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28:1–13
今日默想:以賽亞書28:1–13
제목 : 이것이 너희 안식이거늘
24장부터 27장까지는 이사야의 묵시라 불리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28장에서 33장까지는 여섯 번의 화 선언이 이어진다. 그 선언은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과 앗수르를 향한 메시지이다. 오늘 본문이 그 첫 번째로 화가 향하는 곳은 바로 에브라임, 곧 북이스라엘과 유다이다.
사 28:1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비옥한 골짜기 위 언덕에 자리 잡은 도시였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골짜기 머리에 얹힌 화관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 화관을 시드는 꽃이라 부른다. 화려하지만 곧 시들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그 지도자들이 술 취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실제로 술에 취한 것과 분별력을 잃은 영적 상태를 함께 가리킨다고 본다.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부유했기에 교만했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강대국과 손잡는 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7절에서 이사야의 시선이 남쪽으로 옮겨 온다.
사 28: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이것은 남유다의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과 재판을 맡은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림으로 환상을 잘못 풀고 재판할 때 실수한다고 한다. 이것은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못해석하고 왜곡하며, 재판을 올바로 하지 않아 정의를 굽게 하는 것이다.
그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지도자들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를 향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 28:9-10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지도자들은 이사야를 조롱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 사람이 지금 누구를 가르치려 드는가, 우리가 젖 떨어진 아기인 줄 아는가". 이것은 마치 술에 취한 자들이 선지자를 향해 술취한 목소리로 조롱하며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10절의 원문을 들어 보면 그 조롱이 더 분명해진다. 원문은 이렇다. 차브 라차브 차브 라차브 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 즈에르 샴 즈에르 샴. 여기 쓰인 두 낱말은 각각 한 음절이고 서로 운이 맞는다. 그래서 이 구절 전체가 어린아이들에게 하나 하나 차근 차근 가르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쉬운 성경을 이부분을 이렇게 번역했다. "우리에게, 한 자 한 자, 한 절 한 절, 한 장 한 장 가르치려고 한다"
결국 그들이 무엇을 조롱한 것인가? 그 쉬운 것은 우리도 다 안다는 것이다. 선지자의 선포인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쉽고 너무 반복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그런 초보적인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다 아는 이야기를 왜 하나하나 가르치려 하는냐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제사장과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소에 말씀을 가장 많이 다루는 자들이기에 선지자가 하는 말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그 말씀에 가장 무뎌져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사 28:11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무슨 말씀인가? 그래 너희가 그렇게 쉽다고 하니, 이제 못알아 듣는 말로 하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즉 너희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로 여기니, 정말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앗수르 군대가 몰려와 낯선 말로 명령을 외치는 그 날에 성취가 된다.
그런데 그다음 절에 그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는 그 선지자가 가르려했던 내용이 나온다.
사 28: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래 그들이 유치하다고 비웃은 그 말씀의 내용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안식이었다. 상쾌함이었다. 그리고 곤비한 자에게 그 안식을 주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려던 것은 잔소리가 아니라 쉼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다. 본문은 분명히 말한다. 듣지 아니하였다고. 알아들었는데 듣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13절이 그 결과다.
사 28: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이 13절의 이 말은 10절과 똑같은 말이다. 원문을 대조해 보면 글자 하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10절에서는 사람이 조롱하며 뱉은 말이었고, 13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되었다. 그들이 비웃으며 던진 그 소리가 하나님의 입으로 옮겨 가 그들에게 돌아온 것이다. 아니 다시금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에게 똑바로 다시 가르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가 뒤에 이어진다.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진다. 앞으로 넘어지면 손을 짚을 수 있는데 뒤로 넘어지면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부러지고, 걸리고, 붙잡힌다.
한 주석가는 이것을 짧게 요약했다. 그 말씀이 너무 단순해서 도리어 그것에 걸려 넘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가 말씀을 계속 듣고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 만족하며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여기기 쉬운데, 그 말씀이 우리의 깨달음을 밝히지 못하고 우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럴 때 우리는 더 무거운 심판을 스스로 끌어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비유한다. 눈먼 사람은 태양이 아무리 밝아도 아무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오늘 묵상은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강하게 찌르고 있다. '우리도 다 아는 이야기를 왜 하나하나 가르치려 드느냐'는 그 말이 그렇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사람들이 제사장과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나도 매일 말씀 앞에 앉는 사람이다. 매일 본문을 읽고, 주석을 찾고, 원문의 뜻을 확인한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 그렇게 하면서 나는 본문에 대한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오는 만족이 있다. 오늘은 이런 것을 알아냈다는 기쁨이 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주해에 잘 풀어낸다. 그런데 정작 그 말씀이 삶의 실천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새로운 성경에 대한 지식은 늘어나는데 그 말씀대로 살아 내는 것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즘처럼 수많은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 읽은 이 말씀도 새로운 지식 하나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안식을 온전히 누리고, 그 안식을 연약한 자들과 함께 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標題:這是你們的安息
第24章到27章是被稱為以賽亞啟示錄的部分。而從28章到33章,接連出現六次「禍哉」的宣告。這些宣告是對以賽亞時代的以色列與亞述所發出的信息。今天經文中第一個受到「禍哉」宣告的對象,正是以法蓮,也就是北國以色列與南國猶大。
賽28:1 禍哉!以法蓮的酒徒,以驕傲為冠冕,戴在他們榮美的裝飾上,如同肥美谷之上的花,將要衰殘,他們正在沉醉之中。
北國以色列的首都撒瑪利亞,坐落在肥沃山谷之上的一座山丘上。因此從遠處望去,它就像戴在谷頭上的花冠一樣。然而以賽亞卻稱這花冠為凋謝的花。意思是說,它看似華麗,卻即將枯萎凋零。
原因是這些領袖們都是醉酒之人。學者們認為,這裡同時指真實的醉酒狀態,以及失去分辨力的屬靈狀態。北國以色列因經濟富裕而驕傲,不倚靠神,反而尋求與強國結盟之路。
而在第7節,以賽亞的目光轉向南方。
賽28:7 就是這地的人,也因酒搖搖晃晃,因濃酒東倒西歪。祭司和先知因濃酒搖搖晃晃,被酒所困,因濃酒東倒西歪。他們錯解默示,謬行審判。
這是南國猶大祭司與先知的樣子。他們是掌管神話語的人,也是掌管審判的人。然而經文說,他們因濃酒東倒西歪,以致錯解異象、謬行審判。這意味著祭司與先知錯誤解讀並曲解神的話語,也未能公正審判,使公義被扭曲。
面對這樣向北國以色列與南國猶大領袖傳達警告信息的先知,他們竟這樣說:
賽28:9-10 譏誚先知說:他要將知識指教誰呢?要使誰明白傳言呢?是那剛斷奶離懷的嗎?10 他竟命上加命,令上加令,律上加律,例上加例,這裡一點,那裡一點。
領袖們正在嘲笑以賽亞,這樣說道:「這人現在是想教訓誰呢?他以為我們是剛斷奶的嬰孩嗎?」這聽起來就像醉酒之人用醉醺醺的聲音嘲弄先知一樣。
若查考第10節的原文,這種嘲弄就更加明顯了。原文的音是:Tzav latzav, tzav latzav, kav lakav, kav lakav, ze'er sham, ze'er sham。這裡使用的兩個字各為一個音節,彼此押韻。因此整節經文聽起來就像是在一字一句地教導小孩子一樣。所以《現代中文譯本》將這部分譯為:「他要教我們一個字一個字,一節一節,一章一章地學習。」
那麼,他們到底在嘲笑什麼呢?就是這些淺顯的道理,我們早就都知道了。他們認為先知所宣告的神的話語太過簡單、太過重複。也就是說,我們並非需要聽這種初級教導的人。我們早已知道的話,為何還要一字一句地教導?原因何在?因為此刻說這話的人,正是祭司與先知。他們是平日最常處理神話語的人,因此自認為早已知曉先知所說的一切。然而,恰恰是他們,對這話語變得最為麻木遲鈍。
於是神回應了。
賽28:11 先知說:不然,神要藉異邦人的嘴唇和外邦人的舌頭對這百姓說話。
這是什麼意思呢?意思是:好,既然你們說這太簡單了,那麼現在我就用你們聽不懂的話語來說。也就是說,既然你們把我的話當作聽不懂的咿呀學語,那我就真的用你們無法聽懂的話語來說。這在亞述軍隊蜂擁而至、用陌生語言高喊命令的那一天得到了應驗。
然而在下一節中,卻出現了那位被他們自認為早已知曉的先知,原本想要教導的內容。
賽28:12 他曾對他們說:你們要使疲乏人得安息,這是安息,這是舒暢,他們卻不肯聽。
那麼,他們嘲笑為幼稚的那話語內容究竟是什麼呢?正是安息。是舒暢。並且是要將這安息賜給疲乏的人。由此可見,神所要賜下的並非嘮叨的教訓,而是安息。然而,並不是他們聽不懂這話。經文清楚地說:他們卻不肯聽。他們是聽懂了卻不願意聽從。
而第13節便是這樣做的結果。
賽28:13 所以,耶和華向他們說的話是命上加命,令上加令,律上加律,例上加例,這裡一點,那裡一點,以致他們前行,向後跌倒,而且跌傷,並陷入網羅,被纏住。
這第13節的話,與第10節的話完全相同。若對照原文,連一個字都沒有不同。然而,在第10節中,這是人嘲弄時所吐出的話語;到了第13節,卻成了耶和華的話語。他們嘲笑著拋出的那句話,轉到了神的口中,又回到他們身上。不,這看起來更像是再一次向那些聽不懂的人,一板一眼地重新教導。
而其結果緊接其後。他們前行時向後跌倒。若向前跌倒,還能用手撐住;但若向後跌倒,就無法如此。於是他們跌傷、陷入網羅、被纏住。
有一位注釋家將此簡短總結:正因這話語太過單純,他們反倒因此絆倒跌落。而加爾文則在此更進一步指出:我們很容易因為自己持續在聽神的話語,就自滿於現狀,以為一切都很順利;然而,若這話語不能光照我們的悟性、不能治理我們的心,那又有什麼用處呢?他說,正是在那樣的時候,我們反倒是在為自己招致更沉重的審判。他還以此作比:這就如同瞎眼的人,無論太陽多麼明亮,都無法從中得到任何幫助一樣。
今天的默想,比任何時候都更深地刺痛了我的心。「我們早就都知道的話,何必還要一字一句地教導」這句話正是如此。因為說這話的,正是祭司與先知。而我,也是一個每天坐在神話語面前的人。每天讀經文、查考註釋、確認原文的意思。然而若要坦白承認,我在這樣做的過程中,當我對經文有了新的發現時,會感到一種滿足。今天又發現了什麼新東西,這帶給我喜悅。然後我會把這份喜悅好好地寫進解經之中。然而,那話語卻常常未能真正落實到生活的實踐中。對聖經的新知識雖然增加了,但按照那話語去活出來的程度,卻沒有相應地增長。因此,我不該做一個自以為都知道的人,而應該做一個真正聆聽的人。在如今這個資訊氾濫的時代,想必有許多基督徒也會重複和我一樣的錯誤。所以,我盼望今天所讀的這段話語,不要只停留成為又一項新知識。願今天成為一個能完全享受神所賜的安息、並將這安息與軟弱的人一同分享的日子,這是我的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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