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창세기 33:1-20
今日默想:創世記 33:1-20
야곱은 분명 기도했다. 32장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형의 손에서 자기를 건져 달라고 부르짖었다(32:11). 그래 이 본문만 보면 야곱은 분명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야곱은 다시 자기 손으로 돌아간다. 가축을 다섯 떼로 나누고, 예물을 줄줄이 앞세우고, 가족을 셋으로 분산시키고, 자기는 형 앞에서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한다. 야곱의 모습이 우습다. 입으로는 맡긴다고 하면서, 손으로는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야곱이 기도한 그 하나님은 정작 야곱의 전략 안에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에 정작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먼저 생각해 보고 싶은게 있다. 에서는 왜 사백 명이나 거느리고 다가오고 있었을까? 이 물음을 두고 신학계는 오랜 세월 갈렸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사백 명이 처음부터 호의의 의장대였다고 보고, 어떤 이들은 칼을 들고 왔다가 야곱의 절에 마음이 풀렸다고 본다. 또 어떤 이들은 칼빈처럼, 에서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이신 분은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답은 여러갈래로 갈리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은 많은 신학자들이 그 변화의 어딘가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는 것이다. 본문이 침묵하는 그 자리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읽어 냈다.
그런데 정작 그 손길의 한복판에 서 있던 야곱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야곱은 끝까지 형이 자기를 죽이러 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의 품에 안기기 직전까지도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다. 그런데…
창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어쩌면 형의 품 안에서 야곱은 자신의 전략이 맞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얼굴을 들어 형 에서의 얼굴에서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자기 예물이 통한 것도, 자기 절이 통한 것도 아니었다. 자기가 기도해놓고도 끝내 믿지 못한 그 하나님이, 자기가 보지 못한 시간 동안 이미 형의 마음에서 일하고 계셨던 것을 그제야 본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형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33:10).
나는 보통 성도들의 삶을 옆에서 볼 때가 있다. 그러면 가끔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 어떤 분의 막막한 시간 한가운데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가 보일 때가 있고, 어떤 관계의 매듭이 풀려 가는 그 미세한 결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정작 그 한복판에 서 있는 본인들은 보지 못한다. 야곱처럼 두려움에 떨고, 야곱처럼 자기 손으로 풀려 한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 역시 어쩌면 하나님이 일하실 틈이 없게 내 손으로 다 메워 가며 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기도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맡긴다고 말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그 야곱의 모습이 다름 아닌 내 모습이다. 솔직히 그렇다.
그런데도 어느 날 우연히, 정말 우연처럼, 하나님의 손길을 만난다. 풀릴 줄 몰랐던 자리가 풀려 있고, 두려워했던 얼굴이 미소 짓고 있다. 그제야 깨닫는다. 야곱처럼, 내가 보지 못한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셨음을…
雅各確實禱告過。在第32章,他屈膝呼求,求神從哥哥的手中拯救他(32:11)。單看這一點,雅各無疑是一個懂得禱告的人。
然而,禱告一結束,雅各立刻又回到自己的手段上。他把牲畜分成五群,將禮物一批批地打頭陣,把家人分散成三組,自己則在哥哥面前七次俯伏叩拜。雅各的樣子令人哭笑不得——口中說著「交託」,手卻始終緊握不放。雅各所禱告的那位神,其實並未真正進入雅各的謀算之中。
然而,就在那段時間裡,真正發生了什麼呢?有一件事我想先細細思量:以掃為何要帶著四百人前來?據說神學界為這個問題爭論了許多年。有人認為,那四百人從一開始便是出於好意的儀仗隊;有人則認為,以掃原本是帶刀而來,卻因雅各的叩拜而心中釋懷。還有人像加爾文一樣,坦承:無論以掃原本的意圖為何,那決定性地翻轉他心意的,正是神。答案雖然眾說紛紜,卻有一個共同點——許多神學家都在那轉變的某處,看見了神的手。在經文沉默之處,他們讀出了神的作為。
然而,正站在那神蹟中心的雅各,卻沒有看見。雅各直到最後仍以為哥哥是來殺他的,所以就在撲入哥哥懷抱的前一刻,他依然在顫抖。然而……
創 33:4 以掃跑來迎接他,將他抱住,又摟著他的頸項,與他親嘴,兩個人就哭了。
或許,在哥哥的懷裡,雅各心想:果然是我的策略奏效了。可是,當他抬起臉,從哥哥以掃的臉上,他看見了別的東西。不是他的禮物起了作用,也不是他的叩拜打動了人。而是他禱告之後卻始終無法真心相信的那位神,在他看不見的那段時間裡,早已在哥哥的心中動工了。他這才看見。所以雅各才不得不承認,看見哥哥的臉,就彷彿看見了神的臉(33:10)。
我有時會從旁觀看信徒們的生命。偶爾,我能看見神的手在他們的生命中如何運行——在某人最茫然無措的時刻,我看見神正在那其中動工;在某段關係的心結悄悄鬆開的那細微紋理之間,我看見神的手在其中穿梭。然而,正站在那當中的當事人,卻看不見。他們像雅各一樣戰兢恐懼,像雅各一樣試圖用自己的手去解決。
就在這時,我忽然意識到:我自己也沒有什麼不同。或許我也正像雅各一樣,用自己的雙手把每一個縫隙都填滿,讓神無從插手。禱告了卻無法相信,說著交託卻手握不放——雅各的那個樣子,正是我自己的樣子。說實話,確實如此。
即便如此,總有某一天,像是偶然,真的像是偶然,我與神的手相遇。以為絕無可能解開的結,已然鬆開;曾令我懼怕的那張臉,正對我微笑。我這才明白——就像雅各一樣,在我看不見的那段時間裡,神早已在動工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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