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8:1-13
今日默想:哥林多前書 8:1-13
사랑은 많은 것을 양보한다. 그러나 진리는 양보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 두 가지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고대 고린도 같은 도시에서 고기는 대부분 제의와 연결되어 있었다. 신전에서 동물이 제물로 드려지면 그 고기가 신전 안의 연회장으로, 또 시장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 고기를 먹을 기회는 주로 신전 축제나 길드(직업조합) 연회였는데, 이런 모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수호신에게 바치는 제의 순서가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업 관계, 동료들과의 모임, 가족 행사, 친구의 초대 — 사회생활 전체가 걸린 문제였다.
그런데 이 본문을 읽을 때 조심할 것이 하나 있다. 여기 나오는 '지식 있는 자들'과 '믿음이 약한 자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아니다. 둘 다 이방인 출신의 성도들이다. 한쪽은 지식과 사회적 여유가 있어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평생 우상을 섬기다가 이제 막 돌이킨 사람들이다. 그래서 약한 자들에게 그 고기는 그냥 음식이 아니었다. 어제까지 자기가 섬기던 신들의 기억이 묻어 있는 음식이었다. 이 두 부류 앞에서 바울은 어떻게 답했을까. 먼저 바울은 진리에 대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고전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그래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다. 그러니 고기는 그냥 고기다. 바울은 약한 형제들이 듣기 불편해할까 봐 이 진리를 흐리거나 무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이 만들어내는 장면이었다. 지식 있는 성도가 우상의 신전에 앉아 거리낌 없이 먹는 모습을, 우상 숭배에서 갓 돌이킨 형제가 본다. 그 형제는 담력을 얻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양심을 거스르며 따라 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그를 다시 옛 우상숭배의 자리로 끌고 들어간다. 그것을 바울은 염려하고 있다.
그래, 내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본보기가 되고, 그 본보기가 형제를 무너뜨리는 첫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진리를 명확하게 선언한 후에 자기 자신에 대해 전혀 다른 결단을 내린다.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것은 신전에서만 안 먹겠다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산, 아무 문제 없는 고기까지 포함해서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한다. 형제가 걸려 넘어질 수 있다면 정당한 자유의 영역까지 통째로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내려놓은 것은 진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진리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리를 끝까지 붙잡은 것이다. 바울은 이미 8장을 시작하면서 말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고전 8:1). 사랑 없이 붙잡은 진리는 아직 참으로 붙잡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형제를 위해 권리를 내려놓는 그 사랑이야말로, 진리를 가장 단단히 붙잡는 손이다.
이 땅에서 목회하면서 이 분별이 매일 필요함을 느낀다. 고린도의 그 문제가 이 땅에서는 빠이빠이 문화로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제사 음식 앞에 서야 하는 지체들, 회사와 가족의 기대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정죄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자리까지 내려가서 함께 고민하고, 기다려주고, 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동시에 두려운 마음으로 안다. 내 말 한마디와 내 자유로운 모습이, 이제 막 믿음을 시작한 지체에게는 본보기가 된다는 것을... 아마 많은 지체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이 따로 있을 때가 있다. 시대가 열려 있는 만큼, "그것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 더 따뜻해 보일 때가 있다. 솔직히 그렇게 말하고 싶은 유혹이 나에게도 있다. 그러나 바울처럼,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게, 진리 앞에서는 끝까지 단호하게 — 그 좁은 길을 기도하며 걸어가고, 그렇게 지체들을 섬기며 나아가길 소망한다.
愛讓步許多,真理卻絕不讓步。默想今日經文時,這兩件事深深留在我心中。
首先,需要了解本段經文的背景。在古代哥林多這樣的城市裡,肉食大多與祭祀儀式密切相關。動物在神廟中獻祭之後,那些肉便流入神廟內的宴會廳,也流入市場。因此,普通人得以吃肉的機會,主要是在神廟節慶或行會(職業公會)的宴席上,而這類聚會幾乎無一例外地包含向守護神獻祭的儀式環節。所以,這並不單純是吃什麼的問題,而是牽涉到商業往來、同事聚會、家族禮儀、朋友邀約——整個社會生活都牽連其中。
然而,讀這段經文時有一點需要留意。這裡所提到的「有知識的人」和「信心軟弱的人」,並非猶太人與外邦人之別,兩者都是出身外邦的信徒。一方是有知識、有社會餘裕的人,認為「偶像算不得什麼,吃肉無妨」;另一方則是終其一生侍奉偶像、如今才剛剛回轉的人。因此,對軟弱的人而言,那肉食並非普通的食物,而是沾染著他們昨日所事奉之神明記憶的食物。
面對這兩類人,保羅如何作答?首先,保羅在真理上絲毫不退讓。
林前 8:4 論到吃祭偶像之物,我們知道偶像在世上算不得什麼,也知道神只有一位,此外再沒有別的神。
是的,偶像算不得什麼,神只有一位,所以肉就只是肉。保羅並沒有因為擔心軟弱的弟兄聽了不舒服,就模糊或退縮於這個真理。然而,問題不在於知識本身,而在於那知識所造成的景象:一位有知識的信徒坦然坐在偶像神廟中毫無忌憚地吃肉,被一位剛從偶像崇拜中回轉的弟兄看見。那位弟兄受到鼓舞,違背尚未整理清楚的良心,跟著吃了那肉。而那一步,卻將他重新拉回昔日偶像崇拜的境地。這正是保羅所憂慮的。
是的,我的自由可能成為某人的榜樣,而那榜樣,或許正是絆倒弟兄的第一個環節。因此,保羅在清楚宣告真理之後,對自己作出了截然不同的決志。
林前 8:13 所以,食物若叫我弟兄跌倒,我就永遠不吃肉,免得叫我弟兄跌倒。
這不只是說在神廟裡不吃,而是連從市場購買、毫無問題的肉也包含在內,說要永遠不吃。若弟兄可能因此跌倒,就連正當自由的範疇也要整個放下。因此,保羅所放下的,不是真理,而是他自己。而這並非從真理退讓,恰恰相反,這是緊緊抓住真理到底。保羅在第八章一開始便說了:知識叫人自高自大,唯有愛心能造就人(林前 8:1)。沒有愛的真理,尚不算真正持守。那麼,為了弟兄而放下權利的那份愛,正是握住真理最有力的手。
在這片土地上牧養的過程中,我每天都感受到這種分辨的必要。因為哥林多的那個問題,在這片土地上以拜拜文化的形式至今仍然存在。一想到每逢節日就必須面對祭祀食物的肢體,在公司期望與家族期待之間掙扎的肢體,心中便滿是牽掛。因此,我不願定罪他們,而是盼望能走到他們所在的地方,與他們一同思索,陪伴他們,等待他們,包容他們。
與此同時,我也帶著敬畏之心深知:我的一句話、我自由自在的樣子,對於剛剛開始信主的肢體而言,都可能成為榜樣……或許有許多肢體心中已有想要聽到的答案。在這個時代如此開放的氛圍下,說一句「那樣也沒關係」,有時看起來更顯溫柔。坦白說,我自己也有過這樣的誘惑。然而,如同保羅一樣,我所能讓步的是我自己,而非神的真理。因為我知道,將非真理之事當作真理傳講,並不是愛。所以,今天我依然在這條窄路上禱告前行——在人面前無限溫柔,在真理面前始終堅定——並盼望就這樣服事肢體,繼續走下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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