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목록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14:1–20

    今日默想:士師記14:1–20

    한경우··조회 65

    제목 : 내 눈에 옳으니

    어제 우리는 삼손이 태어나는 장면을 보았다. 하나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그를 구별하셨고, 자라는 동안 복을 주셨으며,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사사들 가운데 누구보다 좋은 출발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자란 삼손이 처음으로 스스로 내리는 결정은 이렇다.

    삿 14:1–3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딤나는 삼손의 고향 소라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이때는 블레셋의 손에 있던 성읍이다. 삼손은 그곳에 내려가 한 여자를 '보았다.' 그리고 부모에게 와서도 '보았사오니'라고 말한다. 삼손을 움직이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부모는 반대한다.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이라는 말은 단순히 다른 민족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삼손은 몰라서 이런 요구를 한 것이 아니다. 훗날 그는 들릴라에게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삼손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는 다른 것을 택했다.

    그런데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삼손의 대답을 우리말 성경은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라고 옮겼지만, 원문은 '그녀가 내 눈에 옳다'이다. 이 말은 사사기의 마지막 장들에서 되풀이되는 말과 같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삼손의 첫 결정은 사사 시대 전체의 정신을 한 사람 안에 담고 있다.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이 아니라 자기 눈에 옳은 것을 따라 산다. 그런데 본문은 곧바로 이렇게 덧붙인다.

    삿 14: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개역개정판 성경은 '삼손이 틈을 타서'라고 옮겼지만, 원문은 '그가 틈을 찾고 있었다'이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번역과 주석은 이 '그'를 바로 앞의 여호와로 읽는다.(NIV, 쉬운성경, 새번역등 참조) 즉, 삼손은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있었지만, 하나님은 블레셋을 치실 기회를 찾고 계셨다. 그렇다고 이 말이 삼손의 선택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쓰셨다고 해서 삼손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한 것이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람이 자기 눈을 따라 움직이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따라 일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줄을 알지 못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하고 물었던 그 부모가, 이제는 아들을 붙잡지도, 하나님의 일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결국 부모는 아들을 데리고 딤나로 내려간다.

    삿 14:5–6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장소가 포도원이다.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을 멀리해야 하는 나실인이 포도원에 있다. 그곳에서 젊은 사자가 달려들고, 여호와의 영이 갑자기 임하여 삼손은 맨손으로 사자를 찢는다. 그런데 삼손은 이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결혼하러 다시 그 길을 내려간다.

    삿 14:8–9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9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은 일부러 길을 돌이켜 사자의 주검을 보러 간다. 그리고 그 주검 안에 손을 넣어 꿀을 떠서 먹는다. 율법은 이렇게 말한다.

    레 11:27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너희에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생각해 보라. 삼손이 태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는 그의 어머니에게 세 번이나 말했다.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어머니는 태 속의 삼손을 위해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들은 부정한 사자의 주검에 손을 넣어 꿀을 떠서 먹는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지켰던 구별을, 아들 자신은 달콤한 꿀 한 움큼에 내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꿀을 부모에게도 건넨다. 부모는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 채 먹는다. 본문은 다시 말한다.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두 번째다. 그런데 자세히 보라. 삼손은 꿀을 감추지 않았다. 부모에게 건네서 먹게까지 했다. 삼손이 부모에게 감춘 것은 그 꿀이 사자의 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삼손은 자기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그의 행동이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삿 14:10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여기서 '잔치'라는 말은 '마시다'에서 나온 말이다. 칠 일 동안 술이 오가는 혼인 잔치다. 포도원에서, 사자의 주검에서, 그리고 술이 오가는 잔치로. 나실인의 구별이 한 걸음씩 흐려진다. 삼손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았다. 조금씩, 자기 눈에 좋은 쪽으로 걸어갔을 뿐이다.

    잔치에는 블레셋 청년 서른 명이 함께했다. 삼손은 그들에게 내기를 건다. 수수께끼를 풀면 베옷 서른 벌과 겉옷 서른 벌을 주겠고, 못 풀면 그들이 내라는 것이다.

    삿 14: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답은 사자 속의 꿀이다. 그런데 이 일은 삼손 말고 아무도 모른다. 부모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이것은 지혜로 풀 수 있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삼손의 비밀을 알아야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삼손은 자기가 감춰 둔 일을 내기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러자 블레셋 청년들은 신부를 협박한다.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신부는 삼손 앞에서 울며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하고 조른다. 삼손은 처음에는 버티지만, 잔치가 끝날 무렵 결국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신부는 그것을 곧바로 자기 백성에게 알린다. 여인의 눈물과 조름 앞에서 삼손이 비밀을 털어놓는 이 장면은, 훗날 들릴라 앞에서 그대로 되풀이될 것이다. 블레셋 청년들이 답을 말하자 삼손은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고 받아친다. 너희가 내 사람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알아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 속에서 삼손은 아내를 암송아지에 빗댄다.

    삿 14:19–20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은 블레셋 해안 도시 아스글론으로 내려가 서른 명을 죽이고, 그들의 옷을 빼앗아 내기 빚을 갚는다. 그리고 몹시 화가 나서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 버린다. 그 사이 신부는 들러리였던 친구에게 넘겨진다. 삼손의 결혼은 잔치가 끝나기도 전에 끝났다.

    그런데 여기서 본문은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삼손의 선택을 기뻐하셨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사사기에서 여호와의 영이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도록 힘을 주신다는 뜻이다. 그 사람이 거룩해졌다거나 그의 판단이 옳다는 보증이 아니다. 여기를 보라.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보고 데려오라 할 때에도, 사자의 주검에서 꿀을 떠먹을 때에도, 술이 오가는 잔치를 벌일 때에도 여호와의 영은 언급되지 않는다. 영이 임하는 곳은 언제나 블레셋과 맞서는 자리, 곧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고 약속하신 그 일의 자리다. 삼손을 움직인 것은 내기에 진 분노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순간을 블레셋을 치실 틈으로 쓰셨다. 한 사건 안에 삼손의 분노와 하나님의 뜻이 겹쳐 있지만, 그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삼손은 자기 욕망을 따라 움직였지만, 하나님의 영은 삼손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니 영이 임한 것은 삼손이 옳았다는 표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약속에 신실하셨다는 표시다.

    그렇다. 삼손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움직였고,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 계산을 따라 움직였다. 부모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이미 약속을 이루어 가고 계셨다. 하나님의 주권이 삼손의 선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삼손의 욕망과 실패도 하나님의 약속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며 삼손의 '내 눈에 옳으니'라는 말 앞에서 나를 돌아본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생각을 따라 우리가 계획한 것을 한다. 나도 그렇다. 목사로서 교회를 섬길 때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섬긴다. 이 방향이 맞다고, 이렇게 하면 공동체가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계획하고 움직인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 교회를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것은 내 계획이 아니었다. 내 눈에 나쁘게 보였던 일이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 좋아 보였던 일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도구였던 때도 있었다. 내 눈은 좋고 나쁨을 판단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셨다. 삼손의 부모가 그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줄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나도 다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일하셨다는 것이 내 선택이 늘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내 부족한 선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끄셨다는 뜻이다. 그래. 지금까지 우리 교회에 있었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자랑할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이 떠오른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기는 지체들... 그 수고를 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눈에 옳은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먼저 묻는 자리로 나아가며, 이 교회를 이끌어 오신 은혜를 잊지 않고 섬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오늘도 기도한다. 주님,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임을 오늘도 잊지 않게 하소서...

    中文 AI翻譯

    標題:在我眼中看為對的

    昨天我們看到了參孫出生的場景。神在他出生之前就已將他分別為聖,在他成長的過程中賜福於他,耶和華的靈也開始感動他。在眾士師之中,這是最好的開端。然而,在今天的經文裡,長大成人的參孫第一次自己做出的決定卻是這樣的。

    士14:1–3 參孫下到亭拿,在那裡看見一個女子,是非利士人的女兒。2 參孫上來稟告他父母說:「我在亭拿看見一個女子,是非利士人的女兒,願你們給我娶來為妻。」3 他父母說:「在你弟兄的女兒中,或在本國的民中,豈沒有一個女子,何至你去在未受割禮的非利士人中娶妻呢?」參孫對他父親說:「願你給我娶那女子,因我喜悅她。」

    亭拿雖離參孫的故鄉瑣拉不遠,但當時卻在非利士人的掌控之下。參孫下到那裡,「看見」了一個女子。回到父母面前,他又說「我看見了」。使參孫動心的,是眼睛所見的東西。父母表示反對。「未受割禮的非利士人」這句話,並非單指不同民族而已,而是在說與神立約之百姓、與未立約之人之間的界線。然而參孫並非不知道這一點才提出這樣的要求。日後他對大利拉親口說:「我自出母胎就歸神作拿細耳人。」參孫是知道自己是誰的。明知如此,他仍選擇了別的道路。

    不過這裡有一處不可錯過的地方。參孫的回答,我們的聖經譯為「因我喜悅她」,但原文其實是「她在我眼中看為對」。這句話與士師記末尾幾章反覆出現的那句話如出一轍:「那時以色列中沒有王,各人任意而行。」參孫的第一個決定,將整個士師時代的精神濃縮在一個人身上。一個被分別歸神的人,並非按神眼中看為對的去行,而是按自己眼中看為對的去活。然而經文緊接著又補上一句:

    士14:4 他的父母卻不知道這事是出於耶和華,因為他找機會攻擊非利士人。那時非利士人轄制以色列人。

    和合本譯為「他找機會攻擊非利士人」,但原文其實是「祂在尋找機會」。如今許多譯本與註釋,都將這個「祂」讀作前一句所提到的耶和華(可參NIV、現代中文譯本、新譯本等)。也就是說,參孫的心被那女子所擄獲,但神卻在尋找攻擊非利士人的機會。這並不表示參孫的選擇是對的。神使用了這件事,並不代表參孫按自己眼中看為對的去行就因此變得合理。但可以確定的是,就在人按自己的眼光行事的那一刻,神也仍照著自己的應許在做工。而父母卻不知道這事是出於耶和華。那對曾經問「這孩子將來我們當怎樣待他」的父母,如今既無法攔阻兒子,也無法看清神的作為。

    最終,父母還是帶著兒子下到亭拿去。

    士14:5–6 參孫跟他父母下亭拿去,到了亭拿的葡萄園,見有一隻少壯獅子向他吼叫。6 耶和華的靈大大感動參孫,他雖然手無器械,卻將獅子撕裂,如同撕裂山羊羔一樣。他行這事並沒有告訴父母。

    地點是葡萄園。一個本應遠離葡萄樹所出之物的拿細耳人,卻置身於葡萄園中。就在那裡,一隻少壯獅子撲來,耶和華的靈忽然大大感動他,參孫赤手空拳將獅子撕裂。然而參孫並沒有把這件事告訴父母。過了些日子,他又走上同一條路,去迎娶那女子。

    士14:8–9 過了些日子,再下去要娶那女子,轉向道旁要看死獅,見有一群蜂子和蜜在死獅之內,9 就用手取蜜,且吃且走;到了父母那裡,給他父母,他們也吃了;只是沒有告訴這蜜是從死獅之內取來的。

    參孫刻意繞道去看那獅子的屍體,並將手伸進屍體裡取蜜來吃。律法上是這樣說的:

    利11:27 凡四足獸中,用爪掌行走的,是與你們不潔淨的;摸其屍的,必不潔淨到晚上。

    想想看,參孫還在母腹中的時候,耶和華的使者曾三次對他的母親說:「清酒濃酒都不可喝,一切不潔之物也不可吃。」母親為了腹中的參孫而謹守,不吃不潔之物。然而如今,這個兒子卻將手伸進不潔的獅屍中取蜜來吃。母親為兒子所持守的分別,兒子自己卻為了一把甜蜜而放下了。他甚至把那蜜遞給了父母。父母吃了,卻不知道那蜜是從何而來。經文再次說道:「沒有告訴。」這是第二次了。但仔細看看,參孫並沒有把蜜藏起來,甚至還遞給父母吃了。參孫向父母隱瞞的,是那蜜出自獅子屍體這件事。參孫明明知道自己自出母胎就歸神作拿細耳人,所以他也清楚知道自己的行為絕不能被人發現。

    士14:10 他父親下去見女子。參孫在那裡設擺筵宴,因為向來少年人都有這個規矩。

    這裡的「筵宴」一詞,源自「飲」這個字,是為期七天、酒水不斷的婚宴。從葡萄園,到獅子的屍體,再到觥籌交錯的筵席——拿細耳人的分別,正一步步變得模糊。參孫並非一夕之間崩塌,他只是一步一步,走向了自己眼中看為好的那一邊。

    筵席上有三十個非利士青年相伴。參孫向他們出了一個謎題打賭:若能猜出謎底,他便給他們三十件裡衣、三十套衣裳;若猜不出,就要他們拿出同樣的東西給他。

    士14:14 參孫對他們說:「吃的從吃者出來;甜的從強者出來。」他們三日不能猜出這謎語。

    謎底就是獅子體內的蜜。然而這件事,除了參孫之外沒有人知道,因為他連父母都沒有告訴。這並非靠智慧就能解開的謎題,而是唯有知道參孫的秘密才能解開的問題。參孫把自己隱藏起來的事,當作了打賭的材料。

    於是非利士青年們便威脅新娘:「你哄誘你丈夫,探出謎語的意思告訴我們,免得我們用火燒你和你父家。」新娘就在參孫面前哭泣,纏著他說:「你是恨我,不是愛我,你給我本國的人出謎語,卻沒有將意思告訴我。」參孫起初堅持不說,但到了筵席快結束時,終究還是說出了秘密。而新娘立刻把答案告訴了自己的族人。這一幕——女子的眼淚與糾纏,使參孫吐露了秘密——日後在大利拉面前將會原封不動地重演。當非利士青年說出謎底時,參孫回敬道:「你們若非用我這母牛犢耕地,就猜不出我謎語的意思來。」意思是,若非利用了他的人,他們絕不可能查出答案。然而在這句話中,參孫竟把妻子比作了母牛犢。

    士14:19–20 耶和華的靈大大感動參孫,他就下到亞實基倫,擊殺了三十個人,奪了他們的衣裳,將衣裳給了猜出謎語的人。參孫發怒,就上父家去了。20 參孫的妻便歸了參孫的陪伴,就是作過他朋友的。

    參孫下到非利士的海濱城市亞實基倫,殺了三十人,奪了他們的衣裳來償還賭債,然後怒氣沖沖地回到父家去了。與此同時,新娘卻被交給了那位曾作陪伴的朋友。參孫的婚姻,筵席都還沒結束就已經結束了。

    然而在這裡,經文卻說「耶和華的靈大大感動參孫」。那麼,耶和華的靈降臨,是否表示神喜悅參孫的選擇呢?並非如此。在士師記中,耶和華的靈降臨,意味著神賜下力量,使人能夠承擔祂所交付的使命,而不是保證那人已然成聖,或他的判斷是對的。請看這裡:當參孫看見非利士女子而要求父母去娶她時,當他從獅子屍體中取蜜來吃時,當他擺設觥籌交錯的筵席時,經文都沒有提到耶和華的靈。靈降臨的地方,始終是與非利士人對抗的場合,也就是神應許「要開始藉他救以色列人脫離非利士人的手」的那個場域。驅使參孫的,是打賭落敗的怒氣。然而神卻正是使用了那個瞬間,作為攻擊非利士人的契機。在同一件事情裡,參孫的憤怒與神的旨意彼此交疊,但這兩者並不是同一回事。參孫是順著自己的慾望而行動,但神的靈卻不是順著參孫的慾望,而是順著神自己的應許在運行。所以靈的降臨,並非參孫是對的標記,而是神信實於自己應許的標記。

    是的,參孫順著自己眼中所見的去行動,非利士人順著自己的算計去行動,父母則什麼都不知道。然而在無人看見之處,神早已在成就祂的應許。神的主權並不能使參孫的選擇變得正當;但參孫的慾望與失敗,也無法使神的應許停止。

    今天默想這段經文,站在參孫那句「在我眼中看為對」的話語前,我省察自己。我們如今仍然順著自己的想法,去做自己所計劃的事。我也是如此。身為牧者服事教會時,我也是憑著自己認為對的方式去服事。我認為這個方向是對的,以為這樣做群體就會被建立起來,於是如此計劃,如此行動。然而回頭看,將我們教會帶到今日這地步的,並不是我的計劃。有些時候,在我眼中看似不好的事,到頭來卻正是神所引導的道路;也有些時候,在我眼中看似美好的事,卻是神用來操練我們的工具。我的眼睛只會判斷好壞,但神卻透過那一切,在成就祂自己的工作。就像參孫的父母不知道那事是出於耶和華一樣,我也並非全都知道。然而,神做了工,並不代表我的選擇一直都是對的;反倒是說,儘管我的選擇有所欠缺,神仍然引導了一切。是的,直到如今,我們教會所擁有的一切,都是神的恩典,我沒有什麼可誇口的。於是我想起了我們群體中的肢體們……在各自的崗位上竭力服事教會的肢體們……我知道他們的辛勞。然而我們必須一同謹記的是:引導這間教會前行的,不是我們,而是神。所以今天,我也放下自己眼中看為對的,先來到向神求問的位置上,不忘懷那引導這間教會至今的恩典,如此服事、如此生活。今天我也這樣禱告:主啊,求你使我們今天也不忘記,這不是我們所做的事,而是主所做的事……

    댓글 / 留言 (0)

    로딩 중...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留言需要先登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