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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야고보서 5:13–20

    今日默想:雅各書 5:13–20

    한경우··조회 54

    제목 : 서로 기도하라

    어제 우리는 울면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인내를 보았다. 그리고 기도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때, 말씀 앞에 나아가 그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길이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오늘 야고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말씀 앞에 붙들린 사람은 이제 그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말을 걸어야 한다. 기도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아도 기도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고보서는 그 기도로 끝을 맺는다.

    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고난이 오면 기도하고, 즐거우면 찬송하라. 단순한 말이지만 우리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는 괴로울 때 낙심하여 주저앉고, 즐거울 때는 하나님을 잊는다. 그러나 야고보는 우리 삶에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말아야 할 때가 없다고 말한다. 울 때는 울음으로, 웃을 때는 노래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기도가 꼭 필요한 자리 세 곳을 보여 준다. 내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병든 지체가 곁에 있을 때, 그리고 진리를 떠난 형제가 있을 때다. 이어서 야고보는 병든 지체를 이야기한다.

    약 5:14–15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병든 사람은 혼자 견디지 말고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고 한다. 그러면 장로들이 그의 침상으로 찾아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 당시 기름은 상처를 씻고 치료하는 데 쓰였고, 동시에 하나님의 돌보심을 일깨우는 표지였다. 그러나 낫게 하시는 분은 기름이 아니라 주님이시다.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여기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사람의 믿음이 아니라 기도하는 장로들의 믿음을 말한다. 그러니 낫지 않는 지체에게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말하는 것은 이 말씀의 뜻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화살을 기도한 사람들에게 돌려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대로 회복을 베푸신다. 그리고 병이 모두 죄 때문이라는 말도 아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라는 말처럼, 죄와 병은 연결될 수도 있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경계들 때문에 이 말씀의 무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야고보는 병든 지체를 찾아가 함께 기도하라고 하며, 주께서 일으키실 것을 기대하라고 한다. 교회는 아픈 사람에게 위로의 말만 건네는 곳이 아니라, 그를 위해 실제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곳이다.

    야고보는 병든 지체를 위한 기도를 모든 지체에게로 넓힌다.

    약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여기서 ‘서로’라는 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야고보는 4장에서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했고, 어제 5장에서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서신의 끝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로 고백하고, 서로 기도하라. 서로를 깎아내리고 탓하던 ‘서로’가, 서로의 짐을 알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서로’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고백도 상대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필요를 알아야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보는 장로들만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일이다.

    그리고 야고보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의인은 누구인가. 특별한 기도의 능력을 받은 몇몇 사람이 아니다. 죄가 없는 사람도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려는 사람이다. 야고보는 그 사실을 엘리야로 보여 준다.

    약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구했던 선지자였지만, 그 뒤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기도는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엘리야와 같은 모양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리고 여기를 보라.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어제 우리는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를 보았다. 같은 비, 같은 땅, 같은 열매다. 농부는 비를 기다렸고, 엘리야는 비를 구했다. 인내와 기도는 따로 가지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은 기도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기다린다.

    그리고 야고보는 서신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남긴다.

    약 5:19–20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공동체 안에 진리를 떠난 사람이 있다. 야고보는 그를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는다. 그가 어쩌다 진리를 떠났는지 다 진단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돌아서게 하라고 한다. 여기서 진리는 머리로 아는 교리만이 아니라 복음을 믿고 그 복음대로 살아가는 삶이다. 그 길에서 벗어난 형제를 다시 그 길로 데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떠난 형제를 데려오는 일은 단순히 사람을 다시 모임에 나오게 하는 일이 아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하는 일, 생명과 죽음이 걸린 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 일을 하신다.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라는 말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을 쉬쉬하며 감추라는 말이 아니다. 죄인이 미혹된 길에서 돌아설 때 하나님이 그 많은 죄를 용서하신다는 뜻이다. 덮이는 길은 은폐가 아니라 돌이킴이다.

    그런데 여기서 야고보서를 처음부터 다시 떠올려 보자. 야고보는 1장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1:15). 그리고 바로 이어서 ‘속지 말라’고 했다(1:16). 이 ‘속지 말라’와 오늘 본문의 ‘미혹되어’는 원문에서 같은 동사 플라나오(πλανάω)의 형태다. 길을 잃고 헤맨다는 뜻이다. 우리말 성경은 ‘속지 말라’와 ‘미혹되어’로 다르게 옮겨서 두 구절이 이어지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야고보는 서신을 시작하며 길을 잃지 말라고 했고, 서신을 끝내며 길을 잃은 형제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리고 1장에서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고(1:18), 그 말씀은 우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말씀이다(1:21). 5장의 마지막은 그 말씀으로 난 사람들이 진리를 떠난 형제를 다시 데려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는 장면이다. 그래 야고보서는 정죄로 끝나지 않는다. 데려옴으로 끝난다.

    야고보서를 마무리하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다. 야고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행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서신을 묵상하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야고보서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 맞다. 야고보는 믿음이 없어도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믿음이 삶에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말로만 있는 믿음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인내하고, 가난한 형제를 돌보고, 혀를 다스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 말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이 그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야고보는 서신을 시작하며 길을 잃지 말라고 했고, 서신을 끝내며 길을 잃은 형제를 데려오라고 한다. 내가 길을 잃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으로 드러난 믿음은 길을 잃은 형제를 데려온다. 믿음이 삶으로 살아 있을 때, 길 잃은 형제를 향한 우리의 말도 힘을 얻는다. 그래서 오늘 우리 공동체를 떠올린다. 우리 곁에도 어쩌면 조용히 멀어진 지체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판단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데려오는 공동체이기를... 우리의 믿음이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 길 잃은 형제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中文 AI翻譯

    標題:彼此代禱

    昨天我們看見了即使流著淚,仍緊緊抓住神的忍耐。我們也承認,當連禱告的力氣都沒有時,來到神的話語面前默想,就是不讓自己離開神的道路。而今天,雅各又往前走了一步。被話語抓住的人,如今要抓住這話語向神開口。也就是說,即使沒有力氣禱告,仍有必須禱告的時候。雅各書也正是以禱告作為結尾。

    雅 5:13 你們中間有受苦的呢,他就該禱告;有喜樂的呢,他就該歌頌。

    遇到苦難就禱告,喜樂時就歌頌。話雖簡單,卻與我們真實的樣子有段距離。我們痛苦時灰心喪志、跌坐在地,喜樂時卻忘記了神。然而雅各說,我們的生命中沒有哪一刻是不該來到神面前的。哭泣時以眼淚、歡笑時以詩歌來到神面前。今天的經文向我們指出三個特別需要禱告的處境:當我自己在苦難中時、當身旁有生病的肢體時,以及當有弟兄離開真道時。接著,雅各談到生病的肢體。

    雅 5:14–15 你們中間有病了的呢,他就該請教會的長老來;他們可以奉主的名用油抹他,為他禱告。15 出於信心的祈禱要救那病人,主必叫他起來;他若犯了罪,也必蒙赦免。

    生病的人不要獨自硬撐,要請教會的長老來。長老們就來到他的床邊,奉主的名用油抹他,為他禱告。當時油被用來清洗並醫治傷口,同時也是提醒人神之看顧的記號。然而使人痊癒的不是油,而是主。「主必叫他起來。」

    這裡的「出於信心的祈禱」,指的不是病人的信心,而是禱告之長老們的信心。所以,對沒有得醫治的肢體說「是因為你信心不夠」,並不是這段經文的意思。但也不能因此把矛頭轉向那些禱告的人。神是按祂的智慧賜下恢復。這也不是說所有疾病都是因為罪。正如「他若犯了罪」這句話所示,罪與疾病可能有關聯,但並非總是如此。然而,我們不可因這些界線而忽略了這段話語的分量。雅各要我們去探望生病的肢體、一同禱告,並期待主使他起來。教會不只是對病痛的人說幾句安慰話的地方,而是真正為他向神苦苦懇求的地方。

    雅各將為生病肢體的禱告,擴展到所有的肢體。

    雅 5:16 所以你們要彼此認罪,互相代求,使你們可以得醫治。義人祈禱所發的力量是大有功效的。

    在這裡,我們不可錯過「彼此」這個詞。雅各在第四章說「不可彼此批評」,昨天在第五章說「不要彼此埋怨」。而在書信的末了,他這樣說:要彼此認罪,互相代求。那原本互相貶低、互相指責的「彼此」,轉變成明白彼此重擔、為彼此禱告的「彼此」。所以認罪也不是為了讓對方蒙羞,而是因為唯有知道彼此的需要,才能懇切地為彼此禱告。代禱不只是長老們的事,而是整個群體的事。

    雅各又說:「義人祈禱所發的力量是大有功效的。」那麼,義人是誰呢?不是領受了特殊禱告能力的少數人,也不是毫無罪過的人,而是信靠神、願意照祂旨意而活的人。雅各用以利亞來說明這件事。

    雅 5:17–18 以利亞與我們是一樣性情的人,他懇切禱告,求不要下雨,雨就三年零六個月不下在地上。18 他又禱告,天就降下雨來,地也生出土產。

    以利亞是在迦密山上求天降火的先知,但之後他也是在羅騰樹下求死的人。他是與我們性情一樣的人。所以,禱告不屬於特別的人。我們也能向神禱告,並期待祂的回應。這不是說神的回應必須和以利亞所經歷的一樣,但神必垂聽軟弱之人的禱告。

    再看這裡:「天就降下雨來,地也生出土產。」昨天我們看見農夫盼望「地裡寶貴的出產」,等候秋雨春雨。同樣的雨、同樣的地、同樣的出產。農夫等候雨,以利亞求雨。忍耐與禱告並非分開而行。等候的人會禱告,禱告的人會等候。

    然後,雅各留下了書信最後的話:

    雅 5:19–20 我的弟兄們,你們中間若有失迷真道的,有人使他回轉,20 這人該知道:叫一個罪人從迷路上轉回,便是救一個靈魂不死,並且遮蓋許多的罪。

    群體中有人離開了真道。雅各沒有說要置之不理,也沒有要我們把他為何離開真道診斷得一清二楚。他說:要使他回轉。這裡的真道不只是頭腦裡知道的教義,而是相信福音、並照著福音而活的生命。是要把偏離這條路的弟兄,重新帶回這條路上。而把離開真道的弟兄帶回來,不只是讓人重新回到聚會而已。雅各說,這是救一個靈魂「不死」,是攸關生死的事。當然,拯救靈魂的是神,但神藉著我們來成就這工作。

    「遮蓋許多的罪」這句話也不可誤解。這不是說要把過錯掩蓋、閉口不提,而是說當罪人從迷路上轉回時,神就赦免他許多的罪。罪得遮蓋的途徑不是隱藏,而是回轉。

    在這裡,讓我們從頭再回想一次雅各書。雅各在第一章說:「私慾既懷了胎,就生出罪來;罪既長成,就生出死來」(1:15)。緊接著他說:「不要看錯了」(1:16)。這個「不要看錯了」與今天經文中的「失迷」,在原文中是同一個動詞 planaō(πλανάω)的不同形態,意思是迷失道路、四處遊蕩。中文聖經分別譯為「不要看錯了」和「失迷」,因此不容易看出兩節經文之間的連結。然而,雅各在書信開頭說不要迷失,在書信結尾則說要把迷失的弟兄帶回來。而且在第一章說神「用真道生了我們」(1:18),這道是能救我們靈魂的道(1:21)。第五章的結尾,正是那些藉這道而生的人,把離開真道的弟兄重新帶回來、救他的靈魂脫離死亡的畫面。所以,雅各書不是以定罪作結,而是以帶回作結。

    在雅各書告一段落之際,我回顧這段時間。雅各書從頭到尾都在強調行為。所以默想這卷書信的期間,我好幾次都想強調:雅各書並沒有拋棄因信得救。是的,沒錯。雅各從未說沒有信心也無妨,反而說這信心必須在生命中彰顯出來。不是只停留在口頭上的信心,而是在苦難中忍耐、照顧貧窮的弟兄、勒住舌頭、彼此代禱,以生命彰顯出來的信心。而今天經文的結尾清楚地顯明了這一點。雅各在書信開頭說不要迷失,在書信結尾則說要把迷失的弟兄帶回來。這不是以我自己不迷失就結束了。以生命彰顯的信心,會把迷失的弟兄帶回來。當信心在生命中活著時,我們對迷失弟兄所說的話也才有力量。因此,今天我想起我們的群體。在我們身旁,或許也有悄悄遠離的肢體。願我們不是論斷他們的群體,而是帶他們回來的群體……願我們的信心不是藉著言語,而是藉著生命彰顯出來,成為迷失的弟兄能再次回來的道路……今天,我依然這樣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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