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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9:46–57

    今日默想:士師記 9:46–57

    한경우··조회 148

    제목 :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어제 본문에서 아비멜렉은 세겜을 무너뜨리고 그 땅에 소금을 뿌렸다. 요담이 그리심 산에서 외쳤던 저주가 그렇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오늘 본문은 그 저주가 끝까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그리고 아비멜렉이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닫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6장부터 이어져 온 기드온 집안의 긴 이야기도 여기서 끝난다.

    삿 9:46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엘브릿 신전의 보루로 들어갔더니

    세겜의 남은 사람들이 피한 곳이 어디인지를 보라. 엘브릿 신전의 보루다. 앞에서 바알브릿이라 불렸던 세겜의 그 언약신을 섬기던 곳이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자기들의 신에게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 신의 신전이 어떤 곳이었는가. 삼 년 전 아비멜렉에게 왕이 될 은 칠십 개를 내준 곳이다. 그러니까 아비멜렉의 왕권이 시작된 그 신전으로 세겜 사람들이 살려고 들어간 것이다.

    삿 9:48 아비멜렉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살몬 산에 오르고 아비멜렉이 손에 도끼를 들고 나뭇가지를 찍어 그것을 들어올려 자기 어깨에 메고 그와 함께 있는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가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 하니

    이 절에서 반드시 붙잡아야 할 말이 있다. 아비멜렉은 9장 2절 이후로 이 이야기에서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무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한다. "너희는 내가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

    이 말을 어디서 들어 보았는가. 기드온이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그들 손에 나팔과 항아리를 들려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기 전에 한 말이다.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7:17). 아버지는 그 말로 삼백 명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짓밟던 이방의 압제자를 쳤다. 그런데 한 세대 뒤, 그 아들이 거의 같은 말로 무리를 이끌고 가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동족이 숨어 있는 건물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같은 말이 한 세대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

    삿 9:49 모든 백성들도 각각 나뭇가지를 찍어서 아비멜렉을 따라 보루 위에 놓고 그것들이 얹혀 있는 보루에 불을 놓으매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남녀가 약 천 명이었더라

    요담의 말을 기억해 보라.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9:20). 그리고 그 앞의 우화에서 가시나무가 한 말도 떠올려 보라.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9:15). 나뭇가지를 찍어 쌓고 거기에 불을 붙이는 아비멜렉의 모습이 바로 그 가시나무의 불이다. 요담의 저주가 놀랄 만큼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 숫자를 적어 둔다. 남녀 약 천 명이다. 반란을 꾀한 몇몇 지도자들이 아니었다. 그 성읍의 남자와 여자 천 명이 한꺼번에 불에 타 죽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삿 9:50-52 아비멜렉이 데베스에 가서 데베스에 맞서 진 치고 그것을 점령하였더니 51 성읍 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으므로 그 성읍 백성의 남녀가 모두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간지라 52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사르려 하더니

    본문은 데베스가 반란에 가담했는지, 아비멜렉이 왜 그곳까지 쳐들어갔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장면이 그대로 되풀이된다. 망대가 있고, 사람들이 그 안으로 피하고, 아비멜렉이 불을 지르려 한다. 세겜에서 성공한 방법을 데베스에서 한 번 더 쓰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간다.

    삿 9:53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한 여인이 나온다. 이름도 소개도 없다. 그리고 그녀가 던진 것은 칼이나 창이 아니라 맷돌 위짝이다. 곡식을 갈 때 손으로 돌리는 윗돌이고, 여인들이 날마다 부엌에서 쓰던 살림 도구다. 전사의 칼이 아니라 이름 없는 여인의 살림 도구가 왕의 머리를 깨뜨렸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사사기 4장에서 가나안 군대의 장군 시스라가 야엘이라는 여인의 손에 장막 말뚝을 맞고 죽었다. 그런데 그때 죽은 사람은 이스라엘을 짓밟던 이방의 장군이었다. 지금 죽는 사람은 이스라엘 안에서 왕이 된 기드온의 아들이다. 이스라엘의 원수가 죽던 그 방식으로 이제 이스라엘 사람이 죽는다. 사사기가 여기까지 내려와 있는 것이다.

    삿 9:54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하니 그 청년이 그를 찌르매 그가 죽은지라

    두개골이 깨진 채 아비멜렉이 마지막으로 챙긴 것이 무엇인가. 자기 이름이다.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그는 죽음 그 자체보다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더 걱정했다. 이 장면은 훗날 사울의 죽음과 짝을 이룬다. 사울도 길보아 산에서 자기 무기 든 자에게 칼을 빼어 자기를 찌르라고 했다. 그런데 사울의 무기 든 자는 심히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삼상 31:4). 반면 아비멜렉의 청년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그를 찌른다.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아비멜렉의 왕권이 얼마나 초라했는지가 더 드러난다.

    그런데 그가 끝까지 지키려 한 그 이름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훗날 다윗의 장군 요압이 전쟁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의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베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삼하 11:21). 그가 죽으면서 가장 피하고 싶어 했던 그 기억이, 성경 안에서 그를 대표하는 기억이 되었다.

    삿 9:55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지금까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의 무리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두고 해석은 갈린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아비멜렉이 죽자 그저 흩어졌다는 것이다. 무엇을 이룬 것도, 누구를 따라간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기억하자. 사사기에서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라는 말이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기드온 때였다. 그 뒤로 이 말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

    삿 9:56-57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라

    이제 저자가 이 모든 일을 정리한다. 생각해 보라. 9장 전체에서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 있었는가. 아비멜렉도, 세겜 사람들도, 가알도, 스불도 하나님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요담만이 하나님을 불렀을 뿐이다. 모두가 자기 셈대로 움직였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려고, 세겜은 자기 이익을 따라, 가알은 그 자리를 빼앗으려고, 스불은 자기 줄을 지키려고 움직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쓰신 분은 따로 계셨다. 9장 23절에서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시매"로 시작된 이야기가 여기서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로 닫힌다. 그리고 그 갚으심이 양쪽으로 간다. 아비멜렉의 악은 아비멜렉에게로, 세겜의 악은 세겜의 머리 위로 돌아간다. 요담이 말한 그대로다. 아비멜렉에게서 나온 불은 세겜의 망대를 살랐고, 세겜과 아비멜렉은 서로를 무너뜨린 끝에 함께 무너졌다. 아비멜렉은 불로 다른 사람들의 마지막을 쓰려 했다. 그러나 자기 마지막은 이름 없는 한 여인과, 그 뒤에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 쓰셨다. 그는 왕이 되고 싶었지만, 이 이야기의 마지막 말을 쓰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사사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나님이 주신 샬롬의 땅인데, 그 땅에 샬롬이 없는 모습이 자꾸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이 사사기 묵상을 시작하면서 붙들었던 말이 '엔 샬롬', 곧 샬롬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긴 이야기를 지나고 나니 그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면 샬롬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일하셨다. 악한 영을 보내셨고, 끝내 갚으셨다. 그런데도 샬롬은 없었다. 왜 그런가. 그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9장 전체에서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님이 그저 멀리서 지켜보고만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다시 읽어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그들이 택한 길에 그대로 내어 주고 계셨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셨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롬 1:24). 나는 이것이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보다 더 무섭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를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기저기서 불리는데 정작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드물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셈대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룻기가 그것을 증명한다.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라는 말로 시작한다(룻 1:1). 바로 이 어두운 시대 한복판에서, 베들레헴의 한 집안과 모압에서 온 한 여인이 서로에게 인애를 베풀며 살았다. 사사기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탄식으로 끝날 때, 룻기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 끝에 다윗의 이름을 적어 두고 끝난다. 하나님은 무너져 가는 시대 속에서도 말씀대로 사는 한 사람과 한 가정을 통해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시대를 탓하기 전에 우리 공동체를 먼저 돌아본다. 우리는 이 사사기 같은 시대를 룻기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은 샬롬이 없는 이 시대 한가운데서, 우리 공동체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작은 룻기가 되기를...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도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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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標題:神就這樣報應了

    昨日的經文中,亞比米勒毀了示劍,又在那地撒鹽。約坦在基利心山上所喊出的咒詛,就這樣開始應驗了。然而,事情並未就此結束。今日的經文向我們展示,那咒詛究竟是如何應驗到底的,亞比米勒這個人的故事又是如何收場的。同時,從第六章延續至今、關於基甸家族的漫長故事,也在這裡畫下句點。

    士9:46 示劍樓的人聽見這事,就躲入巴力比利土廟的衛所。

    請留意示劍餘剩的人逃往何處——巴力比利土廟的衛所。這正是先前被稱為巴力比利土的示劍立約神所居之處。他們在最後的時刻,奔向了自己的神。可是那神廟究竟是個怎樣的地方呢?三年前,正是在那裡,人們拿出七十塊銀子給了亞比米勒,讓他作王。也就是說,示劍人如今是逃進了那座見證亞比米勒王權開端的神廟裡,想要保命。

    士9:48 亞比米勒和跟隨他的眾人就都上撒們山。亞比米勒手拿斧子,砍了一根樹枝,扛在肩上,對跟隨他的人說:「你們看我所行的,也當趕緊照樣行。」

    這一節中,有句話我們必須緊緊抓住。從第九章第二節之後,亞比米勒在這整個故事裡從未開過口。可是在這裡,他頭一次、也是最後一次向眾人說話:「你們看我所行的,也當趕緊照樣行。」

    這句話我們在哪裡聽過?正是基甸在把三百人分成三隊、讓他們手拿角和瓶、下到米甸營前所說的話:「你們要看我行事,看我怎樣行,你們也要怎樣行」(士7:17)。父親憑著這句話,率領三百人擊敗了踐踏以色列的外邦壓迫者。然而一代之後,兒子用幾乎相同的話語率領眾人,所做的卻是什麼呢?是放火燒毀藏著自己同族的建築物。同樣的一句話,僅僅一代之隔,就變成了截然不同的光景。

    士9:49 眾人也都各砍一枝,跟隨亞比米勒,把樹枝堆在衛所的四圍,放火燒了衛所,以致示劍樓的人都死了,男女約有一千。

    請回想約坦所說的話:「願火從亞比米勒發出,燒滅示劍人和米羅眾人」(9:20)。也請回想在那之前的寓言中,荊棘所說的話:「若不誠實,願火從荊棘裡出來,燒滅黎巴嫩的香柏樹」(9:15)。亞比米勒砍樹枝堆積、放火焚燒的模樣,正是那荊棘之火。約坦的咒詛竟如此驚人地、按字面應驗了。而作者也將數字記錄了下來——男女約一千人。這並非只是幾個策動叛亂的領袖,而是那城中一千名男女,一同被大火燒死。

    然而,亞比米勒並未就此停手。

    士9:50-52 亞比米勒到提備斯,向提備斯安營,攻取了那城。51 城中有一座堅固的樓,城裡眾人,無論男女,都逃到那裡,關上門,上了樓頂。52 亞比米勒到了樓前攻打,挨近樓門,要用火焚燒。

    經文並未告訴我們提備斯是否參與了叛亂,也沒說亞比米勒為何連那裡都要攻打。畫面就這樣原封不動地重演了一遍:有座樓,人們逃進去躲避,亞比米勒要放火焚燒。他打算把在示劍奏效的方法,在提備斯再用一次。可是這一次,故事的走向不同了。

    士9:53 有一個婦人把一塊上磨石拋在亞比米勒的頭上,打破了他的腦骨。

    一個女人登場了。沒有名字,也沒有任何介紹。她所拋出的,不是刀劍,也不是長槍,而是一塊上磨石——磨穀物時用手轉動的上層石磨,是女人們天天在廚房裡使用的家常器具。不是戰士的刀劍,而是一個無名婦人的家用器具,擊碎了王的頭顱。

    這幅畫面之所以並不陌生,是有原因的。在士師記第四章中,迦南軍隊的元帥西西拉曾被一位名叫雅億的女子用帳篷的橛子擊斃。然而那時死去的,是踐踏以色列的外邦元帥。如今死去的,卻是在以色列內部稱王的基甸之子。以色列的仇敵曾是如此死去的,如今以色列人也照樣死去。士師記已經墮落到這個地步了。

    士9:54 他急忙叫拿他兵器的少年人來,對他說:「拔出你的刀來,殺了我吧!免得人議論我說,他為一個婦人所殺。」於是少年人把他刺透,他就死了。

    頭骨已破的亞比米勒,臨終前最放不下的是什麼呢?是他自己的名聲。「免得人議論我說,他為一個婦人所殺。」比起死亡本身,他更在意人們將如何記念自己。這一幕與日後掃羅之死遙相呼應。掃羅同樣在基利波山上,要拿兵器的人拔刀刺死自己。然而掃羅的拿兵器者卻因極其懼怕而不肯動手(撒上31:4)。相反,亞比米勒的少年人卻毫不猶豫,立刻將他刺死。把這兩幕並排來看,更能顯出亞比米勒的王權是何等地淒涼可悲。

    然而,他至死想要守住的那個名聲,終究沒能保住。日後,大衛的元帥約押在傳報戰事時這樣說道:「打死亞比米勒的是誰呢?不是一個婦人從城上拋下一塊上磨石來,打在他身上,他就死在提備斯嗎?」(撒下11:21)。他臨終前最想迴避的那段記憶,最終卻成了聖經中代表他的記憶。

    士9:55 以色列人見亞比米勒死了,便各回自己的地方去了。

    至此為止,這故事的主角一直是示劍人和亞比米勒的隨從。可是在最後,突然出現了「以色列人」這個說法。對於他們究竟是誰,解釋眾說紛紜。但可以確定的是,亞比米勒一死,他們便各自散去了。既沒有成就什麼,也沒有跟隨誰。還有一點值得我們記住:在士師記中,「那地太平」這句話最後一次出現,正是在基甸的時代。此後,這句話再也沒有出現過。

    士9:56-57 亞比米勒向他父親所行的惡,就是殺了弟兄七十個人的惡,神這樣報應在他身上;57 示劍人的一切惡,神也都報應在他們頭上;耶路巴力的兒子約坦的咒詛,都應驗在他們身上了。

    如今,作者為這一切事作了總結。試想一下,在整個第九章裡,登場的人物中有誰尋求過神呢?亞比米勒沒有,示劍人沒有,迦勒沒有,西布勒也沒有,沒有一人的口中提起過神。唯獨約坦一人呼求了神。所有人都各按自己的盤算行事——亞比米勒為了作王,示劍為了自身利益,迦勒為了奪取那位子,西布勒為了保住自己的地位。

    然而,書寫這整個故事開頭與結尾的,另有其人。從第九章二十三節「神使惡靈降在……中間」開始的這個故事,如今以「神這樣報應了」畫上句點。而這報應分向兩邊而去:亞比米勒的惡歸到亞比米勒自己身上,示劍的惡歸到示劍人自己頭上。正如約坦所說的那樣。從亞比米勒身上發出的火,燒毀了示劍的樓;示劍與亞比米勒彼此傾軋,終至一同覆滅。亞比米勒本想用火來書寫別人的結局,然而自己的結局,卻是由一位無名的女子,以及在她背後施行報應的神所寫下的。他渴望作王,但為這故事寫下最後一句話的,卻是神。

    士師記越讀,心情越是沉重。因為這是神所賜下、充滿沙龍(平安)的土地,可是這地卻一再重演沒有沙龍的光景。在開始默想士師記之初,我們所抓住的一句話是「沒有沙龍」,而如今走過基甸與亞比米勒這段漫長的故事,這句話變得更加沉重。我們總期待,只要神動工,沙龍就會臨到。然而在今日的經文中,神確實動了工——祂差遣了惡靈,最終也施行了報應。可即便如此,沙龍仍舊沒有臨到。這是為什麼呢?因為那個時代的人們並未尋求神。整章第九章裡,沒有一人尋求神。因此起初讓人覺得,神似乎只是遠遠地袖手旁觀。可是再讀一遍,才發現並非如此。神並非遠離,而是任憑那些不尋求祂的人,徹底走在他們自己所選擇的道路上。就像保羅在羅馬書中所說,神任憑他們隨著心裡的情慾去行一樣(羅1:24)。我覺得這比神遠離我們更為可怕。而這彷彿也映照出我們這個時代,令人心生苦澀。神的名被到處呼喊,真正尋求神的人卻寥寥無幾,人人都各按自己的盤算行事。然而,即便在這樣的時代裡,仍有人按著神的話語生活。路得記就見證了這一點。路得記開篇便說「當士師秉政的時候」(得1:1)。正是在這黑暗時代的正中央,伯利恆的一個家庭與一位從摩押來的女子,彼此以慈愛相待、共同生活。當士師記以「那時以色列中沒有王」的嘆息作結時,路得記卻在這些人的故事末尾,寫下了大衛的名字,畫下句點。神即便在一個逐漸崩壞的時代中,仍然透過一位按祂話語生活的人、一個家庭,預備著下一段故事。因此,在責怪這個時代之前,我先回頭省察我們的群體。我們是否在這樣如士師記般的時代裡,活出了路得記般的生命?願今日,在這沒有沙龍的時代正中央,我們的群體能成為那按著話語生活的、小小的路得記……願神也能藉著我們,預備下一段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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