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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야고보서 5:7–12

    今日默想:雅各書 5:7–12

    한경우··조회 54

    제목 : 길이 참으라

    어제 우리는 품꾼의 삯을 빼앗고 의인을 정죄한 부자들을 향한 야고보의 고발을 들었다. 그리고 그 고발은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로 끝났다. 맞설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사람들을 향해 '그러므로'로 시작한다. 야고보가 부자들을 그렇게 엄하게 꾸짖은 것은 결국 억울한 일을 당하는 형제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에게 '참으라'는 말은 자칫 잔인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야고보가 참으라고 하는 이유를 보아야 한다. 불의가 괜찮아서가 아니다.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곧 주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혼란이 마지막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야고보는 농부를 보라고 한다. 이 농부는 어제 본 품꾼이 아니라 자기 땅에 씨를 뿌린 작은 농부다. 그 땅의 소출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으니 그 열매가 '귀한' 것이다. 그런데 농부는 씨를 뿌리고 다음 날 열매를 내놓으라고 땅을 다그치지 않는다. 씨를 뿌릴 무렵 가을에 내리는 이른 비와, 곡식이 여물 무렵 봄에 내리는 늦은 비를 기다린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농부의 기다림은 씨를 뿌리고, 밭을 돌보며, 하늘을 바라보는 기다림이다. 그래 성경이 말하는 '길이 참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약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그렇기에 야고보가 8절에서 말하는 '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바로 앞 5절에서 부자들은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했다. 같은 '마음'이다. 부자들은 심판의 날을 앞두고 마음을 살찌웠고, 형제들은 주의 강림을 앞두고 마음을 굳게 한다. 그리고 그 근거는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다. 기다림이 아무리 길고 고통스러워도 그 끝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기다림을 힘들어하는 사람을 꾸짖는 말이 아니라, 그 기다림을 지탱할 소망을 붙여 주는 말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곧바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그렇다면 왜 갑자기 원망 이야기인가. 고난이 길어지면 사람은 지친다. 그리고 지친 사람의 화살은 맞설 수 없는 밖의 압제자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형제를 향하기 쉽다. 그래서 야고보는 서로를 탓하지 말라고 한다.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아픔을 하나님께 탄식하는 것을 금하는 말이 아니다. 어제 본 품꾼들의 울음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 불의를 사실대로 알리고 도움을 구하는 것도 원망이 아니다. 그렇다. 야고보가 금하는 것은 고난을 핑계로 서로를 공격하고 정죄하는 태도다.

    그리고 야고보는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말한다. 7–8절에서 주의 오심은 억울한 자에게 소망이었다. 그런데 9절에서는 같은 형제들에게 경고가 된다. 오실 주님은 억울함을 바로잡으실 분이시지만, 우리도 그분 앞에 선다. 고난받는 처지라고 해서 형제를 향해 어떤 말을 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형제들은 어떻게 견딜 것인가. 야고보는 앞서 걸어간 사람들을 보여 준다.

    약 5:10–11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선지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말한 사람들, 곧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도 고난을 당했다. 그러니 고난을 겪는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보다 먼저 같은 멍에를 지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야고보는 욥의 인내를 말한다. 그런데 욥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욥은 침묵하며 참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했고, 하나님께 따지듯 부르짖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를 인내의 본으로 세운다. 왜인가. 욥은 불평했지만 하나님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다. 그래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감정 없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울면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다.

    여기서 야고보서 1장을 떠올려 보자. 야고보는 서신을 시작하며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했고,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다(1:3, 12). 이제 서신을 마무리하며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라고 다시 말한다. 야고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 속의 인내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욥의 인내에서 멈추지 않고 '주께서 주신 결말'로 시선을 옮긴다. 욥의 이야기는 욥이 대단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를 회복시키신 것으로 끝난다. 물론 이것이 '참으면 갑절로 복을 받는다'는 공식은 아니다. 야고보가 그 결말에서 보라고 하는 것은 욥이 되찾은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이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여기서 '가장 자비하시고'는 원문에서 '속이 가득하다'는 뜻의 말로,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온다. 히브리 사람들은 깊은 감정이 속에서 올라온다고 여겼다.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이 고난받는 자녀를 보시며 속이 끓어오르실 만큼 불쌍히 여기신다는 뜻이다. 고난의 시간에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지만, 야고보는 그 끝에서 하나님의 그 속을 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말에 대해 한마디를 더한다.

    약 5: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하늘이나 땅을 두고 맹세하면 괜찮다고 여겼다.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꾸짖으신 바로 그 습관이다. 야고보는 그렇게 하나님을 가볍게 끌어들이는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더 깊은 문제는 따로 있다. 사람들은 왜 맹세를 하는가. 평소의 말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처방을 근원에 내린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라. 맹세하지 않은 평소의 말이 이미 믿을 만한 말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고난이 길어질 때 형제를 원망하는 말(9절)과 진실하지 않은 말(12절)은 둘 다 심판 앞에 선다. 야고보는 서신의 끝에서 다시 혀를 이야기한다.

    얼마 전 우리 가정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때 마음이 많이 무너졌고, 다시 일어날 힘이 없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향해 많은 탄식을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시간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탄식을 멈추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탄식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붙든 길은 묵상이었다. 기도할 말조차 잃어버린 날에도 말씀을 펴고 그 앞에 앉았다. 내 마음은 무너져 있어도 말씀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그 작은 시간이 무너진 나를 하나님께 붙들어 매는 끈이 되었다. 그래 묵상은 여유 있는 사람의 경건한 습관이 아니다. 무너진 사람이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길이다. 그래서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을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이 떠오른다. 안다. 인내는 너무 힘들다. 그 마음을 안다. 그럼에도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을 붙드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을 말씀으로 만나는 묵상의 자리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 속에서 울면서라도, 탄식하면서라도 말씀 앞에 앉기를 기도한다.

    中文 AI翻譯

    標題:要忍耐

    昨天我們聽見雅各控訴那些扣留工人工錢、定義人罪的財主。而那段控訴以「他也不抵擋你們」作結。那些人連抵擋的力量都沒有。今天的經文正是對著這些人,以「所以」開始。原來雅各那樣嚴厲地責備財主,終究是為了安慰那些受冤屈的弟兄。

    雅 5:7 弟兄們哪,你們要忍耐,直到主來。看哪,農夫忍耐等候地裡寶貴的出產,直到得了秋雨春雨。

    對一個受冤屈的人說「要忍耐」,聽起來可能很殘忍。但我們要看雅各要人忍耐的理由。不是因為不義沒關係,而是「直到主來」,也就是主必再來,把一切都糾正過來。如今的混亂並不是最後的現實。

    接著雅各要我們看農夫。這位農夫不是昨天看到的工人,而是在自己田地裡撒種的小農。全家的生計都繫於那塊地的出產,所以那果實是「寶貴的」。然而農夫撒了種,不會隔天就催逼土地交出果實。他等候撒種時節秋天降下的秋雨,以及穀物成熟時節春天降下的春雨。但他也不是袖手旁觀。農夫的等候,是撒種、照顧田地、仰望天空的等候。所以,聖經所說的「忍耐」,不是什麼都不做地硬撐,而是相信果實必來而等候。

    雅 5:8 你們也當忍耐,堅固你們的心,因為主來的日子近了。

    因此,我們不可忽略雅各在第8節所說的「心」。就在前面第5節,財主們「在宰殺的日子竟嬌養你們的心」。是同一個「心」。財主們在審判的日子前嬌養自己的心,弟兄們則在主再來之前堅固自己的心。而其根據是「主來的日子近了」。等候無論多麼漫長、多麼痛苦,終有盡頭。這段話語不是責備那些在等候中感到艱難的人,而是給他們能撐住這段等候的盼望。

    然而雅各緊接著又加上這句話:

    雅 5:9 弟兄們,你們不要彼此埋怨,免得受審判。看哪,審判的主站在門前了。

    那麼為什麼突然談到埋怨呢?苦難一拖長,人就會疲憊。而疲憊之人的箭頭,往往不是指向無法對抗的外在壓迫者,而是指向身邊最親近的弟兄。所以雅各說,不要彼此歸咎。但這裡不可誤會。這不是禁止我們向神嘆息自己的傷痛。昨天看到工人們的哀聲已經達到萬軍之主的耳中。如實陳明不義、尋求幫助,也不是埋怨。是的,雅各所禁止的,是以苦難為藉口,彼此攻擊、彼此定罪的態度。

    接著雅各說:「審判的主站在門前了。」在7–8節,主的再來對受冤屈的人是盼望;但在第9節,對同樣的弟兄們卻成了警告。將要再來的主是會糾正冤屈的那一位,但我們也要站在祂面前。並不是因為自己處在受苦的處境,就可以對弟兄說任何話。

    那麼弟兄們要如何撐下去呢?雅各讓我們看那些走在前面的人。

    雅 5:10–11 弟兄們,你們要把那先前奉主名說話的眾先知當作能受苦、能忍耐的榜樣。11 那先前忍耐的人,我們稱他們是有福的。你們聽見過約伯忍耐的事,也知道主給他的結局,明顯主是滿心憐憫,大有慈悲。

    先知們是奉主名說話的人,也就是神所差派的人。然而他們也受了苦。所以,不能單憑正在受苦這個事實,就說自己被神離棄了。有人比我們更早負著同樣的軛走過這條路。

    接著雅各提到約伯的忍耐。可是約伯是怎樣的人呢?約伯並不是默默忍受的人。他咒詛自己的生日,像是要與神理論般地呼喊。即便如此,聖經仍立他為忍耐的榜樣。為什麼?因為約伯雖然抱怨,卻沒有放開神。在無法理解的苦難中,他仍向著神呼求。所以,聖經所說的忍耐,不是毫無感情地撐著,而是即使哭泣,仍緊緊抓住神。

    在此,讓我們回想雅各書第1章。雅各在書信一開頭就說:「因為知道你們的信心經過試驗,就生忍耐」,又說:「忍受試探的人是有福的」(1:3, 12)。如今在書信結尾,他再次說:「那先前忍耐的人,我們稱他們是有福的。」雅各書從頭到尾都緊扣著苦難中的忍耐。

    然而雅各沒有停在約伯的忍耐,而是將目光轉向「主給他的結局」。約伯的故事並不是以約伯有多了不起作結,而是以神使他復興作結。當然,這並不是「忍耐就能得加倍祝福」的公式。雅各要我們在那結局中看見的,不是約伯重新得回的財產,而是神的面容。「主是滿心憐憫,大有慈悲。」這裡的「滿心憐憫」在原文中是「肺腑滿溢」的意思,在新約中只出現在這裡。希伯來人認為深切的情感是從肺腑裡湧上來的。所以這是說,神看著受苦的兒女,憐憫之情到了肺腑翻騰的地步。在苦難的時刻,神似乎離我們很遠,但雅各要我們在那盡頭看見神的那份心腸。

    最後,雅各對言語再加上一句話。

    雅 5:12 我的弟兄們,最要緊的是不可起誓:不可指著天起誓,也不可指著地起誓,無論何誓都不可起;你們說話,是,就說是;不是,就說不是,免得你們落在審判之下。

    當時的人認為,只要不直接呼叫神的名,而指著天或地起誓就沒有關係。這正是耶穌在登山寶訓中所責備的習慣。雅各說,不要這樣隨便把神扯進來起誓。然而更深的問題在別處。人為什麼要起誓?因為平常說的話不被信任。所以雅各從根源下藥:是,就說是;不是,就說不是。要讓不起誓的平常話語,本身就已是可信的話。苦難拖長時埋怨弟兄的話(第9節)和不誠實的話(第12節),都要站在審判面前。雅各在書信末了,再次談到舌頭。

    不久前,因著我們家中種種的狀況,我度過了一段艱難困苦的時期。那時我的心幾乎崩潰,再也沒有力氣站起來。所以我真的向神發出許多嘆息。可是回頭看,在那段時間裡,我之所以沒有失去神,還能稍微恢復過來,並不是因為我停止了嘆息,而是因為我在嘆息中抓住了神。而我抓住神的途徑,就是默想。即使在連禱告的話都說不出來的日子,我仍打開聖經,坐在話語面前。我的心雖然崩塌了,神的話語卻沒有崩塌。每天讀經、默想的那段小小時間,成了把崩潰的我繫在神身上的繩索。所以,默想不是生活有餘裕之人的敬虔習慣,而是崩潰之人不失去神的道路。因此,我想起我們群體中此刻正經歷這種時刻的肢體們。我知道,忍耐真的太難了。我明白那份心情。即便如此,有一件事絕對、絕對不可放棄:那就是緊緊抓住神,以及藉著話語與這位神相遇的默想之處。所以我禱告,願我們群體的肢體們在艱難困苦之中,即使哭著、即使嘆息著,也要坐在神的話語面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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