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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15:1–20

    今日默想:士師記 15:1–20

    한경우··조회 70

    제목 :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삼손은 내기에 진 분노를 품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 버렸고, 신부는 들러리였던 친구에게 넘겨졌다. 오늘 본문은 그 뒤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나에게 한 대로 나도 그에게 한다.'

    삿 15:1–3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2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3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고

    밀을 거두는 늦봄, 삼손은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들고 아내를 찾아간다. 아내를 찾아갈 때 가져가던 선물이다. 적어도 삼손은 자기 결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장인은 문을 막는다. 네가 그 아이를 몹시 미워하는 줄 알고 네 친구에게 주었으니, 더 예쁜 동생을 데려가라는 것이다. 화를 내며 떠나 버린 삼손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삼손은 곧바로 이렇게 말한다.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이번에는 내가 결백하다'는 말이다. 삼손은 복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옳다고 못 박는다.

    삿 15:4–5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5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

    여기서 어떤 신학자들은 '여우'를 무리 지어 다니는 자칼로 보기도 한다. 하여튼 삼손은 삼백 마리를 붙잡아 두 마리씩 꼬리를 묶고 그 사이에 횃불을 달아 블레셋의 밭으로 몰아넣는다. 추수 때였다. 거둬 놓은 곡식 단도, 아직 베지 않은 곡식도, 포도원도, 감람나무도 모두 탔다. 한 사람의 분노가 한 민족의 한 해 양식을 태운 것이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묻는다. 누가 이 일을 했느냐.

    삿 15:6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사람들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이라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사르니라

    생각해 보라. 혼인 잔치 때 블레셋 청년들은 이 여인에게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고 협박했다. 여인은 그 일을 피하려고 남편을 배신했다. 그런데 결국 그 여인과 아버지는 불에 타 죽는다. 피하려던 바로 그 일을 끝내 당한 것이다. 그리고 복수는 멈추지 않는다.

    삿 15:7–8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8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라는 말은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운 옛 관용구지만, 매우 큰 타격을 주었다는 뜻인 것은 분명하다. 장인은 딸을 주었고, 삼손은 밭을 태웠고, 블레셋은 처가를 태웠고, 삼손은 다시 크게 쳤다. 서로가 서로의 이유가 되어 폭력이 점점 커진다. 그리고 삼손은 유다 땅 에담의 바위 틈으로 들어가 숨는다.

    삿 15:10–11 유다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온 것은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하는지라 11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삼손은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고 말한다. 똑같은 말이다. 하나님께서 태에서부터 구별하신 사사가, 블레셋과 똑같은 말로 자기를 변호하고 있다. 삼손은 어느새 블레셋의 방식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의 말을 보면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한다. 즉 블레셋이 우리 주인인 것을 모르느냐는 것이다. 13장에서 이스라엘이 왜 사십 년 동안 부르짖지 않았는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지배를 이미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는 그들에게 그 질서를 흔드는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블레셋에 맞서 군대를 일으켰다는 기록은 한 번도 없는데, 삼손 한 사람을 넘겨주기 위해서는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움직인다. 그들은 새 밧줄 둘로 삼손을 묶어 블레셋에게 끌고 간다.

    삿 15:14–16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순간,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한다. 새 밧줄이 불에 탄 삼처럼 녹아내린다. 밧줄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동족이 묶어 넘긴 사람을 하나님께서 푸신 것이다. 삼손은 곁에 있던 나귀의 턱뼈를 집어 든다. '새 턱뼈'는 막 죽어서 아직 마르지 않은 나귀의 뼈라는 뜻이다. 율법은 굽이 갈라지지 않은 나귀 같은 짐승을 부정하다고 하고, 그 주검을 만지는 자도 부정하다고 한다. 태에서부터 부정한 것을 멀리해야 했던 삼손이, 또다시 부정한 짐승의 주검에 손을 댄다. 그리고 그 턱뼈로 천 명을 친다.

    그런데 그 다음에 부른 노래를 들어 보라.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이 노래에는 승리를 주신 여호와의 이름이 없다. '내가'만 있다. 그리고 삼손은 그곳을 라맛레히, 곧 '턱뼈의 언덕'이라고 부른다. 여호와의 영이 결박을 풀고 힘을 주셨는데, 노래에 남은 것은 삼손과 턱뼈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절에서 이야기가 바뀐다.

    삿 15:18–19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천 명을 이긴 용사가 목이 말라 쓰러질 지경이 된다. 사자를 맨손으로 찢고 턱뼈 하나로 천 명을 친 사람이 물 한 모금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리고 삼손은 처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삼손 이야기에서 삼손이 기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그 기도의 첫마디를 보라.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조금 전 노래에서는 '내가 천 명을 죽였다'였는데, 이제는 '주께서 이 큰 구원을 베푸셨다'이다. 목마름을 겪은 뒤 삼손의 말에서 주어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이 기도에는 오래전 약속이 들어 있다. 삼손이 태어나기 전, 하나님의 사자는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삼손은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라고 기도한다.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시겠다던 약속이, 종의 손을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삼손은 자기 욕망과 분노를 따라 움직였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약속을 이루어 가고 계셨다.

    그렇다고 이 기도가 겸손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까' 하는 호소에는 원망에 가까운 목소리도 섞여 있다. 이스라엘을 위한 부르짖음이라기보다 자기 목마름 때문에 나온 부르짖음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들으셨다. 레히의 우묵한 곳을 터뜨려 물을 솟게 하셨다. 삼손은 그 물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했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그의 영이 돌아와 살아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삼손은 그 샘을 엔학고레라 불렀다.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뜻이다. 승리의 자리에는 '턱뼈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남았고, 목말라 부르짖은 자리에는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이름이 남았다. 그리고 본문은 그 샘이 '오늘까지' 거기 있다고 말한다.

    삿 15: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이 한 줄로 14장과 15장의 이야기가 닫힌다. 그런데 이전의 사사들과 다르다. 이전 사사들은 이방의 압제를 끝낸 뒤 사사로 있었다. 그런데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때에', 곧 블레셋이 여전히 다스리던 시대 안에서 사사로 있었다. 그리고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는 말도 없다. 삼손은 블레셋의 통치를 끝낸 구원자가 아니었다. 블레셋의 지배 아래에서 그 지배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구원자였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 시작하리라'고 하신 그대로다.

    그렇다. 15장은 '그가 나에게 한 대로 나도 그에게 한다'는 말이 이어지는 장이다. 블레셋도 그렇게 말하고, 삼손도 그렇게 말한다. 그 복수의 사슬 속에서 이스라엘은 자기 구원자를 묶어 적에게 넘긴다. 그런데도 여호와의 영은 삼손의 결박을 푸시고, 블레셋의 힘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신다. 삼손은 자기 힘을 노래했지만, 결국 목마름 앞에서 '주께서 이 큰 구원을 베푸셨다'고 부르짖는다. 사람의 복수와 교만 속에서도, 구원의 주어는 끝까지 여호와이시다.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며 삼손의 노래와 기도 사이에서 나를 돌아본다. 나 역시 삼손처럼 일이 잘 풀릴 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주 '내가'였다. 내가 준비했고, 내가 애썼고, 내가 이루었다고...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는데도 그 승리의 노래에 하나님의 이름을 빼먹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돌아보면, 내가 다시 '주께서'라고 고백하게 된 자리는 늘 목마름의 자리였다. 내 힘으로는 한 걸음도 더 갈 수 없을 때, 그제야 나는 하나님을 불렀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부족한 부르짖음에도 샘을 여셨다. 그래.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한계와 목마름을 통해 우리의 '내가'를 '주께서'로 바꾸신다. 그래서 언제나 목마름의 끝에 나는 다시 '주께서'라고 고백하게 되는 엔학고레를 만난다. 오늘 나는 목마를 때만이 아니라 승리의 자리에서도 먼저 '주께서'라고 고백하며 살아가길 기도한다. 주님, 오늘 나의 고백에 '내가'가 아니라 '주께서'가 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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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標題:主藉著僕人的手

    參孫因打賭失敗而懷著憤怒回到父家,新娘則被交給了那位曾作伴郎的朋友。今天的經文正是接續這段故事的後續發展。而這段故事從頭到尾可以用一句話來概括:「他怎樣待我,我也要怎樣待他。」

    士15:1–3 過了些日子,到割麥子的時候,參孫帶著一隻山羊羔去看他的妻,說:「我要進內室見我的妻。」他岳父不容他進去,說:2 「我估定你是極其恨她,因此我將她給了你的陪伴。她的妹子不是比她還美麗嗎?你可以娶來代替她吧!」3 參孫說:「這回我加害於非利士人不算有罪。」

    在收割小麥的晚春時節,參孫帶著一隻山羊羔去找妻子。這是他前去探望妻子時所帶的禮物。至少參孫並不認為自己的婚姻已經結束。然而岳父卻擋住了門。他說,自己以為參孫十分厭惡那女子,所以把她給了朋友,還提議讓參孫娶那更美麗的妹妹。憤而離去的參孫自己也有責任。但參孫立刻說道:「這回我加害於非利士人不算有罪。」照原文直譯,這句話的意思是「這一次我是清白的」。參孫在展開報復之前,先為自己定下了「我是對的」這個前提。

    士15:4–5 於是參孫去捉了三百隻狐狸,將狐狸尾巴一對一對地捆上,將火把捆在兩條尾巴中間,5 點著火把,就放狐狸進入非利士人站著的禾稼,將堆集的禾捆和未割的禾稼,並橄欖園盡都燒了。

    對此,有些學者認為此處的「狐狸」實際上是成群出沒的胡狼。無論如何,參孫捉了三百隻,兩兩一組地綁在一起,尾巴之間繫上火把,驅趕進非利士人的田地。正值收割的季節。已堆好的禾捆、尚未收割的莊稼、葡萄園、橄欖樹全都被焚燒殆盡。一個人的憤怒,燒盡了一個民族一整年的糧食。於是非利士人問道:這是誰做的?

    士15:6 非利士人說:「這是誰做的呢?」有人說:「是亭拿人的女婿參孫,因為他岳父將他的妻給了他的陪伴。」於是非利士人上去,用火燒了婦人和她的父親。

    試想,在婚宴上,那些非利士青年曾威脅這女子說:「要用火燒你和你父家。」那女子為了躲避這件事,便出賣了丈夫。然而最終,她和她的父親還是被火燒死了。她努力躲避的事,終究還是臨到了她身上。而復仇並未就此停止。

    士15:7–8 參孫對非利士人說:「你們既然這樣行,我必向你們報仇才肯罷休。」8 參孫就大大擊殺他們,連腿帶腰都砍斷了。他便下去,住在以坦磐的穴內。

    「連腿帶腰都砍斷」這句話是一句古老的成語,其確切含義已難以考究,但顯然是形容打擊極為沉重。岳父把女兒給了別人,參孫燒了他們的田地,非利士人燒死了岳家全家,參孫又再度重重報復。彼此都成了對方行惡的理由,暴力就這樣不斷升級。之後參孫便躲進猶大地以坦磐的洞穴之中。

    士15:10–11 猶大人說:「你們為何上來攻擊我們呢?」他們說:「我們上來是要捆綁參孫,他向我們怎樣行,我們也要向他怎樣行。」11 於是有三千猶大人下到以坦磐的穴內,對參孫說:「非利士人轄制我們,你不知道嗎?你向我們行的是什麼事呢?」他說:「他們向我怎樣行,我也要向他們怎樣行。」

    這裡不可輕易略過。非利士人說,他們是為了「他怎樣待我們,我們也要怎樣待他」而來。而參孫回答:「他們怎樣待我,我也要怎樣待他們。」一模一樣的話。神從母腹中就分別為聖的士師,如今卻用著和非利士人相同的邏輯為自己辯護。不知不覺間,參孫早已活在非利士人的方式裡了。

    然而看猶大人所說的話:「非利士人轄制我們,你不知道嗎?」也就是說,他們不知道非利士人早已是他們的主人嗎?第13章中以色列為何四十年間都沒有呼求神,在此便揭曉了答案。以色列已經把非利士人的統治,當作既定的現實接受下來了。因此神所興起的拯救者,對他們而言不過是攪擾這既定秩序的麻煩罷了。從未有記載說他們曾興兵對抗非利士人,然而僅僅為了交出參孫一個人,就動員了三千猶大人。他們用兩條新繩捆住參孫,把他押解交給非利士人。

    士15:14–16 參孫到了利希,非利士人都迎著喧嚷,耶和華的靈大大感動參孫,他臂上的繩就像火燒的麻一樣,他手上的綁繩都脫落了。15 他見一塊未乾的驢腮骨,就伸手拾起來,用以擊殺一千人。16 參孫說:「我用驢腮骨殺人成堆,用驢腮骨殺了一千人。」

    就在非利士人喧嚷著撲過來的那一刻,耶和華的靈降在參孫身上。新繩就像被火燒過的麻一樣熔化脫落。這並非因為繩子軟弱,而是神親自解開了同族之人所捆綁交出的人。參孫撿起了身旁一塊驢的腮骨。「未乾的」意味著這是一頭剛死不久、屍骨尚未風乾的驢。律法規定,蹄不分岔的牲畜如驢是不潔淨的,連摸牠屍體的人也是不潔淨的。從母腹中就當遠離不潔之物的參孫,如今再度伸手觸碰了不潔牲畜的屍體。他就用那腮骨擊殺了一千人。

    然而請聽他接下來所唱的歌:「我用驢腮骨殺了一千人。」這首歌裡沒有賜下勝利的耶和華之名,只有「我」。參孫還把那地方稱為拉末利希,即「腮骨之岡」。耶和華的靈解開了他的捆綁、賜下力量,而歌中留下的卻只有參孫和腮骨。然而,就在緊接著的下一節,故事卻出現了轉折。

    士15:18–19 參孫甚覺口渴,就求告耶和華說:「你既藉僕人的手施行這麼大的拯救,現在我豈可渴死,落在未受割禮的人手中呢?」19 神就使利希的窪處裂開,有水從其中湧出來,參孫喝了,精神復原,心裡暢快。因此那泉名叫隱哈歌利,那泉直到今日還在利希。

    擊敗一千人的勇士,卻渴得幾乎要昏厥。那位曾赤手撕裂獅子、僅憑一塊腮骨擊殺千人的人,如今在一口水面前竟毫無力量。而參孫在此第一次向神呼求。在參孫的故事裡,這是他第一次禱告。請看這禱告的第一句話:「你既藉僕人的手施行這麼大的拯救。」剛才唱的歌是「我殺了一千人」,如今卻是「你施行了這麼大的拯救」。經歷乾渴之後,參孫話語中的主詞改變了。

    而這禱告裡,還藏著一個久遠以前的應許。在參孫出生之前,神的使者曾說:「他必起首拯救以色列人脫離非利士人的手。」如今參孫禱告說:「你既藉僕人的手施行這麼大的拯救……我豈可……落在未受割禮的人手中呢?」那個「要從非利士人手中拯救」的應許,已經開始藉著僕人的手實現了。參孫雖然照著自己的慾望與憤怒行事,但神卻在這整個過程中,一步步成就著祂的應許。

    不過,這禱告也並非全然謙卑。「我豈可渴死,落在未受割禮的人手中呢」這句呼求裡,也摻雜著近乎埋怨的語氣。與其說是為以色列的呼求,不如說是因自己乾渴而發出的呼喊。然而神仍然垂聽了。神使利希的窪處裂開,湧出水來。參孫喝了那水,「精神復原,心裡暢快」。照原文直譯,是「他的靈魂回轉、活過來了」。因此參孫把那泉稱為隱哈歌利,意思是「呼求者之泉」。在得勝之地,留下了「腮骨之岡」這個名字;在乾渴呼求之地,則留下了「呼求者之泉」這個名字。經文還說,那泉「直到今日」仍在那裡。

    士15:20 當非利士人轄制以色列人的時候,參孫作以色列的士師二十年。

    這一句話為第14章與第15章的故事畫上句點。然而這與之前的士師們不同。先前的士師們,是在終結外族的壓制之後才作士師。但參孫卻是「在非利士人轄制以色列人的時候」,也就是在非利士人仍然統治的時代裡作士師。而且經文中也沒有「那地太平」這句話。參孫並不是終結非利士統治的拯救者,而是在非利士的統治之下,開始使那統治出現裂痕的拯救者。這正應驗了神所說「他必起首拯救」的話。

    的確,第15章正是「他怎樣待我,我也要怎樣待他」這句話不斷延續的一章。非利士人如此說,參孫也如此說。在那復仇的鎖鏈之中,以色列人竟捆綁自己的拯救者,交給了仇敵。然而耶和華的靈依然解開了參孫的捆綁,開始使非利士人的力量出現裂痕。參孫雖然歌頌自己的力量,但最終在乾渴面前,卻呼求說:「你施行了這麼大的拯救。」即便在人的復仇與驕傲之中,拯救的主詞,始終都是耶和華。

    今天默想這段經文時,我在參孫的歌與禱告之間反觀自己。我也像參孫一樣,事情順利時,口中常說的往往是「我」。是我準備的,是我努力的,是我成就的……明明是神賜下了力量,我在得勝之歌裡卻常常忘了提起神的名字。然而回想起來,我再次能夠告白「是主」的地方,總是在乾渴之地。當我靠自己的力量再也無法向前一步時,那時我才呼求神。而神即便面對這樣不足的呼求,也依然為我開了泉源。是的,神有時會藉著我們的軟弱與乾渴,將我們的「我」轉變為「主」。所以每當乾渴走到盡頭,我便再次遇見那讓我告白「是主」的隱哈歌利。願我今天不只在乾渴之時,更在得勝之地,也能先告白說「是主」而活。主啊,願我今天的告白裡,留下的不是「我」,而是「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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