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29:1–14
今日默想:以賽亞書29:1-14
입술은 가까우나 마음은 멀도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을 향한 화 선언이다. 그런데 그 부르는 이름이 낯설다.
사 29: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아리엘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성경에서 예루살렘을 이렇게 부른 곳은 이 장뿐이다. 그런데 이 이름의 뜻을 두고 학자들의 견해가 갈린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자'라는 뜻이다. 사자는 유다 지파의 상징이었고, 예루살렘은 주변 나라들을 호령하던 도시였으니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다른 하나는 '제단의 화덕'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로 아주 비슷한 낱말인데, 에스겔서에서 번제단의 화덕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그렇기에 2절에서 하나님이 그 성읍이 내게 아리엘같이 되리라고 하실 때는 제단의 화덕이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쉬운성경은 이 대목을 '나의 번제단'이라고 번역했다. 그렇다면 이 한 이름을 두 뜻으로 겹쳐 읽을 수 있게 된다. 즉 사자라 불리던 도시가 제물이 태워지는 화덕이 되는 것이다. 언어유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1절 끝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해마다 절기가 돌아온다. 유월절이 오고 칠칠절이 오고 초막절이 온다. 이 성읍에서 그 종교 행사는 어김없이 돌아간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 그런 성읍을 향해 화 있을진저 하고 외치신다. 곧 오늘 본문은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제 이사야는 그 도시의 모습을 세 장면으로 보여 준다.
첫째 장면은 포위당한 성읍이다.
사 29: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예전에 이 성읍을 정복하기 위해 다윗이 진을 쳤던 그 성읍에, 이번에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도구를 사용해서 진을 치신다. 그리고 4절에 이르면 그 성읍이 낮아져 땅에서 말하며, 그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티끌에서 속삭이게 된다고 표현한다. 이는 큰소리치던 도시가 땅에 엎드려 겨우 중얼거리는 그림이다.
둘째 장면은 그 대적들이 사라지는 모습이다.
사 29:5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그런데 그 무서운 포위가 홀연히 흩어진다. 7절과 8절이 그것을 꿈에 비유한다. 주린 자가 꿈에 먹었으나 깨면 여전히 배고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으나 깨면 여전히 갈한 것 같다는 것이다. 대적들이 예루살렘을 삼킨 줄 알았는데 깨어 보니 손에 아무것도 없더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예루살렘은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성읍이 대적에게 완전히 삼켜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셋째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장면이 가장 무겁다.
사 29: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지키시는데도, 정작 그 백성은 취한 듯 비틀거린다. 그런데 술 때문이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던 6장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그때 하나님은 이 백성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이 갑자기 이해력을 빼앗으신 것이 아니다. 오래도록 듣기를 거부해 온 백성에게, 그 완고함이 굳어지도록 두시는 심판이다.
그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11절과 12절이 보여 준다.
사 29: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여기서 무엇이 봉해졌다고 하는가? 본문은 그것이 '모든 계시'라고 말한다. 곧 이사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두 사람이 등장한다. 글을 아는 사람은 책이 봉해져서 읽지 못하고, 글을 모르는 사람은 애초에 읽을 줄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앞에 주어졌는데 그 뜻이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그런가. 13절이 그 답을 준다.
사 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입으로는 가까이하는데 마음은 멀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경외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일 뿐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사람의 계명'이라는 말이 무엇인가? 학자들은 이것을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이 요구한 규범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가르침을 받았다'는 표현까지 함께 보면, 그들의 경외는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배워 익힌 종교적 습관으로 굳어져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앞의 장면들이 하나로 이어진다. 절기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예배는 드려졌고 제사는 이어졌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봉한 책과 같았다. 왜 그런가. 그들이 해 온 것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나온 예배가 아니라 배운 대로 이어 온 형식적인 행위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 자리에 없으니, 이사야가 줄곧 선포해 온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았다. 형식은 완벽하게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뜻은 그 안에서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훗날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셨다(마 15:8). 그러니 이것은 한 시대의 문제가 아니다. 말씀을 많이 다루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래서 14절이 그 결과를 말한다.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다시 행하시겠다고 하시는데, 이번에는 구원의 놀라움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를 무너뜨리는 심판의 놀라움이다.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진다. 아는 것이 많던 자들이 정작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장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금 더 나아가면 하나님이 회복을 말씀하신다. 못 듣는 자가 그 책의 말을 듣고 맹인의 눈이 어둠에서 벗어나 보게 된다고 하신다. 오늘 읽은 어둠 뒤에는 그런 회복의 약속이 놓여 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나는 그 봉한 책을 오래 생각한다. 그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봉한 책처럼 되었듯, 오늘 내 손에 성경이 있어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말씀이 넘치는 시대다. 교회에 나오고, 성경을 읽고, 찬양을 부른다. 유튜브를 열면 설교가 끝없이 나오고 검색창에 한 구절만 넣어도 주석이 쏟아진다. 게다가 Ai가 어떤 설교자 보다 화려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어떻게 되는가. 사랑하라는 말씀, 공의를 행하라는 말씀, 용서하라는 말씀, 낮아지라는 말씀이 다 거기 적혀 있다. 나는 그것을 읽었고 들었다. 그런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지적인 만족만 누리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고는 다음 주일에 또 예배를 드린다. 절기는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렇게 종교적 행위는 반복되지만,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은 실천되지 않는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알려 준다. 마음이 멀면 말씀이 손에 있어도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공동체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입술의 말과 마음의 방향이 하나가 되는 공동체이기를 바란다. 오늘 읽은 이 말씀도 내 머릿속에만 남지 않기를 원한다. 입술로만 공경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마음으로 가까이하고 삶으로 순종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嘴唇雖近,心卻遠離
今天的經文是對耶路撒冷宣告的禍患。然而其中所用的稱呼卻很陌生。
賽29:1 唉!亞利伊勒,亞利伊勒,大衛安營的城,你們雖然年年循環過節,
亞利伊勒是指耶路撒冷的名字。在聖經中,唯獨這一章如此稱呼耶路撒冷。然而學者們對這個名字的意思看法不一。一種說法是「神的獅子」的意思。獅子是猶大支派的象徵,而耶路撒冷是號令周邊列國的城市,這個名字十分相稱。另一種說法是「祭壇的爐灶」的意思。希伯來文中這是非常相近的字,在以西結書中用來指燔祭壇的爐灶。
因此,在第2節中,神說「這城必被我看如亞利伊勒」時,可以理解為是取「祭壇的爐灶」之意。事實上,「現代中文譯本」將這段翻譯為「我的祭壇」。如此一來,這一個名字便可以被讀出兩層重疊的意思。也就是說,那被稱為獅子的城市,將要變成焚燒祭物的爐灶。這是藉由文字遊戲來傳達信息。
所以在第1節末尾如此說:節期年年循環而來。逾越節到了,七七節到了,住棚節也到了。在這城中,那些宗教活動絲毫不差地照常舉行。然而神竟向著那樣的城呼喊「禍哉」。也就是說,今天的經文所宣告的信息,不是對那些不敬拜的人,而是對那些正在敬拜的人。
現在以賽亞用三個場景向我們展示那城的景況。
第一個場景是被圍困的城。
賽29:3 我必四圍安營攻擊你,屯兵圍困你,築壘攻擊你。
從前大衛為了征服這城而安營之處,如今神卻藉著祂自己的工具再次安營攻擊。到了第4節,經文描述那城必降卑,從地中說話,聲音必像交鬼者的聲音出於地,言語低微出於塵埃。這描繪的是曾經誇口自大的城市,如今伏倒在地,僅能微弱低語的畫面。
第二個場景是那些敵人消失的景象。
賽29:5 你仇敵的群眾,卻要像細微的塵埃;強暴人的群眾,也要像飛糠一樣。這事必頃刻之間忽然臨到。
然而那可怕的圍困卻忽然消散。第7、8節將此比作夢境。飢餓的人夢中吃飯,醒了仍覺腹空;口渴的人夢中喝水,醒了仍覺發昏,心裡想喝。這意味著敵人本以為已經吞滅了耶路撒冷,但醒來一看,手中卻空無一物。在此我們必須同時看見兩件事:耶路撒冷無法逃避審判;然而神並沒有讓這城被敵人徹底吞滅。
但接下來是第三個場景,而這個場景最為沉重。
賽29:9 你們等候驚奇吧!你們宴樂昏迷吧!他們醉了,卻非因酒;他們東倒西歪,卻非因濃酒。
儘管神如此保守他們,這百姓卻仍如醉酒般踉蹌搖晃。然而經文說這並非因酒。乃是因為神將沉睡的靈澆灌在他們身上。
讀到這裡,不禁讓人回想起以賽亞在第6章蒙召的那一刻。那時神說這百姓聽是聽見,卻不明白;看是看見,卻不曉得。所以這並不是神突然奪去了他們的理解力,而是對那長久拒絕聆聽的百姓,任憑他們的頑梗變得更加剛硬的審判。
第11節與第12節向我們展示了這種狀態究竟是怎樣的。
賽29:11 所有的默示,你們看如封住的書卷,人將這書卷交給識字的,說:「請念吧!」他說:「我不能念,因為是封住了。」
這裡所說被封住的是什麼?經文說是「所有的默示」,也就是指以賽亞所傳講的神的全部話語。接著出現了兩種人。識字的人,因書卷被封住而不能讀;不識字的人,則本來就不會讀。無論是哪一種,結果都是一樣的:神的話語擺在他們面前,其中的意義卻無法傳達給他們。
那麼,為什麼會這樣呢?第13節給出了答案。
賽29:13 主說:「因為這百姓親近我,用嘴唇尊敬我,心卻遠離我;他們敬畏我,不過是領受人的吩咐。
嘴上親近,心卻遠離。而那敬畏,不過是領受人的吩咐所教導的罷了。這裡所說的「人的吩咐」是什麼呢?學者們認為,這不是指神所吩咐的,而是指宗教領袖所要求的規條。若再結合後面「領受教導」這句話一同來看,可以理解為:他們的敬畏並非出於真實遇見神,而是從人那裡學來、逐漸固化成的宗教習慣。
如今,前面的場景連成了一體。節期絲毫不差地循環而來,敬拜照常獻上,祭祀照常延續。然而神的話語對他們來說卻如同封住的書卷。這是為什麼呢?因為他們所行的,不是出於對神真心的敬拜,而是照著所學延續下來的形式化行為。心既不在其中,那麼以賽亞一直宣告的神的公義與正義,即便近在眼前,也無法看見。表面的形式運作得完美無缺,神的旨意卻未能在其中實現。
正因如此,後來耶穌責備文士和法利賽人時,正引用了這節經文(太15:8)。由此可見,這並非一個時代獨有的問題,而是越是常常接觸話語的人,越容易陷入的陷阱。
因此第14節說出了其結果。神說要再次行奇妙的事,但這次不是拯救的奇妙,而是傾覆人智慧的審判之奇妙。智慧人的智慧必然消滅,聰明人的聰明必然隱藏。那些自以為知道很多的人,竟然對真正應當知道的事一無所知。
不過這一章並未就此結束。再往下讀,神應許了恢復。聾子必聽見這書上的話,瞎子的眼必從迷矇黑暗中得以看見。今天所讀的黑暗背後,正擺著這樣的恢復應許。
默想今天的經文時,我久久思想那卷封住的書。那時神的默示對他們而言如同封住的書卷,如今即便聖經在我手中,恐怕也可能如此。如今是話語充溢的時代。人們上教會,讀聖經,唱詩歌。打開YouTube,講道源源不絕;只要在搜尋欄輸入一節經文,注釋便湧現而出。甚至AI也能給出比任何講道者都更華麗的信息。然而,其中所承載的信息又如何呢?要愛人的話語、要行公義的話語、要饒恕的話語、要謙卑的話語,全都寫在那裡。我讀過,也聽過。可是我是否只是左耳進右耳出?是否只滿足於知性上的滿足感?然後到了下個主日,又照樣去敬拜。節期依舊絲毫不差地循環而來。宗教性的行為如此反覆進行,但神的旨意卻未能在生活中被實踐出來。今天的經文告訴了我們其中的原因:心若遠離,即便話語在手中,也讀不進去。所以我盼望我們的群體不要如此。願我們是嘴唇的話語與心的方向合而為一的群體。也願今天所讀的這段話語,不只停留在我的腦海之中。願我從那只用嘴唇尊敬的地位上走下來,用心親近神,並活出順服的一天,我如此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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