두 같은 형식으로 거절한다.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여기 '우쭐대다'로 옮긴 히브리어는 본래 '흔들리다, 요동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나무들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거린다는 말이다. 뿌리를 내리고 열매 맺는 자리와, 위에서 흔들거리는 자리가 나란히 놓인다.

    그리고 각 나무가 무엇을 내놓아야 하는지를 보라. 감람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기름을,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버려야 한다. 왕이 되려면 자기 열매를 손에서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 셋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미 하고 있는 일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삿 9:14-15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그런데 가시나무는 다르게 반응한다. 먼저 가시나무가 어떤 나무인가.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메마른 땅에서 자라는 관목이다. 시편에는 솥 밑에 때는 땔감으로 나온다. 더불어 사람이 피할 만한 그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그런데 앞의 세 나무는 기름 붓겠다는 제안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는데, 가시나무만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하며 조건을 내건다. 왕권의 정당성부터 확인하려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고대 근동에서 왕의 보호를 받는 사람을 가리켜 '그의 그늘 아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왕의 언어다. 가시나무는 왕의 언어로 보호를 약속한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말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가시나무는 쉽게 불이 붙고 그 불길이 주변으로 번지기 쉬운 관목이다. 그러니 이 협박이 허풍만은 아니다. 자기가 재가 되면서 백향목까지 태울 수 있는 것이다. 줄 것은 없고 태울 힘만 있다. 그것으로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삿 9:16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16절의 '이제'에서 화자가 가시나무에서 요담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가 던지는 질문이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이다. 여기 '진실하고 의로우냐'로 옮긴 두 낱말을 눈여겨보라. 여호수아가 바로 이 세겜에서 백성에게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수 24:14)고 했을 때 쓴 그 두 낱말이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 같은 말이고, 심지어 '그러므로 이제'라는 도입까지 같다. 우리말 성경이 한쪽은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다른 쪽은 '진실하고 의로우냐'로 옮겨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같은 성읍에서, 같은 말로, 이제는 고발이 날아든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자리에서 요담의 고발이 곧장 겨누는 것은 왕이라는 제도가 아니다. 하필 아비멜렉을 세웠다는 것, 그리고 그를 세우는 과정에 진실과 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발은 아비멜렉만 겨냥하지 않는다. 그를 세운 사람들도 함께 겨냥한다. 세운 사람의 책임이 세워진 사람의 책임만큼 무겁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담은 마지막에 조건을 건 저주를 남긴다. 그들이 한 일이 옳다면 서로 기뻐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을 사르고 세겜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라고 한다. 가시나무의 협박이 양쪽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브엘로 도망하여 그곳에 머문다. 말만 남기고 이야기에서 사라진다.

    오늘 이 본문 앞에서 나는 한 문장을 깊이 묵상한다.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가시나무는 그늘이 없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원래 성경에서 그늘 아래 피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쓰는 말이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어 달라'고 하고, '전능하신 이의 그늘 아래 거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가시나무는 하나님께 속한 언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다 쓴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고 말했는데, 한 세대 뒤에 그 아들은 '내 그늘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어야 할 사람들이 사람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말씀을 나에게 적용해 보면 성도가 목회자를 신뢰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신뢰가 없으면 함께 걸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신뢰가 의존이 되고, 목회자가 자신을 그 사람의 마지막 피난처처럼 만들기 시작하는 순간, 목회자는 가시나무가 된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람을 내게 묶어 두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을 하나님의 주시는 그늘로 안내를 잘하고 있는가. 오늘 나는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 있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모든 성도들을 주의 날개 그늘로 인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그리고 나 자신도 그 하나님의 그늘 아래로 먼저 들어가 쉴 수 있길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標題:來投靠在我的蔭下

    昨天的經文中,亞比米勒殺了七十個兄弟,在示劍作了王。而在那六節經文中,神的名字一次也沒有出現。只有人名、神廟之名,以及金錢的數目。然而在今天經文的第一節,這沈默被打破了。因為一位倖存者開口說話了。

    士9:7 有人將這事告訴約坦,他就去站在基利心山頂上,向眾人大聲喊叫說:「示劍人哪,你們要聽我的話,神也就聽你們的話。」

    請看約坦所站的地方。示劍是位於基利心山和以巴路山之間山谷中的一座城。約書亞曾吩咐在這兩座山上宣告祝福與咒詛。南邊的基利心山宣告祝福,北邊的以巴路山宣告咒詛(申11:29;書8:33)。然而約坦並非登上咒詛之山,而是登上祝福之山,卻在那裡宣告了毀滅的話語。當然,也有些神學家指出,那地方視野極佳,可以俯瞰示劍,同時也便於迅速逃離。即便如此,本應宣告祝福的山上卻爆發出咒詛,這事實本身,也象徵著此時以色列的處境。

    他開口的第一句話便十分尖銳:「你們要聽我的話,神也就聽你們的話。」示劍人以為,自己城內廟宇中的神明會聽他們的話。但約坦所說的恰恰相反。接著,他開始講述一個故事。

    士9:8-9 有一時樹木要膏一樹為王,管理他們,就去對橄欖樹說:「請你作我們的王。」9 橄欖樹回答說:「我豈肯止住供奉神和尊重人的油,飄搖在眾樹之上呢?」

    請留意樹木前去尋訪的順序:橄欖樹、無花果樹、葡萄樹。這並非隨意挑選。這三者是迦南地最珍貴的作物,五穀、新酒與油,在聖經中正是約中祝福的象徵。其中橄欖樹尤其珍貴,壽命長久,又能出產豐富的油。

    然而這三棵樹都以相同的方式婉拒。「我豈肯……飄搖在眾樹之上呢?」這裡譯為「飄搖」的希伯來原文,本意是「搖晃、動搖」。也就是說,是在眾樹之上東搖西晃的意思。紮根結果的位置,與在高處搖晃的位置,被並列擺在一起。

    再看各棵樹須放棄的是什麼。橄欖樹須放棄「供奉神和尊重人」的油,葡萄樹須放棄「使神和人喜樂」的新酒。要作王,就必須放下自己手中的果實。這三棵樹並無此意,因為牠們手上正在做的事,於牠們而言更為寶貴。

    士9:14-15 眾樹對荊棘說:「請你來作我們的王。」15 荊棘回答眾樹說:「你們若誠誠實實膏我為王,就要投在我的蔭下;不然,願火從荊棘裡出來,燒滅黎巴嫩的香柏樹。」

    然而荊棘的反應卻不同。首先,荊棘是什麼樣的植物?它是生長在其他植物無法存活的乾旱之地的灌木。詩篇中還提到它被當作鍋底下燒的柴火。而且,它並不是那種能為人遮蔭、供人投靠的樹。然而,前面三棵樹對於受膏的提議連理都不理,唯獨荊棘卻附加了條件:「你們若誠誠實實膏我為王」——牠竟先要確認王權的正當性。接著牠說:「就要投在我的蔭下。」

    在古代近東,凡受王保護的人,被稱為「在他的蔭下」。也就是說,這是王者的語言。荊棘用王者的語言承諾保護——承諾牠自己根本沒有的東西。而且事情並未就此結束:「不然,願火從荊棘裡出來,燒滅黎巴嫩的香柏樹。」荊棘極易著火,火勢也極易向四周蔓延。因此這威脅並非全然虛張聲勢。牠可以在自身化為灰燼的同時,連香柏樹也一併燒毀。牠沒有什麼可以給予,卻擁有燃燒的力量——牠正是以此進行威脅。

    士9:16 「現在你們立亞比米勒為王,若按誠實正直善待耶路巴力和他的全家,這就是酬他的勞了。」

    從16節的「現在」開始,說話者由荊棘轉為約坦。而他所提出的問題是:「你們所行的果真誠實正直嗎?」請留意這裡譯為「誠實正直」的兩個詞。約書亞正是在這示劍,對百姓說:「現在你們要敬畏耶和華,誠心誠意地事奉祂」(書24:14)時,所用的正是這兩個詞。只是順序調換,其實是同樣的話,甚至連「現在」這個開場也一模一樣。只因中文譯本一處譯為「誠心誠意」,另一處譯為「誠實正直」,才使人不易察覺其相同之處。在同一座城中,用同樣的話語,如今卻化為控訴,直指而來。

    由此可見,約坦在此的控訴,所直接指向的至少並非「王」這個制度本身,而是「偏偏立了亞比米勒為王」,以及「在立他為王的過程中並無誠實與公義」這件事。而這控訴所指向的,不僅是亞比米勒一人,也同樣指向立他為王的那些人。這意味著,立王者的責任,與被立者的責任同樣沉重。因此約坦最後留下了一句附條件的咒詛:他們所行的若是正當,就彼此歡喜;若不然,願火從亞比米勒中出來,燒滅示劍,又願火從示劍中出來,燒滅亞比米勒。荊棘的威脅,如今雙向反噬。之後他逃往比珥,住在那裡。只留下這番話,便從故事中消失了。

    面對今天這段經文,我深深默想一句話——「來投靠在我的蔭下」。荊棘明明沒有蔭涼,卻如此說道。原本在聖經中,「投靠在蔭下」是用來形容神的語言。「求你將我隱藏在你翅膀的蔭下」、「住在全能者的蔭下」——這樣的表達比比皆是。也就是說,荊棘把本屬於神的語言,挪為己用。因此,基甸曾說:「耶和華必管理你們」,而僅僅一代之後,他的兒子卻在說:「來投靠在我的蔭下」。也就是說,本應處在神的治理之下的百姓,如今卻投入了人的蔭下。將這段話應用在我自己身上來思考:信徒信任牧者,這是必要之事。沒有信任,就無法同行。然而,一旦這信任變成了依賴,一旦牧者開始把自己塑造成那人生命中最後的避難所,牧者便成了荊棘。那麼,我自己又是怎樣的呢?我是把人綁在自己身邊,還是好好地引導他們,走向神所賜的蔭涼之下?今天,我願誠實地站在這個問題面前。願今天成為引導所有信徒走向主翅膀蔭下的一天……也願我自己,先進入神的蔭下,得享安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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