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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야고보서 3:13–18

    今日默想:雅各書 3:13–18

    한경우··조회 61

    제목 : 위로부터 난 지혜

    어제 우리는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함께 나오는 모순을 보았다. 그리고 샘 하나가 한 구멍으로 단 물과 쓴 물을 함께 내지 않듯,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 근원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오늘 야고보는 그 근원으로 더 들어간다. 우리를 움직이는 지혜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것이다.

    약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3:1에서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을 물었던 야고보는 이제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너희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냐. 그런데 야고보는 그 답을 지식의 양에서 찾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머리가 좋거나 아는 것이 많은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을 따라 살아가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래서 지혜가 있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삶으로 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2장에서 야고보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행함으로 보이라고 했다. 이제는 지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같은 것을 요구한다. 믿음이든 지혜든 내게 있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야고보는 무엇을 하느냐뿐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도 묻는다.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하라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사람을 누르고 자기를 드러내며 한다면 그것은 지혜의 방식이 아니다. 말씀을 받는 온유함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도 이어져야 한다. 말씀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면서 사람 앞에서는 자기 생각만 고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의 마음도 있다.

    약 3:14–15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앞에서 쓴 물을 말했던 야고보는 이제 마음속의 독한 시기를 지적한다. 그리고 여기서 ‘다툼’은 단순히 의견이 달라 말다툼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기를 앞세우고, 남보다 위에 서려 하며, 자기편을 만드는 경쟁심을 가리킨다. 그런 마음을 품고도 자기가 지혜롭다고 자랑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거스르는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참된 지혜는 온유함으로 드러나는데, 정작 삶은 자기가 말하는 지혜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그런 지혜의 실상을 점점 더 강한 말로 드러낸다. 땅 위의 것, 정욕의 것, 귀신의 것. 그런데 우리말 ‘정욕’을 보면 성적인 욕망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원문의 프쉬키케(ψυχική)는 그런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에 속하지 않은 것, 성령의 다스림을 떠난 인간의 욕망과 판단에 머무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야고보의 말은 이렇다. 아무리 영리하고 그럴듯해도, 시기와 자기 욕심에 끌려가는 판단을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귀신의 것’이라고까지 한다. 물론 다투는 사람마다 귀신 들렸다는 말은 아니다. 시기와 야망을 지혜라고 포장하는 삶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의 성격과 영향에 연결되어 있다는 엄중한 말이다.

    그렇다. 그 열매를 보면 안다. 야고보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한다(16절). 자기 뜻을 앞세우면 관계가 어지러워지고 결국 공동체가 갈라진다. 여기서 문제는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편을 가르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며, 서로를 대립시키는 태도다. 그런 일을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정당화하더라도, 그것을 위로부터 온 지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위로부터 난 지혜는 어떤 모습인가.

    약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먼저 ‘위로부터’라는 말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1장에서 야고보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라고 했다(1:17). 그리고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다(1:5). 그러니 위로부터 난 지혜는 남보다 앞서기 위해 익히는 처세술이 아니다. 빛들의 아버지께서 내려 주시는 선물이다. 그래서 이 지혜에는 그것을 주신 분의 성품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지혜가 부족하여 찾아오는 사람을 면박하지 않으시고 후히 주신다. 그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자기 우월함을 드러내는 구실로 삼을 수 없다. 나 역시 부족하여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성결하다. 시기와 야망과 위선에 물들지 않은 깨끗함이다. 그러나 성결이 먼저 나온다고 해서 ‘나는 진리를 지키니 가혹하게 싸워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에 화평과 관용과 양순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성결을 내세워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이 지혜와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관용은 자기 권리만 고집하지 않는 너그러움이고, 양순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설득될 줄 아는 태도다. 그렇다고 무조건 남의 말을 따른다는 뜻은 아니다. 배울 수 있고 자기 생각을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지혜에는 긍휼도 가득하다. 2장에서 야고보는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다(2:13). 그러니 위로부터 난 지혜는 어려운 사람을 보고 마음만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돕는 선한 열매를 맺는다.

    약 3: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모습을 보여 준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화평 가운데 씨를 뿌리고 의의 열매를 거둔다. 그 의의 열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삶과 관계다. 그러니 화평은 우리가 바라는 결과이면서, 거기까지 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의로운 목적을 내세운다고 해서 시기와 모욕과 자기 과시까지 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화평을 위해 잘못을 덮으라는 말도 아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를 가진 사람은 바로잡아야 할 것을 바로잡는다. 다만 상대를 짓누르거나 자기 옳음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바른 길에 서도록 돕기 위해 그렇게 한다. 칼빈이 말한 것처럼, 병을 고치려는 의사가 사형집행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사로 살아가는 나에게 오늘 야고보의 질문은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나는 주일마다 강단에서 말씀을 가르친다. 그런데 야고보는 지혜가 말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가르친 말씀은 삶으로 보여야 한다고. 그래,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날마다 넘어진다. 가르치는 말씀만큼 내 삶이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고, 그때마다 내 지혜가 위로부터가 아니라 땅 위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오늘 다시 1장의 말씀을 붙든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오늘도 강단에 서기 전에, 지체들 곁에 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구한다. 내가 가르치는 모든 말씀을 먼저 내 삶에서 실천하기를... 그리고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화평으로 나타나기를 기도한다.

    中文 AI翻譯

    標題:從上頭來的智慧

    昨天我們看見,同一張口中竟發出頌讚與咒詛的矛盾。也看見,正如泉源不能從一個眼裡同時發出甜水和苦水,口中所出的話語也無法與它的源頭分開。所以今天,雅各更深入那個源頭。他要問的是:推動我們的智慧,究竟從何而來?

    雅 3:13 你們中間誰是有智慧、有見識的呢?他就當在智慧的溫柔上顯出他的善行來。

    在 3:1 追問教導者責任的雅各,現在轉而問那些自認有智慧的人:你們中間誰是有智慧的?然而雅各並不從知識的多寡來找答案。聖經所說的智慧,不只停留在頭腦聰明或知道得多,而是要進一步照著神所賜的分辨力而活。所以,若真有智慧,就不要只用嘴說,要用生命顯明出來。是的,在第 2 章,雅各要求自稱有信心的人用行為顯出來;如今,他對自稱有智慧的人提出同樣的要求。無論是信心還是智慧,都不能只是口頭上說「我有」。

    不過,雅各不僅問我們做什麼,也問我們怎麼做。他要我們「在智慧的溫柔上」行事。即使做的是好事,若是壓制別人、高舉自己,那就不是智慧的方式。領受神話語時的溫柔,也必須延伸成待人的態度。因為我們不可能在神的話語面前低頭,卻在人面前只堅持己見。

    然而,也有與此完全相反的心。

    雅 3:14–15 你們心裡若懷著苦毒的嫉妒和紛爭,就不可自誇,也不可說謊話抵擋真道。15 這樣的智慧不是從上頭來的,乃是屬地的,屬情慾的,屬鬼魔的。

    先前提到苦水的雅各,現在指出人心中苦毒的嫉妒。而這裡的「紛爭」,不單指意見不同而起的爭吵,更是指凡事以自己為先、想要高人一等、拉幫結派的競爭心。若懷著這樣的心,卻還誇口自己有智慧,那就是抵擋真理的謊言。因為真正的智慧是藉著溫柔顯明的,而這人的生命卻與他口中所說的智慧恰恰相反。

    雅各用越來越強烈的字眼,揭露這種智慧的真相:屬地的、屬情慾的、屬鬼魔的。中文的「情慾」一詞,可能讓人先聯想到性方面的慾望,但這裡原文的 psychikē(ψυχική)並不是這個意思。它指的是不屬於神的靈、離開聖靈的管理,只停留在人的慾望與判斷之中的東西。所以雅各的意思是:不論多麼精明、多麼似是而非,被嫉妒和私慾牽著走的判斷,都不能稱為神所賜的智慧。雅各並未就此打住,甚至稱之為「屬鬼魔的」。當然,這並不是說每個與人爭執的人都被鬼附。這是一句嚴肅的警告:把嫉妒和野心包裝成智慧的生命,並非出於神,而是與邪靈的性質和影響相連。

    是的,看果子就知道。雅各說,在有嫉妒和紛爭的地方,就有「擾亂和各樣的壞事」(16 節)。當人以自己的意思為先,關係就會混亂,最終群體也會分裂。這裡的問題並不在於意見不同本身,而在於為了貫徹己意而結黨分派、貶低他人、使彼此對立的態度。這樣的事無論用多麼冠冕堂皇的話來合理化,都不能稱為從上頭來的智慧。

    那麼,從上頭來的智慧是什麼樣子呢?

    雅 3:17 惟獨從上頭來的智慧,先是清潔,後是和平,溫良柔順,滿有憐憫,多結善果,沒有偏見,沒有假冒。

    首先,我們不可輕輕略過「從上頭來」這幾個字。在第 1 章,雅各說:「各樣美善的恩賜和各樣全備的賞賜都是從上頭來的,從眾光之父那裡降下來的」(1:17)。他也說,若缺少智慧,應當求那不斥責人的神(1:5)。所以,從上頭來的智慧不是為了勝過別人而學來的處世之道,而是眾光之父所賜下的禮物。因此,這智慧彰顯出賜予者的性情。神不會斥責那因缺乏智慧而來尋求祂的人,反而厚厚地賜給他。向這位神求智慧的人,就不能把別人的不足當作顯出自己優越的藉口,因為我自己也是因為不足而向神祈求的人。

    這智慧是清潔的,是未被嫉妒、野心和虛偽所沾染的純淨。然而,清潔排在第一位,並不表示「我在持守真理,所以可以毫不留情地爭戰」。因為緊接著就是和平、溫良與柔順。打著清潔的旗號隨意對待人,與這智慧並不相稱。再者,溫良是不只堅持自己權利的寬厚;柔順則是願意聆聽他人、能夠被說服的態度。但這並不是說要無條件順從別人的話,而是表示自己是可教的,願意修正自己的想法。而且,這智慧也滿有憐憫。在第 2 章,雅各說:「憐憫原是向審判誇勝」(2:13)。所以,從上頭來的智慧,不會只停留在看見困苦之人時心裡難過,而是會結出實際幫助人的善果。

    雅 3:18 並且使人和平的,是用和平所栽種的義果。

    最後,雅各呈現出撒種與收成的畫面。使人和平的人,在和平中撒種,收成義的果子。這義的果子,就是神所喜悅的正直生命與關係。所以,和平既是我們所盼望的結果,也是走到那裡的方式。因此,就算打著公義目的的旗號,嫉妒、羞辱與自我炫耀也不會因此變得公義。但這也不是說為了和平就要掩蓋錯誤。擁有從上頭來之智慧的人,會糾正該糾正的事;只是不是為了壓倒對方或炫耀自己是對的,而是為了幫助那人站在正路上。正如加爾文所說,要醫病的醫生不應成為劊子手。

    對身為牧師的我而言,雅各今天的提問是無法迴避的:你們中間誰是有智慧、有見識的呢?我每個主日都站在講台上教導神的話語。但雅各說,智慧不是靠言語來證明的;所教導的話語,必須在生命中顯明出來。是的,我每天正是在這個地方跌倒。我的生命常常跟不上我所教導的話語,每當這時,我就不得不省察:我的智慧是否不是從上頭來,而是出於屬地的?所以今天,我再次抓住第 1 章的話語:若缺少智慧,應當求那不斥責人的神。今天,在站上講台之前,在走到肢體們身邊之前,我先向神懇求:願我所教導的每一句話語,都先在我自己的生命中實踐出來……也禱告,願這話語的能力,在我們的群體中以和平彰顯出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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