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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5:19–31

    今日默想:士師記 5:19–31

    한경우··조회 56

    제목 :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어제 본문이 노래의 전반부, 곧 찬양의 부름과 하나님의 오심과 지파들의 명단이었다면, 오늘 본문은 노래의 절정과 결말이다. 전투 장면, 메로스에 대한 저주, 야엘에 대한 축복, 시스라의 어머니, 그리고 마지막 기도다. 이 구조에서 눈여겨볼 것은 저주와 축복이 나란히 놓인다는 점이다. 메로스는 저주를 받고 야엘은 축복을 받는다. 그리고 노래는 하나의 기도로 마무리된다.

    삿 5:20–21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먼저 전투 장면을 보자. 4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혼란에 빠지게 하셨다'고만 했는데, 노래는 하늘의 별들이 시스라와 싸웠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고대의 신적 전쟁의 언어다. 성경에서 하늘의 존재들은 여호와의 군대로 묘사되고, 여기서 별들은 시스라와 직접 싸운다. 그리고 5:4–5의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과 5:21의 기손 강 묘사를 함께 보면, 폭우와 급격히 불어난 물이 시스라의 병거 전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홍해가 바로의 병거를 삼켰듯이 기손 강이 시스라의 병거를 삼켰다. 이처럼 이 전쟁의 장면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싸운 것은 별들이고 강이다.

    그런데 승리의 노래 한복판에 갑자기 저주가 나온다.

    삿 5: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메로스는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이름이고 위치도 알 수 없지만, 문맥상 이스라엘 쪽에 참여할 책임이 있었던 성읍으로 보인다. 어제 본문의 르우벤과 단과 아셀은 '어찌 됨이냐'라는 책망을 들었는데, 메로스는 거듭거듭 저주하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저주의 이유가 눈에 띈다.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사실 하늘의 별들이 싸우고 강이 적을 삼키는 이 전쟁에서 하나님께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시인은 메로스가 여호와를 돕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자기 전쟁에 함께 서기를 원하셨고, 그 자리에 오지 않은 것을 하나님을 돕지 않은 것으로 여기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메로스는 시스라처럼 여호와와 싸운 것이 아니다. 메로스는 그냥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메로스는 저주를 받았다. 이 노래에서는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도 심각하게 평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저주를 선포하는 자의 호칭이 바로 '여호와의 사자'다. 2:1에서 보김에 올라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기소했던 그 호칭이 여기서 다시 나온 것이다.

    삿 5: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저주 바로 뒤에 축복이 온다. 두 구절이 붙어 있으니 이 대비는 의도적이다. 참여해야 했던 메로스는 참여하지 않아 저주를 받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야엘은 참여하여 축복을 받는다. 야엘은 겐 사람이다. 겐 족은 모세의 장인 집안이라 이스라엘과 오랜 관계가 있었지만, 이스라엘 혈통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있던 메로스는 저주를 받고, 이스라엘 혈통 밖에 있던 겐 여인 야엘은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 노래에서 축복과 저주의 경계가 혈통의 경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왕궁의 전사가 아니라 장막에 사는 겐 여인이 적장을 쓰러뜨렸다. 27절은 시스라의 죽음을 세 번 반복해서 노래한다.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시인은 이 반복을 통해서 강한 자가 연약한 여인의 발 앞에 완전히 무너졌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삿 5:28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창살을 통하여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하매

    그런데 노래가 갑자기 적진으로 옮겨간다.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에서 아들을 기다린다. 독자는 시스라가 이미 야엘의 장막에서 죽은 것을 알지만, 어머니는 모른다. 시녀들은 노략물이 많아서 늦는 것이라고 위로하고, 30절에서 그 노략물의 내용이 나온다.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히브리어를 문자대로 읽으면 '자궁 하나, 자궁 둘'이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자기도 여인이면서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군사들에게 전리품으로 나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독자는 안다. 그 아들이 지금 한 여인의 발 아래 전리품처럼 쓰러져 있다. 시인은 이 장면으로 7절의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와 이 가나안의 어머니를 대조한다. 한 어머니는 백성을 일으켜 생명의 길로 보냈고, 다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남의 집 딸들을 전리품으로 가져오기를 기다린다. 한 어머니는 노래하고 한 어머니는 창문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노래가 기도로 끝난다.

    삿 5:31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노래 전체가 이 마지막 절에서 두 범주로 압축된다. 주의 원수들과 주를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시인은 주의 원수가 누구인지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이 노래에서 여호와와 싸운 자는 시스라였지만, 시인은 시스라라는 이름 대신 "주의 원수들"이라고만 한다. 그리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노래 안에서 여호와의 승리에 참여하는 쪽에 선 사람은 드보라와 바락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야엘이었고, 참여하지 않는 쪽에 선 것은 메로스였다. 맥캔 같은 학자들은 이 노래의 '주를 사랑하는 자들' 자리에 드보라와 바락과 야엘을 놓는다. 그러나 마지막 절은 그 구체적인 명단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의 구도를 넘어 모든 사람을 더 근본적인 두 범주 앞에 세운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십계명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출 20:6)라고 하고 신명기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고 할 때, 그 사랑은 언약의 충성과 순종을 포함한다. 적어도 이 노래에서 축복과 저주의 선은 혈통의 선과 정확히 겹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인은 그 모든 선보다 더 근본적인 선 하나를 긋는다. 주의 원수들과 주를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자체가 마지막 기준이 아니다. 마지막 질문은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분의 편에 충성했는가이다.

    그런데 드보라는 이 기도를 심판으로 끝내지 않는다. 드보라는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라고 한 뒤에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라고 덧붙인다. 히브리어로 이 표현은 '해가 그 힘으로 나아감 같이'라는 뜻이다. 이 노래는 어둠에서 시작했다. 큰길이 비어 있고 사람들이 샛길로 다니던 시절, 마을에 사람이 끊기고 사만 명 가운데 방패와 창이 하나도 보이지 않던 시절, 그것이 이스라엘의 밤이었다(6–8절). 그리고 노래는 창문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시스라의 어머니의 어둠으로 끝나 간다(28–30절). 그 두 어둠 사이에서 드보라는 밤이 끝나는 새벽을 눈으로 본 사람이다. 그래서 드보라의 마지막 기도는 원수를 벌해 달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드보라는 주를 사랑하는 자들이 그 밤을 뚫고 떠오르는 해 같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김지찬 교수는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린다. 태양이 어둠을 물리치고 지평선을 박차고 찬란히 솟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드보라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힘 있게 돋는 태양 같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모은다고. 송병현 교수도 같은 구절을 두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주고 생명을 선사하는 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라고 풀이한다.

    즉 이 노래는 이십 년의 밤에서 시작해서 밤을 밀어내고 떠오르는 해로 끝난다. 원수는 시스라처럼 여인의 발 앞에 쓰러져 사라지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처럼 막을 수 없이 떠올라 어둠을 걷어 낸다. 드보라는 심판이 아니라 빛으로 노래를 닫는다. 그리고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했다. '그 땅이 평온하였다'는 공식은 기드온 시대에 한 번 더 나온 뒤(8:28) 사사기에서 사라진다.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는 마지막 한 문장,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깊이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처한 자리가 깜깜한 밤이기 때문이다. 요즘 내 형편은 내가 손을 쓸수록 더 엉망이 되어 가는 것 같고,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보이지 않는다. 드보라가 노래한 그 시절, 큰길이 비고 사람들이 샛길로 다니고 방패 하나 보이지 않던 그 밤이 지금 나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 밤을 지나온 드보라가 마지막에 부른 기도가 '원수를 벌해 주소서'가 아니라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였다는 것이 오늘 나에게 다가온다. 드보라는 밤이 끝나는 새벽을 본 사람이었고, 그 새벽은 이스라엘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일에서 나오셔서 만드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밤 한가운데서 두 가지를 기도한다. 하나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자의 자리에 서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메로스처럼 내 형편을 핑계로 앉아 있지 않고, 이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내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 내 힘으로는 이 밤을 걷어 낼 수 없다. 그러나 주를 사랑하는 자들을 해처럼 떠오르게 하시는 분이 계시다. 그러니 오늘 나는 이 깜깜한 밤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자로 서 있음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주님의 손길로 이 어둠이 물러가고, 지평선 너머로 여명이 보이고, 마침내 새벽 햇빛이 내 자리에 비추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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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標題:愛主的人

    如果說昨天的經文是這首詩歌的前半部——呼籲讚美、神的降臨,以及各支派的名單,那麼今天的經文則是這首詩歌的高潮與結尾。有戰爭的場面、對米羅斯的咒詛、對雅億的祝福、西西拉母親的畫面,以及最後的禱告。在這個結構中值得留意的是,咒詛與祝福並列出現。米羅斯受咒詛,雅億受祝福。而詩歌最終以一篇禱告收束。

    士師記 5:20–21 星宿從天上爭戰,從其軌道攻擊西西拉。21 基順古河把敵人沖沒;我的靈啊,你große地踐踏了大能者。 (譯註:依原文語意調整為和合本經文對照,實際引用如下)

    士師記 5:20–21 星宿從天上爭戰,在其行走的軌道攻擊西西拉。基順古河把敵人沖沒。我的靈啊,你已經踐踏了大能者。

    我們先來看戰爭的場面。第4章只說耶和華使西西拉「陷入混亂」,但這首詩歌卻說天上的星宿與西西拉爭戰。這並非單純的修辭,而是古代神聖爭戰的語言。在聖經中,天上的存有常被描繪為耶和華的軍隊,而在這裡,星宿直接與西西拉交戰。若把5:4–5天上傾降大雨的描寫,與5:21基順河的描寫合併來看,極有可能是暴雨導致河水暴漲,對西西拉的戰車部隊造成了致命的打擊。正如紅海吞沒了法老的戰車,基順河也吞沒了西西拉的戰車。在這場戰爭的畫面中,以色列軍隊幾乎不見蹤影。真正爭戰的是星宿,是河流。

    然而,就在這首勝利之歌的正中央,忽然出現了咒詛。

    士師記 5:23 耶和華的使者說:應當咒詛米羅斯,大大咒詛其中的居民;因為他們不來幫助耶和華,不來幫助耶和華攻擊勇士。

    米羅斯這個名字在聖經中僅此一見,地點也無從得知,但從上下文看,似乎是一座本應參與以色列陣營、卻負有責任卻未盡到的城邑。昨天經文中的呂便、但、亞設所受到的,是「為何如此」的責備;而米羅斯所領受的,卻是「大大咒詛」的話語。而咒詛的原因十分值得注意——「因為他們不來幫助耶和華」。事實上,在這場由星宿爭戰、河流吞沒敵人的戰爭中,神根本不需要人的幫助。然而詩人卻說米羅斯沒有幫助耶和華。這意味著,神渴望自己的百姓與祂一同站在祂的爭戰之中,而沒有到場,就被視為沒有幫助神。這裡有一點值得我們深思:米羅斯並沒有像西西拉那樣與耶和華為敵,米羅斯只是沒有前來。然而米羅斯仍舊受了咒詛。這首詩歌顯示,問題不僅在於站到神的對立面,在神呼召的關鍵時刻仍舊安坐原處、堅守自己的位置,同樣被嚴厲地看待。而宣告這咒詛之人的稱號正是「耶和華的使者」——這正是2章1節中上到波金、控告以色列悖逆的那位使者的稱號,如今再度出現。

    士師記 5:24 願基尼人希百的妻雅億比眾婦人多得福氣,比住帳棚的婦人更蒙福祉。

    咒詛之後緊接著就是祝福。兩節經文緊密相連,這種對比顯然是刻意安排的。理應參與卻未參與的米羅斯受了咒詛;無人期待、卻挺身參與的雅億則蒙了祝福。雅億是基尼人。基尼族是摩西岳父家族,與以色列雖有長久的關係,卻不屬以色列血統。因此,身處以色列群體之內的米羅斯受咒詛,而在以色列血統之外的基尼婦人雅億卻蒙了祝福。這首詩歌清楚顯明,祝福與咒詛的界線並不等同於血統的界線。而且,打倒敵軍將領的,不是王宮裡的戰士,而是住在帳棚裡的基尼婦人。第27節三次反覆歌詠西西拉的死狀:「他屈身仆倒躺臥……在她腳前屈身仆倒……在他屈身之處仆倒而死。」詩人藉由這重複,強調那強大的人如何在柔弱女子的腳前徹底崩潰。

    士師記 5:28 西西拉的母親從窗戶裡往外觀看,從窗欞中呼喊:他的戰車為何遲遲不來?他的車輪為何走得這樣慢?

    然而,詩歌忽然轉向敵營。西西拉的母親在窗前等候兒子歸來。讀者已經知道西西拉已死在雅億的帳棚裡,但這位母親卻不知情。侍女們安慰她說,是因為擄物太多而遲延,而第30節具體說出了那些擄物的內容:「他們莫非得財而分,每人得了一兩個女子?」若照希伯來原文直譯,是「一個子宮,兩個子宮」。西西拉的母親自己身為女性,卻理所當然地認為以色列的女子會被士兵當作戰利品瓜分。然而讀者卻知道——此刻,她的兒子正如戰利品一般,倒臥在一名女子的腳下。詩人藉此畫面,將第7節中「以色列的母親」底波拉與這位迦南母親作對比。一位母親興起百姓、將他們引向生命之路;另一位母親,卻在等候兒子帶回別人家的女兒作為戰利品。一位母親歌唱,另一位母親則在窗邊守候。

    而這首詩歌,最終以禱告作結。

    士師記 5:31 耶和華啊,願你的仇敵都這樣滅亡!願愛你的人如日頭出現、光輝烈烈!这地就太平四十年。

    整首詩歌在這最後一節中,被濃縮為兩個範疇——「主的仇敵」與「愛主的人」。然而詩人並沒有指名道姓地說出誰是主的仇敵。在這首詩歌中,與耶和華為敵的正是西西拉,但詩人並未使用「西西拉」這個名字,只稱之為「你的仇敵」。而「愛主的人」也同樣沒有被指名。在這首詩歌裡,站在參與耶和華得勝那一邊的人,是底波拉、巴拉,以及誰也未曾料到的雅億;而站在不參與那一邊的,則是米羅斯。像麥肯(McCann)這樣的學者,將「愛主的人」這個位置放在底波拉、巴拉與雅億身上。然而,最後一節並不是要整理出具體的名單,而是要超越這場戰爭的格局,將所有人置於一個更根本的兩分之前。在聖經中,「愛神」從不止於情感的層面。十誡說「愛我、守我誡命的」(出埃及記20:6),申命記說「你要盡心、盡性、盡力愛耶和華你的神」(申命記6:5)——這種愛,包含著對聖約的忠誠與順服。至少在這首詩歌中,祝福與咒詛的界線並不與血統的界線完全重疊。而在最後,詩人劃下了一條比所有界線都更為根本的界線——主的仇敵,與愛主的人。因此,「以色列」這個名字本身並非最終的標準。最終的問題是:你是否愛耶和華,並忠心地站在祂那一邊。

    然而底波拉並沒有讓這篇禱告止於審判。底波拉在說了「願你的仇敵都這樣滅亡」之後,又接著說:「願愛你的人如日頭出現、光輝烈烈!」希伯來原文的意思是「如太陽帶著它的能力升起一般」。這首詩歌是從黑暗開始的——大道無人行走,人們只能走小路;村莊裡人煙斷絕,四萬人中連一面盾牌、一支長槍都看不見的那個時代,就是以色列的黑夜(第6–8節)。而詩歌的結尾,也逐漸走入西西拉母親在窗邊等候遲遲未歸的兒子那樣的黑暗之中(第28–30節)。在這兩重黑暗之間,底波拉正是那位親眼見證黑夜終結、黎明降臨的人。因此,底波拉最後的禱告,並未止步於祈求懲罰仇敵。底波拉祈求,願愛主的人如穿透黑夜、冉冉升起的太陽一般。金志燦教授如此描繪這個畫面:當想像太陽驅散黑暗、衝破地平線、燦爛升起的景象時,底波拉雙手合十,祈求那愛耶和華的人,能如那強而有力升起的太陽一般。宋炳鉉教授對同一節經文,也解釋為這是祈求愛主的人,成為在黑暗世界中賜下光明與生命的人。

    也就是說,這首詩歌從二十年的黑夜開始,最終以驅散黑暗、冉冉升起的太陽作結。仇敵如西西拉一般,倒在女子腳前消逝無蹤;而愛主的人,則如太陽一般,勢不可擋地升起,驅散黑暗。底波拉並非以審判、而是以光明,為這首詩歌畫下句點。而那地,就太平了四十年。「那地太平了」這個公式化的表述,在基甸的時代再次出現一次(8:28)之後,便從士師記中消失了。

    今天默想這段經文時,我深深思想著最後那句禱告——「願愛你的人如日頭出現、光輝烈烈」。因為我此刻所處的境地,正是一片漆黑的夜晚。最近我的處境,似乎越是伸手想要解決,就越是變得一團糟,連該從何處著手都看不清楚。底波拉所歌唱的那個時代——大道空無一人、人們只能走小路、連一面盾牌都看不見的那個黑夜——如今對我而言,已不再是別人的故事。然而,走過那黑夜的底波拉,最後所唱出的禱告,並不是「願你懲罰仇敵」,而是「願愛你的人如日頭出現、光輝烈烈」——這句話今天向我迎面而來。底波拉是曾親眼看見黑夜終結、黎明來臨的人;而那黎明,並非以色列自己造成的,而是神從西珥出來、親自成就的。因此,今天在這黑夜之中,我要祈求兩件事。第一,願我能站立在愛主之人的位置上——不要像米羅斯那樣,以自己的處境為藉口而安坐不動,而要在這黑暗之中,成為站在神所呼召之處的人。第二,願神記念我是愛祂的人。是的,靠我自己的力量,無法驅散這黑夜。但那位使愛主的人如太陽般升起的主,確實存在。因此,今天我懇切禱告:願神在這漆黑的夜裡,記念我是站立在愛主之人的位置上的人;願主親自出手,使這黑暗退去,願地平線那端顯出曙光,最終願破曉的陽光,照耀在我所站立的地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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