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창세기 27:15-29
今日默想:創世記 27:15-29
리브가가 야곱에게 에서의 옷을 입히고,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에 꾸미는 장면을 읽으면 마음이 무겁다.
창 27: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엄마가 아들에게 다른 사람의 옷을 입힌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가죽을 덧씌운다. 복을 받게 하려고. 그런데 그 복은 이미 야곱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찍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창 25:23). 리브가는 그 약속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아들의 복을 만들어주려 했다.
이삭도 마찬가지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다. 편애의 이유가 이렇게 단순하다. 입맛. 그래서 자기 입맛에 맞는 아들을 축복하려 했다.
두 부모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녀를 자기 손에 쥐려 했다. 한 사람은 속임수로, 또 한 사람은 편애로. 그 결과는 깨어진 가정이었다. 야곱은 20년을 도망자로 살았고, 형제는 원수가 되었다.
솔직히 뜨끔하다.
두 아이를 둔 아빠로서, 나는 이 편애의 이야기 앞에서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내 입에서도 "나는 딸이 더 좋아"라는 말이 장난처럼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딸은 그 말을 좋아한다. "아빠는 내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들은 옆에서 그냥 웃어준다. 아빠의 장난을 이해해주는 착한 아들이다. 그래서 나는 늘 아들에게 고맙고, 동시에 미안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며 그 편애 뒤에 숨은 더 깊은 자리가 보인다. 그것은 내가 아들과 딸 모두를 '내 그림'에 맞추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공부, 진로, 신앙, 관계 — 내 기준과 내 불안이 만들어낸 그림. 나는 그 그림에 두 아이를 맞추고 싶어서, 모르는 사이에 각자에게 다른 모양의 염소 가죽을 씌우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아들도 딸도 야곱이 아니고 에서도 아니다. 두 아이는 하나님이 각각 따로 부르신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내 손으로 복을 만들어주는 아비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을 따라 걷도록 기도해주는 아비가 되어야겠다.
오늘도 내 손에 쥔 염소 가죽을 내려놓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讀到利百加為雅各穿上以掃的衣服,又將山羊羔的皮裹在他手上和頸項光滑之處的場景,心裡感到沉重。
創 27:16 又把山羊羔的皮裹在他手上和頸項光滑之處。
母親為兒子穿上別人的衣服,再蒙上別人的皮。為的是讓他得著祝福。然而那祝福本已是雅各的。因為神早已應許:大的要服侍小的(創 25:23)。利百加知道這個應許,卻等不及。於是她想用自己的手,為兒子打造出那份祝福。
以撒也是如此。以撒喜愛以掃打來的野味,偏愛的理由就是這麼簡單——口味。他想祝福那個合自己口味的兒子。
兩位父母各以自己的方式,試圖將孩子握在自己手中。一個用欺騙,另一個用偏愛。結果是一個破碎的家。雅各在外流亡了二十年,兄弟之間成了仇人。
說實在的,這讓我心頭一緊。
身為兩個孩子的父親,面對這段偏愛的故事,我無話可說。因為我自己的嘴裡也會像開玩笑似地脫口而出:「爸爸比較疼女兒。」女兒聽了很開心,好像覺得「爸爸是我這邊的人」。兒子則在旁邊笑著,他是個懂得體諒爸爸玩笑的好孩子。所以我一直對兒子既感激,又覺得抱歉。
然而今天讀這段經文,我看見了那偏愛背後更深的地方。那就是——我其實想把兒子和女兒都套入「我的藍圖」。學業、前途、信仰、人際關係——那是由我的標準與我的焦慮所描繪出的藍圖。我是否為了讓兩個孩子符合那張藍圖,在不知不覺中,已經為他們各自套上了不同形狀的山羊皮?
但兒子不是雅各,女兒也不是以掃。這兩個孩子,是神分別呼召的人。因此,我不應該成為那個用自己雙手為孩子製造祝福的父親,而應該成為一個為他們禱告、讓他們走在神所預備的道路上的父親。
願今天也是放下我手中山羊皮的一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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