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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13:1–14

    今日默想:士師記 13:1–14

    한경우··조회 88

    제목 :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오늘부터 우리는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 삼손의 이야기를 읽는다. 그런데 그 시작이 이렇다.

    삿 13: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사십 년이다. 사사기에서 가장 긴 압제다. 그런데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구절 다음에 늘 나오던 말이 없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기드온 때에도, 입다 때에도 이스라엘은 적어도 부르짖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부르짖음마저 사라졌다. 뒤에 가면 유다 사람들이 삼손에게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따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지배에 익숙해져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구하지도 않는 백성을 위해 먼저 구원을 준비하신다. 그 시작은 한 작은 마을의 이름 없는 여인이다.

    삿 13:2–3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사라가 그랬고, 리브가와 라헬이 그랬다. 그리고 훗날 한나가 그럴 것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약속하신다. 사람의 가능성이 끊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이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다는 말은 없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지 않았던 것처럼, 이 여인도 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아들을 약속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삿 13:4–5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본문을 자세히 보자. 4절과 5절은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한 말씀이다. 4절은 어머니가 지킬 일이다.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아이를 품는 동안 어머니가 자기 입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삼가라는 것이다. 5절은 태어날 아이에게 해야 할 일이다.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그리고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다. 보통은 스스로 서원하고 일정 기간 동안 구별되어 살았다. 그런데 이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구별하셨다. 그러니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그 구별은 아이를 품은 어머니의 삶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아이가 할 일도 알려 주신다.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것이다. 블레셋과의 싸움은 삼손 이후에도 사무엘과 사울을 거쳐 다윗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사실 오늘 본문은 삼손 이야기 전체의 설계도다.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은 이 장 끝에서 이루어진다. 블레셋에게서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는 약속은 14장과 15장에서, 태에서부터 나실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16장에서 그 결말을 맞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은 삼손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자 마노아가 기도한다.

    삿 13:8–9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어떤 이들은 마노아가 아내의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본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마노아는 '그 낳을 아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태어날 것을 믿었던 것이다. 다만 그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몰랐다.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기도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다시 사자를 보내신다. 그런데 이번에도 사자는 아내에게 먼저 나타난다. 아내는 급히 남편을 부르러 달려가고, 마노아는 마침내 그 사람 앞에 선다. 그리고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을 묻는다.

    삿 13:12–14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1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이 문장을 놓치면 오늘 본문 전체를 놓치는 것이다. 마노아는 아이에 대해 물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그런데 천사의 대답을 보라.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여기서 '그'는 아이가 아니라 여인이다. 천사는 5절의 말씀, 곧 아이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말은 다시 하지 않는다. 그 대신 4절의 말씀, 곧 어머니가 지킬 일만 되풀이한다.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그리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원문에서 이 '그'는 분명히 여성, 곧 '그녀'다. 마노아는 아이에게 해야 할 일을 물었는데, 천사는 어머니가 먼저 지켜야 할 일을 바로 지키라고 답한 것이다. 아이를 위한 구별은 아이에게 무엇을 시키는 데서가 아니라, 아이를 품은 부모의 삶에서 먼저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이야기의 끝을 안다. 어머니는 말씀대로 지켰다. 그러나 자란 삼손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눈에 좋으니' 하며 자기 길로 갔다. 그리고 본문은 부모가 그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줄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부모가 다 알 수도, 다 붙잡을 수도 없는 자녀의 길 위에서도 하나님은 약속을 놓지 않으셨다. 삼손의 머리털이 밀린 뒤에도 다시 자라게 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 아이를 태어나기도 전에 나실인으로 구별하셨을까.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다. 나실인은 제사장 가문이 아닌 사람이 제사장처럼 하나님께 구별되어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아이의 부르심은 이스라엘 전체가 살아야 했던 부르심을 한 사람에게 담은 것이다. 부르짖는 것조차 잊은 백성 가운데, 하나님은 한 아이를 통해 '너희가 원래 이런 백성이었다'고 다시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삼손의 흔들림은, 그 부르심을 잊고 살던 이스라엘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그렇다. 그 부르심은 지금 우리에게도 이어진다. 베드로는 교회를 향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말한다.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며 부모로서 나를 돌아본다. 자녀들은 우리 부부가 구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선물이었다. 그런데 자녀들이 자라 진로를 고민하고 새로운 길로 나설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그들의 내일을 묻는 데 더 부지런했다. 물론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도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부모에게, 부모가 먼저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신다. 삼손의 어머니는 아이를 품는 동안 자기 입으로 먹고 마시는 것부터 구별된 삶을 살았다. 나는 자녀의 내일을 알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오늘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이미 말씀하셨다. 그래 맞다. 자녀들은 내가 하는 말보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란다. 그리고 그 자녀들의 내일은 결국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의 부모 된 지체들이 떠오른다. 자녀의 학업과 진로와 믿음을 놓고 날마다 기도하는 지체들... 그 마음을 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녀들의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하루 내 삶으로 먼저 말씀을 살아 내며 자녀들 앞에 선다. 그리고 기도한다. 주님,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삶에서 주님을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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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標題:這孩子當怎樣教養

    從今天開始,我們要讀士師記最後一位士師參孫的故事。然而,這故事的開端是這樣的。

    士13:1 以色列人又行耶和華眼中看為惡的事,耶和華將他們交在非利士人手中四十年。

    四十年。這是士師記中最長的一段壓迫。然而,這裡有一點不可錯過。在這節經文之後,通常會出現的那句話不見了——「以色列人向耶和華哀求」。無論是基甸的時代,還是耶弗他的時代,以色列至少還會哀求。但如今,連哀求也消失了。往後我們會看到,猶大人質問參孫「你不知道非利士人轄制我們嗎」的場景。以色列已經習慣了非利士人的統治,甚至不再盼望脫離。然而,神卻為這連呼求都沒有的百姓,預先預備了拯救。這拯救的起頭,是一個小村莊裡一位無名的婦人。

    士13:2–3 那時,有一個瑣拉人,是但族的宗族,名叫瑪挪亞。他的妻不懷孕,不生育。3 耶和華的使者向那婦人顯現,對她說:「向來你不懷孕,不生育,如今你必懷孕生一個兒子。」

    撒拉曾是如此,利百加、拉結也是如此,後來哈拿也將是如此。神向不能生育的婦人應許兒子。就在人的可能性完全斷絕之處,神的拯救開始了。然而經文並未提到這位婦人曾祈求要孩子。正如以色列不再哀求一樣,這位婦人也沒有祈求。但神卻主動先來尋找她。神應許她要生兒子,並如此說:

    士13:4–5 所以你當謹慎,清酒濃酒都不可喝,一切不潔之物也不可吃。5 你必懷孕生一個兒子,不可用剃頭刀剃他的頭,因為這孩子從出胎就歸神作拿細耳人;他必起首拯救以色列人脫離非利士人的手。

    讓我們仔細看這段經文。第4節和第5節,是針對不同的人所說的話。第4節是母親要遵守的事——「你當謹慎,清酒濃酒都不可喝,一切不潔之物也不可吃。」這是要母親在懷孕期間,親口所吃所喝的事上謹慎自守。第5節則是關於將要出生之孩子當行的事——「不可用剃頭刀剃他的頭。」然後神說明了原因:這孩子從出胎起,就要歸神作拿細耳人。拿細耳人是分別為聖歸給神的人,通常是自己許願,在一段時期內過分別為聖的生活。然而,這個孩子還未出生,神就已經預先將他分別出來了。因此,在孩子尚未來到世上之前,這分別為聖的生活,就必須先從懷著他的母親身上開始。

    神也告訴她這孩子將要做的事——「他必起首拯救以色列人脫離非利士人的手。」不是「終結」,而是「起首」。與非利士人的爭戰,在參孫之後,還將經歷撒母耳和掃羅的時代,一直延續到大衛的時代。事實上,今天的經文,就是參孫整個故事的藍圖。要生一個兒子的應許,在本章末尾應驗;要起首拯救以色列脫離非利士人的應許,將在第14章與第15章中應驗;從出胎就作拿細耳人的話語,則要在第16章迎來結局。而將這整個故事貫穿到底的,不是參孫的信實,而是神的應許。

    於是瑪挪亞禱告。

    士13:8–9 瑪挪亞就祈求耶和華說:「主啊,求你再差遣那神人到我們這裡來,好指教我們怎樣待這將要生的孩子。」9 神應允瑪挪亞的話;婦人正坐在田間的時候,神的使者又到她那裡,她丈夫瑪挪亞卻沒有同她在一處。

    有人認為瑪挪亞這樣禱告,是因為他無法完全相信妻子的話。然而經文明確地說:「神應允瑪挪亞的話。」瑪挪亞說的是「這將要生的孩子」,可見他已經相信孩子必會出生,只是不知道該如何教養這孩子。這是每一位為人父母都會有的禱告。神也回應了這禱告,再次差遣使者前來。然而這一次,使者依然先向妻子顯現。妻子急忙跑去叫丈夫,瑪挪亞終於站在了那人面前,問出了他最想問的問題。

    士13:12–14 瑪挪亞說:「願你的話應驗!我們當怎樣待這孩子,他後來當怎樣呢?」13 耶和華的使者對瑪挪亞說:「我從前對婦人說的一切話,她都當謹慎。14 葡萄樹所結的都不可吃,清酒濃酒都不可喝,一切不潔之物也不可吃,凡我所吩咐的,她都當遵守。」

    若錯過這句話,就等於錯過了今天整段經文的重點。瑪挪亞問的是關於孩子的事——「我們當怎樣待這孩子,他後來當怎樣呢?」然而請看天使的回答——「我從前對婦人說的一切話,她都當謹慎。」這裡的「她」,不是孩子,而是那位婦人。天使並沒有重複第5節論及孩子的話,就是不可剃孩子頭髮那句話,而是重申了第4節,也就是母親要遵守的事——葡萄樹所結的都不可吃,清酒濃酒都不可喝,一切不潔之物也不可吃。並且說:「凡我所吩咐的,她都當遵守。」原文中這個「她」,明確是陰性代詞,指的正是那位婦人。瑪挪亞問的是該如何對待孩子,天使的回答卻是——母親必須先親自遵守那些吩咐。為孩子預備的分別為聖,不是從命令孩子做什麼開始的,而是先從懷著孩子的父母自身的生活開始。

    然而,我們都知道這故事的結局。母親確實遵守了神的話。可是長大後的參孫,卻不聽從父母的話,只憑「我眼中看為好的」行事,走上了自己的路。經文告訴我們,他的父母並不知道這事出於耶和華。在父母無法全然明白、也無法完全掌握的兒女人生道路上,神仍未放下祂的應許。即便參孫的頭髮被剃掉之後,神仍使它重新長起來。

    那麼,神為何要在這孩子出生之前,就將他分別為拿細耳人呢?神早已呼召以色列作「祭司的國度、聖潔的國民」。拿細耳人,就是非出身祭司家族的人,卻像祭司一樣,分別為聖歸給神而活。因此,這孩子所領受的呼召,其實就是將以色列全體百姓當活出的呼召,濃縮在一個人身上。在那連呼求都已忘記的百姓當中,神藉著一個孩子,再次向他們顯明:「你們本來就是這樣的百姓。」而我們接下來將要看到參孫的搖擺不定,正是那忘記了自己呼召的以色列的縮影。是的,這呼召如今也延續到我們身上。彼得對教會說:「你們是被揀選的族類,是有君尊的祭司,是聖潔的國度。」

    默想今天這段經文時,我不禁反省自己作為父母的樣子。我們的孩子並非我們夫妻求來而得的,而是神先賜下的禮物。然而,每當孩子長大,開始煩惱前途、踏上新的道路時,我卻更急切地向神詢問他們的明天。當然,為孩子的未來禱告是重要的,神也垂聽了瑪挪亞的禱告。然而在今天的經文中,面對詢問「該如何對待孩子」的父母,神回答的卻是父母自己首先當遵守什麼。參孫的母親在懷孕期間,先從自己親口所吃所喝的事上,過起了分別為聖的生活。我渴望知道兒女的明天,然而神早已告訴我,今天我自己當謹守的是什麼。是的,沒錯。兒女成長時所看見、所模仿的,不是我說的話,而是我活出來的樣子。而他們的明天,終究掌握在神的手中。想到這裡,我便想起我們群體中身為父母的弟兄姊妹們——那些每日為兒女的學業、前途與信仰懇切禱告的肢體們……我明白那份心情。所以今天,我也要將兒女的明天交託給神,先用今天這一天的生活活出祂的話語,然後才站在孩子面前。我如此禱告:主啊,願我們的兒女,從我們的生命而非我們的言語中,看見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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