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목록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20:1–7

    今日默想:士師記 20:1–7

    한경우··조회 67

    제목 : 조작된 정의

    레위인이 보낸 열두 덩이의 몸이 이스라엘 온 땅을 흔들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그 일에 답하기 위해 모인다.

    삿 20: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북쪽 끝 단에서부터 남쪽 끝 브엘세바까지, 그리고 요단 건너편 길르앗까지, 온 이스라엘이 미스바로 모인다. 개역개정은 이것을 '일제히'라고 옮겼지만, 원문으로는 '한 사람같이'다. 그리고 이 말은 오늘 본문에서 세 번이나 되풀이된다. 이스라엘은 한 사람같이 모였고, 한 사람같이 일어섰고, 한 사람같이 합심했다. 생각해 보라. 사사기에서 온 이스라엘이 이렇게 한 군대로 모인 것은 처음이다. 드보라 때도, 기드온 때도, 입다 때도 지파들은 함께 나서지 않았고, 오히려 서로 다투었다. 그렇게 어렵던 하나 됨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하나 됨이 향한 곳은 가나안 사람들이 아니었다.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다. 이스라엘이 한 사람같이 모여 치려는 대상은 바로 자기 형제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다. 하나님 앞에 선 총회였다. 그런데 이 총회에서 그 끔찍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처음으로 말하는 목소리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삿 20:4–6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성경은 레위인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 어제 본문에서 그 여인이 언제 숨을 거두었는지 성경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그 여인은 죽임을 당했다고. 그리고 그 여인의 남편이 증언한다. 우리는 어제 그 밤의 일을 읽었다. 그러니 레위인의 증언에서 무엇이 빠졌는지 알 수 있다. 레위인은 자기 손으로 아내를 붙잡아 문밖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레위인은 자기를 앞에 세운다. 그들이 나를 치러 일어났고, 내가 묵던 집을 에워쌌고, 나를 죽이려 했다고. 그 밤 레위인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레위인의 증언은 어제 우리가 읽은 그 밤보다 자기에게 닥친 위험을 먼저 내세우고, 그 다음에야 아내를 말한다. 그리고 어제 본문에서 집을 에워싼 사람들은 성읍의 '불량배들'이었다. 그런데 레위인의 증언에서는 그들이 '기브아 사람들'로 확대해서 말한다. 레위인은 그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했다고 고발한다. 그 말은 옳다. 그러나 그 기준 앞에 먼저 서야 할 사람이 레위인 자신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기브아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기브아에서 일어난 악은 분명했고, 이스라엘은 그 악을 외면해서는 안 되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악에 분노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분노가 자기 책임을 지운 한 사람의 증언에서 출발했다는 데 있다.

    삿 20: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하니라

    레위인의 마지막 말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는 물음이라기보다, 이제 이 일에 판결을 내리라는 요구에 가깝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곧바로 한 사람같이 일어나, 아무도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기브아를 치자고 결정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없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 모였지만, 이스라엘이 처음 들은 것은 하나님의 판단이 아니라 자기 책임을 감춘 한 사람의 증언이었다. 그래 정의를 향한 분노가 있다고 해서, 그 분노가 곧 하나님의 뜻인 것은 아니다.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며 나는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로 여호와 앞에 모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레위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 밤의 일을 아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지 않았고, 베냐민은 그 자리에 없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이었고,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었다. 그 자리가 레위인의 말에 무게를 더했고, 이스라엘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는 분노할 악인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생각하고 상의하자던 자리에서 곧바로 칼을 들기로 했다. 정의를 향한 분노였지만, 그 분노는 한 사람이 편집한 이야기 위에 서 있었다. 그래 솔직히 나는 교회의 역할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먼저 들은 이야기,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믿을 만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른 쪽의 말을 듣기도 전에 사실로 받아들인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말하는 자리에 설 때, 목사라는 자리를 기대어 나에게 유리한 것만 말하고 불리한 것은 조용히 빼 놓은 날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정말 하나님께 묻고 있느냐고. 그 밤의 모든 진실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판단보다 먼저 하나님께 묻는 자리로 나아간다. 들을 때는 판단을 서두르지 않고, 말할 때는 나를 감추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題目:被操弄的公義

    利未人送出的十二塊屍身震動了以色列全地,如今以色列人聚集起來,要回應這件事。

    士 20:1 於是以色列眾人從但到別是巴,以及住基列地的都出來如同一人,聚集在米斯巴耶和華面前。

    從北端的但到南端的別是巴,再到約旦河東的基列,全以色列都聚集到米斯巴。韓文改譯改訂版將此譯為「一齊」,但原文是「如同一人」。而這句話在今天的經文中重複了三次。以色列如同一人聚集,如同一人起來,如同一人齊心。請想一想,在士師記中,全以色列這樣聚成一支軍隊,這是頭一次。無論是底波拉、基甸或耶弗他的時候,各支派都沒有一同出征,反倒彼此相爭。那麼難得的合一,終於成就了。然而這合一所指向的,並不是迦南人。基比亞是便雅憫支派的城邑。以色列如同一人聚集要攻打的,正是自己的弟兄。

    以色列是在米斯巴「耶和華面前」聚集的,這是站在神面前的大會。然而在這大會上,第一個說出那件可怕事情的聲音,不是神的聲音,而是一個人的聲音。

    士 20:4–6 那被殺之婦人的丈夫利未人回答說:「我和我的妾到了屬便雅憫的基比亞住宿。5 基比亞人夜間起來,圍了我住的房子,想要殺我,又將我的妾強姦致死。6 我就把我妾的屍身切成塊子,使人拿著傳送以色列得為業的全地,因為基比亞人在以色列中行了兇淫醜惡的事。」

    聖經在利未人開口之前,先這樣稱呼他:「那被殺之婦人的丈夫」。在昨天的經文中,聖經始終沒有說那婦人是何時斷氣的。但如今聖經明確地說:那婦人是被殺的。而那婦人的丈夫出來作證。我們昨天讀過那一夜的事,所以知道利未人的證詞裡少了什麼。利未人沒有說出,是他親手抓住妻子,把她推出門外。反之,利未人把自己擺在前面:他們起來要攻擊我,圍住我住的房子,想要殺我。那一夜,利未人或許確實感受到了生命威脅。然而他的證詞,比起我們昨天讀到的那一夜,更先凸顯自己所遭遇的危險,之後才提到妻子。並且在昨天的經文中,圍住房子的是城裡的「匪徒」,但在利未人的證詞中,卻被擴大成了「基比亞人」。利未人控告他們在以色列中行了兇淫醜惡的事。這話沒有錯。然而,該先站在這個標準面前的,也包括利未人自己。

    當然,這並不使基比亞的罪變輕。在基比亞發生的惡是明確的,以色列不應對那惡視而不見。問題不在於以色列對惡發怒,而在於那怒氣是出自一個抹去自己責任之人的證詞。

    士 20:7 「你們以色列人都在這裡,要在此商量,出個主意。」

    利未人最後的話,與其說是「該怎麼辦才好」的詢問,不如說更接近要求眾人立刻對這件事作出判決。於是以色列隨即如同一人起來,決定誰也不回家,要攻打基比亞。然而在那裡,沒有一個人求問神。以色列雖聚集在耶和華面前,但他們首先聽見的,不是神的判斷,而是一個隱藏自己責任之人的證詞。是的,即使有對公義的憤怒,那憤怒也不等於就是神的旨意。

    今天默想這段經文,我在聚集於米斯巴的以色列面前省察自己。以色列以神百姓之大會的身分聚集在耶和華面前,卻沒有求問神,也沒有查證利未人的話是否屬實。他們沒有聽取其他知道那夜之事的人的說法,而便雅憫也不在場。利未人是受託服事神的人,又是被殺婦人的丈夫。這樣的身分加重了他話語的分量,以色列便照單全收。而那故事裡,可憤恨的惡人又如此明確。於是以色列在原本要思量商議的場合,立刻決定舉刀。那是出於公義的憤怒,但那憤怒卻建立在一個人所剪裁過的故事上。說實話,因著在教會的職分,我聽過許多故事。然而,曾有些日子,我把先聽到的故事、觸動人心的故事、可信之人說的故事,在還沒聽另一方說法之前,就當成了事實。反過來,當我站在說話的位置上時,也曾有些日子倚仗牧師的身分,只說對自己有利的,而把不利的悄悄略去。所以今天的經文問我:你真的在求問神嗎?知道那一夜全部真相的,唯有神。因此今天,我要先來到求問神的位置,而不是先下判斷。我盼望成為這樣的人:聆聽時不急於論斷,說話時不隱藏自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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