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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창세기 31:36-55

    今日默想:創世記 31:36-55

    Kyoung Woo Han··조회 18

    오늘 본문을 다시 읽다가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야곱은 분명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셨다"고 고백한다. 이건 야곱의 신앙처럼 들린다. 사실 라반조차 일찍이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라"(창 30:27)고 인정했었다. 라반의 입에서, 야곱의 입에서 — 하나님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입술의 고백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 집안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어제 본문에서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쳐 안장 아래 숨겼다. 약속의 가정 안에 우상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보면...

    창 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이 경외하는 이. 한 번도 '나의 하나님'이 아니다.

    야곱은 이미 20년 전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다(창 28장). 사다리를 보았고, 음성을 들었고, 서원도 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라반과 결별하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입술은 앞서 있는데,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라헬의 안장 아래 드라빔이 있어도 야곱은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결국 그의 신앙은 아직 그의 가정의 깊은 곳까지 닿지 않았다.

    야곱이 비로소 "엘 엘로헤 이스라엘 —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부르게 되는 것은, 다음 장에서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진 다음이다(창 33:20). 자기 힘이 꺾인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래. 이 말씀이 오늘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도 입술로는 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라고 말한다. 강단에서도 항상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인가, 아니면 신학 책의 하나님, 설교문의 하나님, 부모 세대의 하나님인가? 입술의 신앙과 마음의 신앙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것 — 이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부끄럽고 두렵다.

    그리고 이 본문과 최근 계속 묵상하는 야곱의 모습으로 우리 공동체를 본다.

    지금 우리 공동체 안에 질병과 싸우는 지체들이 있다. 경제의 무게에 짓눌려 잠 못 이루는 형제 자매들이 있다. 학업과 진로의 막막함 앞에 무너진 청년들도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보고 계세요"라는 말이 위로가 될까? 아니, 어쩌면 그 말도 또 하나의 '아버지의 하나님' 이야기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입술 위에서만 미끄러지는 말들... 그리고 정작 그들의 안장 아래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야곱의 이야기가 한 가지를 말해준다.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바뀌는 자리는,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자리가 아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자리,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안 되는 자리, 어둠 가운데 홀로 씨름해야 하는 자리다. 그렇기에 고통은 — 우리가 결코 원하지 않지만 — 어쩌면 하나님이 한 사람을 '나의 하나님'을 부르는 자리로 데려가시는 통로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손쉽게 위로하는 게 아니다. "다 잘될 거예요"가 아니다. 어쩌면 그 어둠의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섣부른 결론을 들이밀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과 직접 씨름하도록 — 그래서 언젠가 그들 입술에서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터져 나오도록 — 곁에서 기다리고 기도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이 '아버지의 하나님'에서 '나의 하나님'으로 건너가는 그 자리까지,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길 소망하며...

    中文 AI翻譯

    今天重讀這段經文時,有一件事讓我心中若有所思。

    雅各明確地承認:「神看見了我的苦難和我手所做的勞碌。」這話聽起來像是雅各的信仰告白。事實上,就連拉班也曾說過:「我看出來耶和華因你的緣故賜福給我。」(創 30:27)從拉班口中,從雅各口中——神的名字自然地流淌而出。嘴唇上的認信,確實存在。

    然而,若往那個家的內裡深處一看,卻並非如此。昨天的經文中,拉結偷了父親的家神,藏在駱駝的鞍袋之下。在應許之家的內裡,竟藏著偶像。再看今天經文中雅各所呼求的那個名字……

    創 31:42 若不是我父親亞伯拉罕的神、就是以撒所敬畏的那一位與我同在,你如今必定打發我空手而去。神看見了我的苦難和我手所做的勞碌,昨夜就責備你了。

    「我父的神」、「亞伯拉罕的神」、「以撒所敬畏的那一位」——從未有一次是「我的神」。

    雅各早在二十年前的伯特利,就已經遇見了神(創 28 章)。他看見了天梯,聽見了聲音,也許下了誓願。然而二十年後的今天,在與拉班決裂的這個關鍵時刻,神仍然是「父親的神」。嘴唇已然走在前頭,心卻似乎追趕不上。正因如此,即使拉結鞍袋之下藏著家神,雅各既沒有確認,也沒有追問。歸根結底,他的信仰,尚未觸及自己家庭最深的地方。

    雅各真正開口稱呼「神,以色列人的神——伊勒‧以羅黑‧以色列」,是在下一章,在雅博渡口大腿窩脫臼之後(創 33:20)。在自己的力量被折斷的那個地方,他才終於能夠稱神為「我的神」。

    是的。這段話語今天讓我回頭省視自己。我也常常在嘴唇上說:「神與我同在」、「神在引領」。在講台上,我也總是這樣說。然而,那位神,真的是「我的神」嗎?還是神學書本上的神、講章裡的神、上一代人的神?承認嘴唇的信仰與內心的信仰之間存在著落差——光是這樣承認,就已令我羞愧,令我懼怕。

    帶著這段經文,以及近來持續默想雅各的形象,我也看向我們的群體。

    如今我們群體中,有正在與疾病搏鬥的肢體。有被經濟的重擔壓得夜不能寐的弟兄姊妹。也有面對學業與前途的茫然,幾近崩潰的年輕人。對他們說「神在看顧你們」,這話能成為安慰嗎?不,也許那句話,又會成為另一個「父親的神」的故事,只是在嘴唇上滑過而已……而他們鞍袋之下究竟藏著什麼,我並不知曉。這讓我心中更加沉重。

    然而,雅各的故事告訴了我們一件事:「父親的神」轉變為「我的神」的那個地方,不是一切都順遂如意的地方。而是大腿窩脫臼的地方,是憑著自己的力量再也無能為力的地方,是必須在黑暗中獨自摔跤的地方。因此,苦難——儘管我們絕不願意——或許正是神將一個人帶到能夠呼喊「我的神」那個地方所用的通道。

    所以,今天我當做的,不是輕巧地遞上安慰。不是說「一切都會好起來的」。或許,是坐在那片黑暗裡,與他們同在。不急著拋出結論,而是讓他們能夠親自與神摔跤——使他們有一天,能從自己的嘴唇上迸發出「我的神」這一聲告白——在旁邊等候,為他們禱告。

    今天,也盼望我們群體的肢體們,能夠一路走到從「父親的神」跨越至「我的神」的那個地方——願我們成為一個同行於此的信仰群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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