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18:1–20
今日默想:士師記 18:1–20
제목 : 어느 것이 낫겠느냐
어제 본문은 미가의 확신으로 끝났다.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시 이 말로 시작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이번에는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뒷말을 뺀 축약형이다. 그렇기에 그 뒷말을 포함하고 있는 문장이다. 그리고 이제 성경은 미가의 집에서 단 지파 전체로 눈을 돌린다.
단 지파는 그때까지 기업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여호수아에게 땅을 분배 받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여호수아 때 이미 땅을 분배받았지만, 아모리 사람들에게 밀려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삼손이 자란 소라와 에스다올이 바로 그렇게 밀려난 단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다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살기 좋은 다른 땅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다섯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낸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묵다가 그 레위 청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누가 너를 이리로 데려왔느냐고 묻자, 레위인은 미가가 자기를 고용해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정탐꾼들이 부탁한다.
삿 18:5–6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겉으로 보면 이보다 신앙적인 장면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 물어 달라고 했고, 제사장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레위인은 기도하지 않았다. 에봇도 드라빔도 쓰지 않았다. 그들의 계획이 무엇인지 따져 묻지도 않았다. 부탁을 받자마자 곧바로 대답한다. 평안히 가라고. 그리고 그 대답은 정확히 그들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성경은 이것이 정말 여호와의 응답이었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 그들은 하나님께 묻는 형식을 갖췄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원하던 대답을 들었다. 어제 미가가 스스로 확신했던 그 방식을, 오늘은 그 집의 제사장이 남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섯 사람은 북쪽 끝 라이스에 이른다. 그곳 백성은 염려 없이 살고 있었다. 평온하고 안전했으며, 부족한 것이 없었다. 도와줄 이웃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누구와도 왕래하지 않았다. 성경은 이 사람들을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원수로 소개하지 않는다. 조용히 자기 땅에서 살아가던 사람들로 그린다. 그리고 정탐꾼들은 돌아가 이렇게 보고한다.
삿 18:9–10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수아 시대 정복 전쟁의 말이다. 그런데 그때는 하나님이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정탐꾼들이 그렇게 말한다. 생각해 보라. 라이스는 하나님이 단 지파에게 주신 기업 목록에 없는 땅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두고, 더 좋아 보이는 땅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였다.
단 지파의 장정 육백 명이 무기를 들고 길을 나선다. 그들이 미가의 집 앞을 지날 때 정탐꾼들은 그 집에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이 있다고 알려 준다. 그들은 들어가 그것들을 꺼내 온다. 레위인이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고 묻자 그들이 대답한다.
삿 18:19–2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20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미가가 처음 이 청년을 집에 들일 때 했던 바로 그 말이다. 달라진 것은 크기뿐이다. 한 사람의 집이냐, 한 지파냐. 그리고 그들은 묻는다. 어느 것이 낫겠느냐. 원문으로는 '어느 것이 더 좋으냐'는 말이다. 그런데 20절은 그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제사장의 마음이 기뻤다. 원문으로는 '마음에 좋았다'는 말이다. 더 좋은 자리를 묻자, 그의 마음이 좋았던 것이다. 물론 그 앞에는 무장한 육백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잠잠하라, 손을 입에 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본문은 그가 두려워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뻐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손으로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을 받아 들고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그를 아들처럼 대해 준 미가에게는 빈 신당만 남는다.
이제 어제와 오늘의 본문을 함께 보자. 미가는 자기에게 좋은 예배를 만들었다. 단 지파는 자기에게 좋은 땅을 골랐다. 그리고 레위인은 자기에게 더 좋은 자리를 택했다. 그들은 모두 여호와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여호와께 무엇이 좋은지 묻지 않았다. 오늘은 이것을 기억하자.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답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좋게 여기시는지 듣는 것이라는 것을.
최근 사사기를 읽으며 나는 자꾸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미가와 단 지파의 이야기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이 다 있다. 제사장도 있고, 에봇도 있고, 하나님께 묻는 일도 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뜻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우리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 교역자들은...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분명히 안다. 성경이 충분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성경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읽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정해 둔 내 길에 말씀 한 구절을 붙여 "평안히 가라"는 대답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가. 더 좋아 보이는 자리와 더 좋아 보이는 길 앞에서, 내 마음이 먼저 기뻐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 선 나부터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다. 성경을 내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듣는 자로 다시 펴는 것이다.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좋게 여기시는지 묻는 것이다. 그래 오늘 우리는 다시 말씀 앞에 듣는 자로 선다. 내 마음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구하며... 그 말씀이 우리를 고치고 다시 빚어 가시기를 기도하며 한 주를 시작한다.
標題:哪一樣更好呢
昨天的經文以米迦的確信作結。「利未人作了我的祭司,現在我知道耶和華必賜福與我。」然而今天的經文再次以這句話開始:「那時以色列中沒有王。」只是這次省略了後半句「各人任意而行」,是個縮略形式。因此,這句話其實是包含著那後半句意涵的。而聖經現在將目光從米迦的家轉向但支派全體。
經文說,但支派當時尚未得著產業。這不是說約書亞沒有分地給他們,而是說他們在約書亞時代雖已分得土地,卻被亞摩利人擠壓,無法真正佔有那地。參孫成長的瑣拉和以實陶,正是被擠出的但人所居住之處。然而他們並沒有打算重新奪回神所賜的那塊地,反倒去尋找另一塊看起來更宜居的土地。於是從瑣拉和以實陶派出五個人去打探。他們在以法蓮山地米迦家中借宿時,認出了那位利未青年的聲音。當被問及是誰帶他來到這裡時,利未人回答說,是米迦雇用他作祭司。於是探子們就請求他:
士18:5–6 他們對他說:「請你求問神,使我們知道所行的道路是否亨通。」6 祭司對他們說:「你們可以平平安安地去,你們所行的道路是在耶和華面前的。」
從表面看,再沒有比這更屬靈的場景了。他們請求求問神,祭司也奉耶和華的名回答了。可是這裡有一處不可輕忽:這位利未人並沒有禱告,也沒有使用以弗得或家中的神像,甚至沒有詳細詢問他們的計劃究竟是什麼。一聽見請求,便立刻給出答案:平平安安地去吧。而這答案正好就是他們想聽到的話。聖經從未說這真的是耶和華的回應。沒錯,他們具備了求問神的形式,也奉耶和華的名聽到了自己想要的答案。昨天米迦自己所確信的那種方式,今天由那家中的祭司,傳給了別人。
五個人來到北方極處的拉億。那裡的百姓安然居住,平靜無慮,毫無缺乏;離能幫助他們的鄰邦甚遠,也不與任何人來往。聖經並沒有把這些人描寫成騷擾以色列的仇敵,而是描繪成安靜地生活在自己土地上的人。探子們回去後這樣報告:
士18:9–10 說:「起來,我們上去攻擊他們吧!我們已經窺探那地,見那地甚好,你們為何靜坐不動呢?要急速前往得那地為業,不可懈怠。10 你們到了那裡,必看見安居無慮的民,地也寬闊,世上所有的一無所缺;神已將那地交在你們手中了。」
「神已將那地交在你們手中了。」這是約書亞時代征服戰爭時所說的話。只是那時是神親自如此宣告,如今卻是探子們自己這樣說。想想看,拉億並不在神賜給但支派的產業清單之內。他們撇下神所賜的那塊地,去尋找看似更美好的另一塊地,並且還把神的名字加在這件事上。
於是但支派的六百名壯丁帶著兵器出發了。他們經過米迦的家時,探子們告訴他們那家裡有神像、以弗得和家中的神像。他們便進去取了出來。利未人問:「你們做什麼?」他們回答說:
士18:19–20 他們對他回答說:「不要作聲,用手摀口,跟我們去,作我們的父、作我們的祭司。你作一家的祭司好呢,還是作以色列一族一支派的祭司好呢?」20 祭司心裡喜悅,便拿著以弗得和家中的神像,並雕刻的像,進入那些人中間。
「作我們的父、作我們的祭司」——這正是米迦當初邀請這位青年進家門時所說的話。唯一不同的,只是規模的大小:是一個人的家,還是一個支派。於是他們問:哪一樣更好呢?照原文直譯,是「哪一樣更好」的意思。然而第20節對這個問題的回答是:祭司心裡喜悅。照原文,是「心裡覺得好」的意思。問的是哪個位置更好,他的心卻感到喜悅。當然,他面前站著六百名全副武裝的人,他們命令他不要作聲、用手摀口。然而經文並沒有說他感到害怕,而是說他喜悅。他親手拿起以弗得、家中的神像與雕刻的偶像,走進了那群人中間。而曾待他如子的米迦,只剩下一座空蕩蕩的神龕。
現在讓我們把昨天和今天的經文放在一起看。米迦為自己打造了一個合意的敬拜。但支派為自己挑選了一塊合意的土地。而這位利未人則為自己選擇了一個更好的位置。他們都口稱耶和華的名,卻沒有一個人真正詢問耶和華認為什麼是好的。今天讓我們記住這一點:求問神,並不是去確認自己想要的答案,而是去聆聽神認為什麼是美好的。
最近讀士師記時,我不斷被迫回顧自己的樣子。米迦與但支派的故事裡,事奉神的一切形式都齊備了——有祭司、有以弗得,也有求問神的舉動。然而其中真正缺少的,卻是神的旨意。那麼我們又如何呢?我們的教會與弟兄姊妹,更重要的是,我們這些傳講神話語的教牧同工們……其實我們都清楚知道神所喜悅的生活是什麼樣子,因為聖經已經說得夠清楚了。可是,我是否正按著自己想要的方式在閱讀這本聖經呢?是否在自己早已定好的路上,隨意附上一節經文,自己製造出「平平安安地去吧」這樣的答案呢?在看似更好的位置和看似更好的道路面前,是否把自己內心先感到的喜悅,稱作是神的旨意呢?身為站在傳講話語之位的我,也難以自信地說「我絕非如此」。那麼,如今我們所能做的只有一件事:不是把聖經當作滿足自己欲望的工具來翻閱,而是重新以聆聽者的姿態,在神面前打開它。不是去確認自己想聽的答案,而是去詢問神認為什麼是美好的。所以今天,讓我們再次以聆聽者的身份站在話語面前,尋求的不是我心裡所喜悅的,而是神眼中看為美好的……願那話語重新修理、重新塑造我們,帶著這樣的禱告,展開新的一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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