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30:1–17
今日默想:以賽亞書30:1-17
잠잠히 신뢰하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앗수르의 침공이다. 그 위협 앞에서 유다가 선택한 길이 있었다. 애굽과 동맹을 맺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일을 두고 화 있을진저 하고 외치신다.
사 30: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죄목이 세 가지로 나온다. 계획은 세웠는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것, 맹약은 맺었는데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죄에 죄를 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절이 그 핵심을 한마디로 짚는다. 그들이 애굽으로 내려가되 내게 묻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을 열심히 했다. 사절단을 보냈고 조약을 추진했다. 다만 하나님께 묻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면 애굽은 어떤 나라였는가. 학자들은 이 동맹이 왜 문제인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약속하셨고, 주변 나라들과 동맹 맺는 것을 금하셨으며, 특히 애굽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하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애굽은 하나님이 건져 내신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6절에 그 사절단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자와 독사와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광야를 지나간다. 나귀 등에 재물을 싣고 낙타 혹에 보물을 실었다. 애굽의 도움을 사기 위해 위험한 길을 건너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수고를 두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 30:7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여기 라합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것은 성경에서 애굽을 가리키는 시적인 이름이다. 그리고 이 낱말 자체가 교만이나 사납게 날뛰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이 이름은 본래 무섭고 위세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 혹자는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그 라합을 떠올릴 수도 있을 수도 있다. 여리고에서 정탐꾼을 숨겨 준 여인 라합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말로는 똑같이 적히지만 원문에서는 다른 낱말이다. 번역만 같은 이름으로 한 것이다. 서로 관계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이름 앞에 한마디를 붙이신다.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표현이 대단히 촌철살인이라고 지적한다. 직역하면 '라합,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된다. 곧 그 자랑스러운 힘이 실은 완전한 무기력이라는 뜻이다. 이름은 무서운데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주석가는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유다가 두려운 살인자에게서 도망쳐 이미 검증된 살인자에게 도움을 구한 셈이라는 것이다. 앗수르가 무서워서 애굽으로 갔는데, 애굽은 예로부터 그들을 종으로 부리던 나라였던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백성은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 9절부터 11절이 그 답을 준다.
사 30: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고 한다.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한다. 곧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11절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까지 말한다. 즉 선지자들에게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하게 하고, 하나님은 나서시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스스로 교만하여 선택한 결과가 바로 그것임을 알려 준다.
그러니 그 죄악이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 같으리라 하시고, 토기장이의 그릇이 깨어져 그 조각으로는 불도 담을 수 없고 물도 뜰 수 없게 되리라 하신다. 그들이 의지한 것이 그렇게 산산조각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중심이 되는 말씀이 나온다.
사 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학자들은 이 구절을 이렇게 푼다. 돌이키라는 것은 애굽과의 조약에서 돌아서라는 부름이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부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잠잠함과 신뢰가 그 뜻을 다시 확인해 준다. 곧 하나님을 향한 조용한 신뢰가 참된 힘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돌이킨다는 말은 후회하는 감정을 뜻하지 않는다.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결단을 뜻한다. 사절단을 되불러 오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지 아니했다. 16절에서 그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말을 그대로 받으신다. 그러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라 하신다. 자기들이 한 말이 그대로 심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17절이 그 끝을 보여 준다. 한 사람이 꾸짖으면 천 명이 도망하고, 다섯이 꾸짖으면 다 도망하여 산꼭대기의 깃대같이 남는다고 하신다.
오늘 본문을 보니 유다 사람들이 애굽의 도움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기록한다. 사자와 독사가 나오는 광야를 건넜다. 나귀와 낙타에 나라의 보물을 실어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얻으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이름만 무서울 뿐 정작 가만히 앉아 있는 애굽에게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나도 자주 그런 적이 있지 않는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방법을 찾는다. 누구를 만나면 될지, 무엇을 준비하면 될지 궁리한다. 그렇게 애쓰고 나서 돌아보면 정작 그것이 나를 도와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나님께 묻는 일은 늘 그 뒤였다. 순서가 잘 못된 것이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이야기한다.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고,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는다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아야 한다. 그러니 오늘 나는 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 내가 애써 얻으려는 그것이 혹 가만히 앉은 라합은 아닌지를...
靜默信靠
今日經文的背景是亞述的入侵。面對這威脅,猶大選擇了一條路,就是與埃及結盟。而神就此發出「禍哉」的呼喊。
賽30:1 耶和華說:禍哉!這悖逆的兒女。他們同謀,卻不由於我,結盟,卻不由於我的靈,以致罪上加罪;
這裡列出三項罪狀:他們定了計謀卻不是出於神,結了盟約卻不是出於神的靈,因此罪上加罪。而第2節用一句話點出核心——他們下埃及去,並沒有求問神。
他們確實勤奮行事,派出使節,推動條約,只是沒有求問神。
那麼埃及是個怎樣的國家呢?學者們如此解釋這結盟為何成問題:神曾應許要作自己百姓的保護者,禁止他們與周邊列國結盟,尤其特別警戒他們不可依靠埃及的幫助。原因在於,埃及正是神將他們拯救出來的那個地方,而他們竟又想回去。
第6節描繪了那使節團的景象。他們穿過有獅子、毒蛇、飛蛇出沒的曠野,驢背上馱著財物,駱駝峰上載著珍寶,冒著危險的路途只為求得埃及的幫助。然而,面對這一切的辛勞,神卻這樣說:
賽30:7 埃及的幫助是徒然無益的,所以我稱她為「坐而不動的拉哈伯」。
這裡出現了「拉哈伯」這個名字。這是聖經中對埃及的一個詩意稱呼,這個詞本身也帶有驕傲、狂暴肆虐的意思,所以這個名字原本指的是令人畏懼、聲勢浩大的存在。有人或許會聯想到約書亞記中那位拉哈伯,就是在耶利哥城中藏匿探子的那位婦人拉哈伯。然而中文雖然寫法相同,原文卻是不同的詞,只是翻譯時用了同一個名字,彼此並無關聯。
而神在這名字前加了一句話,稱之為「坐而不動的拉哈伯」。學者們指出,這個表達極具一針見血的力道。直譯的話,就是「拉哈伯,他們只是坐著不動」。也就是說,那看似驕傲的力量,實際上完全是無能為力的。名號雖然嚇人,實際上卻什麼也不做。
有一位注釋家如此形容這個處境:猶大是為了逃避一個可怕的殺手,反而向一個早已被證實的殺手求助。他們因懼怕亞述而投奔埃及,而埃及自古以來卻是曾奴役他們的國家。這終究是以色列人愚昧的選擇。
那麼這百姓為何做出這樣的選擇呢?第9至11節給出了答案。
賽30:10 他們對先見說:不要再看見異象了;對先知說:不要向我們說正直的話;要向我們說柔和的話,預言虛幻的事。
他們說不要顯明正直的事,只要說柔和的話,也就是說,他們只想聽自己想聽的話。而第11節甚至說,要以色列的聖者離開他們面前。也就是說,他們要先知只說自己想聽的話,並要求神不要插手介入。這清楚顯明,不聽從神的話語、憑自己的驕傲所作的選擇,結果正是如此。
因此,神說這罪孽必如將傾之高牆,頃刻之間突然坍塌;又如陶匠的器皿被打碎,以致碎片中連盛火、舀水都不能用。他們所倚靠的一切,就這樣粉碎殆盡。
接著出現了今日經文的中心話語。
賽30:15 主耶和華以色列的聖者如此說:你們得救在乎歸回安息,得力在乎平靜安穩;你們竟自不肯。
學者們如此解釋這節經文:所謂「歸回」,是呼召他們從與埃及的盟約中轉身回頭;所謂「安息」,則是呼召他們信靠神。而後面所說的「平靜」與「安穩」,再次確認了這個意涵——對神的靜默信靠,乃是真正力量的源頭。
這裡所說的「歸回」,並非指懊悔的情緒,而是指下定決心不再依靠埃及,轉而倚靠神,是要把使節團召回的行動。
然而,他們竟不肯。第16節中他們這樣說:「不然,我們要騎馬奔逃」,「我們要騎飛快的牲口」。於是神就照著他們自己所說的話回應他們:所以你們必然奔逃,追趕你們的必然更快。他們自己所說的話,原封不動地成了審判。
第17節則顯明了這一切的結局。一人叱喝,必有千人逃跑;五人叱喝,他們就都逃跑,以致所剩下的,好像山頂的旗杆一般。
今日的經文記載了猶大人為了求得埃及的幫助,是多麼地費盡心力——穿越有獅子與毒蛇出沒的曠野,用驢和駱駝馱載國家的財寶送去。然而,他們如此拼盡全力所要得到的,究竟是什麼呢?不過是一個名號嚇人、實則坐而不動的埃及,結果什麼幫助都得不到。而我自己,不也常常如此嗎?一遇到難處,總是先想辦法——該去見誰,該準備什麼,絞盡腦汁地籌謀。等到那樣費盡心力之後回頭一看,那些方法往往並沒有真正幫上什麼忙。而求問神這件事,總是排在最後。順序完全顛倒了。今日的經文正說明了這一點:唯有歸回安息才能得救,唯有平靜安穩、信靠等候才能得力……我們當倚靠神,也當看見神的作為。所以今天,我要再次省察自己究竟倚靠的是什麼——我拼命想要得到的那個東西,會不會其實也不過是一個「坐而不動的拉哈伯」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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