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27:2–13
今日默想:以賽亞書 27:2–13
제목 : 적당하게 견책하사(새로운 포도원 노래)
오늘 본문으로 24장부터 이어져 온 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온 땅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심판에서 시작해, 하나님이 만민을 위하여 여시는 잔치를 지나, 죽음과 혼돈을 이기시는 데까지 왔다. 그리고 오늘 그 마지막 자리에서 포도원이 다시 등장한다.
사 27:2-3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우리는 이사야 5장에서 포도원의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를 보면,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기 위해서 돌을 골라내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망대를 세우고 술틀까지 팠다. 그리고 그 포도원에서 좋은 포도를 기다렸는데 들포도가 맺혔다. 그래서 주인이 판결을 내렸다. 울타리를 걷고 돌보기를 그치고 구름에게 명하여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 판결이 뒤집힌다. 5장에서 거두셨던 손길이 여기서 그대로 돌아온다. 물을 주지 않겠다 하셨는데 이제 때때로 물을 주신다고 하시고, 돌보기를 그치겠다 하셨는데 이제 밤낮으로 간수하신다고 하신다. 그때는 아무나 들어와 짓밟게 두셨는데, 이제는 아무도 해치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신다.
그리고 5장에서는 진노로 노래가 끝났는데, 오늘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 27:4-5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5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
여기 찔레와 가시가 나온다. 이것도 5장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이 포도원을 황폐하게 하시니 그 자리에 찔레와 가시가 났다고 하셨다. 돌보지 않는 밭에 자라나 곁의 나무를 찌르는 것들이다. 주석가들은 이것을 포도원을 해치는 대적으로 본다. 때로는 밖에서 오는 원수로 보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밭 안에 자라난 열매 없는 자들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찔레와 가시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보라. 두 길을 여신다. 끝까지 대적하겠다면 밟고 모아 불사르시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라고 하신다. 그것도 화친하라는 말을 두 번 거듭하신다. 한 주석가는 이 구절에 하나님이 자기 원수를 친구로 바꾸시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태워 버려도 마땅한 것들에게 하나님이 먼저 손을 내미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6절이다. 야곱이 뿌리를 박고 이스라엘이 움이 돋고 꽃이 피는데, 그 열매가 세계에 가득하게 된다고 하신다. 5장에서 맺지 못한 열매가 여기서 온 세상을 채우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사야서가 계속 그 방향을 가리켜 왔다. 만국이 시온으로 몰려와 하나님의 도를 배운다고 했고, 하나님이 만민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신다고 했다. 하나님의 포도원이 회복되는 것은 그 포도원 하나가 잘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열매가 온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있었던 심판은 무엇이었는가. 7절부터 그 이야기가 나온다.
사 27:7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이 구절은 묻는 형식이지만 답을 이미 담고 있다.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치신 것과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신 것이 같지 않았다. 원수들은 아주 멸하셨지만 자기 백성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곧 같은 저울로 재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8절이 그 저울에 대해 말한다.
사 27:8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이 구절은 우리말 번역과 원문 사이에 결의 차이가 있어서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견책'이라는 말이다. 우리말에서 견책은 징계 가운데 가장 가벼운 것을 뜻한다. 말로 주의를 주는 정도다. 그래서 앞의 7절과 이어 읽으면, 하나님이 이방과 달리 자기 백성에게는 말로만 타이르셨다는 뜻처럼 들린다. 그러나 원문의 낱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여기 쓰인 말은 법정에서 다투고 고발하고 소송한다는 뜻의 낱말이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이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실 때, 그리고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실 때 쓰신 바로 그 말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들은 대부분 이 구절을 하나님이 그들과 다투셨다고 옮긴다.
'적당하게'라는 말도 그렇다. 우리말에서 적당하게는 대충 넘어간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러나 원문에서 이 말은 곡식의 양을 재는 작은 단위를 두 번 거듭한 표현이다. 저울에 조금씩 달아 보듯 세밀하게 재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같은 절이 곧바로 동풍과 폭풍을 말한다. 동풍은 광야에서 불어와 모든 것을 말려 죽이는 바람이다. 실제로 그 백성은 땅에서 쫓겨났고 성읍은 황폐해졌다. 그러니 이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법정에 세워져 고발당하고, 폭풍에 실려 땅에서 뽑혀 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7절의 그 말씀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원수들처럼 치지 않으셨다는 그 말씀 말이다. 여기서 두 가지가 함께 있다. 심판은 실제로 무거웠다. 그러나 그 무게를 재신 기준이 달랐다. 만일 죄값대로 재셨다면 그것은 진멸이었을 것이다. 앞 절에서 말한 그 원수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값이 아니라 그들이 견딜 수 있는 만큼으로 재셨다. 매튜 헨리는 이것을 지혜로운 의사가 약을 처방하는 일에 비겼다. 성분마다 정확히 그만큼만 재고, 피를 뽑을 때에도 얼마나 뽑을지 정하듯이 하나님이 고난을 나누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죄값이 아니라 감당할 힘이라고 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고전 10:13)고 한 그 말씀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다. 그렇다면 죄값대로 재지 않으신 그 나머지는 어디로 간 것인가. 하나님이 그냥 눈감으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공의로우신 분이 그렇게 하실 수는 없다. 오늘 본문은 그 답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이 죄값대로 재지 않으셨다는 사실만 기록한다. 그러나 이사야가 조금 더 나아가면 그 나머지를 누가 지셨는지가 밝혀질 것이다.
그래서 뿌리까지 뽑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늘 본문의 마지막을 가능하게 한다.
사 27:12-13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13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여기 '과실을 떤다'는 말은 감람나무 가지를 두들겨 열매를 떨어뜨리는 방식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그림을 24장에서 이미 보았다. 감람나무를 흔들어도 가지 끝에 몇 개가 남는다고 했다(사 24:13). 그 남은 열매를 이제 하나하나 거두어 모으신다.
한 주석가는 여기서 '하나하나'라는 말에 주목한다. 이 본문에는 어느 나라가 모인다는 말도 없고 어느 민족이 모인다는 말도 없다. 오직 하나씩, 곧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오는 곳이 앗수르와 애굽이다. 흩어진 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불러 모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큰 나팔이 울리고, 흩어졌던 자들이 돌아와 예배한다. 24장에서 무너짐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모여 예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적당하게 견책하셨다'는 말이다. 사실 원문의 뜻을 알고 나면 이 번역은 정확하지 않다. 견책은 말로 주의를 주는 가장 가벼운 징계인데, 원문은 법정에 세워 고발하고 다투는 것이니 무게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우리말 번역이 좋다. 오해할 만한 번역인데도 그렇다. 왜냐하면 그 오해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 백성이 실제로 겪은 일은 조금도 적당하지 않았다. 땅에서 쫓겨났고 성읍은 무너졌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것이 적당한 것이었다. 죄값대로 하셨다면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을 텐데, 견딜 힘만큼만 재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 편에서는 폭풍이었고 하나님 편에서는 절제였다. 우리말 번역이 그 하나님 편의 마음을 담아낸 셈이다. 그러고 다시 돌아보니 내가 오늘 여기 서 있는 것도 그렇다. 나는 여러 번 무너졌고 여러 번 흔들렸다. 그때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은 나를 아주 놓아 버리지 않으셨다. 내 죄와 부족함대로 재셨다면 나는 진작에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으로 재어 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이 자리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내 힘으로 버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절해 주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그 은혜에 기대어 산다. 다만 그 은혜를 아는 사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내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그 힘도 하나님이 재어 주신 것임을 잊지 않으며 걸어가려 한다.
題目:適度管教(新葡萄園之歌)
今天的經文結束了從24章延續而來的漫長篇章。故事從全地震動崩塌的審判開始,經過神為萬民所擺設的筵席,來到戰勝死亡與混亂的地步。而今天,在這最後的場景中,葡萄園再次出現。
賽27:2-3 當那日,有出美酒的葡萄園,你們要歌頌它!3 我耶和華是看守葡萄園的,時刻澆灌,晝夜看守,免得有人損害。
我們在以賽亞書5章聽過葡萄園之歌。那首歌裡,園主為建造葡萄園,揀去石頭,栽種上等葡萄樹,建造望樓,甚至挖了酒醡。他在園中期待結出好葡萄,卻只結了野葡萄。於是園主下了判決:要撤去籬笆,停止照料,並吩咐雲不再降雨。
然而在今天的經文中,那判決被翻轉了。5章中收回的手,如今再次伸出。曾說不再澆灌,如今卻說要時刻澆灌;曾說要停止照料,如今卻說要晝夜看守。那時任由人踐踏,如今卻說無人能加害。
而5章的歌以怒氣結束,今天的歌卻是這樣開始的:
賽27:4-5 我心中不存忿怒。惟願荊棘蒺藜與我交戰,我就勇往直前,把它們全然燒盡;5 不然,就讓它持住我的能力,來與我和好,來與我和好。
這裡出現了荊棘和蒺藜,這也是從5章而來的意象。神使葡萄園荒廢,那地便長出荊棘和蒺藜——這是生長在無人照料的田地裡、刺傷旁邊樹木的東西。註釋家們將這視為傷害葡萄園的敵對之物,有時看作外來的仇敵,有時看作神田地裡不結果子的人。
然而請看神對這荊棘蒺藜所說的話。祂開出了兩條路。若它們執意到底與神為敵,神就要踐踏並將其聚集焚燒;但若不然,就讓它們持住神的能力,與神和好——「和好」這句話還重複了兩次。有一位註釋家說,這節經文中蘊含著神要將自己的仇敵變為朋友的心意。對那本該被燒盡的東西,神卻主動伸出了手。
而這帶來的結果就是第6節。雅各要扎根,以色列要發芽開花,果實要遍滿世界。5章裡未能結出的果子,如今在這裡充滿了全地。仔細想來,以賽亞書一直指向這個方向:萬國要湧向錫安,學習神的道;神要為萬民擺設筵席。神的葡萄園得以恢復,並不僅止於這一個葡萄園本身的興旺,其果實乃是要流溢到全世界。
那麼,中間所經歷的審判又是什麼呢?從第7節開始便講述這件事。
賽27:7 主擊打他的百姓,豈像擊打那些擊打他百姓的人嗎?他的百姓被殺戮,豈像那些殺戮他百姓之人被殺戮一樣嗎?
這節經文雖是問句形式,答案卻已蘊含其中——不是的。神擊打自己百姓的方式,與擊打那些擊打祂百姓之人的方式並不相同。仇敵被徹底滅絕,但自己的百姓卻不是如此對待。也就是說,神並未用同一個天平來衡量。而第8節正說明了那個天平。
賽27:8 你打發他們去,是相當的責罰,在刮東風的日子,就用暴風將他們逐去。
這節經文的中文譯文與原文之間存在著細微的落差,需要加以說明。
首先是「責罰」這個詞。在中文裡,「責罰」通常指最輕微的懲戒,僅是口頭上的告誡程度。若接著第7節一起讀,聽起來就像是神與異邦不同,對自己的百姓只是口頭訓誡而已。然而原文所用的詞並非此意,這裡使用的字詞是指在法庭上爭辯、控告、興訟的意思。這正是以賽亞書1章中,神說「你們來,我們彼此辯論」,以及「為寡婦辨屈」時所用的同一個字。因此大部分英文譯本都將這節經文譯為神與他們爭辯、興訟。
「相當的」這個詞也是如此。在中文裡,「相當」有時給人一種敷衍了事、隨便帶過的感覺。然而原文中這個詞,是將衡量穀物份量的小單位重複使用了兩次,意思是像用天平一點一點仔細秤量那樣,極其精細地衡量。
同一節經文緊接著就提到了東風與暴風。東風是從曠野吹來、使萬物枯乾致死的風。事實上,那百姓真的被逐出了家園,城邑也真的荒廢了。所以這絕非一件輕微的事。他們被帶上法庭遭受控告,又被暴風連根拔起、逐出家園。
那麼第7節所說的那句話又是什麼意思呢?就是神並未像對待仇敵那樣擊打自己百姓的那句話。這裡同時存在著兩件事:審判確實是沉重的,然而衡量那份量的標準卻不同。倘若按照罪的份量來衡量,那將是徹底的滅絕,正如前一節所說的那些仇敵一樣。但神並非按罪的份量,而是按他們所能承受的份量來衡量。馬太·亨利將此比作智慧的醫生開藥方——每種成分都精確地量取所需的份量,就連放血時也要斟酌多少,神也是這樣分量賜下苦難。而衡量的標準不是罪的輕重,乃是承受的力量。這與保羅在哥林多前書中所說「神不叫你們受試探過於所能受的」(林前10:13),是同一個道理。
然而在此我們必須問一個問題:神是公義的神。那麼,未按罪的份量衡量所剩下的部分,究竟去了哪裡呢?難道是神就這樣睜一隻眼閉一隻眼放過了嗎?不可能,公義的神不能如此行事。今天的經文並未給出答案,只是記載了神並未按罪的份量衡量這個事實。然而,隨著以賽亞書再往下走一些,那剩下的部分究竟由誰承擔,將會顯明出來。
因此,他們並未被連根拔盡。而這個事實,也使得今天經文的結尾成為可能。
賽27:12-13 以色列人哪,到那日,耶和華必從大河,直到埃及小河,將你們一一地收集,好像人打樹拾果一樣。13 當那日,必大發角聲,在亞述地將要滅亡的,並在埃及地被趕散的,都要來,在耶路撒冷聖山上敬拜耶和華。
這裡「打樹拾果」的說法,指的是敲打橄欖樹枝使果子落下的方式。我們在24章已經看過這幅圖畫:即使搖動橄欖樹,枝頭仍會留下幾顆果子(賽24:13)。如今,神要將那所剩下的果子,一顆一顆地收聚起來。
有一位註釋家特別留意這裡「一一地」這句話。這段經文並未說是哪個國家聚集,也沒有說是哪個民族聚集,只說是一個一個、也就是一個人一個人地聚集。而他們前來的地方,正是亞述與埃及——無論被分散到何處,神都要將他們呼召聚集。就這樣,大號角吹響,那些四散的人歸回敬拜。從24章崩塌開始的故事,最終以聚集敬拜作結。
默想今天的經文時,映入我眼簾的是「相當的責罰」這句話。事實上,了解原文的意思之後,便知道這個翻譯並不精確。「責罰」是最輕微的口頭告誡,而原文卻是被帶上法庭控告、興訟,兩者的份量截然不同。然而奇妙的是,我卻喜歡這個中文譯句,儘管它容易引起誤解。因為在那誤解之中,似乎也蘊藏著神的心意。仔細想想,那百姓實際所經歷的一切,一點也不算「相當」——他們被趕出家園,城邑傾覆。然而從神的角度來看,那卻是恰如其分的。倘若按罪的份量對待,恐怕一個也不會存留;正因為神是按他們所能承受的份量來衡量,才有了今天的結果。所以,從人的角度看是暴風,從神的角度看卻是節制。中文的翻譯,恰恰盛裝了神那一邊的心意。
再回頭想想,我今天能站在這裡,也是如此。我曾多次跌倒,多次動搖。那時覺得自己撐不下去了。然而回頭看,神並沒有徹底放棄我。倘若按我的罪與不足來衡量,我恐怕早已不在這個位置上了。然而神按著我所能承受的份量衡量了我,所以我如今仍在這個崗位上承擔著事工。這不是靠我自己的力量撐過來的,而是神親自調節的結果。因此,今天我仍然倚靠著這份恩典而活。願我能作一個明白這恩典的人,度過今天這一天。在神所交託給我的崗位上竭盡全力,同時不忘記,連那份力量,也是神親自為我衡量、賜下的。願我如此前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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