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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6:1-11

    今日默想:哥林多前書 6:1-11

    Kyoung Woo Han··조회 27

    오늘 본문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안타까운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음행 같은 큰 죄를 보고도 모른 척한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형제와 작은 문제로 다투다가, 그 사소한 일을 들고 세상 법정으로 달려간다. 즉 공동체가 정말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죄는 판단하지 않고, 작은 일은 엉뚱한 곳에 가서 판단을 구한다. 바울은 이 두 모습에서 같은 병을 본다. 이 교회가 자기 공동체의 삶을 스스로 다스릴 힘도, 그럴 만한 정체성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교회를 향해 책망한다. 너희는 장차 세상을 판단할 사람들이 아니냐고. 그런데 그 심판받을 세상 앞에 가서 정의를 구걸하고 있느냐고. 그래, 이런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너무나 우습고도 슬픈 역설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법정까지 갔을까? 답은 단순하다. 손해 보기 싫어서다. 한 푼도 지기 싫고, 한 치도 양보하기 싫어서다. 그런데 바울은 정반대로 말한다.

    고전 6: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서로 고발함으로 이미 패배가 있다고 한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형제끼리 법정에서 다투는 그 순간 이미 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튜 헨리 주석에선 이 대목에서, 형제를 이기려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영적인 패배라고 짚는다. 그렇다. 돈을 잃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기어이 이겨야만 하는 그 마음이 패배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도 한때 그런 사람들이었으나,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 용서받음을 기억하고 서로 작은 부분은 용서하라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동일한 혼란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처리해야 할 죄는 방치하고, 용서하고 품어 주어야 할 것을 들추어 내서 서로를 향해 공격을 하는... 그렇기에 깨어 근신함으로 우리를 살펴야 한다. 그래 안다. 나 역시 거저 건짐받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형제 앞에서 한 치도 손해 보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다.

    이 공동체를 향한 본문을 어떻게 내 삶 속에 어떻게 적용할까? 오늘은 조금 부끄러운 내 모습을 반성한다. 다른 곳에서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집에서는 솔직히 나는 이기고 싶어 한다. 별것 아닌 일인데도 끝까지 내 말이 맞다는 걸 확인받고 싶다. 마지막 말은 내가 하고 싶고,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 작은 일에서조차 지기가 싫은 것이다. 가르치려고 한다.

    그런데 본문을 읽으며 깨닫는다. 그렇게 이겨서 무엇을 얻는가? 이겨도 이미 진 것이다. 내 옳음을 증명하는 동안, 우리 사이는 차갑게 식어 있다. 그래 차라리 손해 보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말씀이, 집에서 큰소리를 치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같다. 한 번 져 주면 안 되겠느냐고. 미안하다는 말을 내가 먼저 하면 안 되겠느냐고. 안다.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미 십자가 앞에서, 거저 손해 보아 주신 분께 건짐받은 사람이다.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이 어찌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는 한 치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지... 이런 부족함을 반성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中文 AI翻譯

    今天的經文,將哥林多教會令人心痛的樣貌呈現得淋漓盡致。一方面,面對淫亂這樣的大罪,他們視若無睹;另一方面,卻為了與弟兄之間的小事爭執,竟將那芝麻小事鬧上世俗的法庭。換言之,真正應當嚴肅處理的罪,他們不加判斷;小事卻跑到不該去的地方尋求裁決。保羅在這兩種樣貌中看見了同一種病——這個教會已失去了自治其群體生活的能力,也失去了本當具備的身份認同。

    因此,保羅向這樣的教會發出責備:你們不是將來要審判世界的人嗎?卻要到那將受審判的世界面前去乞求公義?是的,哥林多教會的這幅景象,是何等可笑又令人悲哀的矛盾。

    那麼,他們為何要鬧上法庭?答案很簡單——不願吃虧。一分錢也不肯輸,一寸也不願退讓。然而保羅卻說出截然相反的話:

    哥林多前書 6:7 你們彼此告狀,這已經是你們的大錯了。為甚麼不情願受委屈呢?為甚麼不情願吃虧呢?

    彼此告狀,本身已是一場失敗。無論誰勝誰負,兄弟之間在法庭上對峙的那一刻,就已然輸了。馬太·亨利的注釋在這裡也指出:那想要勝過弟兄的心,本身就已是屬靈上的失敗。確實如此。失去金錢並不是失敗,那非贏不可的心,才是真正的失敗。

    然而保羅並未就此打住。

    哥林多前書 6:11 你們中間也有人從前是這樣;但如今你們奉主耶穌基督的名,並藉著我們神的靈,已經洗淨了,成聖了,稱義了。

    你們從前也是這樣的人,但如今已藉著主耶穌基督的名,在我們神的聖靈裡,得了潔淨、成聖,並稱義。正因如此,要記念那蒙赦免的恩典,彼此在小事上相互饒恕。

    或許我們自己也同樣陷在這種混亂之中——本當處理的罪棄置不顧,卻將本當饒恕、包容的事翻出來,向彼此攻擊……因此,我們必須儆醒謹慎,省察自己。是的,我知道,我自己也是白白蒙拯救的人。這樣的我,若在弟兄面前連一點虧都不肯吃,那才是更加可羞愧的事。

    這段寫給群體的經文,我該如何應用在自己的生活中?今天,我想反省自己一些令人慚愧的樣貌。在其他地方或許還好,但說實話,在家裡,我是想贏的。明明是無關緊要的小事,卻到底要確認「我說的才是對的」。最後一句話想由我來說,也想得到對方的道歉。就連小事也不願輸。總想著要教導對方。

    然而,讀了這段經文,我有所領悟——這樣贏了,又得到什麼?贏了,也已經輸了。在我證明自己正確的時候,我們之間早已悄然冷卻。是的,「為什麼不情願吃虧呢」這句話,彷彿是對著在家中高聲嚷嚷的我所拋出的問題——能不能讓一次?能不能由我先開口說對不起?我知道,這並不容易。然而我已是一個在十字架前,被那位白白為我吃虧的主所拯救的人。一個深知那恩典的人,怎能在所愛的妻子面前,連一寸也不肯退讓……帶著對這樣軟弱的反省,我開始今天的一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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