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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창세기 37:1-17

    今日默想:創世記 37:1-17

    Kyoung Woo Han··조회 71

    본문은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창 37:1)라는 구절로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처럼 야곱은 이제 마침내 정착했다. 그러나 그가 정착한 그 가정 안에서는 이미 깊은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본문은 이어서 야곱이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했고, 그를 위해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고 말한다. 그리고 형들은 그 모습을 보고 요셉에게 편안하게 말조차 건넬 수 없었다.

    창 37:3-4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사실 야곱이 요셉을 그토록 사랑한 이유는 너무도 잘 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다. 그래서 라헬을 위해 외삼촌 집에서 칠 년을 일했고, 속아서 또 칠 년을 더 일했다. 그렇게 마침내 라헬을 아내로 얻었지만, 정작 라헬에게서 자녀를 얻기까지는 또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첫 아들이 요셉이었고,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라헬은 죽었다. 그렇기에 요셉과 베냐민은 그 사랑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그런 야곱이 라헬에게서 난 두 아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은 것은 솔직히 이해가 된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야곱의 사랑은 마음의 영역에서 멈추지 않고 야곱의 가정의 질서를 흔들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 채색옷을 단순히 사랑하는 아들에게 입혀준 화려한 옷이 아니라 장자의 권한을 넘긴 표지로 본다. 손목과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은 들에서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이 옷을 입은 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자라는 시각적 선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역대상 5장을 보면 르우벤이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기에 장자의 명분이 요셉의 자손에게 주어졌다고 분명히 기록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요셉이 본문에서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보고한 것도 그저 일러바치는 어린아이의 행동이 아니다. 장자권 보유자로서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를 중재하고 가문의 일을 책임지는 직무 수행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형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이중의 모욕이었다. 자신들의 자리, 곧 나이 순서로 마땅히 자기들에게 와야 할 장자의 자리가 한순간에 어린 동생에게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어린 동생이 이제는 자신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보고하고 있다. 거기에 요셉의 두 차례 꿈이 더해지자, 형들의 미움은 살의로 변해간다. 본문은 그렇게 한 가정의 가장 복잡한 자리에서 시작된다. 야곱의 사랑은 이해되지만 가정을 갈라놓고, 형들의 분노는 이유가 없지 않지만 결국 동생을 죽이려 한다. 옳고 그름을 단순히 가르기 어려운 자리, 그곳이 야곱의 가정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곳에서 일하신다. 형들이 세겜을 떠나 도단으로 가버린 그 들에서, 이름 없는 한 사람이 헤매는 요셉을 만나 길을 알려주는 작은 장면 안에도 하나님의 손길은 이미 와 있다. 그 만남이 없었다면 요셉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도단으로 갔기에 형들의 손에 넘겨졌고, 이집트로 팔려 갔으며, 결국 흉년 가운데 야곱의 온 가족이 보존되는 길이 열렸다. 야곱의 편애도 죄였고 형들의 분노도 폭력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깨어진 사랑과 비틀어진 분노조차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가정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가장 큰 일을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나는 항상 이 본문 앞에서 야곱의 편애가 형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거나, 요셉의 행동이 형들의 미움을 받을 만 했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그런 복잡한 가정사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해 본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 그 눈 앞에 보이는 가정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눈 앞에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어 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 본문을 묵상하며 내 삶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길 소망한다.

    그래 비록 내 지식으로 내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할 수 있길...

    中文 AI翻譯

    本段經文以「雅各住在迦南地,就是他父親寄居的地方」(創 37:1)開啟了約瑟的故事。至此,雅各終於安定下來。然而,就在他所安居的這個家中,深深的裂縫已悄然開始。經文接著說,雅各愛約瑟勝過愛其他的兒子,為他做了一件彩衣。而哥哥們看見這一切,連一句和氣的話都無法對約瑟說出口。

    創 37:3-4 雅各愛約瑟過於愛他的眾子,因為約瑟是他年老時所生的;他給約瑟做了一件彩衣。4 他的哥哥們見父親愛約瑟過於愛他們,就恨約瑟,不與他說和睦的話。

    其實,雅各如此深愛約瑟的緣由,我們都再清楚不過了。雅各深愛拉結,為了她在舅父家服事了七年,又被欺騙,再服事了七年。就這樣,他終於娶得拉結為妻,然而要從拉結那裡得到兒女,又等待了漫長的歲月。費盡艱辛所得的第一個兒子,便是約瑟;而拉結在生下幼子便雅憫時,撒手人寰。因此,約瑟與便雅憫,是那份愛最後留下的印記。這樣的雅各,對拉結所生的兩個兒子傾注了特別的疼愛,說實在的,這是令人理解的,也是完全可以理解的。

    然而,雅各的愛並沒有止步於心靈的層面,它動搖了這個家的秩序。有些神學家認為,這件彩衣並非單純送給愛子的華美外衣,而是將長子名分轉讓的標誌。從手腕垂至腳踝的長袍,並不適合在田間勞作,穿上它的人,不是勞動者,而是管理者——這是一種視覺上的宣告。再看歷代志上第五章,經文清楚記載,因流便玷污了父親的床,長子的名分便歸給了約瑟的子孫。從這個角度來看,約瑟在本段經文中將哥哥們的過失稟告父親,也就不只是孩子打小報告的行為了,而應理解為長子名分持有者的職責履行——在父親與兄弟之間從中協調,承擔家族事務。

    然而,對哥哥們而言,這一切卻是雙重的羞辱。他們本應按照長幼秩序理所當然地承接的長子地位,就在一瞬間轉到了年幼的弟弟手中。而那個年幼的弟弟,如今更將他們的過失稟報給父親。加上約瑟接連兩個夢的內容,哥哥們的恨意漸漸演變為殺機。經文就這樣從一個家庭最錯綜複雜之處起筆:雅各的愛雖然令人理解,卻使家庭四分五裂;哥哥們的憤怒並非毫無緣由,最終卻要取弟弟的性命。難以輕易判斷是非對錯之處——那便是雅各的家。

    儘管如此,神仍在那裡工作。在哥哥們從示劍離去、移往多坍的曠野裡,一個無名之人遇見迷路的約瑟,為他指引了方向——就在這不起眼的小小場景中,神的手已然臨在。若沒有那次相遇,約瑟大概就直接回家了。然而,正因他去了多坍,才落入哥哥們手中,被賣往埃及,最終在饑荒之中,為雅各全家的存活開了一條路。雅各的偏愛是罪,哥哥們的憤怒也演變為暴力,然而神卻將那破碎的愛與扭曲的憤恨,一同使用為拯救祂子民的器具。在家庭最幽暗的角落,神早已在籌備最偉大的事。

    面對這段經文,我常常會想:雅各的偏心引發了哥哥們的憤怒,或者約瑟的行為也確實招來了哥哥們的嫉恨。然而,今天,我想特別將目光聚焦在那位即使在如此複雜的家庭際遇中,仍然工作的神身上。或許我們一直將注意力放在眼前所見的家庭瑣事上,卻看不見神在其中的作為。在我們的生命裡,眼前發生的許多問題也不斷奪走我們的心思,我們就在其中按自己眼中所看為對的去行。但我們需要看見那在其間工作的神。這固然不容易,然而今天,願我們藉著默想這段經文,能默想那在我生命中工作的神。

    是的,儘管憑我的知識、我的判斷,那是無法理解之事,但願我們能在其中操練信靠那位仍在歷史中運行的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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