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14:1–23
今日默想:以賽亞書 14:1–23
제목 : 노래를 빼앗겼던 자들이
어제 본문은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했다. 열국의 영광이라 불리던 도시가 짐승의 소굴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14장은 그 심판 이야기를 곧바로 이어 가지 않는다. 먼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사 14: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심판의 노래보다 회복의 약속이 먼저 놓인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택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치셨지만, 그것이 언약을 끝내신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래 심판이 지나간 뒤에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택하시고 그 땅에 회복하신다. 그러니 오늘 이어지는 바벨론을 향한 노래는 심판 자체를 즐기는 노래가 아니다. 압제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부르는 해방의 노래다.
사 14:4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이 노래를 부르게 될 사람들이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훗날 바벨론에 끌려간 백성은 그 강가에서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 두고 울었다. 사로잡은 자들이 시온의 노래를 한 곡 불러 보라며 조롱했기 때문이다. 그 시온의 노래는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포로된 자들의 입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렇기에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노래를 빼앗긴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 일이 있기 훨씬 전에 이미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언젠가 다시 이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노래를 빼앗겼던 자들이 마침내 노래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 노래의 내용이 이어진다.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다고 한다. 그러자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여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그 노래에 사람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사 14:8 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도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져 있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베어 버릴 자 없다 하는도다
나무들이 기뻐한다. 제국은 숲을 베어 궁전을 짓고 병거를 만들었다. 그 벌목꾼이 쓰러지니 숲이 안도한 것이다. 압제자가 무너지는 것은 사람에게만 좋은 소식이 아니라 온 피조물에게 안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래가 스올로 내려간다. 스올이 그를 맞으려 소동하고, 먼저 죽은 세상의 왕들이 일어나 그를 맞으며 말한다.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그토록 화려하던 왕의 침상이 이제 구더기이고 그의 이불이 지렁이다. 궁전의 영화와 무덤의 실상이 이렇게 마주 놓인다.
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이 구절은 설명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사탄의 타락을 말하는 말씀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계명성'으로 번역된 말이 라틴어 성경에서 '루시퍼'로 옮겨졌고, 그 이름이 훗날 마귀의 이름처럼 굳어졌다. 초대교회 이후로 교부들에 의해 이 구절을 그렇게 읽어 온 오랜 전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칼빈은 이 해석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칼빈 주석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앞뒤 문맥을 살피자면 이 말이 바벨론의 왕과 관련해서 말한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성경귀절을 아무렇게나 읽으며 문맥에 무관심하다 보면 그런 실수가 잦게 된다" 실제로 본문이 스스로 밝히고 있다. 4절에서 이사야는 이것이 바벨론 왕에 대한 노래라고 못 박았다. 그러니 이 구절은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늘에 오르려 했던 한 바벨론 왕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그가 마음에 무엇이라고 했는가. 내가 하늘에 올라가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겠다고 했다. 신들이 모인다는 산 위에 앉겠다고 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겠다고 했다. 다섯 번이나 '내가'라고 말한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 인간의 죄악은 근원인 교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런데 그 다섯 번의 '내가' 끝에 하나님의 한마디가 놓인다.
사 14: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하늘 꼭대기를 향하던 자가 구덩이 맨 밑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최후가 더 처참하다. 열국의 모든 왕은 각각 자기 무덤에 영광 중에 누웠는데, 이 왕은 자기 무덤에서조차 쫓겨난다. 옛날 사람들에게 왕의 무덤은 그 위엄의 마지막 증거였다. 그런데 이 왕은 그것조차 얻지 못한다. 가장 높으려 했던 자가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그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끊으시겠다고 하신다. 평생 자기 이름을 높이려 했던 자에게서, 하나님은 바로 그 이름을 거두신다. 이것이 바로 교만의 최후이다.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웠다. 나도 그동안 이 계명성을 사탄이라고 해석해 왔다.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그렇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본문을 주해하면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교만이자 어리석음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 배운 대로 읽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 교만이기 때문이다. 본문 앞에 겸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바벨론 왕의 다섯 번의 '내가'도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마음, 내가 아는 것이 맞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나에게 하늘에 오르겠다는 야망은 없을지 몰라도, 내가 아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완고함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겸손히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내가 배운 것과 들은 것을 앞세우지 않고, 말씀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먼저 듣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 안의 '내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이 앉아 계시게 하옵소서.
(안내) 내일(8/3)부터 일주일간 '오늘의 묵상'은 엄목사님이 작성해주십니다. ^^
題目:那些曾被奪走歌聲的人
昨日的經文宣告了巴比倫的滅亡。那被稱為列國榮耀的城市,將要變成野獸的巢穴。然而今天的第14章,並沒有立刻延續那審判的故事,而是先出現了另一段話。
賽14:1 耶和華必憐恤雅各,必再揀選以色列,將他們安置在本地。寄居的必與他們聯合,緊貼雅各家。
在審判之歌之前,先放下了恢復的應許。這裡說「再揀選」。這意味著,神雖擊打了自己的百姓,但並沒有因此終止與他們所立的約。所以審判過去之後,神要再次揀選他們,使他們回到那地得以恢復。因此,接下來向巴比倫所唱的這首歌,並不是在單純享受審判本身的歌,而是從壓迫中得釋放之人所唱的解放之歌。
賽14:4 你必題這詩歌,論巴比倫王說:欺壓人的何竟熄滅?強暴的何竟止息?
我們應當看清楚,將來會唱這首歌的人是誰。後來被擄到巴比倫的百姓,在河邊把琴掛在柳樹上哭泣。因為擄掠他們的人嘲笑他們,要他們唱一首錫安的歌。而那首錫安之歌,正是述說神必保守錫安的內容。那麼,若這首歌從被擄之人口中唱出,該是何等的羞辱呢?所以他們把琴掛在柳樹上,不肯歌唱。他們是被奪走了歌聲的人。然而以賽亞早在此事發生之前,就已經這樣說了:你們有一天必要再唱這首歌。他預言那些被奪走歌聲的人,終將成為歌唱的人。
接著就是那首歌的內容。耶和華折斷了惡人的杖,折斷了掌權者的權杖。於是全地都平靜安穩,發聲歌唱。然而參與這首歌的,不只是人。
賽14:8 松樹和黎巴嫩的香柏樹,因你歡樂說:自從你仆倒,再無人上來砍伐我們。
樹木也歡喜快樂。帝國曾經砍伐森林,用來建造宮殿、製造戰車。如今那砍伐者倒下了,森林便得了安息。壓迫者的傾覆,並非僅是對人有益的好消息,也是萬有受造物得享安息的緣由。
接著,這首歌下到了陰間。陰間為要迎接他而騷動,那些先前已死去的地上君王們都起來迎接他,說:你也變得和我們一樣軟弱了嗎?那曾經如此華美的王的床榻,如今成了蛆蟲;他的被褥,如今成了蟲子。宮殿的榮華與墳墓的實相,就這樣兩相對照。
賽14:12 明亮之星、早晨之子啊,你何竟從天墜落!你這攻敗列國的,何竟被砍倒在地上!
這段經文需要說明。因為許多人以為這節經文說的是撒但的墮落。這裡譯為「明亮之星」的字,在拉丁文聖經中被譯為「路西弗」(Lucifer),而這個名字後來便固定成了魔鬼的名字。的確,自初代教會以來,教父們如此解讀這節經文,已有悠久的傳統。然而,加爾文明確反對這種解釋。加爾文在註釋中這樣說:「若查看上下文脈絡,便可清楚看出,這段話所論的乃是巴比倫王。若隨意讀經文而不顧上下文,便常會犯這樣的錯誤。」實際上,經文本身也已表明了這一點。第4節中,以賽亞已明確指出,這是論巴比倫王的詩歌。因此,這節經文應當被理解為:論一個心中自高、企圖攀升至天上的巴比倫王的故事。
他心裡曾說什麼呢?他說,我要升到天上。我要高舉我的寶座在神眾星之上。我要坐在諸神聚會的山上。我要升到至高雲端。最後,他還說,我要與至高者一樣。「我要」這句話一連說了五次。他心中所想的,唯有他自己。人類罪惡的根源——驕傲——在此赤裸裸地顯露出來。然而,在這五次「我要」之後,緊接著便是神的一句話。
賽14:15 然而你必墜落陰間,到坑中極深之處。
那曾志在攀升天頂的人,如今墜落到坑中最深之處。而他的結局更加淒慘。列國諸王各自都在自己的墳墓中安然享受榮耀,唯獨這王,連自己的墳墓也被逐出。在古時,君王的墳墓乃是其威嚴最後的見證。然而這王卻連這個也得不到。那企圖成為至高者的,如今被放置在最卑微的位置。神更宣告,要從巴比倫剪除他的名號、剩餘的人、他的兒子與後裔。那一生都想高舉自己名號的人,神卻正正從他身上收回了那個名號。這正是驕傲的最終結局。
默想這段經文時,我感到自己十分慚愧。因為我過去也一直把這「明亮之星」解釋為撒但。因為我從許多牧師的講道中都是這樣聽來的。所以我從未有過懷疑。然而這次在細讀註解這段經文時,才發現自己一直理解錯誤。也許這正是我的驕傲與愚昧。因為以為自己已經知道了,以為照著所學的去讀就可以了,這本身就是一種驕傲。是我沒有在經文面前保持謙卑。這樣說來,巴比倫王五次所說的「我要」,其實也是出自同一個根源——認為自己是對的心,認為自己所知的就是正確的心。也許我心中沒有那種要攀升天上的野心,但卻有著對自己所知從不懷疑的頑固。所以今天,我也謙卑跪下禱告:求主讓我不將自己所學所聞放在前面,而是先去聆聽話語真正所要說的是什麼。求主也讓我放下心中的那個「我」,讓神真正坐在屬於神的位置上。
(公告)從明天(8/3)開始一週,「今日默想」將由嚴牧師撰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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